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
마누엘라 올텐 글 그림, 조국현 옮김 / 토마토하우스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인형놀이 아닌 총칼놀이 하면 진짜 사나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 마누엘라 올텐, 《진짜 사나이》(토마토하우스,2005)



 그림책 《진짜 사나이》는 “여자 애들은 정말 지루해! 걔들은 하루 종일 인형이나 만지작거리며 놀잖아.” 하는 말로 첫머리를 엽니다. 우리 집 딸아이한테도 인형이 제법 있기는 한데, 우리 집 딸아이는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놀지 않습니다. 하도 아무 데나 굴려서 “벼리야, 인형이 아야 하네. 머리도 다 헝클어지고. 예뻐해 주어야지.” 하고 말하면 그제서야 인형을 처음 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살며시 쥐어 “아이, 예뻐.”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내 다른 놀이에 빠진다든지 콩콩 총총 뛰며 놀기를 더 즐깁니다.

 그림책 《진짜 사나이》에 나오는 사내아이는 무엇을 하며 놀기에 ‘따분하지’ 않을까 궁금하지만, 막상 사내아이들 놀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사내아이 둘은 계집아이가 인형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비웃기만 할 뿐입니다.

 인형을 만지작거리지 않아야 따분하지 않을 놀이요, 어쩌면 개굴창에서 뒹군다든지 공을 차거나 던진다든지 나무로 총을 삼아 싸움놀이를 해야 재미있다고 여길 놀이가 될까요.

 싸움놀이라 하지만, 눈싸움은 싸움이라기보다 눈을 던지는 눈놀이, 곧 눈던지기입니다. 눈굴리기나 눈사람빚기도 눈놀이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려는 싸움, 이른바 전쟁놀이가 싸움놀이인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나라나 겨레일 때에 이 싸움놀이를 즐기고 맙니다. 사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냥을 익히려는 틀에 따라 놀이를 한다거나, 거칠거나 메마른 깊은 멧자락이라든지 너른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퍽 투박하게 부대끼는 놀이는 싸움놀이가 아닙니다. 이러할 때에는 삶놀이입니다. 살아가는 길을 찬찬히 몸으로 받아들이는 놀이가 되니까요.

 그림책 《진짜 사나이》 사내아이 둘은 “여자 애들은 곰인형을 끌어안고 잔대. 걔들은 겁이 많잖아!” 하고 놀립니다.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든 어머니나 아버지를 끌어안고 자든, 따스한 사람 곁에서 따스함을 느끼며 잠드는 일은 하나도 나쁘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끌어안고 자든 개를 끌어안고 자든, 저마다 사랑하거나 아끼는 님하고 함께 잘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즐거울까요. 누군가는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겠지만, 누군가는 베개라든지 대아가씨든 살뜰히 끌어안고 잘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책에 나오는 두 사내아이는 놀림말을 그치지 않습니다. “걔들은 밤에 오줌도 싼다지?” 저런, 계집아이만 밤에 오줌을 싸고 사내아이는 밤에 오줌을 안 쌀까요. 글쎄요, 아이들은 제법 철이 들 무렵까지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싸기 마련이잖아요. 이렇게 말하다가 나중에 저희들이 오줌을 싸면 벌개질 얼굴을 어찌하려고 그런담.

 이리하여 사내아이들은 “여자 애들은 귀신을 무서워해!” 하는 말을 나누다가 그만 저희들도 무섭다고 느낍니다. “에이, 귀신이 어딨냐?” 하고 “그럼, 없고 말고.” 하지만 무서움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마주치지 않았으나, 귀신이나 도깨비라는 이름을 꺼냈을 뿐이나 그만 질리고 맙니다.

 예부터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귀신이 나오든 도깨비가 나오든 무서울 일이 없다 했습니다. 참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귀신한테든 도깨비한테든 홀리지 않는다 했어요.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아름다운 빛을 나누어 주면서 사랑과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했지요.

 그러니까, 사내아이들이 계집아이를 착하게 마주하고 참다이 사귀며 아름다이 어울리려는 매무새라 한다면,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아니, 누군가 무서워 한다면 씩씩하게 나서서 지키거나 보살피도록 해야지요. 남자라서 여자를 지키고, 여자가 더 씩씩하게 남자를 지키거나 보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람으로서 서로를 살뜰히 마주하면서 보듬을 노릇이에요. 사랑할 사람이고 사랑받을 사람이에요. 믿을 사람이며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계집아이들이 인형놀이를 한다고들 하지만, 놀이로 인형을 만지작거린다뿐이지, 인형이란 ‘아이보다 작은 사람’입니다. 저보다 작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인형놀이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몸피도 작고 힘도 여립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저희랑 몸뚱이가 그닥 작지 않은 아기나 더 어린 아이를 업거나 안으며 달랜다든지 보살피는 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애가 애를 업는다고도 하지만, 우리 겨레도 예부터 애가 애를 업으며 키우거나 돌보았습니다. 어른도 애를 업지만 애도 애를 업습니다. 나보다 몸피가 작으며 힘조차 여린데, 더 사랑하고 더 아끼며 더 돌보아야지, 모른 척하거나 놀리거나 비웃을 수 없어요.

 우리 누리에는 “진짜 사나이”란 없습니다. ‘진짜’에서 ‘眞’은 한자이니까 “참 사나이”라고도 할 만하지만, “진짜 사나이”이든 “참 사나이”이든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짜 계집”이든 “참 계집”이든 없어요. 그저 ‘참사람’ 하나만 있습니다.

 나 스스로 참다운 사람인가 아닌가만 있습니다. 성별로 남자와 여자를 가르지만, 성별로 가르기 앞서 누구나 사람입니다. 또한, 목숨 갈래로 나누기 앞서 사람이 되든 나무가 되든 고양이가 되든, 한결같이 고운 목숨이에요.

 사람은 흙하고 같으며, 흙은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은 새와 같으며, 새는 사람과 같아요. 사람은 물하고 같으며, 물은 사람과 같아요. 사람은 시금치와 같고, 시금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진짜 사나이”가 되고 싶으면 먼저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사람이 되어 옳고 바르게 사랑을 나누는 한편,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씨를 살가이  보듬어야 합니다. 그림책 《진짜 사나이》는 바보스럽지만 예쁜 아이들이 아직 예쁜 넋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모습을 제법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이런 그림책을 보면서 ‘내가 좀 바보스럽지?’ 하고 쑥쓰러워 하면서 깨닫기라도 한다지만, 우리 어른들은 어쩌지요? 군인이 되려 하거나, 총칼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갖은 범죄를 저지를 뿐 아니라, 돈에 눈이 멀어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데다가, 애국충성 충군보국 같은 말을 주워섬기면서 옳고 바른 평화와 꿈과 삶을 잊거나 내동댕이치는 우리 어른들은 어쩌지요? (4344.2.19.흙.ㅎㄲㅅㄱ)


― 진짜 사나이 (마누엘라 올텐 글·그림,조국현 옮김,토마토하우스 펴냄,2005.4.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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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2.6. 

노려보기를 어디에서 배웠을까. 

아이여도 네가 노려보면 참 무섭단다... -_-;;; 

 

밥먹을 때에는 웃도리를 벗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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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2.5. 

설날맞이 인천마실. 

잠을 얻어자는 곳에서 

아이는 이불 뒤집어쓰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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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1 : 사람을 읽는 책


 사람이 읽는 책은 사람을 읽는 책입니다. 사람을 읽지 못한다면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람은 책으로 사람을 읽어야지, 돈을 읽거나 지식을 읽거나 슬기를 읽거나 정보를 읽거나 시험문제를 읽거나 공식을 읽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이렇게 읽자면 읽기는 읽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읽는 사람은 사람다움이 아닌 돈과 지식과 갖가지 정보조각에 파묻혀 허우적댑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읽고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힙니다. 아이들은 책읽기가 놀이입니다. 책으로 읽는 책이라기보다 새로운 삶과 사람과 사랑을 마주하는 만남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은 다음 느낌글을 쓰도록 시킨다든지 무엇을 느꼈느냐고 묻는다든지 합니다. 여기저기서 정보를 그러모아 ‘추천 명작 좋은 책’을 잔뜩 읽히려 합니다. 그러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왜 ‘추천 명작 좋은 책’을 잔뜩 읽히려 하지요? 아이들이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아이들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빕니까? 아이들이 고운 사람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참다운 사람으로 자라기를 꿈꿉니까?

 어른들이 책을 읽습니다. 바빠서 책이란 거들떠보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고, 바쁘기 때문에 살짝 쉴 겨를에 즐겁게 책맛에 빠져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쁠 때에는 틈을 내어 읽는 책입니다. 한갓질 때에는 신나게 즐기는 책입니다. 바쁘다고 밥을 거르거나 잠을 미룰 수 없습니다. 거른 밥은 나중에 곱배기로 먹기 마련이요, 미룬 잠은 나중에 몰아서 자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바쁘다며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나중에 어찌 되나요.

 지식을 얻거나 돈벌 구멍을 찾거나 갖가지 정보조각을 그러모으자며 책을 읽는다면, 이는 책을 읽는다 말할 수 없습니다. 지식읽기·돈읽기·정보읽기입니다. 책읽기가 아닙니다. 사람을 읽을 때에만 책을 읽는다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읽지 않으면서 책을 읽을 수 없고, 사람을 읽지 않는다면 책읽기는 무시무시한 바보짓이 되고 맙니다.

 한 줄을 읽어도 책이고, 열 쪽을 읽어도 책이며, 한 권을 읽든 만 권을 읽든 책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도 사람이며, 만 사람을 만나도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만 사람을 겉훑기로 사귀기보다는 한 사람을 옳으며 가까이 사귀는 일이 아름답다’고 머리로 헤아립니다. 참다운 동무 한 사람이 거짓스러운 동무 만 사람보다 훨씬 나으며 좋은 줄을 머리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참다이 읽는 책 한 권과 어설피 읽는 책 만 권은 어떠한가요. 지식으로만 읽는 백만 권하고 삶으로 읽는 책 한 권은 어떠하나요.

 헌책방에서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문계주 그림,서화 펴냄,1993)을 찾아서 읽습니다. 고등학생 때 벌써 읽은 만화이지만 새삼스럽다 싶어 다시 장만해서 읽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으로 다시 읽기도 하지만, 아예 새로 사서 다시 읽기도 합니다. 읽고픈 책이라면 두 번 세 번 사는 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읽을 만할 뿐 아니라 선물하고픈 책이기에 여러 권 사서 우리 집 책꽂이에 넉넉히 갖추었다가, 틈틈이 만나는 좋은 벗님한테 기쁘게 선물하곤 합니다. 나한테 좋은 책이니까 언제나 새로 장만해서 거듭 읽은 다음 건사하고, 나한테 좋은 사람이니까 늘 새 마음으로 새로운 책을 선물합니다. 《아프리카의 꿈》 85쪽에 “나와 같이 (아프리카로 다시) 가자. 이제 다시는 널 슬프게 하지 않을 거야.” 하고 속으로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버이와 다른 살붙이 모두 잃은 외로운 아이가 아프리카에 버려졌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이는 아프리카 수풀에서 자연스레 하나되어 예쁘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이런 만화나 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4344.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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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sel Adams


 안젤 아담스라 해야 할는지 안셀 아담스라 해야 할는지 알쏭달쏭한 미국땅 사진쟁이 사진책을 하나 장만한다. 지난해 12월에 이 사진책을 처음 마주하고선 이내 장만하고 싶었으나 그때에는 다른 사진책들 장만하느라 벌써 27만 원을 쓴 나머지, 이 사진책까지 장만할 수 없었다. 다음에 서울마실 할 때에 지나가면서 사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달 가까이 좀처럼 서울마실을 할 수 없었고, 사이에 살짝 서울을 거쳐 지나가기는 했으나 나라밖 사진책을 새책으로 많이 갖추어 놓고 파는 이곳까지 찾아오지는 못한다. 설마 팔리지는 않았을까. 바깥에 내보이는 책 하나만 남았을 텐데, 이 책이 팔리면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텐데.

 어제 드디어 홍대전철역 안쪽 골목에 자리한 책방 앞을 지나간다. 합정역부터 신촌역까지 책으로 무거운 가방이랑 빨래한 아이 옷가지를 잔뜩 짊어지고 땀 뻘뻘 흘리며 걸어서 찾아간다. 안젤 아담스는 팔리지 않았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여러 해째 안 팔리지는 않았을까. 60리터짜리 내 베낭에조차 안 들어가는 커다란 판크기로 된 꽤 묵직해서 작은 아령 하나 같은 사진책인데, 값이 고작 7만 원. 책방 일꾼한테 묻는다. “와, 이 책은 되게 싸네요.” “네, 이 책은 꽤 싸게 들어왔던 책이에요.” 다른 사진책 값을 가눈다면 이 사진책은 십오만 원쯤은 될 듯했는데, 참 값싸게 샀다. 고작 칠만 원밖에 안 하는 안셀 아담스였는데, 왜 사진쟁이들은 홍대 앞을 그토록 뻔질나게 드나들거나 오간다 하면서 이 녀석을 알아보지 않았을까.

 나는 안젤 아담스 사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걷는 사진길하고는 많이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찍는 사진감이 다를 뿐, 사진감을 사진으로 담아내려는 땀이나 품이나 넋이나 뜻이나 꿈이나 씨는 다를 수 없다. 사람과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사진을 할 수 없다. 사람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사진에 다가설 수 없다.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늘 헤아리며 고이 껴안지 않고서야 사진을 껴안을 수 없다. 사진은 삶이고, 사진은 사랑이며, 사진은 사람이다. 안젤 아담스는 너른 자연을 많이 찍은 사진쟁이이지만, 너른 자연만 사진으로 찍지 않았다. 사람도 꽤 많이 찍었다. 안젤 아담스가 찍은 자연은 사람 얼굴이고, 안젤 아담스가 찍은 사람은 자연이다.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거나 골목길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생각한다. 헌책방 둘레나 골목길 언저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함께 담아야 헌책방 사진이 더 빛나거나 골목길 사진이 더 어여쁘지 않다. 사람을 따로 더 담아야 할 사진이 아니라, 사람내음과 사람소리와 사람결을 담아야 할 사진이다. 손길을 담지 못하면서 손만 찍는다 해서 제대로 찍은 사진이 아니다. 활짝 웃거나 슬피 우는 얼굴을 찍었대서 이 한 장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 말할 수 없다. 사진이 삶이요 사람이며 사랑이라 말하는 까닭은 사진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이루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글과 그림과 노래와 춤과 연극과 영화도 매한가지이다. 모두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를 다루는 틀이 저마다 다르기에 글이 되고 그림이 되며 노래나 춤이 된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다. 사진은 그림이나 예술이 아니다. 사진은 그예 사진이다. 안젤 아담스는 예술사진이 아니라 사진이다. 안젤 아담스는 풍경사진이나 자연사진이 아니라 사진이다. 사진하는 마음을 안젤 아담스한테서 읽거나 느껴야 한다. 사진하는 삶과 사진하는 사랑을 안젤 아담스한테서 깨달아야 한다. 나는 안젤 아담스 사진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안젤 아담스 사진책이 보이면 돈이 얼마가 들든 아랑곳하지 않고 주머니를 턴다. 주머니를 털어서 안젤 아담스 사진책을 사야 한다.

 유진 스미스 사진책도 사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찾아내지 못한다. 그립다. 돈이 있다 해서 살 수 있는 사진책이 아니니까, 참말 그립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몹시 비싼 판으로든 뜻밖에 아주 값싼 판으로든, 유진 스미스도 안젤 아담스처럼 나한테 스며들 날을 맞이하겠지. (4344.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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