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4.9. 

 아버지가 쟁기로 텃밭을 가니까 아이도 저도 해 보겠다며 쟁기를 든다. 오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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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28


 운동경기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주 혼자서 하는 운동경기가 있을까 궁금한데, 골프라 하더라도 골프채를 들고 옮겨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테니스이든 탁구이든 배드민턴이든 코치나 감독이나 도움이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저런 몇 가지 운동경기는 혼자서 뛴다고 얼추 말할는지 모르리라.

 야구라든지 축구라든지 농구라든지 핸드볼 같은 운동경기는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야구는 아홉 사람, 축구는 열한 사람, 농구는 다섯 사람, 핸드볼은 일곱 사람이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면, 경기장에 들어선 사람이 아홉이요 열하나요 다섯이요 일곱이요 할 뿐, 뒤에서 받치거나 기다리는 사람은 훨씬 많다. 연습을 할 때에 돕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한국땅 운동경기는 이 나라 사람들한테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기를 바라며 생긴 운동경기가 아니다. 한국땅 ‘프로스포츠’는 관계자 스스로 밝히기도 하듯이, 19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 때에 사람들 눈과 마음과 생각을 홀리려고 만들었다. 프로야구이든 프로축구이든 매한가지이다. 여기에 돈벌이라는 꿍꿍이 하나가 곁들여 여러 운동경기가 ‘프로스포츠’로 발돋움한다.

 오늘날 한국땅 배구 대회 또한 프로스포츠요, 돈에 따라 움직인다. 값진 땀이나 즐거운 보람에 앞서 돈과 성적을 높이 여긴다. 돈을 잘 벌어야 하고 성적이 빼어나야 한다. 어찌 되든 1등을 해야 하고, 1등이 아니면 알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1등을 하면 그동안 무얼 어떻게 하든 모두 좋게 토닥인다.

 2010년부터 이어지던 프로배구 대회가 2011년 봄에 마무리된다. 마지막까지 남은 두 구단이 끝경기를 치룬다. 둘 가운데 한 쪽이 이기며 1등으로 마무리되는데, 둘 가운데 이긴 쪽에서 ‘아주 잘 한다는 선수 하나’가 맡은 공격 몫은 79.28%. 열 번 팔을 휘둘러 공을 때려야 할 때에 자그마치 여덟 차례 한 사람이 펄쩍 뛰어서 팔을 휘두르며 공을 때렸다는 소리.

 ‘아주 잘 한다는 선수 하나’는 여느 경기에서도 으레 60∼70%쯤 공격을 도맡곤 했다. 끝경기에서는 자그마치 80%가 되도록 공격을 도맡은 셈인데, 이쯤 되면 한국땅 프로배구란 배구라는 이름이 하나도 걸맞지 않은 셈이 아닌가 싶다. 그저 1등을 해야 하고, 어찌 되든 이기기만 해야 하며, 1등과 이기기에 얽매여 선수를 노예처럼 부리든 다른 선수를 들러리처럼 경기장에 세우든 아랑곳할 일이 아닌 셈이 된다. 이런 ‘혼잣놀음’ 경기를 바라보는 사람 또한 1등을 하거나 이기기만 하면 즐거운 노릇이라는 틀에 길들여지거나 익숙해진다. 배구라는 운동경기는 그저 ‘공을 높이 띄워 한 사람이 펑펑 두들겨패듯 맞은편 바닥에 철썩철썩 내리찍으면 그만’인 점수따먹기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고등학교 야구부끼리 붙는 운동경기부터 끔찍하다. 웬만한 고교야구 대회에서는 예선부터 결선까지 ‘잘 던지는 선수 하나’가 1회부터 9회까지 홀로 던지는 일이 흔하다. 이 선수가 4번 타자까지 한다면 선수 하나로 1등을 거머쥐는 일이 생기는 셈이다.

 작전이란 없는 운동경기이다. 생각이란 없어도 되는 삶이다. 마음도 뜻도 보람도 나눔도 있을 까닭이 없는 이 나라이다. 그예 돈이면 되고, 1등이라는 숫자라면 즐겁다고 말한다. 사랑보다는 아파트이고, 믿음보다는 자가용인 한국이다. (4344.4.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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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과 책읽기


 돈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합니다. 아이키우기가 되든 배움이 되든 책읽기가 되든 사랑이 되든, 돈을 갖고 움직일 때에는 어느 한 가지도 안 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갖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기에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지는 않습니다. 돈이 있으니 책을 읽을 겨를이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돈이 없기에 책을 못 사거나 못 빌리거나 못 읽지는 않습니다. 돈이 없으니 책을 읽을 겨를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돈이 있으면서 마음이 함께 있을 때에는 참으로 즐겁다 싶은 나날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돈이 없으면서 마음이 나란히 없을 때에는 더없이 괴롭다 싶은 나날에 허덕일는지 모르리라 생각합니다.

 돈이 없으나 마음이 있을 때에는, 책을 살 수 없다지만 빌리거나 얻어서 책을 읽습니다. 때로는 종이책 아닌 사람책을 읽고 자연책을 읽으며 삶책을 읽습니다. 사랑책을 펼치고 믿음책을 나누면서 일책과 놀이책을 어깨동무합니다.

 돈이 있으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책을 사더라도 책알맹이를 꾸밈없이 받아안거나 받아먹지 못합니다. 책은 돈으로 읽지 않을 뿐더러, 이름값이나 권력으로도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은 지식으로도 읽지 못합니다. 책은 계급이나 신분으로도 읽지 못합니다. 책은 오로지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운 매무새 하나로 읽을 뿐입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읽는 책이 됩니다. 마음이 없을 때에는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책이 됩니다.

 물건으로서 책을 손에 쥘 수야 있겠지요. 노리개처럼 사람을 돈으로 부릴 수야 있겠지요. 돈이 많으니 넓디넓은 땅을 홀로 차지할 수 있겠지요. 돈이 많으니 아무 집안일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집이 으리으리하겠지요.

 내 마음은 나 스스로 일굽니다. 내 생각은 나 스스로 가다듬습니다. 내 말은 나 스스로 돌봅니다. 내 사랑은 나 스스로 가꿉니다. 내 믿음은 나 스스로 보듬습니다. 내 책은 나 스스로 읽을 뿐 아니라 내 책은 나 스스로 쓰고 엮습니다. (4344.4.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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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뒹굴며 읽는 책 13
완다 가그 글.그림, 신현림 옮김 / 다산기획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집안일은 하찮고 바깥일이 대단하겠지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 완다 가그,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다산기획,2008)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살아가는 애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집안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집안일은 참 쉽지.’라 말하거나 ‘집안일은 아무것도 아니지.’라 말한다면 ‘그래요, 참 쉽지요.’나 ‘그래요, 참 아무것도 아니지요.’라 대꾸하면서 한 마디를 슬그머니 덧붙이고 싶습니다. ‘참 쉬우니까 집안일 좀 함께 해 주셔요.’라든지 ‘참 아무것 아니니까 님께서 도맡아 해 주셔요.’라고.


.. 아저씨가 소리를 버럭 질렀어. “당신이 하는 일이라곤 꾸물거리며 집 주변을 어슬렁대는 게 전부잖아. 그런 일이 뭐가 힘들어.” 그러자 아주머니가 말했어. “그러면 내일부터 일을 바꿔 볼까요. 내가 바깥일을 할 테니, 당신은 집안일을 해 봐요. 내가 들에 나가서 풀을 자를게요. 당신은 집에서 꾸물거리며 어슬렁대 봐요. 어때요? 바꿔 볼래요?” 아저씨는 얼마든지 잘할 거 같았단다. 풀밭에서 뒹굴거리며 아기를 돌보고, 시원한 그늘에 앉아 버터를 젓고, 소시지 몇 개 굽고 수프나 좀 끓이면 되지 뭐. 흠! 무척 간단한 일이잖아! ..  (14∼15쪽)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1935년에 처음 나왔고, 그림책을 그린 완다 가그 님은 1893년에 태어나 1946년에 숨을 거둡니다. 《백만 마리 고양이》라든지 《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 같은 완다 가그 님 책이 우리 말로 옮겨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가 참으로 멋진 그림책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한국사람이든 미국사람이든 집안일을 얕보거나 여자한테만 떠넘기는 버릇은 매한가지이니까요. 삶을 읽을 줄 모르거나 삶을 느끼려 애쓰지 못하거나 삶을 사랑하는 손길이 모자라기로는 이 나라이든 저 나라이든 자본주의로 흐르는 나라는 한결같으니까요.

 집안일을 우습게 여긴다든지 하찮게 깎아내리는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집안일을 하고 또 하더라도 돈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집안일은 하고 또 해도 끝이 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될 뿐 아니라, 나날이 같은 일을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손을 놓을 수 없을 뿐더러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아플 수 없으며, 아파서는 큰일이 납니다.


.. “집안일이 처음이라 좀 어려웠을 거예요. 내일은 아마도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아주머니가 말했어. “아냐, 이제 그만! 오늘로 집안일도 그만이야. 제발, 부탁이야, 여보, 사랑해. 다시 들에서 일할게. 당신 일보다 내 일이 힘들다고 다시는 투정하지 않을게.” 아저씨가 애원했어. “예, 좋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행복하게 잘 살겠죠? 영원히 말예요.” ..  (58쪽)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를 보면, 집안일을 아무것 아니라 여기던 아저씨가 큰코를 다칩니다. 집안일은 하찮고 바깥일을 대단하게 여기던 아저씨는 집안일을 고작 하루 겪고 나서는 ‘집안일을 하찮게 여기려는 마음’을 다시는 안 품겠다고 싹싹 빕니다.

 그러나,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에 나오는 아저씨는 ‘집안일이 무척 손이 많이 갈 뿐 아니라 고되기까지 하다’고 얼핏 느끼면서도 ‘이렇게 힘들며 고단한 집안일인 만큼 나도 집안일을 거들면서 함께 즐거이 잘 살아갑시다!’ 하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집안일에서 꽁무니를 뺍니다. 꽁무니를 빼고플 만큼 혀가 쑥 빠졌다면, 당신 아주머니는 집안일을 하면서 어떤 몸과 마음일까요. 적어도, 아저씨는 아주머니 팔다리를 주물러 준다든지 등허리를 주무른다든지 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를 읽으면서, 왜 이 아저씨는 아무것도 깨닫거나 깨우치지 못할까 싶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집안일을 모를 뿐 아니라, 스스로 집안일을 해 보려 하지 않은 채 이날 이때까지 살아온 아저씨가 하루아침에 ‘그래, 집안일이란 이렇구나.’ 하면서 번쩍 하고 깨달아 아주 착하면서 참다이 살아가기를 바랄 수 없는 노릇이에요. 그예 불에 데었다고는 느낄는지 모르나, 집안일이 얼마나 크며 대단한가를 뼛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고작 한다는 일이란 꽁무니 빼기일밖에 없어요.

 아주머니는 아저씨를 집안일에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굳이 아저씨한테 집안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아저씨가 집안일을 못할 듯하다고 여기기도 했겠지만, 괜히 스스로 ‘내가 이런 일을 하니까 당신이 제대로 알아주시오!’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스스로 껴안으면서 더 사랑해 주는 마음결입니다. 아저씨는 앞으로 조금씩 마음을 다스리면서 설거지를 거든다든지 청소를 돕는다든지 집 안팎 치우기라든지 아이돌보기라든지 여러모로 마음을 쓰겠지요. 차근차근 집안일로 다가오면서 밥하기와 살림살이에 마음을 기울이겠지요.

 아주머니가 어느 날 다리가 다친다든지 몸이 아파 드러눕는다든지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아저씨는 한 번 크게 겪었으니까, 아주머니가 얼마나 고마우면서 사랑스러운가를 시나브로 깨달아야 하고, 시나브로 깨달으면서 집안일뿐 아니라 집살림을 함께 짊어지면서 흐뭇하게 웃도록 삶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를 해 줄까? 엄마가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서 들은 얘기야 ..  (7쪽)


 엄마는 할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딸한테 들려줍니다. 딸은 이 얘기를 듣고는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서 제 딸을 낳는 어머니가 되면 또 제 딸한테 ‘내 엄마, 그러니까 네(딸아이 딸) 할머니한테서 들은 얘기란다.’ 하고 앞머리를 열면서 이야기를 물려줄 수 있겠지요.

 글은 모르고, 책 또한 모르지만, 입에서 입으로, 아니 몸으로 부대낀 삶에서 삶으로 차근차근 물려줄 수 있겠지요. 누가 처음 지었는지 모르고, 언제 처음 태어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이런저런 실마리야 알든 모르든 대수롭지 않고, 할머니한테서 어머니한테, 어머니한테서 딸한테 천천히 이어지겠지요.

 1930년대 미국땅 어느 곳 모습하고는 사뭇 다르다 할 만하지만, 사람과 자리와 일감이 다르다고는 하나, 삶매무새나 살림새로 보자면 거의 똑같은 모양새로, 예나 이제나 엇비슷한 이야기 하나 태어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림책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벌이는 ‘집안일 이야기’를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꾸리는 하루하루 삶자락이 어떠한가를 가만히 헤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한테는 어떤 일이 대단할까요. 우리한테는 돈을 더 버는 일이 대단할까요. 우리한테는 집에서 아이를 사랑하며 집살림을 돌보는 일이 대단할까요. 우리한테는 밥 한 그릇이 대단할까요, 큰회사 이름쪽 하나가 대단할까요. (4344.4.11.달.ㅎㄲㅅㄱ)


―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완다 가그 글·그림,신현림 옮김,다산기획 펴냄,2008.9.3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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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0] 산들보라

 둘째 아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둘째 아이 이름 또한 애 엄마가 짓습니다. 애 아빠가 곁에서 거들며 함께 지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아이 이름을 놓고 ‘눈보라’나 ‘봄눈보라’도 생각해 보았으나, ‘산들보라’로 마무리짓습니다. ‘산들’이란 산들바람에서 나오는 ‘산들’이요, 산들바람이란 “시원하고 가볍게 부는 바람”입니다. ‘보라’는 눈보라에서 나온 말인 한편, “이 사람을 보라” 할 때에 나오는 ‘보라’이기도 합니다. ‘산들’이라는 이름은 “산과 들”을 일컫는 산들이 되기도 합니다. ‘보라’는 보라빛 보라이기도 합니다. 뜻이야 이밖에도 여러모로 더 헤아릴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한결 깊어지거나 넓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뜻이나 더 사랑스러운 느낌이나 더 고운 결에 걸맞게 붙이는 이름은 아닙니다. 둘째를 낳아 함께 살아갈 어버이 스스로 어느 곳에서 어떤 매무새로 어떤 살림을 꾸리면서 지내려 하느냐 하는 꿈을 담는 이름입니다. 둘째 아이 또한 첫째 아이처럼 어쩔 수 없이 아버지나 어머니 성을 붙여야 할 테며, 의료보험증에는 끝 이름 하나가 잘리겠지요. 그래도 우리 둘째는 그예 ‘산들보라’일 뿐이고, 산들보라처럼 어여삐 이 땅으로 찾아오리라 믿고 기다립니다. (4344.4.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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