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 세상 끝 서점을 찾는 일곱 유형의 사람들
숀 비텔 지음, 이지민 옮김 / 책세상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25.

까칠읽기 73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숀 비텔

 이지민 옮김

 책세상

 2022.8.31.



  처음부터 책집이라는 데가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누구나 쓰고 읽는 책”이지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누구나 말하고 듣는 이야기”만 있었다. 그래서 온누리 모든 슬기와 빛과 살림은 “입으로 들려주고 귀로 들어서 마음에 새기고 온몸에 남기는 말씨(말씨앗)”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았다.


  손수 살림을 짓는 사람은 ‘말’만 들려주고 들어도 안 잊는다. 잊을 까닭도 터럭도 없다. 손수짓기를 하는 사람은, 아이어른이 함께 일하고 같이 쉬고 나란히 노래하고 서로 북돋우면서 보금자리를 일군다. 손수짓기를 안 하는 사람이기에, 아이하고 어른을 가를 뿐 아니라, 아이가 어른한테서 못 배우고, 어른도 아이한테서 못 배운다. 이른바 벼슬아치와 임금과 나리와 글바치는 아이어른이 쫙 쪼개진 얼거리로 살았으며, 바로 이들이 ‘글’을 거머쥔 나날을 살았다.


  어느 삶터에서도 굳이 글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삶터’나 ‘살림터’가 아닌 ‘나라(정부·국가)’를 세우고 보면, 이들은 저희끼리 찧고 빻으며 일구었다는 보람(업적)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 남기려고 한다. 벼슬아치와 임금과 나리와 글바치가 어떤 글을 남겼는지 보라. 하나같이 땅따먹기(전쟁·영토확장)를 기리는 따분한 글이다. 모조리 누가 임금이었고 누가 뭘 베풀었는지 읊는 재미없는 글이다. 모름지기 처음부터 남긴 글이란, 그들(권력자)끼리 주고받은 굴레일 뿐이다.


  나라가 아닌 ‘나’를 바라보고 아끼면서 ‘너’를 마주하고 돌아본 삶터에서는, ‘우리’로서 아우르는 포근한 한울타리를 지었다. 그래서 ‘한울타리 = 한울 = 하늘’이라는 얼거리이다. 모든 살림은 말(말씀·말씨)로 지었다. 밥도 옷도 집도 처음에는 말씨앗으로 짓게 마련이다. 이윽고 눈과 손과 발을 거쳐서 온마음으로 스미고, 온몸으로 퍼지면서, 온사랑을 이루는 터전으로 빛난다.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를 읽으며 갸우뚱했다. 책이름이 좀 엉뚱하다 싶어서 다시 살피니, 워낙 “Seven Kinds of People You Find in Bookshops”였네. 책을 덮고서 한숨을 쉰다. 누구한테 이바지하려고 이처럼 멍청하게 책이름을 바꿔 달았을까? 책손을 일깨우려고 붙인 책이름인가? 책집지기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여기는 책이름인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손님은 임금”인가? ‘임금’이라는 놈은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망나니인데, 손님이 망나니여도 될까? 손님은 그저 사람이다. 지기도 그저 사람이다. 책집이란, 책을 사이에 놓고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이다. 숱한 책이 있듯, 책집지기는 다 다르고, 책손도 다 다르다. 얄궂은 사람이란 어디에도 있을 만하니, 굳이 책손 가운데 얄궂은 사람을 몇 갈래로 나누어서 호박씨를 까야 할는지 아리송하다. 이 얼거리를 뒤집으면 “얼간이 책손”과 나란히 “얼간이 책집지기”를 깔 수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왜 서로 얼간이라고 여기면서 뒤에서 손가락질을 해야 할까? 왜 서로 ‘사람’으로 마주하면서 책빛을 가꾸는 길하고는 동떨어진 굴레로 치달려야 할까?


  사람을 가르지 말자. 사람은 그저 사람으로 여기자. 오늘 비록 얄궂거나 안타까운 매무새를 보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럴 때에는 이런 모습이 얄궂구나 하고 여기면서 이야기를 하자. 서로 다스리거나 바로잡거나 고칠 모습을 이야기를 하면서 알려주고 듣자. 이러면 된다. 뒷말로는 둘 다 망가지는 지름길일 뿐이다.


ㅍㄹㄴ


쉬운 어휘로 설명해도 충분한 상황에서 어려운 단어를 늘어놓는 것만큼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일도 없다. 그들은 우표 수집을 우취라고, 새 관찰을 조류학이라고, 동물을 향한 불건전한 집착을 곤충학이라 말한다. (14쪽)


정말로 그렇다면 그들이 우리 서점에서 판매하는 이 한정판에 그토록 눈독 들이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 아닌가. 다른 곳에서 더 싸게 파는 걸 봤다며 투덜댄다고 서점 주인이 책값을 깎아주지는 않는다. (27쪽)


되도록이면 이들을 전부 피하는 편이 좋다. 나에게도 어린 자녀가 있다. 나는 종종 가족 모두와 거리를 두기 위해 꽤 애쓰는데 가족들 역시 똑같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후세를 남기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다들 이해할 것이다. (40쪽)


전적으로 믿기 힘든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그들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은 고독한 존재로 늘 혼자 서점을 찾는다. 물론 이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57쪽)


#SevenKindsofPeopleYouFindinBookshops #ShaunBythell


+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숀 비텔/이지민 옮김, 책세상, 2022)


근근이 생계를 꾸리기로 한 처량하고 불운한 소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 겨우 먹고사는 가엾고 슬픈 몇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 살림이 빠듯하여 딱하고 안쓰러운 몇몇 이야기가 아니다

8쪽


이 종류의 손님은 대체로 자신의 지식을 뽐낼 단골 청중을 보유하지 못한 자칭 전문가다

→ 이런 손님은 으레 많이 안다고 뽐낼 말을 들어줄 단골을 거느리지 못했다

→ 이런 손님은 다들 스스로 뽐낼 말을 들어줄 단골을 곁에 두지 못했다

13쪽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 다를 수도 있다

→ 가끔 있게 마련이다

→ 벗어날 때도 있다

14쪽


전부 잘 팔리는 S급 매물이다

→ 다 잘팔린다

→ 모두 잘팔린다

→ 다 잘팔리는 으뜸이다

→ 모두 잘팔려 첫손이다

23쪽


바로 이들처럼 문자 언어를 이용해 실용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 개발됐어야 한다

→ 바로 이들처럼 글로 일하는 사람을 헤아려 지어야 했다

→ 바로 이들처럼 글씨로 일하는 사람한테 맞춰 지어야 했다

33쪽


자신의 의견을 설파할 완벽한 무대가 된다

→ 제 뜻을 떠들 훌륭한 자리가 된다

→ 제 마음을 펼 멋진 곳이 된다

35쪽


아이의 문해력을 높이고 싶어 하는

→ 아이 글눈을 높이고 싶어 하는

→ 아이가 잘 읽기를 바라는

49쪽


공정을 기하기 위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 똑바르게 다시 말하지만

→ 올바르게 다시 말하지만

49쪽


서점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걸하며

→ 책집에 들어가고 싶다고 빌며

→ 책집에 들어가자고 울며

5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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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13.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부너미 글, 민들레, 2019.2.28.



집안일을 하면서 쉰다. 밥과 국을 끓이면서 쉰다. 빨래를 하면서 쉬고, 이럭저럭 일거리를 추스르고서 등허리를 편다. 바람소리에 묻어내는 멧새소리를 귀담아듣는다. 확 줄었지만 꾸준히 노래를 베푸는 개구리가 우리 마을과 들녘에 얼마나 남았나 하고 어림하면서 쉰다. 낮새가 쉬는 저물녘부터는 밤새가 노래하는 결을 헤아린다. 아무 일을 안 하기에 쉬지 않는다. 일을 하기에 쉬고, 일을 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일을 맺으면서 마음을 돌아본다. 저녁을 차려 놓은 뒤에 세 사람이 알아서 먹으라 하고는 폭 쉰다. 오늘은 오늘몫을 했으면 넉넉하다고 여긴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꽤 잘 나온 책이지 싶다. 첫머리에 실은 글은 아쉬웠으나, 뒤쪽으로 갈수록 깊고 넓게 스민 이야기가 돋보인다. ‘-주의자(-니스트)’라고 해서 무엇을 하거나 안 해야 할 까닭이 없다. ‘좋아하기’이기에 스스로 길들이거나 묶거나 옭아매면서 갇힌다. ‘좋아하기’는 곧장 ‘팬덤’으로 기울면서 ‘남과 나를 나란히 가두’려고 하기에 힘으로 누른다. 그래서 ‘주의자·좋아하기·팬덤’이 아니라 ‘사랑’을 바라볼 노릇이다. 사랑이라면 어느 길에 서든 ‘나부터 틔우’고 ‘너를 함께 열’면서 ‘우리가 함께 날갯짓하는 새터’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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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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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12.


《되살리기의 예술》

 다이애나 애실 글/이은선 옮김, 아를, 2021.7.8.



저잣마실을 간다. 볕을 보며 걷는다. 큰아이는 몸앓이를 하고서 천천히 낫는다. 오늘 시골버스는 손님이 좀 붐빈다. 이따금 북적거릴 때가 있지만 웬만하면 텅텅 빈다. 밤에는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래가 어울린다. 집안일을 하고, 쉬엄쉬엄 등허리를 펴고, 낱말책을 여미고 글일을 하고, 아이들하고 이야기하고, 곁님과 생각을 나누고, 다시 들노래와 숲바람을 마신다. 어쩌다가 ‘토시코 아키요시’라는 이웃나라 손가락꽃(피아노)을 들었다. 이런 발걸음에 이런 손자취를 남기면서 걸어온 사람이 있구나. 모든 걸음은 작은길이되, 스스로 꿈씨앗을 헤아릴 적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 살림길이게 마련이다. 《되살리기의 예술》을 읽다가 한참 갸웃했는데, 곁님과 큰아이가 들춰보더니 ‘재미없다’는 말씀을 남긴다. 두 분 모두 ‘되살리기’라는 이름에 눈이 간 듯싶고, 나도 이 이름에 눈이 갔는데, 막상 ‘되살리기’가 무엇이라든지, 무엇을 되살리려고 했는가 같은 이야기하고 한참 멀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이 글을 엮는 사람이 있고, 이 글을 엮은 꾸러미를 잇는 사람이 있고, 이 글꾸러미를 알아보면서 읽는 사람이 있다. 엮은이는 ‘되살리기’라기보다는 ‘이웃하기’여야지 싶다. 이웃이어야 비로소 책을 펴낸다.


#ToshikoAkiyoshi #토시코아키요시

#あきよしとしこ #?吉敏子


https://www.youtube.com/watch?v=AElsKE48Gac


#Stet #AnEditorsLife #DianaAthill (2000년)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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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11.


《은박지에 새긴 사랑》

 호치민과 다섯 사람 글/김남주 옮김, 푸른숲, 1995.2.6.



구름이 짙되 해가 자주 나오는 하루이다. 일곱 해를 이은 꾸러미를 매듭지었기에, 이제 새롭게 여밀 꾸러미를 살핀다. 그동안 여미던 틀을 바꾸어서 이모저모 꾸리기까지 꽤 걸린 듯싶다. 처음에는 익숙한 대로 세우고, 이내 가다듬고, 다시 살피면서 뜯어고치고, 거듭 짚으면서 추스르는 길을 거친다. 닷벌 열벌 스무벌 돌아보는 사이에 비로소 얼거리를 알아챈다. 낮에는 두바퀴를 달린다. 마을논을 가로질러서 과일을 장만한다. 이웃마을은 베트남과 필리핀 아가씨를 모아서 마늘을 캔다. 이제는 우리나라 젊은이와 푸름이조차 ‘마늘심기·마늘캐기’를 하나도 모를 테고, 그냥 사먹기만 하겠지. ‘몇 차 산업’이나 ‘AI타령’을 할 일이 아니다. 한때 ‘메타버스’가 징글징글하게 판치더니 이제 쑥 들어갔다. 우린 뭘 봐야 할까? 들숲메바다를 손수 건사하고 몸소 돌보는 배움길을 새로 펴야 하지 않나? 《은박지에 새긴 사랑》은 예전에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나왔고, 2018년에 다시 옛이름으로 나온다. 찬바닥에서 이웃나라 아름글을 한 글씨씩 옮기던 마음이란, 아침저녁으로 스스로 되새기려는 길이요, 아이한테 물려주고픈 씨앗이다. 오늘 우리가 쓰고 읽는 글은 ‘글씨(글씨앗)’일까, 아니면 ‘겉치레’일까? 사랑을 새기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글’이 아닌 ‘글시늉’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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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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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10.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희석 글, 발코니, 2024.3.25.



구름날이다. 사이사이 해가 들고, 바람소리와 새소리와 개구리소리가 가볍고 가늘지만 고루 섞이면서 흐른다. 해마다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구나 싶지만, 아직 우리 곁에 제법 있다. 마당에 서서 후박꽃내음을 맡으면서 구름바라기와 해바라기를 하노라면, 어느새 제비가 머리 위로 휘익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제비씨는 굳이 머리 위에서 바람소리를 힘차게 내면서 날아간다. 나도 제비도 서로 느끼고 알아본다. 오늘은 날이 축축하기에 빨래를 쉰다. 작은아이는 이제 설거지를 ‘조금’ 할 줄 안다. 다들 나날이 조금씩 돋아나고 깨어난다.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를 처음 펼 적에는 제법 읽을 만하겠거니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갈피를 못 잡은 듯싶다. 처음 잡거나 세운 길이 흔들린달까. 이른바 “글을 못 쓰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갈피를 못 잡는 사람”만 있다. 갈피를 잡으려면 까칠한 말을 귀담아들을 노릇이다. 맞춤길이나 띄어쓰기는 틀려도 된다. 스스로 남겨서 나누려는 이야기만 보아야 한다. 먼저 “내가 나로서 살아낸 이야기를 내 눈길과 손끝으로 풀어낸” 다음에 글손질을 하면 된다. 그런데 글손질과 글꾸밈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느새 갈피를 잊고 갈곳도 잃은 채 헤매더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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