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개하는 글’이란 뭘까?


 새로 나오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누구나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을 하나 고를 수 있을까요. 수많은 책들은 수많은 ‘다 다른 읽을이’를 겨냥해서 세상에 나오지 않을까요. 어쩌면, 지금 우리 세상에서는 ‘자기 계발’이라는 탈을 쓰고 ‘돈벌이-이름내기-권력 얻기’에 매달리는 사람들 읽을거리를 바라는지 모릅니다. 이런 책만이 읽힐 만한 책이라고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자기 계발’이란 무엇일까요. 철학책을 읽으면 자기 계발이 안 될까요. 교육 이야기를 읽으면, 어린이책을 읽으면, 수필이나 시를 읽으면 자기 계발이 안 될까요. 이 세상 모든 책은 처음부터 ‘그 책을 읽는 사람한테 자기 계발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끄는 눈길과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교훈’이라는 말도 곰곰이 짚어 봅니다. 이 세상 어느 책도 ‘교훈 없는 책’이란 없습니다. 문제는,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교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갈래로 나눌 만한 책인지, 어떤 이야기감을 어떤 눈높이와 생각과 마음밭으로 곰삭여서 펼쳐냈는지라고 느낍니다. 어떤 자리에서 써 내려간 이야기인지, 어느 곳에서 담아낸 그림과 사진인지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지율 스님이 밥굶기저항을 하며 썼던 글을 묶은 《초록의 공명》(삼인)이 있고 《지율, 숲에서 나오다》(숲)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책을 읽으면서 지율 스님 이야기와 성철 스님 이야기가 다르지 않구나 하고 느낍니다. 깊이가 다를까요, 너비가 다를까요. 두 분이 있던 자리가 다를 뿐, 그 다른 자리에서도 세상과 사람과 우리 삶터를 바라보는 눈매와 손매는 한결같구나 싶어요.

 아룬다티 로이 님이 쓴 《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를 거듭 다시 읽고,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시울)를 꼼꼼히 되짚으면서, 왜 우리 나라에서 ‘여성 작가’라고 하는 분들은 이렇게 ‘너른 어머니 자연’ 같은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며 둘레에 나누지 못할까 싶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제가 우리 삶터와 세상을 좀더 곰살맞게 헤아리지 못해서 드는 느낌이겠지요. 이효재 님 발자취만 더듬어도, 고정희 시인 발자국만 되밟아도, 그림을 그리는 박인경 님이라든지, 소설을 쓰는 공선옥 님 살아가는 이야기만 엿보아도 이런 말은 함부로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에는 ‘글쓴다는 여성’, ‘기자라고 하는 여성’, ‘활동가라고 말하는 여성’, ‘대학교수라는 이름쪽 내미는 여성’만을 곧잘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일본사람 우자와 히로후미 님이 쓴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소화)를 읽으며 울컥 합니다. 첫째, 이런 이야기를 우리들은 우리 삶터에 걸맞게 우리 스스로 엮어내지 못한다는 슬픔 때문에. 둘째, 이런 이야기를 형편없는 번역으로 망가뜨려 놓았다는 짜증 때문에.

 1990년대 첫머리에 나온 《녹색평론》 서너 권을 헌책방에서 삽니다. 벌써 읽었던 글이 있고, 낯선 글도 있습니다. 뒷날 낱권책으로 묶인 글도 보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국사람이 쓴 글은 세월이 흐를수록 해묵었구나 싶은 느낌이 짙은데, 나라밖 사람이 쓴 글은 세월이 흘렀어도 빛이 안 바래네 하는 느낌이 짙습니다. 뭘까요. 문화제국주의에 찌든 눈길이라서 이럴까요.

 일본 그림쟁이 도미야마 다에코라는 분이 한국 그림쟁이 이응노 님을 파리에서 만나며 나눈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 《이응노―서울ㆍ파리ㆍ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를 일곱 달에 걸쳐서 야금야금 읽으며 어젯밤 마무리지었습니다. 이응노 님이 펼친 이야기가 거의 막바지가 될 무렵, 다음처럼 한 마디 불쑥 합니다.


.. 도미야마 씨는 그렇게 서베를린에도 동베를린에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어떤 나라라도 여행할 수 있으며,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서 발표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일본사람은 행복한 거예요. 내 인생은 36년 간을 일제 지배 하에서 보냈고, 해방이 되자 이번에는 분단국가와 독재정권 속에서 내 나라에도 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30년을 지내 왔어요. 우리들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 발표하면 박해를 받게 되니 표현의 자유도 없는 겁니다 ..  (175쪽)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서슬퍼렇게 있습니다. 다만, 요즈음은 숨을 죽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자기가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담아낼 자유’가 제대로 없습니다. 저마다 담아내는 이야기가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떠나서, 이런 옳고그름 가르기는 나중 일이고, 어떤 생각이든 이야기이든, 저마다 자기 깜냥을 살려서 나타낼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권리조차 없습니다. 아니, 자유와 권리를 느끼며 생각하고 살아가는 마음밭부터 일구어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자기가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냈다가는 굶어죽기 딱 알맞다고 합니다. 꿋꿋하게 가난과 싸우거나 가난과 하나가 되어 즐기는 사람이 몇 사람 있으나, 웬만한 사람들은 가난은 구질구질하다고만 여겨 쉬 내동댕이치고 돈사랑으로 끄달립니다.

 제도권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들 마음밭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습니다. 남자는 군대에 이끌리며, 여자는 상업주의로만 치닫는 자본주의에 물들며 젊은 날을 ‘돈’ 하나에 매달리도록 나뒹굴어야 합니다. 자기 먹을거리, 입을거리, 잠잘곳, 쓸거리를 손수 장만하거나 갖출 수 있는 터전이 온통 무너졌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제 손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합니다. 유기농곡식을 찾아도 생협 매장을 찾아가려고 하지, 텃밭농사를 일군다거나 스트로폼농사를 한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옷 한 벌을 입어도 값싼 옷이든 예쁜 옷을 입으려 하지, 손수 천을 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실을 자아서 옷을 짓는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어쩌면 ‘실을 잣다’라는 말도 못 알아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을 자아서 입든 말든, 이렇게 할 생각을 처음부터 안 하도록 빈틈없이 제도권 교육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살아갈 집을 마련하는 일도 그렇지요. 변기를 어떻게 쓰는지, 부엌을 어떻게 쓰는지, 방은 어떻게 쓰는지, 불은 어떻게 때는지, 창문은 어떻게 다는지, 마당은 어떻게 꾸미는지, 처마는 어떻게 다는지, …… 이 모두를 우리 손으로 하지 않아요. 물은 어떻게 마시겠습니까. 천장은 얼마만큼 높이겠습니까. 2층으로 할까요? 지하실을 놓을까요? 문은 어떻게 달지요? 바닥과 벽은?

 그 어느 것도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가꿀 수 없게 되어 있는 한국 사회입니다. 개성이란 조금도 없는 한국 사회입니다. 대학교까지 안 나온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사회이지만, 대학교까지 다닌 사람들 깜냥(지식)이란 무엇입니까. 대학교까지 나온 사람들 마음밭(정신세계)이란 무엇입니까. 대학교까지 지낸 세월은 우리들한테 무엇으로 아로새겨진 슬기인가요, 경험인가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글로 쓰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사진으로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유경 님이 쓴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인물과사상사)을 읽다가 책을 덮었습니다. 집어던지려다가 말았습니다. 〈시민의 신문〉이나 〈시민사회신문〉에 실린 글은 이렇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뭘까? 왜 그렇지? 글이 왜 이러지? 외국물 먹었다고 외국물 먹은 티를 내나? 아무래도 내 눈이 삐었는가? 아무리 요즘 한국사람들 글은 줄거리만 보아야지 문장을 보아서는 한 줄도 읽어낼 수 없다고 하지만, 줄거리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글을 이렇게 버려 놓으면 어쩌지?

 한국에서 사진하는 분들 가운데 ‘기무라 이헤이’를 아는 분은 몇 안 되리라 봅니다. 저도 이이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헌책방에서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 하나를 운좋게 만난 뒤로, ‘이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사진이 참 좋구나’ 싶어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거의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사진평론가 와타나베 츠토무 님이 쓴 《현대일본 사진가》(해뜸)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실립니다.


.. 이른바 신인 시대라는 것이 없이 젊었을 때부터 하나의 경쟁 목표가 되어 언제나 쫓기는 마음으로 근대사진의 길을 개척하면서, 반세기에 걸친 작가 활동을 계속하여 오늘날에 이른 사람이 기무라 이헤이다 ..  (203쪽)


 아무것도 없는 맨땅, 풀도 자라지 않는 모래땅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했던 기무라 이헤이 님 같은 삶이었다면, ‘내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찍고’ 하는 골치아픈 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힘겨워하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삶터는, 나라는, 사회는 어떠할까요.

 일본에서 서른한 해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그만둔 평교사가 남긴 《교실 일기》(양철북)라는 책을 보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어쩔 수 없는 아이들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왜들 이렇게 영어를 좋아하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즉각 대답이 나온다. “멋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인기 가수들의 노래에도 영어가 잔뜩 들어가 있다. 아마도 그 영향일 것이다. “선생님, ‘미래’가 영어로 뭐예요? ‘출판’은요?”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질문을 해댄다. 나는 영어 사전이 아니다. 그냥 아는 단어만 나열해 보았지만 솔직히 말해 자신은 없다 ..  (193쪽)


 하, 저는 멋없이 살고 싶습니다. 아니 내멋대로 살고 싶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배가 고프니 쌀을 씻어 아침을 얹어 놓고 밥부터 먹어야겠습니다. (4340.9.4.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9월에 나올 <우리 말과 헌책방>에 들어가는 머리말.


여는 글 ― 기다리지 않습니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제 삶 서른세 해입니다. 저는 벌써 적잖은 분들보다 길게 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꾼 김현식 님보다도, 서양음악을 하는 슈베르트보다도. 평론하던 채광석 님이 서른아홉에 돌아가셨는데, 서른아홉까지 고작 여섯 해 남았습니다. 만화를 그리던 송채성 님 나이는 진작 넘어섰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중국사람 노신 문학을 우리 말로 옮기던 박병태 님은 군대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한참 앞서 이분 나이를 넘었어요. 역사로 치면 옛날사람이지만, 혁명가 김산 님이 세상을 떠나야 한 나이가 서른셋입니다. 소설을 쓰던 심훈 님은 서른다섯에 이슬이 되셨고, 김소월 시인은 서른둘에, 윤동주 시인은 스물여덟에, 신동엽 시인과 이육사 시인은 서른아홉에 짧은 삶을 마칩니다.

 크고 반짝이던 별과 크지도 않고 반짝이지도 않는 조약돌을 견주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합니다. 큰별이라고 해서, 반짝별이라고 해서, 그이들이 태어날 적부터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그이들 스스로 ‘기다리지 않고’ 자기 깜냥대로 할 수 있는 온힘과 온마음을 다했다고. 그렇게 가멸차고 다부지게 살면서 그 짧은 삶에도 굵직하게 발자국 하나를 남겼다고.

 이제는 헌책방 책시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책이 되고 있지만(새책방 책시렁에서는 더더구나 안 보이고요), 송건호 선생 책을 하나하나 갈무리해서 책꽂이에 꽂아 놓고 보니 74센티미터짜리 책시렁 한 칸에 꽉 들어찹니다. 송건호 선생은 전집이 나오기는 했으나 세상에 내놓지 않은 글이나, 당신이 기자로 일할 적에 내놓은 기사에다가 틈틈이 써 놓은 일기가 퍽 많은 줄 압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책 몇 가지, 또는 수십 권쯤이지만, 당신 한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우리가 볼 수 없는 자리에서 쪽잠조차 아껴 가면서 싸우셨다고 느낍니다.

 이번 《우리 말과 헌책방》에서 소개하는 인천 〈책사랑방〉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면서 곰곰이 되짚었는데, 다가오는 대통령 뽑기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 만한 사람을 뽑거나, 가장 마음에 들 만한 사람이 없다면 표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제가 엮어내는 이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제 온힘과 온마음을 다하기는 해도 3호에서 2호를 돌아보면 참 어설프고, 2호에서 1호를 돌아보면 꽤나 엉성합니다. 4호에서 3호를 보아도, 10호에서 9호를 보아도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대통령 뽑기에서는 ‘차선이 아닌 최선’을 뽑아야 한다고, ‘최선이 없으면 표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은 그대로입니다. 모자라기는 해도, 또 지지율이 낮다고 해도, 우리는 참말로 대통령이 되어야 할 만한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책을 읽을 때 어떠하십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우리 주머니돈을 털어서 사야겠지요? 그럭저럭 마음에 들 만한 책이 아니라. 저도 그렇습니다. 잡지를 내면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큰힘을 쏟고 가장 알뜰하다고 여기는 글만 추려서 하나로 묶어냅니다. 2호까지 정기구독 하는 분이 105분이 되었습니다. 밑지지 않고 잡지를 묶으려면 적어도 300분은 되어야 하지만, 105분 모두모두 고맙고 소중합니다.

 2007년 8월 27일
 최종규 적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다시 쓰겠습니다


 그제, 강릉에 사는 띠동갑 후배가 인천으로 찾아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ㅁ대안학교에서 만난 후배입니다. 저를 보고 꼬박꼬박 ‘최종규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 젊은 친구는 저를 자기 길동무로 생각해 줍니다. 스물한 살 젊은 나날을 보내며 부대끼는 온갖 걱정거리와 마음앓이를 털어놓고 자기 갈 길을 스스로 헤아리곤 합니다. 새벽 네 시가 넘도록 젊은 친구와 옆지기하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젊은 친구가 저를 처음 보았을 때 이야기를 듣습니다. “처음 받은 느낌으로는, 저 사람 콧대가 높을 것 같다”였다고 합니다.

 옆지기도 웃고 저도 웃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거울을 안 보고 사는 제 얼굴이 이웃사람들한테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를 잘 안 듣고 살았구나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며 거울을 꼭 봐야 하지는 않고 이웃사람들이 허튼소리를 할 때에는 한귀로 흘리며 마음을 고요히 다스릴 수 있으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지 못한 세상 모습을 들려준다든지, 제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엇나가고 있는 걸음걸이를 알려준다든지, 제가 느끼지 못한 사람들 아픔과 눈물과 웃음과 즐거움을 보여준다든지, 제가 알지 못하는 슬기를 깨우쳐 줄 때에는, 어느 자리 어느 때 누구 말이라 해도 고개숙여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강릉 사는 젊은 친구한테 미처 묻지 못했는데, 저를 처음 본 2005년 여름 그날 콧대 높게 느껴지던 제 모습이, 2007년 여름 이날도 마찬가지일까요.

 어제 잠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서울로 사람 만나러 떠나는 젊은 친구가 혼자서 전철간에서 심심할까 싶어서 함께 갔습니다.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오기 앞서 들른 헌책방에서 《텍스트》라는 ‘북매거진’ 35호를 보았습니다. 저는 이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는데 거의 한 해 가까이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35호를 보니 지난 34호를 낸 뒤로 사람품이며 돈이며 다른 여러 가지며 참 안 좋아서 한 호도 못 내고 있었더군요. 다시 펴내는 말을 이렇게 적습니다.


.. 이렇게, 다시, 결국, 시작합니다. 늘, 끝의, 시작입니다. 《텍스트》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많다는 것 잘 압니다. 어떻게 사과와 용서를 빌어도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컨대 그 불만과 불신을 온전하게 해소시키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입니다. 다만 텍스트에 대한, 버리지 못한 욕망이 다시금 《텍스트》를 시작케 합니다. 그 욕망에 기대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일 따름입니다. 부디 그 텍스트의 욕망 안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오솔길이 놓여 있기를 희망합니다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을 안 쓰면서, 제가 해 오던 수많은 글쓰기(우리 말 / 책 / 헌책방 / 자전거)를 많이 줄이거나 꺾거나 묻어 놓았습니다. 자원봉사로 몇 군데 자그마한 매체에 글을 보내기는 하지만, 정작 제가 세상에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는 털어놓고 있지 못했으며, 아니 안 했으며, 숨죽이며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올해 4월 15일, 네 해 조금 못 되는 세월을 일하면서 보냈던 충주를 떠나 인천으로 왔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원고 갈무리는 지난해에 다른 분한테 넘겨 드린 뒤 다른 일거리 없이 자전거만 타고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덕분에 자전거로 못 가는 곳이 없음을 느꼈고, 오른무릎과 오른팔꿈치는 맛이 가서 요 몇 달 동안 자전거를 탈 수 없을 만큼 몸이 무너졌습니다.

 인천으로 오면서 여태껏 읽고 추슬러 온 책을 갈무리해서 ‘지역 전문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제 마음에 담겼다가 제 몸으로 드러나서 사람들한테 펼쳐질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제가 읽은 책을 이웃사람한테 선물로 드리는 일도 좋지만, 차곡차곡 모아 놓은 뒤 한꺼번에 드러내어 누구나 찾아와서 읽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한결 좋겠구나 깨달으면서 일을 벌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부대끼며 마음에 담은 이야기를 글 한 쪼가리로 써낸다면, 이런 글은 종이에 옮겨지는 그때부터는 ‘제 것’이 아닐 테지요. 어느 누구 것도 아닌 ‘글’일 뿐이며, 이 글을 좋게 받아들여 주는 사람한테는 좋은 이야기로, 얄궂게 받아들이는 분한테는 비판과 칼질을 해야 하는 못난 이야기로 다가가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읽으며 좋음을 배우고, 나쁜 글을 읽으며 모자람과 어리숙함이 무엇인지를 느껴서, 저마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더 나은 길로 거듭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즈음 인천은, ㅇ시장이 벌이는 밑도 끝도 없는 재개발 공사계획 때문에 가난하지만 수수하게 살던 골목집 사람들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천사람이지만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가 충주로 옮겨 지내는 동안 살갗으로 못 느끼던 일이었습니다. 지역신문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중앙신문에서는 ‘거긴 너네들 지역 일이잖니’ 하고 한수 접고 들어가는 일임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운명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전거로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느끼기로, 골목집 문화가 남은 마지막 곳은 인천이었습니다. 고향이라서가 아니라, 도시 삶터에서 이웃집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조용하고 조촐하게 살 수 있는 한 곳이라면 인천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돌아가신 김기찬 선생이 온삶을 바쳐 찍은 《골목 안 풍경》은 이제 중림동에 없습니다. 사직동에 없습니다. 공덕동에 없습니다. 남산에 없습니다. 경교장이 있는 서울 종로구 평동도 ‘이명박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 오래이고, 〈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가 사는 홍제동도 개미마을과 전철역 둘레를 중심으로 높직높직 아파트를 새로 짓는 계획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파트값이 높고낮음만 다를 뿐, 강아랫마을과 강웃마을과 강옆마을 삶터가 무엇이 다를까요.

 인천은 2014년에 아시아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2013년까지 모든 구에 걸쳐서 모든 서민들 집을 허물고, 이 자리에 아파트와 쇼핑센터와 대형할인마트를 올려세우는 계획을 ㅇ시장 지시와 명령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전국 어디를 가나 아파트 없는 마을이 없고, 이제는 이 나라 사람들은 절반 넘게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멍가게나 옛 저잣거리에서 장보기를 하는 사람보다도 대형할인마트에서 장보기를 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두 다리로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장보기를 하기보다 덩치 큰 suv라는 자가용을 몰고 장보기를 하는 분이 더 많지 않을까요.

 이런 세상에서 글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아찔아찔 골이 아파서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혼자 깨끗한 척, 잘난 척, 모든 것을 아는 척 콧대를 세우고 우쭐거리는 꼬락서니가 얼마나 우스운가 돌아보니 얼굴이 화끈해집니다. 참말로 글은 왜 썼고, 책은 왜 읽었고,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그 어리숙하고 모자랐던 글과 사진은 왜 올렸을까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아보아 주지 않는 헌책방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알리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헌책방 이야기를 알린다기보다는 ‘헌책방처럼 따돌림받고 푸대접받는 이웃사람들 삶과 삶터도 함께 느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올바르게 쓰지 않는 우리 말과 글을 살가이 돌아보고 느끼면서 말하고 글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쓰는 일보다는 ‘말과 글을 깨끗하고 알뜰하고 아름답게 추스르는 동안 우리 마음과 생각도 깨끗하고 알뜰하고 아름답게 추스를 수 있을 테고, 이러는 동안 우리가 저마다 서 있는 곳에서 좀더 힘내고 기운차게 어깨를 겯고 일하고 놀고 싸우고 노래하고 술과 밥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신문과 방송과 잡지에서 알아보아 주지 않는 조그마한 출판사 알맹이 탄탄한 책도 좀 읽으면서 세상 공부를 해야 우리 사회 밑바탕이 차츰차츰 탄탄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묻혀 있는 책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삶과 경험을 톺아보면서 내 삶과 경험을 되새기고, 내 사는 이야기를 이웃사람과 나누며 우리한테 정작 중요한 일을 깨닫고, 이웃사람들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참말 우리가 깨닫고 맞서고 함께해야 할 일거리 싸움거리 걱정거리 이야기거리가 무엇인가 스스로 찾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전에 쓴 글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 보면 참 부끄럽습니다. 저 어설픈 생각찌끄레기를 어쩜 저렇게 낯빛 하나 안 바꾸고 대단한 척 우쭐댈 수 있었나 싶어 예전 글은 다 불살랐으면 좋겠구나 싶은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쓰는 글도 앞으로 몇 해가 지난 뒤 다시 읽었을 때 똑같이 느끼겠지요.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모자람과 어설픔만 깨닫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모자람과 어설픔을 느끼기 때문에 날마다 더 애쓸 수 있고, 날마다 더 주먹을 불끈 쥘 수 있으며, 날마다 더 눈에 불을 켤 수 있을까요.

 나한테 깃든 모자람을 느낀다면, 내 이웃한테서 느껴지는 모자람을 더 따뜻한 눈길로 굽어살피고, 나한테 깃든 어설픔을 느낀다면, 내 이웃한테서 느껴지는 어설픔을 더 포근한 손길로 어루만져야 하는구나 깨닫습니다. 남이 나한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다가서야지요.

 내 잘난 이야기를 떠드는 일이 목적이었다면 글쓰기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이웃들 복닥이는 온갖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있고, 느끼는 가슴이 있고, 곰삭이는 머리가 있으며, 함께하려는 손발이 있다면, 그때에라야 비로소 볼펜을 들든 자판을 두들기든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제가 썼던 〈오마이뉴스〉 기사는 ‘높지도 않은 콧대를 높이 세우면서 거들먹거린’ 이야기였구나 싶습니다. 높여야 할 것은 콧대가 아닌 붓대일지 모르나, 붓대조차도 높일 까닭이 없으며, 높여야 할 것이 없는 만큼 낮춰야 할 것도 없고, 있는 그대로 손을 맞잡고 저마다 자기 길을 다부지게 걸어가야지 싶습니다. 핑계만 가득한 생각쪼가리 늘어놓습니다. (4340.8.30.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민사회신문> 다음주에 싣는 글.




 책으로 보는 눈 17 : 책을 왜 읽을까


 어제 찾아간 헌책방에서 《熱河日記》(平凡社)를 보았습니다. 1978년에 일본 평범사에서 옮긴 판으로 두 권으로 나누어 냈습니다. 일본 평범사는 이밖에도 《조선세시기》와 《하멜표류기》와 《해유록》과 《조선독립운동지혈사》를 일본말로 옮겼습니다. 《열하일기》는 평범사 ‘동양문고’ 325번으로 나온 책이고, 어른들 펼친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짜임새에 책상자가 따로 있습니다. 예쁘장하면서 가볍게 묶은 이 책 겉에는 “조선지식인의 중국기행”이라고 적었고, 책날개에는 ‘건륭 황제 일흔 돌을 기리는 조선사신 박지원이 북경과 열하를 다녀오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와 중국 선비와 사귄 이야기를 읽으면, 깊은 됨됨이와 사물을 자기 나름대로 읽어내는 눈썰미 들을 엿볼 수 있다’는 추천글을 적었습니다.

 지금 우리 남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두 번역(완역)’ 《열하일기》는 2004년에 보리 출판사에서 상ㆍ중ㆍ하 세 권으로 낸 판 하나. 이 책은 북녘에서 우리 말로 옮긴 판을 남녘에서 계약해 다시 냈습니다. 권마다 600쪽이 훌쩍 넘고(모두 1942쪽) 하나에 25000원씩. 다 하면 75000원.

 중국 연변으로 나들이 갔을 때 〈신화서점〉에서 북녘판 《열하일기》를 구경한 적 있습니다. 북녘판은 일본판보다 조금 크고(어른들 펼친 손바닥 만합니다) 종이는 한결 가벼우며 얇고 두 권으로 된 값싼 책이었어요. 그러니까, 일본과 북녘과 중국에서 펴낸 《열하일기》는 사람들한테 읽히려고 묶은 책이고, 남녘에서 펴낸 《열하일기》는 책꽂이에 보기 좋게 꽂아 놓고자 묶은 책인 셈입니다. 팔뚝힘이 좋다면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을 테고요.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지난 8월호를 여느 달에 나온 판과 견주면 꼭 반 만한 크기로 엮었습니다. 여름 나들이 가실 때 주머니에 쏘옥 넣어서 들고 다니며 읽으라는 뜻에서 그리 엮었다고 합니다. 글씨가 작아졌지만, 책을 읽기에 눈이 따갑지 않습니다. 다만,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돋보기를 쓰고 읽어야겠지요.

 가만히 보면, 《좋은 생각》이나 《작은책》이나 《샘터》 같은 잡지는 작고 가볍고 수수하게 엮어냅니다. 《여성동아》나 《레이디경향》이나 《여성조선》 같은 잡지는 크고 두껍고 무겁고 번들번들하게 엮어냅니다. 《작은책》을 찾는 사람들은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부대끼며 살까요. 《레이디경향》을 찾는 사람들은 자기 몸치레와 집치레와 옷치레를 어떻게 하며 살까요. 《좋은 생각》을 읽는 사람과 《여성조선》을 읽는 사람들 마음치레와 생각치레는 어떠할까요. 오늘날 가장 잘나가는 책은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처세ㆍ비즈니스능력계발ㆍ인간관계ㆍ화술/협상ㆍ세일즈/매너” 들을 키우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25ㆍ35 꼼꼼 여성 재테크》나 《샤방샤방 그녀의 매혹통장 만들기》 같은 책을 읽는 분들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믿고 표를 줄까요. 대통령 후보가 누구이며 무슨 정책을 내놓는지를 어떤 눈길로 뜯어보고 있을까요. (4340.8.30.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까매서 안 더워? - 마음의 국경을 허무는 따뜻한 이야기
박채란 지음, 이상권 그림 / 파란자전거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이름 : 까매서 안 더워?
- 글 : 박채란 / 그림 : 이상권
- 펴낸곳 : 파란자전거(2007.8.1.)
- 책값 : 8500원


― 이주노동자 아이들도 웃고 싶다
: 《까매서 안 더워?》를 읽으며


 〈1〉 우리 삶을 바꾸지 않고서야



.. 국경 없는 마을.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불린다는 걸 안 건 몇 달 전 일이었다. 아마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아서 생긴 이름일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입을 삐죽였다. 마을에 국경이 없으면 뭐 해? 마음에 담을 쌓고 사는데 ..  〈11쪽〉


 우리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우리가 쓰는 수많은 물건을 더는 값싸게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마음이 좀더 값싼 물건으로 쏠린다지만, 우리가 써야 하는 물건은 ‘값만 싼’ 물건이 아니라 ‘자기한테 쓸모있는’ 물건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값이 싸다고 아무 물건이나 쉬 사들일 수 없는 노릇이고, 값이 비싸다고 하여 꼭 써야 할 물건을 안 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쓸 물건은 우리 손으로 장만해서 쓸 때가 가장 좋습니다. 우리 밥상에 차릴 먹을거리 또한 우리 손으로 우리 땅에 심고 가꾸고 거두어서 손질해서 올려야 가장 좋고요. 지금 우리들은 밥이고 옷이고 집이고 손수 마련하기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찾은 다음, 돈으로 모두 풀어내는 삶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물건을 안 사면, 장을 안 보면 옴짝달싹 못하겠지요. 마음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거나 걱정할 수 있겠지만, 몸은 벌써부터 이주노동자가 헐값에 오랜 시간 일하지 않으면 우리 삶을 꾸릴 수 없게 매여 있는 셈입니다.


.. “내가 덥다는데 니가 무슨 참견이야? 넌 까매서 안 더운지 몰라도 난 더워! 그러니까 조용히 해!” 순식간에 동규의 얼굴이 굳었다. 정준이 얼굴도 굳었다. 자기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하지만 주워담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분위기가 싸해지고 한 시간 같은 일 분여가 지나갔다. 동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난 좀 까매서 더위를 안 타나 보다. 그거 좋은 의견인데. 만물노트에 적어 놔야겠네. 까만 사람은 더위를 안 탄다. 좋았어!” 동규는 특유의 재치로 다시 상황을 수습했다 ..  〈106∼107쪽〉


 ‘국경 없는 마을’이 허울뿐인 ‘국경 없는’ 마을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눈길과 삶 어느 곳에서도 국경이 없는 마을이 되자면, 이주노동자를 마주하는 우리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앞서, 우리들은 우리 이웃을 깔보고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등처먹었습니다. 돈이 없다고, 이름이 없다고, 힘이 없다고.

 못생긴 아이들은 손가락질을 받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늘 꾸지람입니다. 아파트 올려세우는 재개발을 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 삶터를 죄 쓸어내고 밀어내고 쫓아냅니다. 아파트 올려세운 뒤에는, 자기들 집값 올라가는 소리에 입이 찢어지고, 이웃사람들 주머니가 홀쭉해지는 소리에는 귀를 막습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영어 미친바람은 불지언정, 버마와 네팔과 스리랑카와 파키스탄과 몽골과 티벳과 카자흐스탄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문화와 삶을 고이 지키면서 한국땅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아 주는 따순 바람은 불지 못합니다.


.. 몽골의 아름다운 푸른 초원을. 그리고 그 초원 위에 자리잡은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를. 초원 위를 뛰노는 말을.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성완이의 가슴이 조금씩 열렸다. 그림이 다 완성되자 몽골의 너른 초원이 성완이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사실 몽골에 있을 때 성완이가 살던 곳은 울란바토르였다. 그곳은 도시다. 성완이가 그린 푸른 초원은 성완이 자신도 두어 번밖에 가 보지 못한 할아버지 댁 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  〈67쪽〉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 입맛과 생각에 맞추는 길입니다. 한국 아이들 스스로 이주노동자 아이들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 어른들이 한국 어른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이주노동자 어른들이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 젖어들어 고개를 숙이는 길입니다. 한국 어른들 스스로 이주노동자인 어른들을 ‘내가 일했을 때와 똑같은 일삯을 받아야 하는 사람(동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코시안’이라는 말을 지어냅니다. ‘코리안 + 아시안’으로(88쪽). 미국말로 적으니 무언가 그럴듯하지만, ‘튀기’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요. 더구나, 한국사람들은 모두 ‘아시아사람’이기도 한데, ‘코리안 + 아시안’이라는 말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우리 겨레는 ‘단일겨레’라고 하지만, 제 나라 말과 글을 업신여기고 미국 말과 글을 높이 우러르는 우리들이 어떻게 단일겨레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말과 글뿐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누리는 모든 삶과 문화는 미국이나 유럽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세계화’를 말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더 많이 가지거나 움켜쥔 이들이 살기 좋은 한국’을 바랄 뿐입니다.


 〈2〉 흔한 이야기로 머물고 마는구나


 《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는 짤막한 이야기 셋을 묶습니다. 경기도 안산, ‘국경 없는 마을’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또는 일어났던 이야기 셋입니다. ‘국경 없는 마을’이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이나 네덜란드쯤 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까매서 안 더워?》 같은 책은 나오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우리 삶만큼이나 비뚤어져 있는 생각을 건드리는 《까매서 안 더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구나 누려야 할 사람권리를 짓밟히면서 어릴 적부터 아픔과 생채기만 가득 쌓이는 아이들 삶을 보여주는 《까매서 안 더워?》입니다. 우리 나라는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나쁜 제도와 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까매서 안 더워?》는 또다른 모습으로 또다른 곳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눈에 뜨이리라 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이지만, 누구는 정규직으로 삼고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삼으며 갈라놓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이지만, 누구는 낮은대접을 누구는 높은대접을 받습니다. 이제 교과서에는 ‘빈부차별과 계급차별이 없다’는 말은 안 실리겠지요? 돈있는 사람, 학식있는 사람, 힘있는 사람이 떵떵거리거나 우쭐거리는 우리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날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어린이책에서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이들한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일 수 있고, 아이들한테 굳이 아프거나 어두운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삶을 들여다보면, 아픔과 생채기와 어둠과 그늘이 참 짙습니다. 많이 누리는 집안에서는 많이 누리는 집안대로, 누릴 것이 없는 집안에서는 누릴 것 없는 집안대로 아이들은 골병을 앓아요.

 학교에서 싱그러운 배움을 하나하나 받아안으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인가요? 장애아이는 제도권학교조차 ‘취학면제’ 딱지를 받으며 발도 디딜 수 없는 가운데, 참 사람됨을 익히도록 이끌기보다는 갖가지 지식조가리를 아이가 더 많이 머리속에 담는 데에 마음쓰는 우리 형편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대로,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대로 괴로운 교육 얼거리입니다. 이런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 딸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게 된 아이들 삶은 어떠할까요. 왜 우리 어린이문학가들은 이런 이야기를 문학으로 담아내어 펼치지 못할까요.

 《까매서 안 더워?》는 지금 아이들이 속깊이 헤아리며 자기 삶과 생각을 추스를 수 있도록 이끌어 갈 글감을 잘 짚어낸 대목에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세 아이 이름을 ‘한국 아이 이름’으로 바꾸고, 그냥 한국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따돌림이나 괴로움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낼 때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자기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풀어갈 길은 자기 스스로 이를 앙다물고 너스레를 떨며 굽신거리는 길밖에 없을까요.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람이 이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한쪽 뺨을 맞은 예수님은 다른 뺨을 내민다고 하지만, 이주노동자 아이들은 하느님과 같은 참을성과 견뎌냄을 키우면서, 이 땅 한국 아이들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이 땅 한국에서 부모와 교사로 있는 사람들은 멀뚱멀뚱 있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술술 풀리게 될까요. 동화책 한 권에서 이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만, 《까매서 안 더워?》에 실린 작품 셋을 마무르는 고빗사위가 같은 얼개로 되어 있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책앞에 ‘이주노동자와 우리 사회’ 문제 이야기를 추천글과 글쓴이 말로 짤막하게 다루는데, 책뒤에 ‘이주노동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코시안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 곁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같은 이야기를 한두 쪽에 걸쳐서 실어 주면 어땠을까요.

 책 바깥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책에는 차례가 안 붙었습니다. 그냥 죽 읽으면 되기는 하지만, ‘한 권짜리 통 이야기’가 아니라 ‘짧은 작품 셋을 따로 써서 엮은 이야기’라면, 차례를 달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본문 편집을 할 때, ‘좌우 정렬’이 아닌 ‘왼쪽 정렬’만 해서, 본문 오른쪽은 들쑥날쑥입니다. 오른쪽이 들쑥날쑥 되면 책을 읽기에 안 좋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읽을 책임을 헤아려야지요. 다음으로 빈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글씨를 조금 더 키우고 줄간격을 넓힌다든지, 한 쪽에 글자를 조금 더 넣는다든지, 그림을 키워서 한쪽 면이나 두 쪽을 통틀어서 넣든지, 쪽수를 줄이고 책 판을 줄여서 조촐하고 자그마한 판으로 엮든지 했다면 한결 나았을 텐데요. 금세 읽어낼 만큼 길이가 짧은 작품 셋을 모은 책을 억지로 120쪽까지 늘렸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그래서 책값 8500원이 무척 비싸게 느껴집니다. 《까매서 안 더워?》에 담아서 들려주는 줄거리가 우리 땅에서 따돌려지고 뒤로 밀려나는 ‘아픈 사람들 자그마한 이야기’라 한다면, ‘책꼴과 책엮음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며 얌전하게 고개숙이는 작고 수수한 짜임새’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단순 오탈자가 아홉 군데 보입니다(46쪽, 52쪽, 62쪽, 64쪽, 65쪽, 70쪽, 72쪽, 74쪽, 99쪽). 국어연구원 맞춤법이나 교과서 맞춤법으로 더 꼼꼼히 살피자면, 바로잡거나 추슬러야 할 대목이 더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한편, 글쓴이 박채란 님이 더욱 마음써야 할 글쓰기 문제가 있어요. ‘저녁 식사 시간’, ‘기분이 별로야?’, ‘허기가 밀려왔다’, ‘12일로 정해졌어요’, ‘말을 합쳐’, ‘패러디해서’, ‘과묵하게’, ‘친구들을 향해’, ‘멤버’, ‘티나의 잘못된 존대법’, ‘흰 피부의 아이들’ 같은 대목은 깨끗하고 손쉬운 우리 말로 다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몽골말’이라고 했다가 ‘몽골어’로도 나오며 뒤죽박죽인 말씀씀이는 하나로 가다듬어야겠지요.

 좋은 글감을 흔한 이야기에 머물게 한 대목이 아쉽지만, 다음 작품을 기다려 봅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셋을 주겠습니다. (4340.8.24.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