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다시 쓰겠습니다


 그제, 강릉에 사는 띠동갑 후배가 인천으로 찾아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ㅁ대안학교에서 만난 후배입니다. 저를 보고 꼬박꼬박 ‘최종규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 젊은 친구는 저를 자기 길동무로 생각해 줍니다. 스물한 살 젊은 나날을 보내며 부대끼는 온갖 걱정거리와 마음앓이를 털어놓고 자기 갈 길을 스스로 헤아리곤 합니다. 새벽 네 시가 넘도록 젊은 친구와 옆지기하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젊은 친구가 저를 처음 보았을 때 이야기를 듣습니다. “처음 받은 느낌으로는, 저 사람 콧대가 높을 것 같다”였다고 합니다.

 옆지기도 웃고 저도 웃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거울을 안 보고 사는 제 얼굴이 이웃사람들한테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를 잘 안 듣고 살았구나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며 거울을 꼭 봐야 하지는 않고 이웃사람들이 허튼소리를 할 때에는 한귀로 흘리며 마음을 고요히 다스릴 수 있으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지 못한 세상 모습을 들려준다든지, 제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엇나가고 있는 걸음걸이를 알려준다든지, 제가 느끼지 못한 사람들 아픔과 눈물과 웃음과 즐거움을 보여준다든지, 제가 알지 못하는 슬기를 깨우쳐 줄 때에는, 어느 자리 어느 때 누구 말이라 해도 고개숙여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강릉 사는 젊은 친구한테 미처 묻지 못했는데, 저를 처음 본 2005년 여름 그날 콧대 높게 느껴지던 제 모습이, 2007년 여름 이날도 마찬가지일까요.

 어제 잠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서울로 사람 만나러 떠나는 젊은 친구가 혼자서 전철간에서 심심할까 싶어서 함께 갔습니다.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오기 앞서 들른 헌책방에서 《텍스트》라는 ‘북매거진’ 35호를 보았습니다. 저는 이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는데 거의 한 해 가까이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35호를 보니 지난 34호를 낸 뒤로 사람품이며 돈이며 다른 여러 가지며 참 안 좋아서 한 호도 못 내고 있었더군요. 다시 펴내는 말을 이렇게 적습니다.


.. 이렇게, 다시, 결국, 시작합니다. 늘, 끝의, 시작입니다. 《텍스트》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많다는 것 잘 압니다. 어떻게 사과와 용서를 빌어도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컨대 그 불만과 불신을 온전하게 해소시키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입니다. 다만 텍스트에 대한, 버리지 못한 욕망이 다시금 《텍스트》를 시작케 합니다. 그 욕망에 기대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일 따름입니다. 부디 그 텍스트의 욕망 안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오솔길이 놓여 있기를 희망합니다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을 안 쓰면서, 제가 해 오던 수많은 글쓰기(우리 말 / 책 / 헌책방 / 자전거)를 많이 줄이거나 꺾거나 묻어 놓았습니다. 자원봉사로 몇 군데 자그마한 매체에 글을 보내기는 하지만, 정작 제가 세상에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는 털어놓고 있지 못했으며, 아니 안 했으며, 숨죽이며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올해 4월 15일, 네 해 조금 못 되는 세월을 일하면서 보냈던 충주를 떠나 인천으로 왔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원고 갈무리는 지난해에 다른 분한테 넘겨 드린 뒤 다른 일거리 없이 자전거만 타고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덕분에 자전거로 못 가는 곳이 없음을 느꼈고, 오른무릎과 오른팔꿈치는 맛이 가서 요 몇 달 동안 자전거를 탈 수 없을 만큼 몸이 무너졌습니다.

 인천으로 오면서 여태껏 읽고 추슬러 온 책을 갈무리해서 ‘지역 전문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제 마음에 담겼다가 제 몸으로 드러나서 사람들한테 펼쳐질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제가 읽은 책을 이웃사람한테 선물로 드리는 일도 좋지만, 차곡차곡 모아 놓은 뒤 한꺼번에 드러내어 누구나 찾아와서 읽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한결 좋겠구나 깨달으면서 일을 벌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부대끼며 마음에 담은 이야기를 글 한 쪼가리로 써낸다면, 이런 글은 종이에 옮겨지는 그때부터는 ‘제 것’이 아닐 테지요. 어느 누구 것도 아닌 ‘글’일 뿐이며, 이 글을 좋게 받아들여 주는 사람한테는 좋은 이야기로, 얄궂게 받아들이는 분한테는 비판과 칼질을 해야 하는 못난 이야기로 다가가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읽으며 좋음을 배우고, 나쁜 글을 읽으며 모자람과 어리숙함이 무엇인지를 느껴서, 저마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더 나은 길로 거듭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즈음 인천은, ㅇ시장이 벌이는 밑도 끝도 없는 재개발 공사계획 때문에 가난하지만 수수하게 살던 골목집 사람들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천사람이지만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가 충주로 옮겨 지내는 동안 살갗으로 못 느끼던 일이었습니다. 지역신문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중앙신문에서는 ‘거긴 너네들 지역 일이잖니’ 하고 한수 접고 들어가는 일임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운명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전거로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느끼기로, 골목집 문화가 남은 마지막 곳은 인천이었습니다. 고향이라서가 아니라, 도시 삶터에서 이웃집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조용하고 조촐하게 살 수 있는 한 곳이라면 인천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돌아가신 김기찬 선생이 온삶을 바쳐 찍은 《골목 안 풍경》은 이제 중림동에 없습니다. 사직동에 없습니다. 공덕동에 없습니다. 남산에 없습니다. 경교장이 있는 서울 종로구 평동도 ‘이명박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 오래이고, 〈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가 사는 홍제동도 개미마을과 전철역 둘레를 중심으로 높직높직 아파트를 새로 짓는 계획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파트값이 높고낮음만 다를 뿐, 강아랫마을과 강웃마을과 강옆마을 삶터가 무엇이 다를까요.

 인천은 2014년에 아시아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2013년까지 모든 구에 걸쳐서 모든 서민들 집을 허물고, 이 자리에 아파트와 쇼핑센터와 대형할인마트를 올려세우는 계획을 ㅇ시장 지시와 명령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전국 어디를 가나 아파트 없는 마을이 없고, 이제는 이 나라 사람들은 절반 넘게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멍가게나 옛 저잣거리에서 장보기를 하는 사람보다도 대형할인마트에서 장보기를 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두 다리로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장보기를 하기보다 덩치 큰 suv라는 자가용을 몰고 장보기를 하는 분이 더 많지 않을까요.

 이런 세상에서 글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아찔아찔 골이 아파서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혼자 깨끗한 척, 잘난 척, 모든 것을 아는 척 콧대를 세우고 우쭐거리는 꼬락서니가 얼마나 우스운가 돌아보니 얼굴이 화끈해집니다. 참말로 글은 왜 썼고, 책은 왜 읽었고,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그 어리숙하고 모자랐던 글과 사진은 왜 올렸을까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아보아 주지 않는 헌책방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알리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헌책방 이야기를 알린다기보다는 ‘헌책방처럼 따돌림받고 푸대접받는 이웃사람들 삶과 삶터도 함께 느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올바르게 쓰지 않는 우리 말과 글을 살가이 돌아보고 느끼면서 말하고 글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쓰는 일보다는 ‘말과 글을 깨끗하고 알뜰하고 아름답게 추스르는 동안 우리 마음과 생각도 깨끗하고 알뜰하고 아름답게 추스를 수 있을 테고, 이러는 동안 우리가 저마다 서 있는 곳에서 좀더 힘내고 기운차게 어깨를 겯고 일하고 놀고 싸우고 노래하고 술과 밥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신문과 방송과 잡지에서 알아보아 주지 않는 조그마한 출판사 알맹이 탄탄한 책도 좀 읽으면서 세상 공부를 해야 우리 사회 밑바탕이 차츰차츰 탄탄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묻혀 있는 책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삶과 경험을 톺아보면서 내 삶과 경험을 되새기고, 내 사는 이야기를 이웃사람과 나누며 우리한테 정작 중요한 일을 깨닫고, 이웃사람들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참말 우리가 깨닫고 맞서고 함께해야 할 일거리 싸움거리 걱정거리 이야기거리가 무엇인가 스스로 찾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전에 쓴 글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 보면 참 부끄럽습니다. 저 어설픈 생각찌끄레기를 어쩜 저렇게 낯빛 하나 안 바꾸고 대단한 척 우쭐댈 수 있었나 싶어 예전 글은 다 불살랐으면 좋겠구나 싶은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쓰는 글도 앞으로 몇 해가 지난 뒤 다시 읽었을 때 똑같이 느끼겠지요.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모자람과 어설픔만 깨닫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모자람과 어설픔을 느끼기 때문에 날마다 더 애쓸 수 있고, 날마다 더 주먹을 불끈 쥘 수 있으며, 날마다 더 눈에 불을 켤 수 있을까요.

 나한테 깃든 모자람을 느낀다면, 내 이웃한테서 느껴지는 모자람을 더 따뜻한 눈길로 굽어살피고, 나한테 깃든 어설픔을 느낀다면, 내 이웃한테서 느껴지는 어설픔을 더 포근한 손길로 어루만져야 하는구나 깨닫습니다. 남이 나한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다가서야지요.

 내 잘난 이야기를 떠드는 일이 목적이었다면 글쓰기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이웃들 복닥이는 온갖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있고, 느끼는 가슴이 있고, 곰삭이는 머리가 있으며, 함께하려는 손발이 있다면, 그때에라야 비로소 볼펜을 들든 자판을 두들기든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제가 썼던 〈오마이뉴스〉 기사는 ‘높지도 않은 콧대를 높이 세우면서 거들먹거린’ 이야기였구나 싶습니다. 높여야 할 것은 콧대가 아닌 붓대일지 모르나, 붓대조차도 높일 까닭이 없으며, 높여야 할 것이 없는 만큼 낮춰야 할 것도 없고, 있는 그대로 손을 맞잡고 저마다 자기 길을 다부지게 걸어가야지 싶습니다. 핑계만 가득한 생각쪼가리 늘어놓습니다. (4340.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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