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사진 이야기] 11. 서울 책나라. 2009.봄.


 헌책방치고 큰길에 자리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드물게 큰길가 목 좋은 데에 자리하면서 책을 무척 많이 다루는 헌책방이 있습니다만, 웬만한 헌책방은 큰길가보다는 골목 안쪽에 자리합니다. 큰길가에 자리하더라도 사람 발길이 잦은 곳에 자리하기 벅찹니다. 헌책 팔아 가게삯을 치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살림을 꾸리는 분들은 해가 날 때에 해를 바라보면서 일을 하기를 바라고, 책손들이 햇볕을 쬐면서 따사로운 기운으로 책 하나 맞아들이기를 비손합니다. 생각해 보면, 헌책이든 새책이든 따사로운 햇살이 누구한테나 골고루 따스한 마음길을 베풀듯, 따사로운 넋이 깃든 책을 누구나 따사로운 발걸음으로 찾아나서면서 따사로운 손길을 북돋우고, 따사로운 눈길로 이 땅 곳곳에서 따사로운 땀방울을 흘릴 수 있으면 기쁘리라 꿈꿀 테니까요. 어른도 아이도 고운 책결을 느끼면서 고운 마음결을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4.12.불.ㅎㄲㅅㄱ)


- 2009.봄. 서울 회기동 책나라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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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1] 흙일꾼

 집에서 살림을 하기에 살림꾼입니다. 살림꾼은 집일만 하는 사람을 일컫지 않습니다. 집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집일꾼이에요. 살림을 하기에 살림꾼이라고 따로 일컫습니다. 흙을 만지면서 일을 한다면 흙일꾼입니다. 아직 어설프면서 어리숙하게 텃밭을 돌보는 저 같은 사람은 흙일꾼이라는 이름조차 부끄럽기에, 섣불리 흙일꾼이라 밝히지는 못하고 흙놀이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느덧 스무 해 즈음 글을 쓰며 일을 했기에 글일꾼이라 할 만한데, 사진으로도 일을 하니까 사진일꾼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일을 한대서 일꾼이지만, 일만 한다면 나 또한 기계와 마찬가지로 맥알이 없거나 따스함 없는 목숨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집일꾼에서 집살림꾼으로 거듭나는 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려 합니다. 흙놀이에서 흙일꾼으로 거듭난다면 나중에는 흙살림꾼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합니다. 집일꾼에서 집살림꾼이 되고, 책일꾼에서 책살림꾼으로 다시 태어난다든지, 글일꾼에서 글살림꾼으로 거듭 꽃피운다면, 나한테 고운 목숨을 베풀어 준 우리 어버이한테 기쁨과 사랑을 갚는 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4.4.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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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죽은 사람 뼈다귀를 만지작거린대서
 [책읽기 삶읽기 48] 폴 콜린스,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양철북,2011)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이라는 이야기책은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이 죽고 나서, 이이 뼈다귀가 어떻게 돌고 돌아 이제 어디에 얼마나 흩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우리 나라로 친다면, 다산 정약용 님 무덤을 누군가 파헤쳐서 뼈다귀가 이리저리 흩어졌다는 줄거리를 다루는 셈입니다. 또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무덤을 파헤쳐 뼈다귀를 요모조모 빼돌린다는 이야기를 다루는 셈입니다.

 서양사람도 참 할 일이 없지, 뭣하러 뼈다귀를 파내어 이 뼈다귀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울까 궁금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뼈다귀를 파낸 발자취를 좋는 이야기책까지 쓴다니, 그야말로 한갓진 삶이 아닌가 할 만하기도 합니다. 학문이나 문학이 갈 데까지 가면서, 이렇게까지 부질없다 싶은 대목까지 다루어야 하는가 싶기도 해요.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 본다면, 서양사람은 한국땅에 들어와 무덤파기를 꽤나 즐겼습니다. 일본사람은 이들 서양사람한테서 배우며 한국땅 옛무덤 파헤치기를 퍽이나 즐겼습니다. 서양사람은 이집트 옛임금 무덤만 파헤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책에도 또렷이 적히듯이, 서양사람은 한국땅에서 옛나라 옛임금 무덤을 찾아내어 파헤치며 보배를 빼돌리려 했어요.


.. 때로 잊고 지내던 경건함이 이들을 다시 찾아오곤 했다. 페인이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목사들과 좋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끝없이 찾아와 페인을 괴롭혔다. 페인이 이단적 주장을 철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어 찾아왔다 ..  (24쪽)


 영국에 있다는 대영박물관은 무덤파기 따위를 하면서 긁어 모은 다른 나라 보배를 쑤셔넣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무덤파기뿐 아니라 숱한 싸움을 일으켜 이웃나라라든지 먼나라를 무너뜨리거나 짓밟으면서 보배를 빼앗았습니다.

 영국하고 이웃한 프랑스도 영국하고 똑같은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프랑스와 이웃한 독일이라든지 네덜란드도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에스파냐나 포르투갈이래서 다르지 않아요. 이탈리아나 그리스는 어떠했을까요. 스웨덴이나 터키는 어떠했을까요.

 저마다 이름과 힘과 돈이 드높을 때에는 어김없이 이웃나라나 먼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일본도 매한가지였으며, 중국 또한 다르지 않아요. 이 나라 한국도 잘 살피면, 지난날 고구려 때에 멀디먼 곳까지 땅을 넓히려고 창과 방패를 앞세워 깊디깊은 마을까지 찾아가서 싸움을 일으켰습니다. 아니, 고구려가 나라밖으로 땅을 넓히기만 했는가요. 백제와 신라와 고구려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도 난 듯이 죽이고 죽는 싸움을 오래도록 벌였습니다.

 군대가 있을 때에 사이좋게 어깨동무한 적이란 없습니다. 군대가 있는 나라가 평화를 사랑한 적이란 없습니다. 군대를 두는 임금이나 권력자가 사람들을 따스히 사랑하거나 어여삐 아낀 적이란 없습니다.

 오늘날 남녘땅에도 군대가 어마어마합니다. 북녘땅에도 군대가 무시무시합니다. 남북녘 권력자는 저마다 군대를 아주 크게 북돋우면서 막상 이 나라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에는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피땀을 그러모아 더 센 힘과 더 큰 돈과 더 높은 이름을 탄탄한 울타리로 쌓아올립니다.


.. 페인은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부터 시작한다. ‘모든 왕은 불합리하다.’ 페인은 군주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인 고귀한 혈통을 부인하여 이런 주장을 펼친다 … 페인이 쓴 모든 글은 모든 왕, 모든 불합리한 권위, 전 세계의 크고 작은 폭군 모두를 공격하는 글이었다 … 페인은 정중한 토론을 벌이지 않는다. 그런 전통은 필요없으니 합리적인 이유를 대라고 한다 … 페인이 미국에 제시한 것은 완전한 재탄생, 죽은 과거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 《영국 재무 제도의 몰락》은 영국 정부가 국외 탐험에 돈을 대기 위해 마구잡이로 통화를 발행해 빚이 계속 늘어 가고 있음을 비난했다 … 정부는 국내의 지지와 외국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37, 39, 40, 58쪽)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은 무슨 일을 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 뼈다귀를 놓고 이런 문학책 하나까지 나온다 한다면, 이이는 여느 수수한 사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미국 역사이든 영국 사회이든 뒤흔들었다고도 하는데, 이이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짚으면서 이이가 밝히려 했던 빛줄기를 느끼는 일을 대수로이 여겨야 한다는 뜻에서 이 같은 문학을 빚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토머스 페인이 남긴 발자국이나 빛줄기를 찬찬히 살피거나 짚거나 돌아보는 동안, 이 한 사람이 지키려 하던 뜻을 오늘날 사람들은 얼마나 지키거나 돌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니,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 뼈다귀도 어디로 흩어졌는지 아리송할 뿐더러,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이 외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아로새기는가 또한 아리송합니다. 아니, 민주도 평화도 사랑과 평등도 자유도 어디로 꼬리를 감추는지 아리송합니다.

 미국은 끝없이 새 무기를 만들며 새 전쟁을 크게 터뜨리려 합니다. 미국한테 문화 식민지·경제 식민지·정치 식민지처럼 나뒹구는 한국땅 또한 엄청난 돈과 품을 들여 ‘미국이 만든 새 무기’를 자꾸자꾸 사들일 뿐 아니라, 너무도 많은 전쟁무기를 건사하느라 나라살림이 삐걱댈 만하다 합니다. 그나마 남녘땅 사람들은 자연을 아주 깡그리 무너뜨리며 버티니까 북녘처럼 사회나 정치가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남녘 삶터가 북녘 삶터처럼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남녘땅 자연을 온통 파헤치며 도시살림을 북돋우기 때문이요, 이웃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중남미나 동남아시아 자원을 마구 갖다 쓸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피땀을 울궈먹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며 ‘낮은 자리 여느 수수한 사람’끼리 어깨동무를 못하도록 가로막으면서 서로서로 싸우도록 내몰기 때문입니다.


..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단순한 몸짓,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마감일에 쫓겨 허둥지둥 쓴 글. 이런 것들이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고,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몸짓, 그 말 한 마디가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감동받은 사람이 사실은 자기를 다른 방향으로 보내 줄 무언가를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144쪽)


 미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바른 생각’을 못합니다. 일본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착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중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고운 꿈’을 품지 못합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은 ‘상식’이 없는 미국사람을 일깨우려고 애썼다는데, 한국땅에서는 ‘상식’이 없는 한국사람을 일깨우거나 이끌거나 어루만지려는 목소리나 움직임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이나 환경운동이나 교육운동은 있어요. 그렇지만 ‘상식’은 없습니다. ‘삶’이 없고 ‘살림’이 없습니다. ‘사랑’이 자취를 감추고, ‘사람’이 모습을 숨깁니다.


.. 늘 그런 식이지 않은가? 토머스 페인의 유해조차도 수 세기 동안 띄엄띄엄 반쯤은 기억되고 반쯤은 잊힌 채로 있었다. 토머스 페인의 뼈가 어디로 떠돌았는가에 대한 진짜 이야기도 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도 많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페인의 무덤을 파낸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252∼253쪽)


 한국땅에서는 ‘토머스 페인 읽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한 사람을 읽기가 어렵기 앞서 ‘상식 읽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래서 ‘토머스 페인 읽기’를 잘 한다고 여기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미국사람 스스로 ‘상식 읽기’를 거의 안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산업이란 ‘군산복합체 산업’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전쟁터 군인으로 일하는 산업이 가장 발돋움한 미국입니다. 그러면 한국은? 한국에는 군인이 몇 사람이나 되지요? 군인하고 얽힌 회사나 가게나 일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 정부가 국방비로 쓰는 돈은 얼마나 되나요? 직접 세금으로 쓰는 국방비 말고 여러모로 뒤따르는 국방 예산은 얼마나 되려나요?

 친환경무상급식을 너나없이 외칩니다만, ‘친환경 먹을거리’를 마련하려는 농사꾼은 한국땅에서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친환경 먹을거리는 도시 아닌 시골 논밭에서 일구어야 하는데, 오늘날 한국땅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얼마나 많이 새로 닦으며, 얼마나 많은 아파트가 쏟아집니까. 도시는 얼마나 커지고, 도시사람은 얼마나 돈에 목말라 돈벌이에 미친 듯이 달겨드는지요.

 온통 돈에 목마른 한국사람들인데, 아니, 돈에 미쳤다 할 만한 한국 어른들인데, 한국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환경무상급식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알쏭달쏭할 뿐더러, 친환경무상급식을 한대서 무엇이 나아지거나 좋아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교육이 엉터리인데 급식 하나 한대서 무엇이 거듭나려나요. 무엇보다 교육이 없이 입시지옥만 있는데, 급식 노래를 부른대서 무엇이 달라지려나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토머스 페인 삶’이 아닌 ‘토머스 페인 뼈다귀’만 들여다보는 눈높이와 눈썰미와 눈길에서 이야기가 비롯했다가 이야기가 끝납니다. 죽은 사람 뼈다귀는 끝내 찾을 수 없고, ‘산 사람이 슬기롭게 어루만질’ 알맹이 또한 끝끝내 알아볼 수 없습니다. (4344.4.12.불.ㅎㄲㅅㄱ)


―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 (폴 콜린스 글,홍한별 옮김,양철북 펴냄,2011.2.25./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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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사람과 책읽기


 시골에 살면서 도시마실을 할 일이란 드물다.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갈 일이란 딱히 없다. 우리 식구가 도시로 마실을 간다면, 책방에 가거나 출판사에 가거나 무슨 강의에 가거나 아는 분을 만나러 간다. 롯데월드라든지 큰공원이라든지 육삼빌딩이라든지 운동경기장이라든지 갈 일이란 없다. 아이 어머니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꽉 막힌 도시에 한 시간 아닌 십 분만 있어도 숨이 막힌다고 느끼지만, 아이 아버지 또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 있는 일이 즐겁거나 기쁘지 않다. 돌이켜보면, 도시에서 살아갈 때에는 술이라도 마셔서 머리가 해롱거리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싶다.

 시골에 살며 가끔 도시로 마실을 가기 때문에, 도시사람이 책을 얼마나 읽는지 살필 겨를이 없다. 어쩌다 한 번 도시로 마실을 가서 전철이나 버스를 탄대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도시사람’이 이곳에서 책을 얼마나 읽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드문드문 마주하는 모습이기는 하더라도, 나날이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 모습’은 사라지거나 자취를 감추는구나 싶다. 어쩌다가 한두 사람 책을 손에 쥐는 모습을 본다 하더라도 참고서나 자기계발서나 토익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겉으로는 책읽기로 보이지만, 책이 아닌 교재를 외우는 사람이다.

 아이와 함께 도시마실을 하며 책을 펼치다가 생각에 잠긴다. 억지로 책을 조금 펼쳐 몇 쪽을 넘기고는 덮어 가방에 도로 넣는데,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책을 펼칠 겨를을 내기란 몹시 힘들다.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어버이는 책읽기하고는 아주 멀어지고야 만다. 아이 어버이는 책읽기에서 아이읽기로 새 삶을 보낸다.

 여느 도시사람이라면 책읽기로 마음읽기를 하기보다는 손전화로 놀이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즐길 때에 좋아하겠지. 자가용을 몰며 어디를 놀러다닌다든지, 맛집이나 찻집을 마실하는 삶이 즐겁겠지.

 요 며칠 손바닥 텃밭에서 풀을 뽑으며 놀았다. 일이라기보다 놀이라 할 만하다. 여느 농사꾼이 보자면 이 손바닥 텃밭으로 뭘 깨작거리느냐 싶을 만하니, 우리로서는 그냥 흙놀이일 뿐이다. 백 평 천 평은커녕 열 평조차 안 되는 손바닥 텃밭을 깨작거리니까 텃밭농사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부끄럽다. 다만, 우리 식구한테는 이 조그마한 텃밭에서 거둘 푸성귀로도 즐거우니까 깨작질이기는 하나 텃밭놀이를 한다. 아버지가 텃밭놀이를 하는 동안 딸아이는 아주 스스럼없이 흙밭으로 따라와서 호미라든지 쟁기라든지 삽이라든지 쥐겠다며 알짱거린다. 삽이나 쟁기는 무거워서 못 들지만, 아버지가 드니까 저도 들고 싶어 한다. 아이한테는 호미가 삽과 같은데, 호미로는 성이 안 차는 듯하다. 아이한테도 일이라기보다는 놀이일 테니까.

 도시에서 도시사람으로 지내는 동안, 나와 옆지기는 아이한테 ‘책 읽히기’를 넘어 무언가 해 줄 만한 일거리나 놀이거리가 그리 마땅하지 않았다. 늘 하는 집일은 이렁저렁 보여주거나 시킬 만했다. 빨래라든지 걸레질이라든지 밥상차림이라든지, 이런 집일을 아이도 거뜬히 거든다. 그렇지만 집살림이 무엇이고 사람살림이 어떠한가를 느끼도록 돕기가 몹시 어렵다.

 흙일꾼으로 태어나거나 자라지 못한 어버이로서 흙일꾼다운 매무새를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물려주기란 힘들다. 어버이부터 흙놀이를 천천히 받아들이면서, 바쁜 걸음이나 재촉하는 뜀박질이 아닌, 철을 몸으로 맞아들이는 걸음에 맞추어 흙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차근차근, 열 해나 스무 해를 두고 느긋하게 흙살림을 살펴 내 집살림을 아이가 알뜰살뜰 받아먹게끔 손길을 내밀어야지 싶다.

 흙놀이를 하고 나면, 손바닥 텃밭 깨작질이더라도 등허리가 쑤셔 아이한테 ‘책 읽히기’를 못하기 일쑤이다. 참 미안하다. 그러나, 아이한테 읽히는 책에 깃든 이야기란, 흙놀이를 하는 삶이니까. 봄꽃과 봄나무를 그려 넣은 책을 읽히지 않더라도, 아이 눈으로 봄꽃과 봄나무를 보도록 하면 되니까. 멧새와 파란하늘 나온 그림책을 굳이 읽히기보다, 멧새 소리를 텃밭에 맨발로 서서 듣고, 파란하늘을 호미질을 멈추고 허리를 두들기며 가만히 올려다보며 느끼면 되니까. (4344.4.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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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겹살과 책읽기


 딱히 고기를 즐겨먹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굳이 고기를 찾아서 먹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풀을 더 좋아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푸성귀만 먹어도 배부르기 때문은 아닙니다. 고기를 길러서 잡아 먹는 일이 어떠한가를 알기 때문은 아닙니다. 펄떡펄떡 숨쉬던 짐승을 잡아 죽인 다음 차려서 먹는 고기가 끔찍하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닙니다.

 발굽병이 터지기에 고기를 멀리할 까닭은 없습니다. 발굽병이 어느새 수그러들었다기에 고기를 찾아서 먹어야 할 까닭 또한 없습니다. 늘 살아가는 터전에 걸맞게 늘 먹는 밥을 살핍니다. 늘 지내는 곳에서 어깨동무하는 이웃하고 늘 살가이 어우러지는 길을 헤아리면서 즐길 밥을 생각합니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고기를 먹기 쉽고, 풀을 먹기도 쉽습니다. 오늘날 도시에는 짐승을 가두어 살을 찌우는 짐승우리가 없으며, 푸성귀를 기르는 밭이 없습니다. 아니, 도시에는 사람들이 날마다 먹어야 하는 밥을 얻는 논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먹을거리는 도시로 들어가서 도시에서 사고팔려 도시에서 쓰입니다. 쌀이든 밀이든 물고기이든 뭍고기이든 푸성귀이든, 도시에서 스스로 길러서 즐기는 먹을거리란 한 가지도 없으나, 도시에서는 모든 먹을거리가 아주 값싸면서 흔합니다.

 도시에는 책방이 많습니다. 작은 책방이 수없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도시에서는 책 하나 사들이는 일이 아주 쉽습니다. 좋다 여기는 책이든 훌륭하다 섬기는 책이든, 도시에서는 아주 손쉽게 장만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도시사람은 책 좀 읽어 볼까 생각하며 얼마든지 책 하나 손쉽게 얻어서 읽습니다. 도시사람은 영화 좀 볼까 생각하며 언제라도 영화관에 홀가분하게 찾아가서 가볍게 봅니다. 피자 한 판을 사서 먹든, 짜장면을 시켜서 먹든, 세겹살을 구워서 먹든, 무엇이거나 언제라도 아무렇지 않게 즐기거나 누립니다.

 글은 쉽게 쓰기 마련이고, 그림은 쉽게 그리기 마련이며, 사진은 쉽게 찍기 마련입니다. 골머리를 썩히면서 쓰는 글이나 그리는 그림이나 찍는 사진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을 그대로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며 사진으로 찍기 때문에, 글쓰기와 그림그리기와 사진찍기가 쉬울 뿐입니다. 꾸미거나 덧바를 수 없는 글쓰기요 그림그리기요 사진찍기일 뿐입니다. (4344.4.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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