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3.12.
 : 멧개구리와 나비와 이불 빨래와



- 볕이 좋기에 이불 빨래를 한다. 손으로 이불을 빨려 하는데 옆지기가 말린다. 이오덕학교에 있는 빨래기계 빌려서 쓰란다.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하며 멧길을 걷는다. 그래, 하루하루 몸에 기운이 딸리니, 이불 빨래는 빨래기계에 맡기고, 집식구 빨래하고 걸레랑 행주만 손으로 빨자. 그러나, 빨래기계 다룬 적이 없어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빨래를 마친다. 이불 빨래 하느라 여러 차례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새봄에 갓 깨어나 팔랑거리는 나비를 만난다. 볕이 따스하니 이렇게 나비도 깨는데, 우리 집 물꼭지는 언제쯤이나 풀리려나.

- 얼핏 개구리 소리도 듣는다. 개구리가 한창 깨어난다면 이제부터 해오라기나 왜가리도 먹이를 찾아 이곳으로 찾아들겠지.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새들을 곧 만나겠구나.

- 음성 읍내 장날이라 자전거마실을 가기로 한다. 아이를 데려갈까 하는데, 아이 어머니가 혼자만 다녀오란다. 장날 이것저것 사면 가방이 무거울 텐데 아이까지 수레에 태우면 너무 힘들 테니 혼자 얼른 다녀오란다.

- 아이한테 다음에 태워 준다 말하고는 혼자 길을 나선다. 오른팔꿈치가 쑤신다. 집살림을 잘 꾸리지는 못하나, 홀로 살림을 도맡으니까 몸을 많이 써야 하고, 몸을 많이 쓰다 보니 예전에 자동차에 치여 다친 자리가 욱씬욱씬 쑤신다. 나와 자전거를 친 자동차는 언제나 멀리 내뺐다. 내 자전거와 내 몸은 늘 뺑소니 차에 시달리며 망가졌다. 그렇다고 이렇게 아픈 몸을 어찌저찌 장애 등급을 받을 수 있지도 않다. 무슨 돈(장애수당)이나 혜택을 받으려는 장애 등급이 아니라, 사람과 자전거를 함부로 여기는 문화와 생각을 바로잡고 싶기에 받으려는 장애 등급이지만, 아마 앞으로도 이루어지기는 힘들겠지.

- 읍내로 들어서기 앞서 널따란 못물 옆을 지난다. 지난겨울 새로 붙은 걸개천 하나에는 ‘얼음지치기 금지’라 적힌다. 옆에 나란히 붙은 ‘수영 금지’도 ‘헤엄 금지’라 적으면 한결 좋을 텐데. 아니, ‘얼음지치기 하지 마시오’라든지 ‘헤엄치지 마셔요’라 적으면 얼마나 좋을까.

- 갈치 7000 말린멸치 5000 말린새우 5000 표고버섯 5000 오이절임 3000 × 2 명란젓 10000 어묵 4000. 가방을 그득그득 채운다. 가게에 들러 보리술 한 병 산다. 집으로 돌아가 집식구 먹일 밥을 차린 다음 저녁에 잠들기 앞서 내 몫으로 보리술을 한 병 마셔야지.

- 자전거집에 들러 자전거 기어를 손질한다. 기어줄이 늘어났기에 기어가 잘 안 먹었다고 알려준다. 그렇구나. 기어줄은 생각도 못했네. 괜히 다른 데만 만지작거렸구나. 자전거를 퍽 오래 탔다면서 기어줄이 늘어나는 줄은 생각하지 못하다니, 나도 참 바보스럽다. 기어를 손질한 다음 손잡이 거울을 새로 붙인다. 몇 달 앞서 장날 나왔을 때에 두부집에서 두부를 사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내 자전거를 툭 쳐서 넘어뜨리는 바람에 거울이 깨졌다. 지나가던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도 자전거를 세우려는 몸짓도 깨진 거울을 어떻게 하는 일 없이 그저 당신 갈 길만 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천히 걸어서 봉학골을 넘어가는 아저씨를 만난다. 아, 이 아저씨도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겠지. 천천히 천천히 고개 고개 넘으면서 왁왁 객객 억억 곡곡 하는 멧개구리 소리를 나긋나긋 듣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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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나의 한살매
백기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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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석 장 느낌글 003]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책이 나올 수 있으니 아직 우리 나라에 이야기씨가 마르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책에서 무엇을 길어올릴까요. “그래서 이 늙은 나이에도 주먹을 쥐어 보지만 아, 나에게 서울이라는 데는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닥치는 대로 들이 붙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50쪽).” 같은 글월을 곰곰이 되씹으면서 우리 터전이 얼마나 서울바라기요 권력바라기이며 돈바라기인가를 깨닫는 길잡이책이라 느낄 수 있으려나요. 백기완 님 글은 당신 고향땅인 황해도 말마디로 이룬 책일 뿐, 더 깨끗하거나 덜 깨끗한 토박이말로 이루어진 책이 아닌데, 이러한 대목을 고이 짚는 살가운 가슴이나 손길은 서울땅에 몇이나 있으려나요. 책겉부터 “내 한살매”가 아닌 “나의 한살매”로 적바림하는데, 이런 말마디를 알아채는 사람은 있기나 할까요. 백기완 님은 당신 걸음을 씩씩하면서 곱게 내디디려고 애씁니다. 이렇게 애쓰며 당신 삶을 글로 투박하게 담습니다. 애써 꾸미지 않고, 굳이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온몸으로 부딪히며 착하고 신나게 놀듯 살아갈 뿐입니다. 책읽기도 삶읽기도 살림살이도 어깨동무도 한길입니다. (4344.3.20.해.ㅎㄲㅅㄱ)

― 백기완 씀, 한겨레출판 펴냄, 2009.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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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 더글러스 러미스의 평화론
C. 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지음, 김경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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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석 장 느낌글 002]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은 C.더글러스 러미스 님과 쓰지 신이치 님이 나눈 이야기를 그러모읍니다. 두 사람이 따로 글을 쓰기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로 우리 삶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어, 이 이야기를 통째로 책 한 권으로 갈무리합니다. 좋은 넋으로 살아가고픈 꿈을 이야기하고, 저마다 생태와 환경 이야기에 어떻게 처음으로 눈길을 두었는가를 밝히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사람들이 시나브로 ‘삶과 사람을 읽는 눈’을 깨닫도록 돕습니다. 누군가는 “아무리 경제발전이 잘된 사회라도 인간은 먹을 것을 먹어야 살 수 있고, 그 먹을 것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187쪽).” 같은 이야기에 밑줄을 긋겠지요. 내가 흙을 일구어야 내 살림을 꾸리는데, 내가 흙을 일구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내 몫까지 흙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가 배를 타고 물고기를 낚지 않으면 누군가는 내 몫으로 물고기를 잡아야 하고, 내가 짐승을 길러 목을 따지 않으면 누군가는 내 몫으로 뭍고기 목을 따서 살점을 도려야 합니다. 몸소 살림을 꾸리며 밥거리를 얻을 때에 참다이 평화와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이 자리잡습니다. 나 스스로 내 밥그릇을 착하게 마련하지 않으니 전쟁과 경제개발이 불거집니다. (4344.3.20.해.ㅎㄲㅅㄱ)

― C.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씀/김경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201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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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서랍에서 튀어나온 묵은 40만 원


 책상서랍을 갈무리한다. 여러 해 동안 거의 돌보지 않고 이것저것 집어넣기만 한 책상서랍을 갈무리한다. 책상서랍을 쓸 일이 없는 나는 자잘한 물건을 끊임없이 집어넣기만 하니까, 나한테는 튼튼한 종이상자만 있으면 된다. 굳이 책상서랍에 자질구레한 물건을 처박을 까닭이 없다. 서랍 하나는 내 몫으로 남기고 다른 칸은 차근차근 비운다. 옆지기가 책상서랍을 쓸 수 있게끔 비운다.

 책상서랍을 비우다가 돈을 찾는다. 두 가지 돈을 찾는다. 흰봉투에 담긴 돈은 봉투마다 20만 원에서 2∼3만 원쯤 모자란다. 거의 40만 원이 되는 돈이 불쑥 튀어나온다.

 40만 원 가까운 이 돈은 나로서는 허리띠 조르는 살림이면서 뒷날을 손꼽으며 아낀 돈이었을 테지. 돈 만 원이 아쉬운 살림을 벌써 몇 해째 꾸리는가. 돈 만 원이 아니라 돈 천 원 없어 숨막히던 날이 꽤 길었으니까, 이렇게 큰 돈이 책상서랍에서 잠자던 일이란 참 딱하고 안쓰럽다.

 그런데 이 돈이 그때그때 내 손에 쥐어졌더라도 내 살림은 넉넉했을까. 이 돈이 그때그때 내 손에 쥐어졌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책값으로 모조리 날아가지 않았을까. 어려운 살림이면서도 책상서랍에 고이 묻었으니까 오늘까지 남을 수 있지 않았는가.

 이 돈을 언제 얻었는가 곱씹는다. 먼저, 봉투 하나. 이 봉투는 지난해 여름에 우리 살림집을 인천에서 시골로 옮길 때에 받은 돈. 돈도 마땅히 없으며 도서관 책짐을 옮기느라 짐차며 사다리차며 일꾼이며 이백만 원 즈음 써야 했으니, 이 돈 걱정으로 참 빠듯했는데, 우리 식구를 걱정해 준 고마운 이웃 아주머님이 봉투에 이십만 원이나 넣어 주셨다. 이 가운데 이만 원만 빼서 쓰고는 책상서랍에 넣었나 보다.

 다음 봉투 하나. 다음 봉투는 세뱃돈으로 받았던 봉투. 셋째 작은아버지가 몇 해 앞서 설날에 세뱃돈으로 건넨 봉투이다. 언제였을까. 만 원짜리가 새돈으로 바뀌던 해에 받은 봉투인데, 이 봉투에는 만 원짜리 석 장이 빈다. 아마 이십만 원을 주셨을 텐데 3만 원만 빼내어 쓴 듯하다. 만 원짜리 새돈이 갓 나오며 반닥반닥할 뿐더러 돈 번호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열일곱 장이다.

 새돈이 들어오면 손이 떨려 못 쓰는 내 삶을 돌아본다. 내 삶이 이러다 보니, 이 엄청난 세뱃돈을 못 쓰고 서랍에 고이 모셨나 보다. 옆지기하고 함께 살기 앞서부터 책상서랍에서 잠든 돈이다. 앞으로는 이 돈을 쓸 수 있을까. 앞으로는 이 묵은 새돈을 깰 수 있을까.

 나는 책방에서 책을 사며 책값을 치를 때에는 가장 깨끗한 돈을 내민다. 다른 가게에서는 덜 깨끗한 돈을 내민다. 지갑에 만 원짜리이든 오천 원짜리이든 천 원짜리이든 빳빳한 차례에 따라 넣는다. 책값을 치를 때에는 맨 뒤에 놓은 가장 빳빳한 종이돈부터 골라서 내민다. 똑같은 돈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헌책방이건 새책방이건, 내 마음밭을 살찌울 고마운 책을 장만하는 마당인 만큼, 책값보다 넘치는 돈을 낼 주머니는 못 되고, 모자라나마 가장 깨끗한 돈을 내밀기만 한다.

 그나저나 40만 원에서 5만 원이 빠지는 돈이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는 틀림없이 책을 사려 하겠지. 그동안 침만 바르던 나라밖 훌륭한 사진책을 사려 할 테지.

 그러나, 이러면 안 된다. 이 돈만큼은 내 책을 사는 데에 쓰지 말자. 우리 옆지기가 서너 해 앞서부터 노래를 부르던 리코오더를 사자. 내 국민학교 적 학교 앞 문방구에서 천 원인가 이천 원인가에 팔던 싸구려 플라스틱 리코오더가 아니라, 음계와 화음을 또박또박 잘 잡으며 고즈넉한 소리꽃을 피우는 좋은 리코오더를 장만하자. 그러고 나서 아이 몫으로 조금 남겨야지. 나중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저 하고픈 무언가 있을 때에 쓰라며 얼마쯤 빼서 따로 모아야지. (4344.3.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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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춘천에 자리한 〈경춘서점〉은 한 곳에서 참으로 오래도록 뿌리를 박았습니다. 마흔 해 넘게 한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러다가 2010년 여름날 새 자리로 옮깁니다. 새 자리로 옮긴 줄 아는 사람은 이 헌책방을 드나드는 사람뿐일 테지요. 춘천시장이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든 간행물윤리위원회 일꾼이든 헌책방 한 곳이 옮기거나 말거나 알 턱이 없습니다. 예전 자리 사진이든 새 자리 사진이든 찍는 사람이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헌책방처럼 한 자리에 오래도록 뿌리박아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잘 못 알아채는 가게는 참 드뭅니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모르는 채 잘 살아갑니다. 책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기 때문일까요. 우리 삶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기 때문인가요. 책손 한 사람 고맙게 여기며 책 한 권 고마이 다루는 헌책방이 춘천에는 두 군데 있습니다. (4344.3.19.흙.ㅎㄲㅅㄱ)


- 2009.9.7. 강원도 춘천시 경춘서점

 

(옛자리 사진 -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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