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와 개발업자는 `보통 길을 놓는다'는 말로 주민들을 속인 채 `50미터 산업도로' 계획을 밀어붙여 왔습니다. 이 산업도로로 동네가 두 동강이 날 뿐 아니라, 엄청난 재개발이 잇따르며 그동안 고유하게 지켜 온 삶터가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퍽 늦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힘을 뭉쳐서 막개발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인천시와 개발업자는 `보통 길을 놓는다'는 말로 주민들을 속인 채 `50미터 산업도로' 계획을 밀어붙여 왔습니다. 이 산업도로로 동네가 두 동강이 날 뿐 아니라, 엄청난 재개발이 잇따르며 그동안 고유하게 지켜 온 삶터가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퍽 늦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힘을 뭉쳐서 막개발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돈과 힘과 이름 없는 사람들 삶터를 지키고자
 -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을 가로지를 산업도로를 반대하며

 


 그제와 글피, 비 그친 뒤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매섭지 않은 겨울을 아쉬워하는 추위였는지 모릅니다. 퍽 센 바람이 조금 잦아드니, 뿌옇던 하늘이 대단히 파란 하늘로 바뀌었습니다. 아침햇살이 눈부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눈물 날 만큼 싱그러운 빛살이었습니다. 이 빛살은 서울에도 충주에도 광주에도 원주에도 인천에도 내리쬐었겠지요. 누구한테나 고른 빛살이며 따뜻한 햇살입니다. 하지만 어제 만난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햇볕과 하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참 고운 햇볕인 줄 몰라서일까요. 하늘 올려다볼 틈이 없어서일까요. 그깟 햇볕이야 돈이 안 되어서일까요. 하늘 올려다볼 열린 마당이 없어서일까요.

 인천 금곡동에 자리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는 아침부터 곱고 부드러운 햇볕이 내려앉았습니다. 참고서를 찾는 부모와 학교옷 입은 아이들부터, 마음을 살찌울 만한 낱권책 하나 찾는 책나그네까지, 이곳을 찾는 누구나 좋은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과 살뜰한 책 하나 즐겼습니다. 가까운 동네에서 이곳을 찾은 이들이 있고, 저으기 먼 곳에서 다리품 판 이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차소리 적어 조용하고, 수런수런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골목길을 거쳐서 옵니다. 동인천역에서 오는 길에는 한복ㆍ누비집 골목을 지나고 전통문화거리로 탈바꿈한 지하상가를 지나게 되며, 구석구석까지 깃든 옛 저잣거리를 만나게 됩니다. 가게 간판을 보면 좀 낡아 보이는 것이 많은데, 이 간판은 가게 빛깔을 알려주는 데에 아무 걱정이 없고, 한편으로는 가게 역사를 헤아리게 합니다. 돈 몇 푼 들이면 번들번들 큼직한 간판으로 고쳐올릴 수 있으나, 지금 이대로도 좋습니다. 아니, 지금 이 모습이 한결 좋습니다. 수십 해를 묵은 빛바랜 간판은 이 한 자리를 오래오래 지키며 고이 살림을 꾸린 분들 숨결을 느끼게 하며, 우리가 하루하루 잊고 있는 푸근함을 돌아보게 하거든요. 빛바랜 간판은 이 골목과 저잣거리에 뿌리내려 동네사람이 오순도순 지내 온 발자취를 가만히 보여주는 나이테구나 싶어요.


 

손수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이곳 송림동, 금곡동 사람들은, 요즈음 우리들이 `쿠바 아바나 생태도시'를 배우려고 법석을 떠는 바로 그 `생태 지킴이' 삶을 진작부터 수수하게 꾸려오지 않았을까요.
손수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이곳 송림동, 금곡동 사람들은, 요즈음 우리들이 `쿠바 아바나 생태도시'를 배우려고 법석을 떠는 바로 그 `생태 지킴이' 삶을 진작부터 수수하게 꾸려오지 않았을까요. 다만, 이분들은 책을 읽은 적이 없고 쿠바사람들 이야기는 까맣게 모르지만, 그저 당신들이 살던 그대로 살 뿐입니다.

 


 도원역쯤에서 쇠뿔거리(우각로) 옛길을 걸어 헌책방으로 오는 동안에는, 손바닥 만한 텃밭에 파며 양파며 콩이며 고추며 배추며 상추며 알뜰히 심어 가꾸는, 집크기도 손바닥 만하고 지붕 낮은 작은 살림집, 곧 골목집을 스쳐 지나갑니다. 일제강점기 때 억지로 항구 문을 연 세 곳 가운데 하나인 인천입니다. 이곳 쇠뿔거리는 옛 조선이 처음 개화라는 물결을 타야 할 때 서울로 온갖 문물이 들어가던 첫 길이었습니다. 서울로 가는 큰길 둘레 좋은 목에는 선교사며 장사꾼이며 권력자며 일본사람이며 집을 우뚝우뚝 세웠고(지금도 이런 건물이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큰길 건너편 산비탈에는 뱃사람으로 일하고 짐꾼으로 일하던 가난한 보통사람들 지붕 낮은 집이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이제는 아파트에 밀려 거의 모두 사라진 지붕 낮은 집이지만, 이곳 쇠뿔거리와 함께 여태껏 잘 살아남은 골목집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 쇠뿔거리를 걷다가 눈길을 잠깐 안쪽으로 돌리면, 근대 교육 첫 터전이 된 학교인 영화학교, 창영학교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편, 세무서 붉은벽돌 담벽에는 “자수간첩 도와주자”라는 페인트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어, 지난날 ‘반공’을 앞세워 독재정권을 휘두르던 가슴아픈 역사를 고이 보여줍니다. 서울에는 현저동에 서대문형무소가 그 무시무시한 뼈대를 고스란히 남긴 채 일제강점기 아픔을 온몸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인천 금곡동에는 나라밖 제국주의 물결에 휩쓸려 눈물로 항구를 열어야 하면서 세운 학교, 관공서, 철길, 적산가옥 들이 곳곳에 조용히 남아서 우리들 보통사람이 어떤 슬픔과 눈물을 부대껴야 했는지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자수간첩 도와주자"는 글귀. 이 글씨를 안 지운 까닭이 궁금하지만, 이렇게 안 지우고 두었기 때문에, 외려 지난날 반공독재 문화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자수간첩 도와주자"는 글귀. 이 글씨를 안 지운 까닭이 궁금하지만, 이렇게 안 지우고 두었기 때문에, 외려 지난날 반공독재 문화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이 벽돌담과 글씨는, 앞으로도 고이 간직해 `지난날 우리 삶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도록 하는 문화재'로 삼으면 더 좋으리라 믿습니다.

 


 1961년에 신호등이 처음 들어온 인천입니다. 도시화나 지역개발이 더뎠다고 하겠지만, 신호등 없이도 사고나 큰탈이 없어서 사람과 차가 평화롭게 오가던 고즈넉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인천은, 동인천과 용산을 오가는 직통열차가 뚫리고, 제2경인고속도로며, 연수동 새도시며, 영종도 국제공항이며, 송도 새도시며, 청도 재개발구역이며, …… 무언가 포크레인 삽날로 파헤쳐 새 콘크리트 집을 짓거나 확 뜯어고치거나 갈아엎으며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할 곳처럼 되고 있습니다. 몇 조 또는 수십 조에 이르는 돈을 들여 철거를 하고, 재개발을 하고, 수십 층 아파트와 쇼핑몰을 들이고(또는 들이려 하고), 길을 널찍하게 새로 또 냅니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논리에 보통사람들 삶터는 밀려나고, 돈으로만 굴러가는 시멘트 소굴이 들어섭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얼마만한 돈이 있어야 할까요. 돈을 얼마나 벌어서 어디에 쓰려 하나요. 우리가 발딛고 사는 이곳 대한민국, 그리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 한켠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와야 즐겁거나 재미난 삶이 될까요. 흐르는 냇물이나 땅속 우물을 길어 먹는 일보다 정수기 물을 마셔야 즐거움일까요. 유기농 곡식을 많은 돈 들여서 사서 먹는 편이, 집앞 텃밭이나 스티로폼 농사보다 몸에 더 좋을까요. 돈버는 일을 하느라 운동할 틈이 없어 뱃살 늘고 비계가 느니, 헬스클럽에 자가용 타고 찾아가 런닝머신을 타야 할까요. 이런 운동이 두 다리로 걸어서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거나, 자전거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일보다 몸을 더 튼튼히 하거나 앞선나라 일등시민으로 사는 길인가요. 인터넷으로 채팅하는 일이, 담 없는 이웃사람과 수다를 떨 때보다 웃음이 묻어나는가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택배로 받아 보는 물건이,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장보고 에누리하며 사서 쓰는 물건보다 쓸모 많거나 더 좋은가요.

50미터짜리 산업도로는 송림동 언덕길을 싹 밀어붙이고 뚫은 이 굴과 이어집니다.
 
50미터짜리 산업도로는 송림동 언덕길을 싹 밀어붙이고 뚫은 이 굴과 이어지게 됩니다. 이 굴로 들어서자면, 또 이 굴을 지나 새로운 길을 놓자면, 어쩔 수 없이 `고가도로'를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새 길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송림동 야산에 ‘달동네 박물관’이 들어섰습니다. 그곳 ‘달동네’ 집을 싸그리 밀어붙여 없앤 뒤 수십 층 아파트를 무더기로 세웠고, ‘덤’으로 근린공원 하나 지어 주면서 퍽 많은 돈으로 지은 박물관입니다. ‘가난한 시절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마음을 썼는지 모릅니다만, 왜 “달동네 집 = 가난+슬픔+지저분함 = 나쁜 것 =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여길까요. 가난하게 사는 일은 불쌍하거나 슬프기만 할까요. 한 달 30만 원으로도 알콩달콩 지내는 삶은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과는 동떨어진’ 삶인가요. 달동네 박물관 둘레를 보면, 송림동 ‘달동네 집’은 아직도 여러 열 채 남아 있습니다. 가까운 금곡동이나 화수동이나 만석동, 또 서울 중림동이나 평동이나 누하동이나 사직동이나 숭인동 들에도 ‘달동네 집’, 그러니까 ‘지붕 낮은 집’은 참 많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가난하게 사니까, ‘가난을 없애 주고’자 재개발을 해서 높직높직한 아파트를 스무 해마다 새로 올려서 돈을 벌어 주어야 하는가요. 아니면 이곳 사람들은 사람들 눈에 안 뜨이는 곳으로 몰아내어 ‘도시 미관 정화’를 해야 하나요.

 관공서나 정부 공무원이 보기에는 구질구질한 가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곳 사람들로서는 여태껏 즐겁고 조촐하게 꾸려 온 삶입니다. ‘즐거운 우리 집’입니다. 다 함께 모여서 어울려 살아가는 기쁨을 맛본 터전입니다. 굴이나 조개를 까고 마늘을 벗기거나 감자를 깎으며 살아도, 버는 만큼 쓰고 버리는 물건 없습니다.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에 들뜨고, 손으로 북북 비벼 빤 빨래를 탁탁 털어 싱그럽고 따순 햇볕에 말리는 시원함을 맛보며 지냅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는 값싼 책 하나 구경하는 재미, 교과서와 참고서를 찾는 수험생들, 인문사회과학 책과 교양책 들을 만나려는 책나그네까지, 누구나 껍데기 아닌 조촐한 알맹이를 부대끼며 지냈습니다.

가난하지만, 돈이 적다뿐, 돈 빼고 다른 나머지는 모두 넉넉한 골목집, 산비탈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지만, 돈이 적다뿐, 돈 빼고 다른 나머지는 모두 넉넉한 골목집, 산비탈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 골목집은 30년, 40년, 50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고이 이어갈 수 있지만, 뒤쪽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는 20년도 채 못 되어 허물고 재개발을 한다고 법석을 떨겠지요.

 


 그러나 이와 같이 조용하고 조촐하던 보통사람 삶터가, 5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동네 한복판을 가로질러 뚫으려는 시와 개발업자 손길에 깡그리 무너지려 합니다. 사람 사는 이곳에서 사람이 아닌 돈만 보고 있기에, 나무와 꽃을 돈으로 사서 심는 돈길이 아니라 씨앗이 땅에 떨어져 뿌리내리고 자라가는 살림길을 생각하지 않는 돈바라기 마음만이 떠돌기에.

 묻고 싶습니다. 지금 있는 길로도 공단으로 물류를 실어나르는 데에 걱정이 없고, 집과 일터를 오가는 데에 막힘이 많지 않습니다. 길을 새로 뚫는다면 누구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요. 사람이 다니는 데에 좋자고 뚫는 길이 ‘사람 삶터를 죄 밀어내고 지을 만큼 중요’한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새로 내는 길은 왜 ‘즐거운 우리 집을 이루며 살아온 가난한 사람들 삶터’만을 가로질러야 하는지요. 돈 많은 사람들 동네는 보상금이 많이 드니까, 그런 데에는 높으신 분들이 사니까 에돌아가야 하는지요. 가난한 사람들 집터는 ‘돈 많고 이름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차막힘 덜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닦도록 무너뜨리고 몰아내야 하는지요.

조그마한 빈터에도 씨앗을 심는 이곳 골목집 사람들 마음이 사랑스럽고 좋습니다.
 
조그마한 빈터에도 씨앗을 심는 이곳 골목집 사람들 마음이 사랑스럽고 좋습니다.

 


 태어나서 여태껏 이웃사람을 해꼬지한 적 없고, 남을 등처먹은 일 없고, 늘 조용하게 제 몫을 다하면서 낮은 자리에서 허리 숙여 일해 온 이곳,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 사람들은 앞으로도 자기 보금자리를, 고향을, 조그마한 텃밭을, 골목집을 살가이 간직하면서 햇볕과 바람과 물과 사람을 부대끼고 싶습니다.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지내 온 지금 같은 이음고리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시끄러운 차소리나 무시무시하게 골목을 내달리는 자동차에 벌벌 떨지 않으며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십 수백 억을 들여서 짓는 박물관이나 문화시설보다는, 수십 수백 해를 고이 간직하며 살아온 보통사람 보금자리야말로 참다운 문화요 생활사라고 느낍니다. 청계천에는 고가도로를 뜯어내어 자동차 흐름을 줄이고 맑은 물과 바람이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는데,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에는 마을을 두 동강 내고 맑은 물과 바람마저 싸그리 밀어 버리는 산업도로를 놓아야 하는지요. 돈과 이름과 힘이 없어도 사랑과 믿음과 나눔으로 살아온 골목집 사람들 삶터를 앞으로도 꿋꿋하고 즐겁게 가꾸며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조용한 헌책방 한켠에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헌책방거리가 깃든 이곳 금곡동과 송림동을 고이 간직할 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조용한 헌책방 한켠에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헌책방거리가 깃든 이곳 금곡동과 송림동을 고이 간직할 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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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3-16 09: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된장님. 글을 읽으면서 퍼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 이리 말씀드립니다.
제 고향, 인천이야기와 헌책방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지라 제 서재에 모셔놓고
천천히 읽고 싶습니다. 글도 자료도 진솔함에 짠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2007-03-16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7 12:26   좋아요 0 | URL
얼마든지 옮겨 가셔도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이 파란여우 님한테 즐겁게 읽을 만한 글이라면 옮겨 가셔요. ^^;;;;

개발업자들이 현장에서 물러날 나이가 되지 않고서야 깨닫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울 땅조차 없음을 느끼고, 그동안 한 짓을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을는지도...
 
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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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름 : 행운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옮긴이 : 김현우
 - 펴낸곳 : 눈빛(2004.11.11.)
 - 책값 : 9000원


 시골의사와 나누는 ‘행운’
 - 존 버거, 장 모르 함께 만든 《행운아》


 〈1〉 환자를 알아주어야 할 의사


.. 실제로 좌절한 사람에게 ‘좌절’이란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환자 자신의 목소리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알아줌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 〈82쪽〉


 영국 어느 시골에서 수수하게 의사로 살아가는 ‘사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이는 이 시골에 오직 하나 있는 의사이며, 마을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기도 하고 좋은 말동무가 되기도 하며, 어려움을 풀어 주는 사람이기까지 합니다. 다만, 마을사람들은, 여태까지 만난 다른 의사와는 사뭇 다른 이 사샬한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아주 자기들과 하나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 이러한 개인적이고 매우 친밀한 알아줌은 신체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 양쪽 모두에서 요구된다. 전자의 경우 그것은 진찰의 기술이다. 진찰을 잘하는 의사는 드문데, 이는 그 의사에게 의학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관련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실들 ― 단순히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 역사적, 환경적인 것까지 ― 을 고려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자의 진실, 다양한 양상을 암시할 수 있을 환자의 진실 대신에 특정한 양상만을 찾는다 .. 〈79쪽〉


 의사가 환자를 알아주는 일은 환자한테 ‘어떤 병이 어디에서 나서 얼만큼 번졌고, 어떻게 손을 쓰고 무슨 약을 쓰면 된다’ 하는 의학지식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오래지 않아 컴퓨터가 모두 알아서 해 줄는지 모릅니다. 컴퓨터도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기계와 같이 착착착 지식을 뽑아내고 처방을 내리는 일이 사람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몸이 아플 때 사람들은 의사를 큰형이나 언니 정도로 가정한다.(74쪽)”고 합니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할 때 그가 우리의 죽음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는군요. 이런 마음과 느낌은 무엇일까요?

 실제로 우리 자신이나 식구나 동무나 둘레 사람들이 병원에 참 자주 가고 많이들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 다니는 분들 가운데 ‘아주 좋다’고 하는 의사를 어렵지 않게 만나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그저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다니면 좋을 텐데, ‘좋은 의사’를 찾아다닙니다. 이 ‘좋다’는 의사란 어떤 사람이기에 그럴까요. 또,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는 ‘좋다’는 의사를 만날 수 없는가요.


 〈2〉 좋다고 할 만한 의사

 제 나름대로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첫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흰 가운을 입고 눈이 부신 빛을 쏘는 기계가 옆에 줄줄이 늘어선 병실에서만 만나서는 안 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좀처럼 수술실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스스로를 일종의 움직이는 일인 병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식탁 위에서 충수염이나 탈장 수술을 한 적도 있고, 승합차에서 아기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일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61쪽)”었다고 합니다. 요즘 이런 의사를 볼 수 있을까요.

 둘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자기가 다스린 환자의 식구나 동무들, 또는 자식들까지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마침내 그는 사람들이 변해 가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삼 년 전에 홍역을 치료해 줬던 여자아이가 결혼을 해서는 첫 번째 출산을 위해 찾아오는가 하면, 한 번도 앓은 적이 없었던 남자가 총으로 자기 머리를 쏴 버리는 일도 있었다(61쪽)”고 합니다.

 셋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환자가 두렵지 않게 해야 하며, 자기 집에 있는듯(그래서 의사를 형이나 언니처럼 느끼듯) 마음 가벼이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이 꾸린 진찰실은 “병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어떤 응접실보다 더 깔끔했으며, 작은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널찍해 보였다. 그곳이 바로 환자들이 진찰을 받고, 처방과 진료를 받는 곳이(53쪽)”었다고 합니다.

 넷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크지 않은 병원에서 일하거나 크지 않은 차를 타거나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다른 집들과 떨어져 있는 병원은 차고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였다. 대기실과 두 개의 진찰실, 그리고 약제실이 있었다. 숲이 우거진 계곡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계곡의 다른 쪽에서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49쪽)”인 곳에서 일하고 있었답니다.

 다섯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라면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식구들 앞에서 돈이 얼마가 있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느니, 장례비용이 얼마라느니, 얼마를 안 내면 주검을 내주지 않겠다느니 하고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다음처럼 움직입니다.


.. “참 별일이네요.” 노인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심장이 안 좋다가, 이제 폐렴까지… 별일이잖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말입니다.”
 노인은 울기 시작했다. 마치 여자가 울 때처럼 매우 조용한 울음이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벌써 왕진 가방까지 싸 들었던 의사는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그가 말했다.
 딸이 차를 끓이는 동안, 두 남자는 집 뒤편에 있는 과수원과 올해 사과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딸이 차를 가지고 왔을 때는 노인의 류머티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의사는 차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31쪽〉


 환자인 여인은 늙은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이튿날 숨을 거두었고, 할아버지는 내내 발 구르기를 멈추지 않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좀더 사셨더라도 고통 속에 사셨을 겁니다. 훨씬 더 힘드셨을 거예요.”라고만 짧게 말하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3〉 ‘행운아’란?

 권정생 님은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1996)》이라는 책에서 “나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겠다는 어린이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기특한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도 이기적인 욕심이란 생각이다. 그런 어린이는 자신들만 훌륭한 의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불쌍한 환자가 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4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의사 되기란 참 어렵습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인 의사’가 되기도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의학지식 쌓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자신들만 훌륭한 의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불쌍한 환자가 되’길 바라는 비뚤어진 이기심을 품지 않도록 마음 다스리기에도 애써야 합니다.


.. 사샬의 특권에 대한 마을 사람이나 숲 사람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사람들은 그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좋은 머리로…” 그때 사샬이 그들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시골의사로 활동하기로 한 그의 선택까지도 일종의 특권을 암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공에 무관심할 수 있는 특권. 이제 그의 특권은 어느 정도는 그들의 특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동시에 그를 보호하려 든다. 마치 그의 선택이 은연중에는, 머리가 좋다는 것이 약점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종종 사람들은 그를 매우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그를 의사로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 그가 좋은 의사라는 것은 마을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그런 의사가 보기 힘든 의사인지 아니면 흔히 볼 수 있는 의사인지는 모르고 있다. 그것보다도 사람들은 그의 생각하는 방식을 자랑스러워하고,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하여금 자신들과 함께 머물도록 선택하게 해 준 그의 정신을 자랑스러워한다 .. 〈117쪽〉


 이리하여 시골의사 사샬은 ‘행운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샬에게 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골사람들도 ‘행운아’가 되어요. 외진 시골로 가서 성공에는 얽매이지 않고 의료 봉사를 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 일은 한편으로 ‘특권’이지만, 이런 일을 자기 몸을 낮추고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일은 특권이 아니라 ‘부지런히 애써서 얻은 열매’입니다. 사샬한테 특권만 있었다면 시골사람들은 그저 그런 의사 하나쯤으로 보고 조금은 고마워했겠지만, 자기들과 한 마을에서 살면서 자랑스럽게 여길 만하게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안타까운 합병증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사샬은 실수라고 생각(142쪽)”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가만히 돌아다보면, ‘의사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고 ‘합병증’이라느니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데까지 왔다’느니,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느니 하면서 온갖 핑계와 구실을 대며 책임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돌리는 직업인만 많아 보입니다.


.. 의사는 여러 직업들 중에서 가장 이상화한 직업이지만, 그것은 추상적으로 이상화했을 뿐이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몇몇 젊은이들은 초기에 그 이상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많은 의사들이 환상을 깨고 냉소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그러한 이상이 엷어졌을 때, 자신이 다루는 환자의 실제 삶의 가치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격이 둔하거나 비인간적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인간의 삶의 가치를 알아볼 능력이 없는 사회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 〈177쪽〉


 〈4〉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

 시골의사 사샬 이야기를 옆에서 살피면서 《행운아》란 책을 남긴 존 버거는 우리한테 묻습니다. “사샬은 25년 동안 의료 활동을 펼쳐 왔다. 지금까지의 치료건수는 10만 건이 넘을 것이 분명하다. 이만하면 ‘괜찮은’ 기록처럼 보인다. 그가 1만 건만 다루었다고 해서 ‘덜 괜찮은’ 기록일까? 그가 머리만 좋고 부주의한 의사였다고 가정해 보자. 한 번의 사례를, 혹은 열 번, 백 번의 사례를 부주의하게 다루었다는 이유로 그의 기록에서 그만큼을 제외해야만 하는가? 반대로 머리가 좋고 대단히 헌신적인 의사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기록에 얼마를 더해 줘야 하는가? 그래서 그가 얻게 되는 것은 또 무엇인가?(175쪽)” 하고요.

 “고통의 치료가 가지는 사회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구해 낸 생명들이 가지는 가치는?”, “대단히 어렵게 정확한 진단을 내려 주는 것은 위대한 작품을 그리는 것에 비견될 수 있을까?”, “의사는 전문성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는 것일까?” 같은 이야기도 묻습니다. 자, 이런 물음을 들은 우리들은 무어라고 대꾸해야 좋을까요. 아니, 이런 물음을 들어 보기나 했을까요,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요, 참다운 의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는지, 의사를 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참다운 사람, 참다운 일, 올바르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이나 해 보고 있기나 할까요?


..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 〈13쪽〉


 생명을 얻어서 이 땅에 태어났고,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일은 누구한테나 축복이고 행운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자신이 축복받은 일과 행운을 얻은 일을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틀림없는 행운아이고, 사샬과 함께 살아가는 시골사람들도 행운아입니다. 이런 사샬을 취재하고 만난 존 버거와 장 모르도 행운아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엮은 책을 읽는 우리들도 행운아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우리 스스로 느껴야 행운이지, 느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우리가 살갗으로 느껴야 비로소 아픔, 기쁨, 슬픔, 즐거움이 됩니다.

 《행운아》라는 책은 언뜻 보면 남다르다고 할 만하게 살아가는 시골의사 한 사람을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책 한 권 읽으며 ‘보람차게 살아간 한 사람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시골’과 ‘의사’를 넘어서서 ‘한 사람이 고즈넉하게 걷는 길’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책 《행운아》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곁에 두고 틈틈이 읽으면서, 우리 스스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거나 살필 수 있고, 자기 삶을 알뜰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 나름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운이 좋아서 주어지는 ‘행운’이 아닌, 저마다 소중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 저마다 자기 길을 즐겁게 걸어가는 ‘삶’과 이야기를 느끼면서. (4338.6.13.달.처음 씀/4340.3.9.고쳐 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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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어찌나 야박하게 되었는지, 요즈음은 거리의 책가게에 들어가서 책을 좀 서서 읽을 수도 없읍니다. 좌판 위에 놓인 새로 나온 월간잡지를 이것저것 뒤적거려 보는 것이 조그마한 생활의 낙이라면 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요만한 자유마저 용납되지 않습니다. 광화문이나 종로거리의 책가게에 들어가서 5분 동안만 책을 들고 서 있어 보십시오. 점원 아이들이 얼굴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책가게가 없을 것입니다. 책을 펴 보기가 무섭게 벌써 점원 아이가 득돌같이 팔뒤꿈치 옆에 바싹 다가와서 위압을 주는 것쯤은 예사입니다. 노골적으로 책을 빼앗고 나가라고 호령을 치는 책가게도 있읍니다. 얼마 전엔가 동대문 쪽 길가에 있는 고본옥에를 들른 일이 있읍니다. 릴케의 시집이 있길래 그 안의 시를 몇 편 뒤적거리면서 읽기 시작했읍니다. 때마침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지기 시작하여서 나는 그 책사가 인심이 너그럽지 못한 책사인 줄 알면서도 미적미적 서 있었읍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임꺽정이같이 생긴 주인이 달려와서 왈칵 책을 빼앗고는 “아니, 고만 읽고 나가시오, 가게를 닫아야겠소!” 하고 모욕적인 어조로 소리를 질렀읍니다. 나는 졸지에 가게를 닫아야겠다는 말이 납득이 안 가서, “아니, 대낮에 가게를 닫아야겠다니 무슨 말이요?” 하고 반문했읍니다. 그랬더니 주인은 “오늘은 날씨도 비가 오고 해서 가게를 닫고 낮잠이나 자야겠으니 어서 나가 달란 말요.” 하면서 바로 나를 점포 밖으로 팽개치기라도 할 것 같은 험한 기세를 보였읍니다. 나하고 얼마 동안 옥신각신을 하는 중에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서, 금방 가게를 닫겠다던 주인은 그쪽으로 가 버리고, 나는 그래도 울화가 가라앉지 않아 얼마 동안 미적미적거리다가 밖으로 나와 버렸지만, 나는 가게를 닫아야겠다는 주인의 핑계가 화가 나면서도 한쪽으로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 (1963.2.) / 《김수영-퓨리턴의 초상》(민음사,1978) 214쪽


 ‘고본옥(古本屋)’은 ‘헌책방’ 또는 ‘옛책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대문에 있는 곳이고,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는 소리로 헤아려 볼 때, 이곳은 지금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가리키는구나 하고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김수영 님은 광화문과 종로에 있는 책방에 들른 뒤, 그길에 청계천 헌책방거리, 또는 청계천 둘레 동대문 골목골목에 있던 헌책방에 들러 책을 뒤적여 보다가 입술이 파르르 떨릴 만한 일을 겪고 글을 하나 남겼네요.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순 헌책방 임자를 만났다면, 한결 살갑고 따순 마음이 묻어나는 글을 남겼지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대문에서 김수영 님을 차갑게 내쫓은 분은 ‘헌책방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운 대목’을 적바림하게 만들고야 맙니다. 하긴, 이때는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에서도 ‘서서 읽는 사람 내쫓기’를 똑같이 했다니, 말 다했지요.

 그러고 보면, 서울 광화문에 있는 큰 새책방이든 나라에서든 학교에서든 ‘책을 읽자!’고 소리높여 외칩니다만, ‘서서 읽기’ 하는 사람은 ‘책읽는 사람’으로 안 치지 싶습니다.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많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고, 책방에서 서서 읽을 수 있어요. 그래, 광화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는 푯말을 달리 붙여야지 싶습니다. “책을 읽자!”가 아니라 “책을 사서 읽으쇼!”로. (4340.3.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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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1
기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1∼3)
- 글ㆍ그림 : 기선
- 펴낸곳 : 서울문화사(2006)
- 책값 : 한 권에 3800원씩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바탕으로 요즘 흐름에 맞게 새로 꾸민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입니다. 주요섭 님이 쓴 짧은소설을 모른다면, 이 책이름이 그저 그러려니 할 수 있을 텐데,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읽어 보지는 않았어도 글이름만은 한두 번 들어 보았겠지요.

 만화책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를 보면, 이야기 짜임새가 1권과 2권에서 바쁘게 잘 돌아갑니다. 주요섭 님 소설이 두 어른 사이에 애틋한 마음이 요리조리 왔다갔다 한다면, 기선 님 만화는 아직 철이 없다고 할 두 어른 사이에 애틋함이란 없이 콩닥콩닥 다투거나 복닦이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짜임새가 3권이 되면서 갑자기 느슨해지고 일찌감치 끝을 맺어 버렸다고 느낍니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 만화 터전 탓일 텐데, 이만한 이야기감이고 흐름이라면, 4권 5권 6권, 나아가 10권까지는 채울 만큼 줄거리를 탄탄히 짜고 살을 붙이면 한결 사랑을 받고 알콩달콩 부대끼는 우리 삶을 담아내며 웃음을 선사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잡지에 이어싣기 버거웠다면 몇 회를 쉬는 편이 나았을 텐데. 잘나가다가 뚝 끊겼달까요.


[옥희 엄마] 게다가 얼마나 띨띨하고 후줄근한지, 그런 지저분한 녀석을 알바로 썼다가 손님이라도 떨어지면 어쩌지…….
[옥희] 엄마 나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돼요!  .. 〈1권 62쪽〉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 사람, 먼저 ‘옥희 엄마’와 딸 ‘옥희’ 사이, 다음으로 ‘옥희 엄마’와 게임방 손님인 ‘판석’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와 사건이 중심입니다. 지난날 사랑방은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길손이 머무는 곳이면서 애틋함이 묻어나는 문화라 할 테고, 오늘날 게임방은 옆에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있든 자기가 놀고 싶은 대로 신나게 노는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답게 옥희 엄마와 옥희 사이에 오가는 말은 차례가 바뀌었다 싶도록 스물여섯 먹은 젊은 어머니가 퍽 철없어 보입니다.


[옥희] 옥희는 아저씨가 너무 좋아. 엄마도 아저씨 좋아?
[옥희 엄마] 음, 옥희야, 언젠가 네가 더 크면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잘 들어. 남자란 동물은 말이지, 여자보다 정신연령이 엄청나게 낮단다. 한 마디로 하등동물이지. 하물며 연하는 말할 것도 없어. 네가 보기엔 저 아저씨가 어엿한 어른으로 보일지 몰라도, 엄밀히 말해 남자도 여자도 인간도 아닌, 22년 묵은 개구리일 뿐이야.
[옥희] 그치만 22살이면, 아빠랑 엄마랑 결혼한 나이 아냐?  .. 〈1권 79∼80쪽〉


 철없는 어머니에 일찍 철든 딸. 여기에 마찬가지로 철이 안 든 스물두 살짜리 만화가. 철이 없기 때문에 더 ‘용감’하게 세상을 부딪힐 수 있겠지만, 철이 없기 때문에 얕은 이익에 따라 눈이 똥그래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얕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다가 쓴맛을 보며 세상을 배울 수 있고, 얕은 이익을 다부지게 내치면서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어려움과 보람을 익힐 수 있어요.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 ‘바른 길’이란 딱 하나만 있지 않으니까요.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놀이를 찾아서 살아갈 때가 가장 좋아요. 생각과 꿈과 집안 터전과 이웃이나 부모와 살아가는 곳이 모두 다른 우리들입니다. 키도 다르고 몸무게도 다르고 말씨와 얼굴과 몸매도 다른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다른 우리들이 다 똑같은 길을 갈 수 없겠지요. 이렇게 다른 우리들한테 다 똑같은 길을 가라고 하면 머리가 터지거나 홱 비뚤어질 수 있어요.


[옥희 엄마] 옥희는 시끄러운데도 잘만 자네. 게임방 집 딸은 역시 달라. 휴, 그나저나 거실이 아주 쓰레기장이네.
[판석] 귀찮은데 청소는 그냥 내일 하죠.
[옥희 엄마] 내 인생은 항상 이런 식이야. 정신차려 보면 항상 쓰레기 천지 속에 혼자 남아 있어. 대체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온통 쓰레기 천지야.
[판석] 누나?
[옥희 엄마] 제기랄! 다 지겨워! 거지 같은 게임방! 만날 이런 식이야! 사람들은 다 왔다가 가 버린다구! 내 상태가 조금만 안 좋아지면 다신 안 찾아와! 왜 내가 이렇게 거지같이 살고 있는 거야! 왜 내가 애 엄마야! 왜 내가 과부인 거야? ……
[판석] 누나는 하나도 잘못한 거 없어요. 그냥 조금 지친 것뿐이야. 누나가 아무리 그렇게 얘기해도 난 누나를 좋아해요. 내일 당장 게임방이 없어진다고 해도, 여기서 보낸 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  〈2권 156∼159쪽〉


 일본 만화 《도레미 하우스》를 보면, 하숙집에 깃들어 지내는 어린 학생과 새로 하숙집 임자가 된 젊은 홀어미 사이가 애틋하게도 되었다가, 서로 토라지기도 하며 조금씩 세상과 사람과 둘레 삶터를 깨달아 갑니다. 조금씩 무르익는 사람으로 발돋움하며, 차근차근 따사로운 사랑으로 부풀어간다고 할까요.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도 처음에는 철없이 살아가는 젊은 홀어미와 만화가가 나옵니다. 이들은 자기 삶을 ‘거지 같다’고 느끼지만, 참말로 거지 같은 일이 무엇인지, 자기가 왜 이렇게 자신을 깎아내려야 하는지, 자기가 바라는 꿈, 자기가 누리고 있는 그 젊음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게임방 임자인 옥희 엄마는 새로운 ‘손님’인 젊은 만화가를 집안에 받아들여 하숙(또는 사육)을 치고, 제멋대로 굴며 살던 만화가 판석은 잡지사 편집자한테 등떠밀려서 마감날짜를 꼬박꼬박 지키고 어디로 내빼지 못하게 되는 울타리인 게임방으로 살림(또는 갇힘)을 차리게 됩니다. 이리하여, 게임방은 그냥 게임방이 아니라, 막나가던 사람들 삶이, 앞이 시커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삶이, 그대로 이어가느냐, 이제부터 하나하나 달라지느냐 하는 갈림길로 거듭납니다.

 사랑방도, 게임방도, 또 빨래방이나 노래방도, 찻집이나 술집이나 밥집도, 하숙집이나 전세집 같은 우리네 살림집도 모두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에 나오듯이 ‘거지 같이 사는 꼬락서니’로 이어가는 곳이 될 수 있고, ‘내가 참으로 바라던 삶이 무엇인가 돌아보는 터전’으로 달라지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느끼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요. 내가 바라는 것이 돈인지 이름인지 힘인지, 아니면 꿈인지 믿음인지 사랑인지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길로 걸어가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이 만화책을 ‘거참, 재미있네’ 하고 덮을 수 있습니다. ‘음, 뭔가 아쉽네’ 하고 덮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둘레 사람들과 맺고 있는 끈’은 무엇이고 ‘내가 걷는 이 길’은 무엇인가 가만히 짚어 볼 수 있어요. 뭐, 책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받아들일 테니까요. (4340.3.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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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고 나서 눈이 내렸습니다. 방에 있느라 눈이 내린 줄 몰랐습니다. 잠깐 바람을 쐬려고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려다가 흠칫 놀랐어요. 하얗게 쌓인 눈,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았거든요. 아, 눈이구나. 이야, 눈이네. 낮에 쌀 사러 읍내에 마실을 갈 때 조금씩 흩날리더니, 그예 펄펄 내리는 눈으로 바뀌었군요.

 뽀독뽀독 눈을 밟아 볼까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합니다. 가만히 저 눈을 바라보기만 하렵니다. 그래 보았자 다가오는 새날 아침, 해가 반짝 비치면 슬금슬금 녹을 테지만.

 이렇게 눈이 오면 부랴부랴 눈을 쓰는 분이 있고, 눈이 와도 멀거니 구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한때 부랴부랴 눈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요사이는 눈을 쓸지 않습니다. 그냥 두어도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녹던걸요. 겨울이라 해도 한 주면 다 녹고요. 길에 쌓인 눈을 쓴다면, 자동차가 덜 미끄러지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자동차도 천천히 달리면 그다지 미끄러지지 않아요. 아니, 차가 미끄러질 만큼 눈이 많이 오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도 눈이 수북히 오는 일이란 없을 테며, 그저 몇 센티미터 오면 많이 왔다고 할 테지요. 이런 눈이라면 가만히 두고 눈을 즐기면 어떨까 싶어요. 눈싸움 할 만큼 많이 쌓이지 못했으니 눈싸움은 못하고, 눈사람도 못 굴리겠지만, 가만가만 눈길을 걸으며 눈을 느껴 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바라기를 하며 얼어붙은 하늘도 보고, 눈 덮인 산기슭에 짐승들 발자국이 있나 두리번두리번 살피기도 하고. (4340.3.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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