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느긋하게 읽어서 스스로 배우는 것
 [책이 있는 삶 3] '빠르게 많이' 읽기를 경계함


 제가 책읽는 모습을 보는 분들은 놀랍니다. 그다지 빨리 읽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책소개 글을 언제 다 쓰느냐고 묻습니다. 가만히 보면, 저는 책을 더디게 읽는 편이고, 여러 권을 겹쳐서 읽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무척 빠르게 많이 읽는 듯하지만, 오래오래 느긋하게 여러 가지를 읽기에 여러 가지 책을 두루 알 뿐입니다. 책을 읽은 지는 퍽 오래되었으나 책 이야기를 글로 쓴 지는 얼마 되지 않기도 하고요.

 책은 저에게 지식을 건네주는 교사가 아닙니다. 지식은 책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얻을 수도 있고 인터넷이나 신문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달아 얻을 수도 있고요. 책에서 지식을 얻을 때, 책은 그냥 ‘참고서’입니다. 옆에 놓고 도움 삼는 책이요. 하지만 저에게 책은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열고 보여주는 스승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일을 하면서 깨닫고 느끼고 새롭게 헤아리는 갖가지 이야기를 만나고 배우는 마당입니다. 미처 겪지 못한 일을 다른 이들이 먼저 겪은 이야기로 들으며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을 때도 있고, 앞으로 겪을 일을 맞이하도록 마음다짐을 할 때도 있고, 벌써 겪은 일을 하나둘 되짚으며 돌아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느긋하게 읽습니다. 서둘러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읽다가 가슴을 울리는 대목을 만나면 잠깐 책을 덮고 숨을 몰아쉽니다. 그 대목 하나로 하루 내내 즐겁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얻기보다는 그때그때 제 자신을 이끌고 일깨우는 슬기를 얻고픈 책입니다.


.. 빨리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아름다움이 있다. 빨리 개구리가 되는 것이 올챙이의 목적이나 그것이 결코 행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올챙이는 올챙이 때의 헤엄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  《쇼지 사부로-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특수교육,1990) 122쪽


 《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란 책은 판이 끊어졌기에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지난해 8월 22일에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산 뒤로 오늘 아침까지 181쪽을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을 울리는 대목이 많아서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 대목도 그래요. “빨리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듯, “빨리 책을 읽는 것이 책읽기(독서)가 아닐” 테지요?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책에 담은 줄거리를 제대로 헤아리는 것이 책읽기라고 봅니다. 책을 읽는 빠르기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몇 권 읽었느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계 내기 좋아하는 분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한 달이나 한 해에 책을 몇 권 읽는지를 조사하지요? ‘권수 조사’는 하지만, 자기가 읽은 책을 제대로 자기 것으로 삼았는지, 읽은 뒤에 얼마나 자신이 달라졌는지는 살피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는 하지 않는 어느 방송사 ‘책읽기 추천 풀그림’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는 내세우지만 “그 책을 읽어서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떻게 살아가고 일하고 놀고 어울려야 좋은지”는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또 “책을 읽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추천하는 책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헤아리는가”는 살피지 않았습니다.


.. 현명해지고 싶은 고매한 희망을 품고 어려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헛수고로 끝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애당초 그러한 책을 읽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믿어버린대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잘못은 오히려 난해한 책을 한 번밖에 읽지 않고 그것으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했던 데에 있다.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하면, 전문서가 아닌 바에야 설령 아무리 난해한 책이라도 독자를 절망시키는 일은 없다 ..  《모티머 J.애들러-독서의 기술》(범우사,1986) 26쪽


 책을 느긋하게 읽는 일은 어려운 책을 읽을 때에도 참 좋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면, 날마다 새로 얻고 아는 것이 있는 터라, 처음 읽을 때는 낯설고 어렵던 이야기들이 차츰차츰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퍽 빠르게(하지만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는 느린) 그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과제물을 내야 한다고 허겁지겁 읽어제끼는 책에서 무엇을 얻거나 배우겠습니까? 책을 읽어 독후감을 쓰겠다고 하면 독후감도 독후감대로 쓰이지 않지만, 책은 책대로 읽히지 않습니다. 책 읽은 느낌을 쓰고프다면 책을 즐겁게 읽으면 그만이에요. 즐겁게 읽은 책이라면 책 읽은 느낌이 술술 즐겁게 풀려나옵니다. 어렵고 딱딱하고 시간에 쫓겨 거칠게 대충대충 읽은 책은 독후감을 쓸 때 괜히 말이 어려워지고 딱딱해지고 거칠어지며 대충대충이 되고 말아요.

 이런 말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군요. 일본에서 이름난 지식인인 다치바나 다카시란 사람은 책을 ‘빨리 많이’ 읽어내는 일을 늘 힘주어 말하지요? 그런 생각을 맞바로 비판한 이야기입니다.


..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쪽 읽는데 1초, 좀 늦더라도 2,3초’라는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굳이 심신에 무리를 주면서라도 훈련을 거듭하면 나한테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모르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엉터리 책 그리고 나의 대량 독서술, 경이의 독서술》은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 가운데 5분이나 15분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매력이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여느 때처럼 느릿느릿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손에 들지 않는다 ..  《야마무라 오사무-천천히 읽기를 권함》(샨티,2003) 18쪽


 느긋하게 책을 읽는 일만큼 책읽기에서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지식을 얻고자 읽는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읽어서 즐기는’ 것이고, ‘읽어서 즐기는 가운데 스스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읽어서 즐기는 가운데 스스로 얻는’ 것은 슬기일 수 있고 지식일 수 있고 정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얻고 배우고 깨우치더라도 좋습니다. 읽는 맛, 보람, 재미, 즐거움, 알뜰함, 반가움, 멋짐, 훌륭함, 눈물, 웃음, 슬픔, 기쁨, …… 같은 온갖 것을 느낄 수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싶어요.

 사람이 어떤 일을 빨리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 사람은 나기 무섭게 죽어야 가장 중요하고 좋은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빨리 일을 해내는 것보다 ‘제대로 즐겁고 올바르고 알맞게’ 해내는 게 중요하겠지요? 책읽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꼭 ‘천천히’일 까닭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빠르기로 ‘느긋한 마음’을 품고 읽을 때가 가장 좋지 싶어요.

 책을 고를 때도 느긋하게, 책을 사서 읽을 때도 느긋하게, 읽으면서 시나브로 얻은 것을 마음으로 즐기고 몸으로 옮길 때도 느긋하게 하는 일이 바로 책읽기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멋진 일이자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4337.10.13.물.ㅎㄲㅅㄱ)


= 글을 쓰는 사이에 소개한 책 =
1.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
 - 지은이 : 쇼지 사부로 / 옮긴이 : 정필화 / 펴낸곳 : 특수교육(1990.7.24)
2.독서의 기술
 - 지은이 : 모티머 J.애들러 / 옮긴이 : 민병덕 / 펴낸곳 : 범우사(1986.12.20)
3.천천히 읽기를 권함
 - 지은이 : 야마무라 오사무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샨티(2003.11.11)

***
차분하고 느긋하게 책을 읽는 방법을 말하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책읽기가 한결 즐겁고 반가운 일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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