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느긋하게 읽어서 스스로 배우는 것
 [책이 있는 삶 3] '빠르게 많이' 읽기를 경계함


 제가 책읽는 모습을 보는 분들은 놀랍니다. 그다지 빨리 읽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책소개 글을 언제 다 쓰느냐고 묻습니다. 가만히 보면, 저는 책을 더디게 읽는 편이고, 여러 권을 겹쳐서 읽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무척 빠르게 많이 읽는 듯하지만, 오래오래 느긋하게 여러 가지를 읽기에 여러 가지 책을 두루 알 뿐입니다. 책을 읽은 지는 퍽 오래되었으나 책 이야기를 글로 쓴 지는 얼마 되지 않기도 하고요.

 책은 저에게 지식을 건네주는 교사가 아닙니다. 지식은 책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얻을 수도 있고 인터넷이나 신문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달아 얻을 수도 있고요. 책에서 지식을 얻을 때, 책은 그냥 ‘참고서’입니다. 옆에 놓고 도움 삼는 책이요. 하지만 저에게 책은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열고 보여주는 스승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일을 하면서 깨닫고 느끼고 새롭게 헤아리는 갖가지 이야기를 만나고 배우는 마당입니다. 미처 겪지 못한 일을 다른 이들이 먼저 겪은 이야기로 들으며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을 때도 있고, 앞으로 겪을 일을 맞이하도록 마음다짐을 할 때도 있고, 벌써 겪은 일을 하나둘 되짚으며 돌아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느긋하게 읽습니다. 서둘러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읽다가 가슴을 울리는 대목을 만나면 잠깐 책을 덮고 숨을 몰아쉽니다. 그 대목 하나로 하루 내내 즐겁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얻기보다는 그때그때 제 자신을 이끌고 일깨우는 슬기를 얻고픈 책입니다.


.. 빨리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아름다움이 있다. 빨리 개구리가 되는 것이 올챙이의 목적이나 그것이 결코 행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올챙이는 올챙이 때의 헤엄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  《쇼지 사부로-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특수교육,1990) 122쪽


 《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란 책은 판이 끊어졌기에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지난해 8월 22일에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산 뒤로 오늘 아침까지 181쪽을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을 울리는 대목이 많아서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 대목도 그래요. “빨리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듯, “빨리 책을 읽는 것이 책읽기(독서)가 아닐” 테지요?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책에 담은 줄거리를 제대로 헤아리는 것이 책읽기라고 봅니다. 책을 읽는 빠르기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몇 권 읽었느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계 내기 좋아하는 분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한 달이나 한 해에 책을 몇 권 읽는지를 조사하지요? ‘권수 조사’는 하지만, 자기가 읽은 책을 제대로 자기 것으로 삼았는지, 읽은 뒤에 얼마나 자신이 달라졌는지는 살피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는 하지 않는 어느 방송사 ‘책읽기 추천 풀그림’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는 내세우지만 “그 책을 읽어서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떻게 살아가고 일하고 놀고 어울려야 좋은지”는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또 “책을 읽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추천하는 책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헤아리는가”는 살피지 않았습니다.


.. 현명해지고 싶은 고매한 희망을 품고 어려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헛수고로 끝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애당초 그러한 책을 읽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믿어버린대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잘못은 오히려 난해한 책을 한 번밖에 읽지 않고 그것으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했던 데에 있다.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하면, 전문서가 아닌 바에야 설령 아무리 난해한 책이라도 독자를 절망시키는 일은 없다 ..  《모티머 J.애들러-독서의 기술》(범우사,1986) 26쪽


 책을 느긋하게 읽는 일은 어려운 책을 읽을 때에도 참 좋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면, 날마다 새로 얻고 아는 것이 있는 터라, 처음 읽을 때는 낯설고 어렵던 이야기들이 차츰차츰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퍽 빠르게(하지만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는 느린) 그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과제물을 내야 한다고 허겁지겁 읽어제끼는 책에서 무엇을 얻거나 배우겠습니까? 책을 읽어 독후감을 쓰겠다고 하면 독후감도 독후감대로 쓰이지 않지만, 책은 책대로 읽히지 않습니다. 책 읽은 느낌을 쓰고프다면 책을 즐겁게 읽으면 그만이에요. 즐겁게 읽은 책이라면 책 읽은 느낌이 술술 즐겁게 풀려나옵니다. 어렵고 딱딱하고 시간에 쫓겨 거칠게 대충대충 읽은 책은 독후감을 쓸 때 괜히 말이 어려워지고 딱딱해지고 거칠어지며 대충대충이 되고 말아요.

 이런 말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군요. 일본에서 이름난 지식인인 다치바나 다카시란 사람은 책을 ‘빨리 많이’ 읽어내는 일을 늘 힘주어 말하지요? 그런 생각을 맞바로 비판한 이야기입니다.


..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쪽 읽는데 1초, 좀 늦더라도 2,3초’라는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굳이 심신에 무리를 주면서라도 훈련을 거듭하면 나한테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모르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엉터리 책 그리고 나의 대량 독서술, 경이의 독서술》은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 가운데 5분이나 15분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매력이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여느 때처럼 느릿느릿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손에 들지 않는다 ..  《야마무라 오사무-천천히 읽기를 권함》(샨티,2003) 18쪽


 느긋하게 책을 읽는 일만큼 책읽기에서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지식을 얻고자 읽는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읽어서 즐기는’ 것이고, ‘읽어서 즐기는 가운데 스스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읽어서 즐기는 가운데 스스로 얻는’ 것은 슬기일 수 있고 지식일 수 있고 정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얻고 배우고 깨우치더라도 좋습니다. 읽는 맛, 보람, 재미, 즐거움, 알뜰함, 반가움, 멋짐, 훌륭함, 눈물, 웃음, 슬픔, 기쁨, …… 같은 온갖 것을 느낄 수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싶어요.

 사람이 어떤 일을 빨리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 사람은 나기 무섭게 죽어야 가장 중요하고 좋은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빨리 일을 해내는 것보다 ‘제대로 즐겁고 올바르고 알맞게’ 해내는 게 중요하겠지요? 책읽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꼭 ‘천천히’일 까닭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빠르기로 ‘느긋한 마음’을 품고 읽을 때가 가장 좋지 싶어요.

 책을 고를 때도 느긋하게, 책을 사서 읽을 때도 느긋하게, 읽으면서 시나브로 얻은 것을 마음으로 즐기고 몸으로 옮길 때도 느긋하게 하는 일이 바로 책읽기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멋진 일이자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4337.10.13.물.ㅎㄲㅅㄱ)


= 글을 쓰는 사이에 소개한 책 =
1.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
 - 지은이 : 쇼지 사부로 / 옮긴이 : 정필화 / 펴낸곳 : 특수교육(1990.7.24)
2.독서의 기술
 - 지은이 : 모티머 J.애들러 / 옮긴이 : 민병덕 / 펴낸곳 : 범우사(1986.12.20)
3.천천히 읽기를 권함
 - 지은이 : 야마무라 오사무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샨티(2003.11.11)

***
차분하고 느긋하게 책을 읽는 방법을 말하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책읽기가 한결 즐겁고 반가운 일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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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지음, 노영희 옮김 / 양철북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아이들
- 지은이 : 야누슈 코르착
- 옮긴이 : 노영희
- 펴낸곳 : 양철북(2002.12.18)
- 책값 : 8500원



'아이들'을 돼지우리에 가두는 어른들
- 야누슈 코르착 지은 <아이들>



<1> 1942년 8월 6일, 고아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은 코르착


유럽에서 큰 전쟁이 다시 터지고 유대인이 하나둘 끌려가던 1942년 8월 6일,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들 손을 잡고 폴란드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 뒤에는 스테파니아라는 고아원 교사가 마찬가지로 아이들 손을 잡고 걷습니다. 나라가 보살피지 못하고, 사람들이 내버린 고아들 200명 남짓은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책을 손에 들고 단출하게 옷을 차려입은 채 트레블링카 가스실이 마지막역인 화물차에 올랐습니다.

코르착을 아는 동무들은 독일군 손아귀에서 코르착이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애를 썼지만, "당신 아이가 아프고 불행하고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 아이를 버리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꾸하면서 폴란드 거리 곳곳에 버려진 고아들을 거두어서 보살피다가 가스실로 갔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1904년에 의사 자격을 얻은 뒤 러일전쟁 때 군의관으로 징병된 코르착은 전쟁을 겪은 뒤, "전쟁은 참으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학대받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국가든 참전하기 전에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이 다치고 죽고 고아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를 개혁하려면 먼저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편,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빼앗기고 잃어버린 '존중', '사랑', '관심'을 되돌려 주고자 애쓴 사람이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폴란드사람입니다.


아이가 어른과 다른 점은 단 하나,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생계를 어른에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양철북(200)> 35쪽


"아이들을 알려고 하기 앞서 자기 자신을 알려고 애쓰라"고 말하는 코르착입니다. 세상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었으나 의술만으로는 아픈 마음을 다스릴 수 없어서 교육자가 되고, 고아원장이 된 코르착입니다. "비밀을 캐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비밀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어린이가 누려야 할 권리, 어린에게 지켜줘야 할 권리를 말하고, 몸으로 지켜주려 애쓴 코르착입니다.


아이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을 때
그 숟가락을 빼앗아 버린다면,
단지 물건 하나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던
손의 일부를 빼앗는 것입니다. <38쪽>



우리들은 아이들이 누리고 얻을 권리도 지켜주지 못하지만, 자기 감정을 나타낼 숟가락마저 빼앗아 버립니다. 그리고 주먹을 들어 머리통을 내갈기거나 손바닥을 펴서 뺨따귀를 때리죠? 손가락에 힘을 주어 팔뚝이나 옆구리에 멍이 들 만큼 세게 꼬집기도 하고요.


<2>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아주 정성스럽게 '좋은 책'을 기꺼이 사 줍니다. 돈이 얼마가 들던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이가 그 책을 다 읽어내고 속으로 삭여내느냐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깜냥으로 끝없이 책을 사 줍니다. 그런데 이런 '책 사주기'는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부터 끊어집니다. 이때부터는 학원교재, 문제모음, 참고서, 학습지뿐입니다. 이제는 과외비에 돈 대느라 바쁩니다.


무슨 놀이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노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놀이를 할 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합니다. <42쪽>



제 어릴 적 기억으로, 어머니가 책을 사 주신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책을 얼마 안 읽었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노느라 바빴거든요. 놀이란 놀이는 다 하면서 놀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요즘 아이들은 우리에 갇힌 돼지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좁은 우리에 틀어박혀서 주인이 주는 밥만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돼지와 요즘 아이들이 무엇이 다를까요? 좁디좁은은 우리에 갇힌 돼지는 자기 생태와 달리 '사람 눈에는 더럽게 보이고 살도 디룩디룩 찝'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아이들은 머릿속에 지식은 많이 들어가지만 사람답게 자라나는 마음과 생각은 익히거나 배우지 못해요.

책을 푸짐하게 사 주는 부모들이 그 책을 아이와 함께 읽고 즐기나요? 아닙니다. 그런 부모는 아주 드뭅니다. 어린이책에 담긴 깊고 너른 뜻을 제대로 헤아리는 부모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저 '아이가 어리니까 사서 읽히게 하는 것'뿐인 부모가 거의 모두입니다. 그러니, 그런 부모들이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책 한 권 사 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아이가 사람답게 크고 곧고 튼튼한 생각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일에는 털끝만큼도 눈길을 보내지 못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참으로 중요한 걸 모릅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은 '아이를 낳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힐 줄'은 알지만 '아이가 사람답게 자라도록 가르치고 이끌 줄'까지는 모릅니다. 밥과 옷과 집은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요즘 부모는 '돈'으로 할 줄 아는 것만 생각할 뿐, 돈 없이, 아니 돈을 넘어서 온몸과 온마음으로 부대끼며서 아이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하면서 나눌 수 있는 것은 도통 모르고, 알려고도 애쓰지 않습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그 안에는 수백의 다른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은 서로 다른 난제이고,
서로 다른 과업이며,
서로 다른 염려와 관심을 베풀어야 할 대상입니다. <58쪽>



<3> 어린이에게도 '사람 권리'가 있다


국제연맹은 1924년에 어린이 인권선언을 채택하고 1959년에 2차로 선언문을 다시 만들지만 '말'뿐인 선언문이었답니다. 코르착은 국제연맹 선언문이 있기 앞서부터, "선언문은 선의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강요해야 한다. 호의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1989년, 비로소 '어린이 인권협정'이 나와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린이 인권' 문제를 법으로 강제할 장치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이런 인권협정이 있어도 우리 나라에서 살아가고 자라는 어린이들 모습은 '인권을 누리는 모습'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중고등학생은 중고등학생대로, 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들은 또 그 아이들대로 온갖 짐과 굴레에 갇힌 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고 있어요.

"사실은 어린이들은 인류, 국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고, 현재 여기에 있는 사람들입니다.<67쪽>"라는 걸 어른들이 모르기 때문일까요?


"엄마는 어른이 차를 엎지르면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내가 엎지르면 화를 내요!"
아이들은 불공평한 대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종종 울음을 터뜨리지만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고 성가신 것으로만 취급합니다.
그리고 무시할 만한 것으로 여깁니다.
"또 칭얼거리고 징징대네!"
이 말은 아이들에게 쓰려고
어른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53쪽>


어린이가 어른의 잘못을 따지는 것을
우리는 싫어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눈치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56쪽>



돈이 있고, 얼굴이 예쁘고, 권력이 있으면 죄를 지어도 죄값을 받지 않고 뒷구멍으로 빠져나올 수 있듯, 우리들은 '어른'이라는 엄청난 권력으로 '어린이'를 차별하고 괴롭힌다고 봅니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네 학교를 생각해 봅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 '체벌'해야 하느니 마느니, 회초리를 어떤 것으로 써야 하느니 마느니를 따집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잘못했을 때는?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 교사에게 체벌을 받아야 한다면, 교사들이 잘못했을 때는 학생에게 체벌을 받으면 될까요?


<4>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겠죠?


코르착이 한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예부터 내려오는 훌륭한 말이 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윗물, 그러니까 어른들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아랫물은 아이들은 그런 어른을 보고 배우고 따르고 우러르고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청소년범죄는 청소년이 못나고 문제가 많아서 일으키는 범죄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온갖 범죄를 흉내내고 따라하는 범죄입니다. 청소년들이 범죄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터전을 만들고 만 어른들 탓입니다. 남녀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재산차별, 생김새차별, 지역차별, 학력차별이 곳곳에 퍼진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느끼면서 자랄까요? 이렇게 '차별 넘치는 세상'에서 동무들끼리 따돌리고 괴롭히는 '왕따'라는 게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 안타깝게도, 무심한 어른은 화가 났거나 기분이 좋지 않
을 때, 이 물건들을 꺼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머니
가 늘어진다거나 서랍 속에 복잡하다는 이유로요. 다른 사
람의 소중한 재산을 이런 식으로 매정하게 다룰 수 있나요?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아이가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존중하
는 마음을 배우겠어요? 그것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휴지 조
각이 아니라 소중한 물건이고, 눈부신 꿈의 조각입니다 .. <131쪽>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받아들이고 껴안고 토닥거리면서 감쌀 수 있는 마음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이런 마음을 지니면 우리 사회에 차별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다름'을 '아름다움'으로 느끼면서 '틀림'과 '잘못됨'을 하나씩 고치고 다듬어 나갈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다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낮과 밤, 여름과 가을, 젊은이와 늙은이가 있고,
뜰에는 나비가, 하늘에는 새가 있고,
꽃 색깔이나 사람들 눈 색깔이 저마다 다르듯이
신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만 차이를 싫어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다양성을 불편해 합니다. <146쪽>



<아이들,양철북(2002)>이란 작은 책에는 코르착이 우리에게 건네는 속깊은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허리를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길 바라는 이야기, 사실을 얘기할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말없이 있는 아이들 이야기, 사랑이 있으면 곧바로 사랑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아이들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 '야누슈 코르착'은 어떤 사람? (제 나름대로 갈무리해서 적어 봅니다) ===

1879년 7월 22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자기 이름은 '헨리크 골드슈미트(Henryk Goldszimt)'인데 스무 살이 되던 해 폴란드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파데레프스키(Paderewsky)'상을 받으면서 글이름(필명)인 '야누슈 코르착'을 쓴다. 이 문학상은 응모자에게 글이름을 쓰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공모하기 바로 앞서 글이름을 '야냐슈 코르착'이라 지었다는데, 식자공이 잘못해서 '야누슈'로 쓰는 바람에 그 뒤로 이 이름을 그대로 쓴단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의사가 된 코르착은 부유한 환자에게는 돈을 많이 받고 가난한 환자에게는 돈을 한 푼도 안 받고 돌봐 주는 한편 약 살 돈까지 주고 가기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의술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풀 수 없음을 느끼고는, 새로 세워진 유대 어린이 고아원 원장이 되며 아이들 문제를 부대끼고 고쳐 나가게 된다. 이때부터 코르착은 고아원 다락방에서만 살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평생을 바친다.

코르착은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한편 <매트 1세>, <내가 다시 어려진다면> 같은 작품을 쓰고 <작은 평론>이라는 어린이 주간지를 만들고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의사 할아버지'란 이름으로 어린이와 보육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그러던 1939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마침내 1942년 8월 6일, 고아원 아이 200명 남짓과 평생 고아원지기로 함께 일한 교사 스테파니아 들과 함께 가스실로 가는 기차에 당차게 오르며 삶을 마친다. 1989년에 국제연합에서 내놓은 어린이 인권협정은 바로 코르착이 쓴 어린이 인권에 얽힌 글을 바탕으로 썼으며 1979년 '세계 아동의 해'는 코르착이 태어난 지 100해를 기려서 '야누슈 코르착의 해'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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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사랑 - 추둘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필집
추둘란 지음 / 소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콩깍지 사랑
- 글쓴이 : 추둘란
- 펴낸곳 : 소나무(2003.12.13.)
- 책값 : 8000원


 ‘신년하례회’가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모인 ‘신년하례회’ 자리에 온 국무총리와 총리 경호원들이 일으킨 자그마한(어찌 보면 큰) 잘잘못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활동가로 일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올 한 해에도 힘내어 잘 일해 보자는 뜻으로 마련한 자리이니, 이 자리는 다름아닌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또 시민사회단체에 도움을 주는 우리들 보통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 어쩌다가 ‘초대’가 되거나 ‘손님’으로 온 정치인과 행정관료가 주인처럼 굴곤 합니다. 더욱이 이들은 ‘한 말씀’ 하는 인사도 다른 사람보다 자기들이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 자기들은 ‘일정이 바빠서’ 빨리 한 말씀한 다음 다른 자리에 가야 한다면서. 그리하여 이들 정치인과 행정관료는 남들 앞에서 자기 할 말만 실컷 한 다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안 듣’습니다. 정치인과 행정관료가 보여주는 이런 모습들은, 그 사람들이 정치나 행정을 어떻게 하는가를 잘 알려주지 싶습니다. 사람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무엇이 문제라고 그렇게 힘주어 외쳐도 귀기울여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잖아요. 문화정책이든 경제정책이든, 또는 자전거정책이든 교통정책이든, 보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목소리가 한 번이라도 정치와 행정에 제대로 담긴 적 있을까요. 허울뿐인 세미나를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때에 후다닥 치르고 대충 밀어붙이고만 있지 않은가요.


.. 빨리, 또 크게 자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민서는 민서의 속도대로 자라나, 이 사회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민서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넘치는 보호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차별에 주눅 들지 않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민서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입니다 ..  〈52쪽〉


 사회가 사회다운 모습으로 굴러가지 않는 이 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이란 참 팍팍하고 고단합니다. 그런데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 못지않게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도 팍팍하고 고단합니다. 여자로 살아가는 일도 고단하지만 남자로 살아가는 일도 고단하며, 대학교까지 마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일도 고단하지만 가방끈 짧은 무지렁이로 살아가는 일도 고단합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누구한테나 다 다르게 있는 재주와 솜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리기 때문에, 이제 좀 나은 자리에 올라서면 옛일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르는’ 모습 때문에, …….

 자전거로 시내를 달리노라면, 곧잘 뒤에서 빵빵거리는 자동차를 만납니다. 이때는 으레 깜짝 놀랍니다. 자동차 경적이 얼마나 큰가요. 차에 탄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누르는 경적이지만, 앞뒤 왼쪽 오른쪽 차근차근 마음쓰며 달리던 자전거꾼은 난데없는 큰소리에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까닭은 자전거가 길에서 거치적거리기 때문, 그러니까 ‘자동차님이 나아가는 앞길을 막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는 자동차끼리도 빵빵거립니다. 건널목 신호가 바뀌자마자 바로 부웅 하고 지나가지 않으면, 뒷차는 1초도 안 기다리고 바로 ‘빠아아∼ㅇ’ 하고 몇 초 동안이나 경적을 울립니다.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앞차한테도 빵빵거리는 자동차요,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도 자기보다 느리게 가는 앞차한테도 빵빵거리는 자동차입니다. 이들 자동차꾼은 차에서 내려 길을 걸을 때, 자기 앞에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있어도 ‘뷁!’, ‘꽥!’, ‘야!’ 하고 소리지르며 비키라고 할는지.


.. 오히려 누군가 틀린 답을 칠판에 쓸라치면, 마치 자신이 틀리기라도 한듯 위로해 줍니다. “알믄 여기 왔것슈? 모르니 배우러 왔쥬.” 겨울이라고 해서 할머니들이 마음 편히 쉬는 것은 아닙니다. 농사철엔 농사철대로 뼈빠지게 일하고, 겨울엔 도라지를 까거나 냉이를 캐 돈 사는 것이 할머니들의 일입니다. 그렇게 오십 년, 육십 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올겨울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그 아까운 시간을 쪼개 한 자 한 자 글자를 읽고 쓰고 있습니다 ..  〈40쪽〉


 우리 세상이 다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돈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남 앞에서 우쭐거리거나 마구 날뛰지 않으면서, 돈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쪼들리거나 고달프지 않으면서 함께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을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좋은 이야기를 한가득 들려주려고 애쓰고, 글을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해도 넉넉하고 즐거이 함께 어울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1등만, 첫째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2등이나 10등이나 꼴등도, 둘째나 넷째나 막내도 잘사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콩깍지 사랑》은 천천히 걷는 걸음을, 나즈막하게 읊는 이야기를, 한 손을 슬쩍 옆사람 한쪽 어깨에 얹고 어깨동무하며 함께 살자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4340.1.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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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책을 즐겨 읽어 볼까요?
 [책이 있는 삶 2] 껍데기가 아닌 속살을 살펴봅시다


 저는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지은 책은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없는 이야기를 꾸민다고 할 때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진득하게 담아내면 눈길이 쏠립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만 엮어낸 책은 달갑지 않습니다.

 뜬구름 잡는다는 이야기가 `공상과학'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터무니없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 앞뒤가 어긋나는 소리, 우리 삶을 비틀거나 한편으로 치우치게 보는 소리가 바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소리 또한 뜬구름 잡는 소리이며 우리 삶에 눈멀고 귀멀게 하는 이야기 또한 뜬구름 잡는 소리입니다.

 털털하게 털어놓는 글이 좋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흉허물없이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곱고 멋있게 쓰거나 지으려는 글, 그림, 사진은 입맛에 안 맞습니다. 언뜻 보면 무언가 남다르거나 멋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두고두고 다시 곱씹으면 영 아닙니다. 때깔만 곱다고 맛있는 사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낸 글은 소설이든 수필이든 희곡이든 시든 동화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없는 걸 있는 듯 그려낸 글은 영 와닿지 않습니다. 억지로 불러오는 웃음과 어거지로 쥐어짜는 눈물은 그야말로 지겹습니다. 그런 글을 볼 때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억지 웃음을 불러와야 할 만큼 재미가 없는가? 우리 삶이 어거지 울음을 쥐어짜야 할 만큼 눈물나는 아픔이 없는가?


 .. 고등학교를 갓 졸어한 겨울 오후였다. 집에서 선창가에 내려간다고 가니까 한 달 전에 팔려간 우리 집 소가 양지 쪽 말뚝에 매어져 서서 되새김을 하면서 눈을 버꿈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 앞으로 다가가서 소를 쓰다듬어 주면서 `마침 우리 동네에 있어서 좋다'며서 중얼거리다가 선창가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가서 보니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도저히 그냥 내려갈 수가 없어서 한참 동안 머리랑 등이랑 쓰다듬어 주면서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달래 주면서 선창가로 내려갔다. 소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 <우리가 뽑은 대장>(지식산업사,1985) 130쪽


 소가 흘리는 눈물을 본 사람은 얼마쯤 될까요. 소가 흘리는 눈물을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며 사는 사람은요. 우리는 우리가 즐겨 먹는 고기가 되는 고기소들 아픔과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 밥통으로 들어오는 온갖 남새며 곡식을 생각할 틈도 없습니다. 꾸역꾸역 집어넣기 바쁩니다. 돈을 잘 세서 알맞은 값으로 밥과 고기와 물을 사서 뱃속으로 집어넣습니다.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 밥통으로 집어넣는 밥처럼 우리 머리와 가슴에 담고 느끼는 책도 그렇게 보지 않는가 해서요. 그 책 하나를 애틋하게 느끼면서 사는지, 그냥 돈이 있으니까 사는지, 남들에게 교양 있어 보이려고 흐름에 쫓기고 이끌려가면서 사는지...

 책을 책대로 제대로 느끼는 눈이 얕으면 새책방에 가든 헌책방에 가든 도서관에 가든 읽을 책이 없습니다. 맞춤법이 오래된 책이라고, 세로쓰기 책이라고, 낡고 떨어진 헌책이라고 줄거리가 나쁘지 않습니다. 책은 겉껍데기가 아무리 깨끗하여도 줄거리가 엉망이면 책 값어치가 없습니다. 겉껍데기는 걸레와 같다 해도 그 안에 담은 줄거리가 아름답고 알차면 그 책은 아름답고 알찬 값어치를 갖고 대접을 받습니다.

 사람은 어떠할까요. 옷차림새가 말쑥하고 돈이 많아야 참 사람일까요? 말은 번듯번듯 잘하고 또박또박 말을 잘하거나 듣기 좋은 말을 예의바르게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일까요?

 책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 뭇 목숨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 흐름입니다. 함께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눈과 마음으로 뭇 목숨을 아끼고 보살필 수 있습니다. 뭇 목숨을 아끼고 보살피는 눈과 마음으로 애틋하며 아름다운 책을 골라낼 수 있습니다. 책을 아끼고 보살펴서 애틋하며 아름다운 책을 살필 수 있고 골라낼 수 있는 마음은 새책방이나 헌책방이나 도서관으로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줍니다.

 책 겉모습이나, 책을 쓴 사람 이름이나, 펴낸 곳 이름이나, 글감에서 자유로울 때 자신에게 알맞고 좋다고 느낄 만한 책이 보입니다. 겉껍데기가 아닌 즐거리를 보고자 책을 삽니다. 겉보기가 아니라 몸에 좋고 맛이 좋은 먹을거리를 삽니다. 보기에만 좋은 아무 먹을거리나 사서 먹을 수 없듯 겉껍데기만 고운 책을 사서 맹탕인 줄거리를 읽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책방에서 사거나 빌려서 읽고 느끼는 책 하나는 우주입니다. 온 목숨입니다. 지구입니다. 삶입니다. 우리 삶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듯 자신이 골라서 읽는 책 열 권 가운데 빠지거나 모자란 책 하나 없습니다.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어느 곳에서 만나는 책이든 마찬가지이고요.

 다만. 요새는 날이 갈수록 껍데기만 번들번들 뒤집어씌워서 눈가림과 눈속임으로 책 장사로 팔아치우는 책이 참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겉발림 책에 속아넘어갑니다. 씁쓸한 요즘 모습입니다. 아무 먹을거리나 사 먹을 수 없듯 아무 책이나 사 읽을 수 없게 되었거든요.

 잘못하면 거짓되고 치우치고 비틀리며 우리 삶을 눈멀게 하는 `농약에 물들 열매들'과 같은 책을 골라서 살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읽을 책이라면 `호박과 같은 책'이어야지 싶습니다. 겉보기는 못생겨도 맛은 좋고 몸에 좋은 호박 말입니다. (2003.2.21. 처음 씀 / 2004.9.9.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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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2

 
 누군가 저한테 “베스트셀러를 어떻게 생각하셔요?”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베스트셀러라, 저도 고등학교 다니던 옛날에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을 빠짐없이 읽으려고 무척 애를 썼어요.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더군요. 그때그때 조금씩 바뀌는 순위에 맞추어 책을 읽자니, 정작 제가 바라는 책, 제가 읽고 싶어하는 책은 못 읽게 되더군요. 그래서 제가 바라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자니 베스트셀러 순위에 든 책하고 멀어지고요. 그래서 저는 다부지게 금을 그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이도저도 안 되겠구나 싶어서 말입지요. 그래, 어찌했느냐? 그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베스트셀러라는 책’은 죄 끊었습니다. 아예 순위표도 안 보았고, 그런 책들이 잘 팔리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런 책들 이야기를 해도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누군가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선사해 주면, 앞에서는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받았지만, 바로 그날 헌책방 한 곳 찾아가서 슬그머니 책방 아저씨 책상 위에 얹어 놓거나 그냥 선물이라면서 드리곤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열대여섯 해쯤 되었군요. 그동안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느끼고 돌아보노라니, 이 책, 베스트셀러란 ‘자기 품 안 들이고 대충 읽을 책’이 아니겠느냐,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자기한테 참말로 반갑고 고맙고 즐겁고 기쁜 책은 못 보게 막는 책’이 아니겠느냐, ‘자기가 볼 책을 스스로 찾는 몸가짐을 싹뚝 꺽어 버리거나 없애 버리는 책’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4339.12.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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