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naver.com/inbusu/1505

(네이버에 있는 어느 자전거모임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자동차 모는 사람은 자전거 타는 사람을 아예 안 봐요. 자전거꾼이 헬멧을 썼건 말았건, 자전거옷을 입었건 말았건, 자전거를 잘 타건 못 타건…… 그저, 자기 차 앞에 자전거가 있으면 짜증을 내는 사람이 하나 있고, 자전거가 있는 줄 모르고 거의 칠락말락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있으며, 자전거가 있기에 일부러 장난질하듯 갖고 노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진짜로 자전거꾼한테 마음쓰는 운전자라면, 헬멧이 없고 크기도 작은 자전거를 평상복으로 입고 타는 사람이 안전할 수 있도록 헤아려야지 싶어요.

 어제와 그제,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데,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찻길에서 유사산악자전거나 짐자전거로 참 느리게 달리십니다. 느리게 달리니 더 안전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이분들은 손에 힘이 빠질 수 있기에 더 위험하다고 느껴요. 거의 모두 언덕길에서는 조금 오르다가 내려서 끌고 가시는데, 이렇게 달리다가 멈출 때가 퍽 아슬아슬하거든요(뒤에서 보면). 헬멧을 써야 하는 문제라면, 누구보다도 이 어르신들한테 헬멧을 구나 시나 읍면에서 장만해서 선물로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예전, 자전거로 신문배달하며 먹고살 때부터, 지금처럼 자전거로 모든 곳을 두루 다니게 된 지금까지, 제 경험을 가만히 돌이켜보건데, 자전거 사고가 나는 까닭은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1) 길이 나쁘다
  : 패인 곳 많고 /
    턱 많고 /
    미끄러운 곳 많고 /
    오르내리막 많아서


 (2) 자전거꾼이 빠르기를 즐긴다
  : 자전거로도 제법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지나치게 빠르기에만 매달리는 나머지,
    자전거를 타는 좋음과 즐거움과 보람을 잊거나 잃는 분이 많아요.
    자전거로 알맞게 달리는 빠르기를 놓아 버렸을 때는 크고작은 사고가 생깁니다.


 (3) 자동차 모는 이들 못된 성질
  :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아예 보지 않고 다니며 사고를 냅니다 /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깔보며 장난질하다가 사고를 냅니다

 ..

 〈오마이뉴스〉에 자전거 기사를 쓰는 김대홍 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는데, 아무리 좋은 안전장구를 갖추고 자전거를 타도, 빠르기가 25km를 넘게 달리면 다칠 수밖에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헬멧도 쓰고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를 찼어도, 빠르기 25km를 넘게 달리면 머리 깨지고 무르팍 깨지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30km를 넘어가면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거나 하는 일에서는 똑같고요.

 그런데, 이것은 헬멧 문제만이 아닙니다. 빠르기가 25km를 넘어서면,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동차나, 동네 꼬마아이들하고 그대로 들이박고 맙니다. 아직 자전거 타면서 제동 걸기에 익숙해지지 않은 분들이라면 빠르기 20km에서도 급제동을 안전하게 하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자전거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손아귀 힘과 머리 감각으로 제대로 자전거를 멈출 만한 빠르기는 15~17km쯤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제 나름대로 해 보는 생각은, 안전장구는 자기가 아직 “자전거 타기에 서툴거나 몸이 굼뜬다고 할 때 차는 편이 좋다”입니다. bmx를 타는 분이라면 헬멧은 반드시 차야 할 것이며, 이때에는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도 차야지요. 산타는자전거를 타고 “진짜로 산을 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할 때는 이 두 가지 때. 그리고 아직 길 앞뒤옆 형편을 헤아리기 어려운 아이들, 쉽게 넘어지며 다치는 아이들한테는 부모가 헬멧을 씌워 주어야지 싶어요.

 찻길을 달릴 때는 다르게 봅니다. 찻길에서 중요한 사항은 헬멧보다는 뒷거울이라고 느낍니다. 뒷거울을 보면서 뒤따르는 자동차를 살필 수 있는 눈길, 여기에다가, 평균빠르기 20km를 넘기지 않게 알맞게 달리면서 언제라도 급제동을 했을 때 자전거가 앞으로 쏠리지 않도록 추스를 수 있는 매무새, 여기에, 다문 몇 초 동안이라도 제자리에 설 수 있거나 아주 느리게 달릴 수 있을 만큼 자전거를 자기 몸에 붙이는 일이요.

 ..

 저는 한동안 빨리 달리기에 어느 만큼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자질구레한 사고가 많았어요. 앞브레이크 잘못 잡아서 한 바퀴 돈 것 하나는 제가 잘못한 사고였으나, 다른 모든 사고는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가 친 사고, 갑자기 자전거 앞으로 끼어든 자동차와 부딪히거나 부딪힐 뻔한 사고, 찻길을 맞모금으로 가로지른 철길에 앞바퀴가 끼며 넘어진 사고, 얼어붙고 오른쪽으로 비스듬한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진 사고, …… 사고가 날 때마다 느꼈는데, 자전거로 알맞는 빠르기인 20km를 넘어간 채 달리고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쓸모가 없겠더군요. 언제나 자전거꾼 스스로 자기 목숨을 자기가 지키고 추스른다는 마음이어야지 싶어요.

 그래서, 모자라나마, 〈작은자전거〉 모임에서는 “모임을 할 때에는 빨리 안 달리고, 가장 느리게 달리는 사람한테 자전거 달리는 빠르기를 맞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저 개인한테 많은 일이 밀어닥치면서 모임에 제대로 못 나가서, 이런 말없는 원칙을 어느 분이 지켜 주고 계신지는 모르겠는데, 내리막을 달리든 평지를 달리든, 자전거로 무리지어 달릴 때 가장 못 달리는 사람한테 맞추어 달리면, 아무런 탈이 없다고 느낍니다.

 ‘더 빨리’나 ‘더 멀리’나 ‘더 짜릿하게’ 달리기로 치달릴수록, 자전거 사고는 일어나는구나 싶어요.

 ..

 마지막으로 아쉬운 대목을 하나 적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참말로 안전하다고 느낄 만한 값싼 헬멧이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차라리 야구 헬멧이 낫다고, 럭비하는 분들이 쓰는 헬멧이 낫다고 느껴요. 오토바이 헬멧이라면 그야말로 안전하겠지만, 너무 무거워서 고개를 돌릴 수 없겠지요. 가벼우면서 튼튼한 헬멧, 그러면서 누구나 걱정없이 장만할 수 있는 헬멧을, 왜 삼천리자전거 같은 회사에서는 안 만들고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헬멧뿐 아니라 앞등과 뒷등과 뒷거울을 너무 후줄근하게 만들어서 거님길 턱을 내려오며 쿵 찧어도 뒷등이 떨어져 나가는 수가 잦습니다.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벽에 콩 박아도 앞등이 깨지는 수가 잦아요. 뒷거울은 더 그렇고요. 그러면서 상표 있는 앞등-뒷등-뒷거울은 값이 오지게 비쌉니다. 자전거 즐기는 사람들이 헬멧하고 멀어지게 하는 크나큰 까닭 가운데 하나는, ‘걱정없는 싼값으로 장만해서 쓰는 헬멧부터 쓰는 느낌이 좋고 안전하며 무겁지 않고 바람이 잘 드나드는 제품’을 만들어 주지 않는 자전거회사 장삿속도 한몫을 하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기가방도 더 튼튼하게 만들지 않아서, 으레 반짇고리를 갖고 다니며 틈틈이 바느질을 해 주어야 합니다. 등산베낭도 그렇고요.

 그리고, 제 꿈이 있다면,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이 찻길에서든 거님길에서든 사고 걱정이 없도록 다닐 수 있도록 ‘찻길 문화-거님길 문화-교통 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빗길에 자전거를 달리는데, 마을버스 한 대가 뒤에서 자지러지게 경적을 울려대더군요. 다른 차들은 아무 말 없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말입지요. 다른 버스도 아무 말 없이 제 옆을 많이 돌아서 가 주었고요. 그 마을버스는 정류장에서 모로 비틀어서 섭니다. 그렇게 비틀어 서는 일은 ‘버스 서는 원칙’에서 벗어난 짓이지만, 오로지 자전거를 못살게 굴 생각으로 그렇게 했어요. 덕분(?)에 두 개 찻길을 잡아먹은 버스라서, 뒤따르던 다른 자동차들은 왼깜빡이를 넣고 세 번째 찻길로 접어들며 잠깐 동안 병목막힘이 일어났습니다. 병목막힘이 일어났을 때, 저는 버스 왼쪽으로 살살 몰며 지나갔어요. 그렇게 지나간 뒤로 이 마을버스가 더 경적을 울려대지 않았습니다만, 비오는 날, 비맞으며 달리는 자전거라 한다면, 자동차를 모는 분들께서 더 조심해 주고 더 마음을 써서 자전거를 지켜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운전기사는, 알고 보면 ‘살인 미수’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어요.

 자전거가 자동차를 위협할 일이란 없으나,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는 일은 너무나 뻔질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헬멧쓰기는,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서 우리 목숨을 지키자는 안간힘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헬멧을 쓰건 말건 자동차 모는 이들은 ‘자전거란 녀석을 아예 안 보거나 괴롭히기 일쑤’인 한편, 헬멧을 쓴 우리들 자전거꾼은 ‘자, 이제 안전장구를 갖췄으니 신나게 달려 볼까?’ 하면서, 안전하게 달리기와 멀리멀리 떨어져 버리는 일이 흔하게 일어납니다. 안전장구를 갖추었어도 ‘알맞는 빠르기를 지키며 앞뒤옆 길형편을 꼼꼼히 살필 수 있는 매무새’가 있어야 합니다. (4340.8.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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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잘 지내시지요?

 지난주에 ㅈ일보 사람들 연락을 받고, 그쪽에서 취재를 온다며 법석을 떨고 찾아와서 보여준 여러 모습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이든 도서관이든 있는 그대로 볼 준비가 안 된 사람들한테는 백 마디 말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 빠르기대로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 빠르기대로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좇아가려고 하면 가랑이도 찢어지겠지만, 우리 삶터가 죄다 무너질 테니까요. 우리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우리 빠르기에 맞춰야겠지요. 우리는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걷고 있는데, 골목길에서조차 씽씽 내달리는 자동차를 몰고 와서 사진을 찍어대거나 속사포처럼 물어대는 사람들하고는 아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을 생각이 없다면.

 책을 읽기 앞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진을 찍기 앞서 자기가 찍으려는 대상이나 사람하고 한식구가 되어야 한다고, 헌책방 나들이를 하기 앞서 책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숱하게 글을 써 본들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굶주린 승냥이처럼 먹이감(취재거리)만 찾아헤매는 사람들한테 우리 마음이 다치게 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멀리해야지 싶어요.

 꼭 그런 뜻에서만은 아니지만, 손전화를 한동안 끊어 두기로 했습니다. 한동안 끊어 둘 수 있는 날짜는 아흔 날, 석 달이라고 합니다. 석 달 동안 끊은 뒤 다시 아흔 날을 더 끊을 수 있다고 하네요. 그동안에는 달마다 삼천 얼마가 전화값으로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요사이는 손전화에 들어가는 이 만원 조금 넘는 돈도 버겁다고 느껴서 아예 손전화를 없앨까 싶기도 합니다. 집전화가 있고 편지가 있으니까요. 제 연락처를 묻는 분이 있으면, 두 가지 연락처만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ㄱ.사는 곳 :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4-1번지 3층 (우 401-802)
 ㄴ.인터넷편지 : hbooklove@empal.com

 그물코 사장님이 저한테 보내는 인터넷편지 주소는 몇몇 사람한테만 알려준 편지주소입니다. 그 주소는 다른 이한테 알려주지 마셔요. 엠파스 편지 하나만 알려주시면 돼요. 언론매체에서 연락이 온다면 (사는 곳)만 알려줘서 그 사람들이 손으로든 타자로든 편지를 써서 부치게 하면 더 좋겠어요.

 그물코 사장님은 홍성에서 지내니까 그물코 사장님을 만나보려면 마땅히 홍성으로 찾아가야 하고, 저는 인천에 사니까 저를 만나보려면 마땅히 인천으로 찾아와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만나볼 생각이라면 홍성이든 인천이든, 찾아가는 일은 쉽습니다. 대중교통 찻삯이거나 조금 더 얹으면 넉넉하니까요.

 아무쪼록 새로운 책 펴내는 일에 힘내시면 좋겠고, 몸 간수도 늘 튼튼히 잘하시면 좋겠습니다~ (4340.8.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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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며

 : 사진잔치 - 헌책방 이야기 9



 한 사람 손을 거친 책이 모여 새 사람 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 놓은 자리가 헌책방입니다.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새책방에서 사기도 하고, 비매품 회원자료로 엮어서 나누기도 합니다. 어떤 책은 꼼꼼히 다 읽고, 어떤 책은 미처 못 읽습니다. 오래오래 간직하고픈 책이 있는 한편, 이제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 책이 있습니다. 읽으며 밑줄을 긋기도 하고, 빈자리에 자기 생각을 적기도 합니다. 때때로 사진을 꽂아 놓다가 잊고, 돈이나 도서상품권이나 꽃잎을 끼워 놓기도 합니다. 책갈피 삼아 광고전단지를 쓰기도 하는데, 세월이 흐른 뒤 펼쳐보다가 ‘아, 예전에는!’ 되새기기도 합니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이 새책 못 사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주머니가 넉넉하지만 살림돈 아끼자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도서관에도 없고 판끊어진 책을 찾아서 다리품을 팔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찾아서 쥐어들 수 있는 헌책은, 누군가 제 주머니 털어서 산 책이기에, 자기한테 보물이 되는 그 책을 선선히 내놓아 주어야 우리들이 만납니다.

 책을 사들여 책꽂이를 꾸밀 수 있습니다. 줄거리를 곰삭여 마음에 채울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옮겨내어 세상에 펼칠 수 있습니다. 어떤 이한테는 값싼 잡지를, 어떤 이한테는 교재와 참고서를, 어떤 이한테는 판끊어진 보기드문 책을, 어떤 이한테는 새책으로는 비쌌으나 헌책으로는 싼 책을, 어떤 이한테는 마음을 살찌우는 작은 책을, 어떤 이한테는 지식을 넘어선 슬기를 일깨우는 조촐한 책을, 어떤 이한테는 처세에 쓸 수 있는 책을 만나는 헌책방입니다.

 헌책은 값이 싸기도 하고, 값이 비싸기도 합니다. 헌책은 2007년 7월 15일에 펴낸 책이기도 하고, 200년 앞서 나온 책이기도 합니다. 모든 책은 헌책이자 새책입니다. 모두 같은 책입니다. 모든 책방은 헌책방이자, 새책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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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낮부터 전화기를 꺼 놓고 있다. 손전화 말이다. 오늘까지도 켜지 않고 있다. 굳이 손전화로 받아야 할 연락이 있을까 싶고, 내 소식이 궁금하면 집전화를 하든 인터넷편지를 하겠지. 이참에 아예 손전화를 없앨까 싶은 생각도 든다. 손전화를 없애면 내가 번거로울까, 내 둘레에 있는 사람이 번거로울까. 번거롭다면 무엇이 번거로울까. (4340.8.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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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3 09:32   좋아요 0 | URL
주변 사람이 괴롭겠죠 :)
연락이란 건 아무래도 급한 용무가 있을 때 하지 않나요?
기동성 면에서 필요한게 손전화니까요.
저도 전화를 어지간히 안하는 사람이라서 ^^ 없애고픈 심정도 동감은 합니다만...

참, 도서관에서 책 조금 읽어보았습니다. 헌책방과 함께한- 책 맞죠? ^^
의미있는 일 하신다 생각하고 있어요.
댓글은 매번 못달지만 자주 들여다 본답니다. :)

숲노래 2007-08-14 09: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주변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될 것도 같은데...
아마, 저한테 문자를 보내는 분들은
이 녀석이 씹네... 하고 생각할 듯해서 ^^;;;;
 


 어제 낮, 헌책방 나들이를 하려고 서울로 전철을 타고 가는 길에 《하종강-길에서 만난 사람들》(후마니타스,2007)을 읽습니다. 73쪽, 다큐멘타리 영화를 찍는 태준식 감독 이야기를 읽다가 한동안 책을 덮습니다.


.. 그렇다. 사람은 ‘사상’이 아니라 ‘삶’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


 볼펜으로 꾹꾹 눌러 가면서, 책에 몇 글자 적습니다.

 사람은 그이가 써낸 책이 아니라, 그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로 평가를 받는다. 《무소유》라는 책이 아니라, 이 책을 쓴 분이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삶이 아닌 책으로 사람을 따진다.

 사람은 그이가 번 돈이 아니라, 그이가 어디에서 어떻게 돈을 쓰며 살았느냐로 평가를 받는다. 재산이 얼마요 땅이 얼마가 아니라, 그만한 돈을 번 사람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고, 이렇게 번 돈을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썼는가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그이가 무슨 짓을 했고 말고는 헤아리지 않고 돈크기가 얼마이냐만으로 사람을 잰다.

 사람은 그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동무나 이웃이나 피붙이)이 아니라, 그이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울리며 함께 일하고 노느냐로 평가를 받는다. 이름난 사람, 힘있는 사람, 돈있는 사람과 가까이 지낸다고 해서 이름이 나거나 힘이 있거나 돈이 있지 않다. 훌륭한 사람을 많이 알고 지낸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들 책을 많이 읽어서 알고 있다고 해서 그이도 훌륭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그이가 옆에 어떤 사람을 가까이 두고 있느냐를 놓고만 사람을 살핀다.

 사람은 그이가 얻거나 갖춘 지식이나 학벌이 아니라, 그가 어디에서 누구와 자기 지식을 베풀거나 나누었는가로 평가를 받는다. 아는 것 많아 똑똑하다거나 높은 학교를 마쳤다거나 나라밖으로도 공부를 다녀왔다고 해서, 그이가 세상을 좀더 두루 살펴볼 줄 알거나 깊이 파헤칠 줄 알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퀴즈대회에서 우승하고, 졸업장이나 자격증 숫자가 많으며, 온갖 어려운 학술 낱말로 자기를 감싸는 사람이 대단한 무엇을 보여주고 있기라도 한듯 떠벌리고 부풀린다. (4340.8.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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