손가락과 책읽기


 오른손 둘째손가락 끝이 베었다. 그저께 베었다. 벤 줄 모르고 손가락이 꽁꽁 얼면서 일하다가 나중에서야 알아챘다. 피가 몽글몽글 솟아 말라붙은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손가락이 얼어붙는 추운 도서관에서 책을 만지며 일하느라 아픈 줄도 몰랐구나 싶다. 따뜻한 집으로 들어오니 언손이 녹으며 비로소 따끔거린다. 저녁때 소독약을 살짝 뿌려 보니 꼭 송곳으로 후비듯 따갑다. 그래도 반창고를 대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한다. 아이도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고 똥눈 밑을 닦아 주며 이도 닦아 준다. 손끝이 아픈 줄 알면서 아파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채 글을 썼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고 맞이한 새벽녘, 손끝은 제 임자를 잘못 만난 셈치고 일찌감치 아물어 주었다고 느낀다. 어쩌면 임자를 잘 만났으니(?) 다른 때보다 더 일찍 아물어 주어야 한다고 여겼을까.

 바쁘고 힘들다며 마구마구 일하던 나한테 손끝은 이렇게 스윽 깊이 베이며 좀 쉬라고 말을 건넸고, 좀 쉬라고 말을 건네던 손끝은 집에서 맡은 살림살이가 얼마나 많은데 섣불리 막 쉬라 할 수 없겠구나 싶다면서 얼른 아물도록 해야겠다며 말을 건넨다.

 언제 어떻게 아프거나 다칠지 모르기 때문에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처럼 일할 수 있도록 다스려야 한다. 언제 어떻게 부러지거나 못 쓸지 모르는 터라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마냥 살아갈 수 있도록 보듬어야 한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부러지거나 못 쓰면 얼마나 슬프며 괴로울까. 생각하기조차 싫다. 그러나 다치거나 아프거나 부러지거나 못 쓰는 사람은 참 많다. 게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살아서 움직이는 하루하루란 어마어마한 선물이다. 목숨도 선물이지만 내가 보낼 수 있는 하루하루 또한 대단한 선물이다.

 누구한테나 일흔 해 한삶이든 고작 하루만큼이든 끝없는 선물이기 때문에, 이 선물을 잘 알아채거나 헤아리는 이들은 딱 하루 몇 시간 움직이면서 마주한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도 책 한 권을 일군다. 나한테 주어진 선물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일흔 해 한삶을 바쳐 책 한 권을 훌륭히 일구기도 한다. (4344.2.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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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무라 이헤이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 두 권을 장만했다. 인터넷책방에서 한다는 해외배송이라는 틀에 따라 주문해서 석 주쯤 걸려 받아본다. 여권이 집구석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돈없는 내 삶에서, 누군가 여권을 다시 만들어 주며 바깥마실값을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일본이건 중국이건 나들이를 할 수 없다. 나라밖 마실을 할 수 없는 내 삶이란, 나라밖 책방을 쏘다니며 나라안에 들어오지 않는 애틋한 책을 장만할 수 없다는 소리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나라안 헌책방을 바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누군가 애써 장만한 다음 고마이 내놓아 준 나라밖 책을 반가이 맞아들이는 일 한 가지이다.

 인터넷책방에서 나라밖 사진책을 장만하자면 돈이 꽤 든다. 그렇지만 비행기삯이며 여러 날 드는 품이며 무거운 책을 들고 지고 나르는 품이며 헤아린다면 하나도 안 비싼 값이라고 느낀다. 더구나, 꿈에 그리던 책을 돈 몇 푼에 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쓰다듬을 수 있기까지 하니, 그지없는 보배가 아닌가 싶다.

 2000년 즈음인가 헌책방에서 겨우 한 권 고맙게 만났던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을 드디어 새로 장만하면서 이래저래 더 알아보니, 예전에 나온 책을 사자면 영어이든 일본말이든 더 잘해야 할 텐데, 나로서는 참 까다롭다. 우리 나라 인터넷책방에는 내가 바라는 책이 목록으로 뜨지는 않는다. 시골 읍내 책방에서 이런 책을 주문하거나 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라밖 책을 주문해서 받자면 서울에 있는 책방으로 찾아가서 이야기해야 한다. 가볍게, 또는 가뜬하게, 또는 홀가분하게, 또는 살며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서 사람들이 따사로우며 넉넉하게 어우러지는 삶자락을 사진으로 엮은 기무라 이헤이 님 같은 분들 사진책이라면, 품과 땀과 돈을 많이 들이면서 차곡차곡 장만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 따뜻하지 못한 손길로 껍데기만 번쩍번쩍 꾸민 숱한 나라안 사진책이 으레 5만 원이니 7만 원이니 10만 원이니 하는 판에, 일본돈으로 1만 엔 하는 사진책 하나를 한국에서 장만하며 치러야 하는 돈이란 조금도 비싸지 않다. 그러나, 돈이 아니라 책을 찾기 어려우니 걱정이다.

 저녁나절, 졸음에 겨운 아이를 아버지 무릎에 앉히며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 하나를 펼친다. 아이한테 사진읽는 눈을 길러 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예 들여다보면 따뜻해지는 사진이니까 아이하고도 함께 보고 싶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사진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이 사진은 어떠하고 저 사진은 어떠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을 풀이하고, 이렇게 알뜰히 찍은 사진은 구석구석 볼 만한 대목이 많으며 이야기가 넘친다고 도란도란 속삭인다. 아이는 “응, 응.” 하면서 제 아버지 말을 귀담아듣는다.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은 흑백으로 이루어진다. 빛깔사진도 찍었을까? 기무라 이헤이 님 빛깔사진은 어떤 느낌 어떤 맛 어떤 삶일까? 그러고 보니,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을 넘기면서 당신 사진이 ‘흑백사진인지 아닌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사진’이라고만 생각했고, 사진책을 보면서 ‘사진인가 아닌가’조차 헤아리지 않았다. 흑백사진 아닌 사진이요, 사진 아닌 삶이며, 나라밖 일본사람들 삶이라기보다 그저 어디에서나 마주하는 살가운 사람들 수수한 매무새라고 여겼다.

 그렇다. 일부러 흑백사진으로 찍어야 할 까닭이 없다. 애써 빛깔사진으로 담아야 할 까닭도 없다. 그냥 사진이면 된다. 그런데 굳이 사진이라는 틀로 담아야 할 까닭 또한 없다. 글이면 어떠하고 그림이면 어떠하며 사진이면 어떠한가. 반드시 사진이기 때문에 더 잘 담아낼 수 있지는 않다. 사진은 그예 사진일 뿐인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결을 껴안거나 얼싸안거나 부둥켜안는 너른 품일 때에 사진은 그예 사진이 된다. 그예 사진이 되는 사진이란 곧바로 삶이며, 이러한 삶에는 사람들 하루하루가 곱게 아로새겨진다. 머나먼 옛날이라 할 만한 1930년대에 찍은 사진이든 좀 가까운 옛날이라 할 만한 1970년대 사진이든 다르지 않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2010년대 사진이라 해서 값어치가 덜하지 않다. 193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똑같은 사람들이 나고 죽고 젊다가 늙으면서 얼크러지는 한살이일 뿐이다.

 사진이란 문화가 아니다. 사진이란 예술이 아니다. 사진이란 사진이다. 사진이 사진이 되는 자리란, 사진을 하는 사람이 사진을 내 삶으로 예쁘게 돌볼 때이다. 내 삶으로 예쁘게 사진을 돌보는 사람들은 누구하고 이웃을 하면서 어떠한 사람들 어떤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든 더없이 포근하면서 웃음꽃이 절로 피어난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든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한결같이 사랑스럽다.

 사진찍기를 한창 내 삶으로 곰삭이면서 앞으로 내가 걸을 사진길을 곰곰이 돌아보던 때, 헌책방에서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 하나 만난 일은 나로서는 대단한 선물이었다. 아마, 내가 헌책방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고등학생 때에 맞아들이지 않았다면 이러한 선물을 받을 수 없었겠지. 어쩌면, 내가 고등학생 때에 나한테 헌책방 속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준 헌책방 일꾼이 남몰래 나한테 뿌려 놓은 책씨가 열 해쯤 지나서 싹을 튼 셈이라 할 만하고, 이 책씨가 무럭무럭 자라 이제서야 줄기를 올린 셈인지 모른다. 앞으로 또 열 해쯤 지나면 이 책씨는 잎을 틔우는 튼튼한 들풀 한 가지가 될 수 있을까.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은 들풀과 같은, 아니 꼭 들풀이라 할 만한 사진이다. (4344.2.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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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과 글쓰기


 겨우내 우리 집 텃밭이며 둘레 논밭이며 눈이 그득그득 쌓였습니다. 지난 한 주 드디어 날씨가 포근하면서 눈이 많이 마릅니다. 녹는다기보다 마릅니다. 집 옆 퍽 너른 밭에 보자기처럼 판판히 쌓인 눈도 모두 마르고, 우거진 풀숲에 깔린 눈도 거의 다 마릅니다. 멧길을 따라 섬돌처럼 이루어진 논에는 아직 얼음이 두껍고 눈도 많이 남았지만, 올 듯 안 올 듯 알쏭달쏭하던 봄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구나 싶습니다. 엊저녁에 아이를 씻기고 빨래를 하면서 바깥을 내다보니 여섯 시가 넘어도 해는 아직 기울지 않습니다.

 새벽 네 시 이십일 분에 일어나 아이 기저귀를 갈고 아버지도 밖으로 쉬를 누러 나옵니다. 겨우내 흰눈 덮인 텃밭을 빙 돌아가며 쉬를 누었으나, 이제는 감나무 둘레에도 누고 도랑에도 누며 풀밭에도 눕니다. 흰눈과 오줌을 받으며 겨울을 보낸 텃밭 흙은 아직 딱딱한데, 한결 따스한 날씨가 찾아와 우리 집 언물이 녹을 무렵이면, 그동안 밥찌꺼기와 똥오줌을 섞어 모아 놓은 거름을 내어 흙하고 고루 섞을 수 있겠지요. 그리 넓지 않은 텃밭에 거름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한 집에서 나오는 밥찌꺼기와 똥오줌이 쓰레기가 안 되고 거름이 되도록 하자면, 그렇게까지 땅이 넓지 않아도 되겠다고 느낍니다. 여러 식구 살림이요 일구어야 할 논밭이 제법 된다면 거름으로 낼 똥오줌이나 밥찌꺼기란 퍽 모자라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지 않은 옛날에 똥오줌을 참아 가며 집으로 와서 거름자리나 밭자리 한켠에 누었다는 이야기란 거름이 얼마나 보배롭고 소담스러웠는가를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내가 먹는 밥을 내가 손수 일굴 때에는 내 똥과 오줌을 어떻게 삭여서 쓰는가를 두루 헤아릴 테니까, 이러한 삶은 흙하고 하나될밖에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너른 논까지 일구지 못한다더라도 작은 텃밭 하나 일구면서 밥과 삶을 하나로 이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너른 논은커녕 작은 텃밭조차 얻기 힘듭니다. 달삯을 내는 집이든 전세로 지내는 집이든, 텃밭 딸린 아파트나 빌라나 골목집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제는 마당 딸린 골목집조차 퍽 드뭅니다. 가난하거나 쪼들리는 사람들한테는 마당이든 텃밭이든 딸린 집을 얻는 일은 꿈조차 못 꾸겠지요. 가멸차거나 돈있는 사람들로서는 애써 텃밭을 일굴 생각을 안 할 테고, 마당보다는 잔디밭이나 꽃밭쯤 일굴 생각은 가끔 하겠지요. 그러나 가멸차거나 돈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몸을 움직여 잔디밭이나 꽃밭을 돌볼는지 궁금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거나 부리면서 멋들어지게 꾸미지 않으랴 싶습니다.

 도시 한복판 아파트마을에서는 텃밭이나 꽃밭을 일구지 못합니다. 집안에 꽃그릇 잔뜩 벌여 놓을 수는 있습니다. 꽃그릇이라도 잔뜩 벌인다면 꽃과 풀과 흙을 날마다 조금이나마 보면서 살아갑니다. 햇볕이 안 드는 땅밑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꽃그릇을 꿈꾸지 못합니다. 꽃그릇 하나 보살피지 못할 만큼 돈벌이에 매달려야 하겠지요. 집살림 걱정하느라 내 몸과 마음을 한결 아름다이 건사하도록 손과 몸을 놀려 흙을 일굴 걱정까지는 못하겠지요.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사람이든, 글을 쓰는 사람이든, 돈벌이만 하는 사람이든, 일자리를 바라는 사람이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든, 집살림만 하는 사람이든, 손수 텃밭을 마련하여 일굴 수 있으면 삶이 한껏 달라집니다. 어쩌면, 온누리는 텃밭을 일구는 사람과 텃밭을 안 일구는 사람으로 갈린달 수 있습니다. 텃밭을 안 일구는 사람 가운데에는 텃밭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테며, 텃밭은 생각하지만 너무 바쁘거나 쪼들려 힘들다는 사람이 있을 테고, 텃밭 따위에 마음쓸 겨를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겠지요.

 푸성귀 몇 가지이든 곡식 몇 줌이든 손수 일구는 사람이라면, 이른바 탄소발자국을 어마어마하게 줄이는 사람이 됩니다. 굳이 탄소발자국 따위를 헤아리지 않아도 됩니다만, 무가 되든 배추가 되든 얼갈이가 되든 아욱이 되든 콩이 되든 옥수수가 되든 고구마가 되든 감자가 되든, 텃밭을 조그맣게나마 일구는 사람은 삶이 달라집니다. 만화책 《꽃과 모모씨》에 나오는 가녀린 새색시는 도쿄 한복판에서도 텃밭을 일굴 뿐 아니라 무논까지 일구어 냅니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한낱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로만 바라볼는지, 아니면 참말 내 삶터부터 이렇게 우리 터전을 고쳐 나가려 애쓰자는 다짐으로 마주할는지는,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고픈가에 따라 나뉘겠지요.

 자동차를 버려야 이라크에 군대를 안 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해적을 막자며 유디티 같은 군대에 가겠다는 젊은이가 꽤 늘어난답니다. 군대에 간다고 평화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군대가 평화를 사랑하는 곳이 되겠습니까. 자동차를 버린 우리들이 할 일이란,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텃밭 일구기입니다. 텃밭을 일구어야 4대강이고 경부운하(또는 경인운하)를 멈출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에 미친 나라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텃밭을 일구지 않고서야 글을 쓸 수 없고,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4344.2.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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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作寫眞館―小學館ア-カイヴスベスト·ライブラリ- (11) (ムック)
木村 伊兵衛 / 小學館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36쪽 580엔 사진책에 담는 예술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17]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名作寫眞館 11 : 昭和の日本》(小學館,2006)



 우리 나라에도 조그마한 판으로 나오는 ‘사진문고’가 있습니다. 아예 없지 않으며 새로운 책이 아예 안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꾸준히 나오는 사진문고는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지난날 우리네 사진밭을 빛낸 분들 작품이든 오늘날 우리네 사진밭을 남달리 일구는 이들 작품이든, 적은 돈으로 여러모로 살필 만한 사진책으로 사진문고를 만나기는 몹시 힘듭니다. 아니, 아예 만날 수 없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나마 꼭 한 가지 나오는 사진문고조차 1999년 12월 31일까지는 프랑스판 사진문고를 저작권을 안 치르고 내던 판이었기에 2000년 1월 1일부터 판이 끊어지며 2003년 즈음부터 새판으로 나오지만 2008년에 30권째 나오고는 더 소식이 없습니다.

 출판사로서는 사진문고 내는 일이 만만하지 않겠으나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한테 베푸는 선물인데,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로서는 이 고운 선물을 알뜰히 받아먹지 못하는 셈이라 할 만합니다. 달리 보면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이 애틋하게 바라는 사진책을 사진문고로 못 내놓는다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참으로 살갑거나 훌륭하다 싶은 사진이 책 하나로 묶일 때라 해서 더 사랑받거나 눈길을 받지 않습니다. 더욱이, 작은 판으로 나오든 큰 판으로 나오든 두루 사랑하거나 따사로이 어루만지지 못해요.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을 책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좋은 사진마당(名作寫眞館)’ 가운데 11권으로 나온 《昭和の日本》(小學館,2006)을 찬찬히 읽으면서 곰곰이 돌아봅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을 놓고 《昭和の日本》은 “一舜の情景を輕やかに切り取る”라고 덧붙입니다. 1901년에 태어나 1974년에 숨을 거두기까지 한삶을 ‘사진길 걷기’에 따라 살핀 해적이를 책 첫머리에 붙이는 한편,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진을 한 장 넣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꼭 36쪽짜리 얇으면서 조금 큼직한 판인 사진책에는 한 쪽을 통째로 차지하는 커다란 사진부터 한 쪽에 서너 장을 넣는 작은 사진을 골고루 넣고, 사진쟁이 한 사람 삶과 넋과 작품이 어떠한가를 밝히는 글에다가, 이 한 사람이 온삶을 걸쳐 이룬 사진책을 찬찬히 소개하는 대목까지 깃듭니다. 어떻게 보면 기무라 이헤이 같은 분이든 다른 사람들 사진밭이든 36쪽이 아니라 360쪽이나 3600쪽에 이르는 판으로 엮어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할 텐데, 더도 덜도 아닌 36쪽짜리 사진책으로도 사진쟁이 한 사람이 걸어간 길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소학관 출판사에서 내놓는 ‘좋은 사진마당(名作寫眞館)’이 몇 권까지 나올는지 모르지만, 이 사진책들은 이 한 권으로 넉넉히 사진쟁이와 사진찍기와 사진읽기와 사진나눔과 사진하기를 맞아들이도록 이끕니다. 한편, 이 사진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진책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읽도록 돕습니다. 모든 넋을 짚도록 이끌면서 깊은 얼을 살피라고 돕습니다. 사진은 사진대로 훌륭해서 아름답고, 책은 책대로 훌륭해서 즐겁습니다.

 아무래도, 사진과 글을 엮어 이야기로 이루려는 책마을 일꾼부터 기무라 이헤이라는 사진쟁이 한 사람을 한결 살뜰히 읽었기에 이만 한 책이 나올 수 있겠지요. 그저 기계처럼 책을 만들어 상품으로 팔아치우는 부속품 같은 책마을 일꾼이라면 이러한 사진책을 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을 즐기고 제 삶으로 껴안으며 하루하루 아름답게 보내고, 책쟁이는 책 엮는 일을 즐기고 당신 삶으로 얼싸안으며 나날이 아리땁게 누리기에, 좋은 사진책이 태어나겠구나 싶습니다.

 사진책은 사진 한 장으로도 이룰 수 있고, 사진 만 장으로도 이룰 수 있습니다. 사진 만 장을 빼곡하게 채우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으며, 사진 한 장만 넣으면서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내보일 수 있어요. 사진을 하는 마음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고, 책을 일구는 매무새에 따라 사진책이 바뀝니다. 일본 사진쟁이와 책쟁이가 사진책 하나 길어올리는 모습을 돌아볼 때면, 좋은 사진을 즐길 수 있으니 좋은 넋을 배우기도 하고 좋은 사진뿐 아니라 좋은 책을 아낄 줄 아는 몸가짐을 함께 길러야 비로소 사진누리를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사진누리를 이 땅에서 이룬다면, 사진을 담아 내놓는 사진책으로도 아름다운 책누리를 이 땅에서 이룰 테지요. 사진은 책이랑 떨어질 수 없고, 사진을 하는 사람은 책을 가까이할밖에 없으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진이 담긴 책을 기쁘게 넘기면서 글과 그림과 사진이 빚는 이야기보따리를 듬뿍 맛봅니다.

 사진책 《昭和の日本》을 다시 한 번 들춥니다. 일본사람은 580엔밖에 안 하는 적은 돈으로도 이 멋진 사진책을 사서 읽으니 얼마나 좋을까 부럽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람도 이 일본 사진책을 책방에 주문해서 1만 원이 안 되는 값으로 장만할 수 있습니다. 일본사람이 치르는 책값을 헤아리면 꽤 비싸게 사는 셈이지만, 반가운 책을 마련할 때에는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책을 살 수 있어 반가우며 고마워요. 사진을 한 번 보고 열 번 보며 백 번쯤 보면서 생각합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은 1901년에 태어나 1974년에 흙으로 돌아갔기에 1930년대나 1950년대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더 빼어난 눈길이라서 1930년대와 1950년대 삶자락을 사진으로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그예 당신이 1930년대 한복판을 젊음으로 보냈고 1950년대 한가운데를 무르익는 나이로 누볐으니까 이러한 삶자락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담고 아낌없이 사진으로 찍습니다.

 더 잘난 눈썰미가 아닙니다. 더 어설픈 눈높이가 아닙니다. 1930년대에는 그저 1930년대 눈썰미이고, 1950년대에는 그예 1950년대 눈높이예요. 당신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하고 어깨높이를 맞추고, 당신이 사진과 함께 마주하는 이웃들하고 손을 맞잡습니다. 애써 부드러운 옷을 입지 않습니다. 온몸이 부드러워 부드러이 바라보며 부드러이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일부러 살갑게 웃지 않습니다. 온마음이 살가우니까 살가이 눈웃음을 지어 살가운 웃음을 사진으로 옮겨 냅니다.

 2000년대 한복판을 살아온 우리들이라면 2000년대 한복판 삶자락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담으면 됩니다. 2020년대 한가운데를 살아갈 우리들이라면 2020년대 한가운데 삶무늬를 아낌없이 사진으로 찍으면 돼요. 사진은 내가 살아가는 결대로 찍을 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웃음꽃대로 찍습니다. (4344.2.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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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2-1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파란놀 2011-02-12 20:22   좋아요 0 | URL
이 사진책을 사려고 꽤 오래 기다렸어요. 못 살 줄 알았는데, 두 주 남짓 기다린 끝에 뜻밖에 살 수 있었답니다. 좋은 사진이나 좋은 글이라면, 세상보다 사람들 마음을 따스하게 덥힐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011-02-13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1-02-13 05:24   좋아요 0 | URL
'작가'까지는 아니고 그냥 '최종규'입니다.
^^;;;;;
 
名作寫眞館―小學館ア-カイヴスベスト·ライブラリ- (11) (ムック)
木村 伊兵衛 / 小學館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훌륭한 사진에 훌륭한 편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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