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신문> 다음주에 싣는 글.




 책으로 보는 눈 17 : 책을 왜 읽을까


 어제 찾아간 헌책방에서 《熱河日記》(平凡社)를 보았습니다. 1978년에 일본 평범사에서 옮긴 판으로 두 권으로 나누어 냈습니다. 일본 평범사는 이밖에도 《조선세시기》와 《하멜표류기》와 《해유록》과 《조선독립운동지혈사》를 일본말로 옮겼습니다. 《열하일기》는 평범사 ‘동양문고’ 325번으로 나온 책이고, 어른들 펼친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짜임새에 책상자가 따로 있습니다. 예쁘장하면서 가볍게 묶은 이 책 겉에는 “조선지식인의 중국기행”이라고 적었고, 책날개에는 ‘건륭 황제 일흔 돌을 기리는 조선사신 박지원이 북경과 열하를 다녀오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와 중국 선비와 사귄 이야기를 읽으면, 깊은 됨됨이와 사물을 자기 나름대로 읽어내는 눈썰미 들을 엿볼 수 있다’는 추천글을 적었습니다.

 지금 우리 남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두 번역(완역)’ 《열하일기》는 2004년에 보리 출판사에서 상ㆍ중ㆍ하 세 권으로 낸 판 하나. 이 책은 북녘에서 우리 말로 옮긴 판을 남녘에서 계약해 다시 냈습니다. 권마다 600쪽이 훌쩍 넘고(모두 1942쪽) 하나에 25000원씩. 다 하면 75000원.

 중국 연변으로 나들이 갔을 때 〈신화서점〉에서 북녘판 《열하일기》를 구경한 적 있습니다. 북녘판은 일본판보다 조금 크고(어른들 펼친 손바닥 만합니다) 종이는 한결 가벼우며 얇고 두 권으로 된 값싼 책이었어요. 그러니까, 일본과 북녘과 중국에서 펴낸 《열하일기》는 사람들한테 읽히려고 묶은 책이고, 남녘에서 펴낸 《열하일기》는 책꽂이에 보기 좋게 꽂아 놓고자 묶은 책인 셈입니다. 팔뚝힘이 좋다면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을 테고요.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지난 8월호를 여느 달에 나온 판과 견주면 꼭 반 만한 크기로 엮었습니다. 여름 나들이 가실 때 주머니에 쏘옥 넣어서 들고 다니며 읽으라는 뜻에서 그리 엮었다고 합니다. 글씨가 작아졌지만, 책을 읽기에 눈이 따갑지 않습니다. 다만,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돋보기를 쓰고 읽어야겠지요.

 가만히 보면, 《좋은 생각》이나 《작은책》이나 《샘터》 같은 잡지는 작고 가볍고 수수하게 엮어냅니다. 《여성동아》나 《레이디경향》이나 《여성조선》 같은 잡지는 크고 두껍고 무겁고 번들번들하게 엮어냅니다. 《작은책》을 찾는 사람들은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부대끼며 살까요. 《레이디경향》을 찾는 사람들은 자기 몸치레와 집치레와 옷치레를 어떻게 하며 살까요. 《좋은 생각》을 읽는 사람과 《여성조선》을 읽는 사람들 마음치레와 생각치레는 어떠할까요. 오늘날 가장 잘나가는 책은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처세ㆍ비즈니스능력계발ㆍ인간관계ㆍ화술/협상ㆍ세일즈/매너” 들을 키우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25ㆍ35 꼼꼼 여성 재테크》나 《샤방샤방 그녀의 매혹통장 만들기》 같은 책을 읽는 분들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믿고 표를 줄까요. 대통령 후보가 누구이며 무슨 정책을 내놓는지를 어떤 눈길로 뜯어보고 있을까요. (4340.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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