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겹살과 책읽기
딱히 고기를 즐겨먹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굳이 고기를 찾아서 먹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풀을 더 좋아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푸성귀만 먹어도 배부르기 때문은 아닙니다. 고기를 길러서 잡아 먹는 일이 어떠한가를 알기 때문은 아닙니다. 펄떡펄떡 숨쉬던 짐승을 잡아 죽인 다음 차려서 먹는 고기가 끔찍하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닙니다.
발굽병이 터지기에 고기를 멀리할 까닭은 없습니다. 발굽병이 어느새 수그러들었다기에 고기를 찾아서 먹어야 할 까닭 또한 없습니다. 늘 살아가는 터전에 걸맞게 늘 먹는 밥을 살핍니다. 늘 지내는 곳에서 어깨동무하는 이웃하고 늘 살가이 어우러지는 길을 헤아리면서 즐길 밥을 생각합니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고기를 먹기 쉽고, 풀을 먹기도 쉽습니다. 오늘날 도시에는 짐승을 가두어 살을 찌우는 짐승우리가 없으며, 푸성귀를 기르는 밭이 없습니다. 아니, 도시에는 사람들이 날마다 먹어야 하는 밥을 얻는 논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먹을거리는 도시로 들어가서 도시에서 사고팔려 도시에서 쓰입니다. 쌀이든 밀이든 물고기이든 뭍고기이든 푸성귀이든, 도시에서 스스로 길러서 즐기는 먹을거리란 한 가지도 없으나, 도시에서는 모든 먹을거리가 아주 값싸면서 흔합니다.
도시에는 책방이 많습니다. 작은 책방이 수없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도시에서는 책 하나 사들이는 일이 아주 쉽습니다. 좋다 여기는 책이든 훌륭하다 섬기는 책이든, 도시에서는 아주 손쉽게 장만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도시사람은 책 좀 읽어 볼까 생각하며 얼마든지 책 하나 손쉽게 얻어서 읽습니다. 도시사람은 영화 좀 볼까 생각하며 언제라도 영화관에 홀가분하게 찾아가서 가볍게 봅니다. 피자 한 판을 사서 먹든, 짜장면을 시켜서 먹든, 세겹살을 구워서 먹든, 무엇이거나 언제라도 아무렇지 않게 즐기거나 누립니다.
글은 쉽게 쓰기 마련이고, 그림은 쉽게 그리기 마련이며, 사진은 쉽게 찍기 마련입니다. 골머리를 썩히면서 쓰는 글이나 그리는 그림이나 찍는 사진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을 그대로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며 사진으로 찍기 때문에, 글쓰기와 그림그리기와 사진찍기가 쉬울 뿐입니다. 꾸미거나 덧바를 수 없는 글쓰기요 그림그리기요 사진찍기일 뿐입니다. (4344.4.11.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