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하프 트루먼 커포티 선집 2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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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루먼 커포티[1]가 쓴 『풀잎 하프』[2]는 시적 문장이 돋보이는 경장편 소설이다. 주인공 ‘콜린 펜윅’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면서 나이 많은 사촌 누나 집에 얹혀산다. 예순 살이나 된 사촌 누나 두 명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여성이다. 언니인 돌리는 그림자처럼 조용한 성품으로 살림을 꾸리고 야생식물 부종약을 만들어 통신판매를 한다. 동생 베레나는 냉정하며 마을에서 가장 부자다. 식품점, 포목점, 주유소, 사무실 건물을 소유했다. 돈의 힘으로 지역 패권을 장악한 베레나는 집안에서도 제왕처럼 군림한다. 이재에 밝은 베레나는 돌리와 흑인하녀 캐서린이 만든 민간요법 부종약에 관심이 없었다. 소득세를 내야 할 만큼 벌이가 괜찮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사춘기 소년의 섬세한 관찰로 직조한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졌다. 길지 않은 분량에도 책을 덮고 나서 가슴에서 바스락거리는 아련한 흑백 영상미가 긴 여운을 남긴다.

 

■ 나-너-다름-차이-차별

전혀 다른 성격과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늙은 자매는 큰 갈등 없이 한 집에서 살아왔다. 서정적인 문체로 회고가 전개되는 가운데 이 책에서 중심에 뭉쳐있는 1930년대 금권주의 확산과 인류애라는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보존하려는 신시대와 구시대의 충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물질적 가치 앞에 인간의 정신적 유산이 얼마나 허약한지 드러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 가치를 더 조명한다.

 

인종·연령·재산 구별 없이 상처 있는 사람을 보듬는 돌리는 인류가 오랫동안 계승해온 인류애 가치를 지키는 상징이다. 대상 격차 없이 어떤 모습이든 존엄은 만물의 권리다. 돌리가 집시에게 배운 민간요법을 고집하고 다락방에 옛 물건을 보관하는 이유도 낡고 빛바랜 형태일망정 시간이 빚은 가치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록 삭아서 실용기능이 소멸되었으나 인류는 이런 흐름을 따라 존속했다. 신시대는 언제나 구시대를 밀어내고 찾아왔다. 이 작품의 인물들처럼 독신·미혼모·고아·무종교·떠돌이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삶”으로 매도되어 당분간은 계속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둘레를 보자. 소설과 다르지 않다. 집단이 정한 ‘평범의 잣대’와 “신의 섭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해받을 수 없는 이상함으로 왜곡된다. 심지어 전염병 환자처럼 사회에서 격리를 요구한다. 다수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아 희생되거나 사회구성원에서 특정대상으로 분류되고, 예비범죄자로 낙인이 찍힌다. 나 또는 집단과 다름을 교정이나 제거 대상으로 해석하는 이 불관용과 몰이해와 반수용의 배경은 무엇인가. 작가는 보안관(법)과 목사(종교)와 동조자(부화뇌동한 군중)를 폭력의 당사자로 한 줄로 꿰어 지목한다.

 

■ 따듯한 부엌

돌리가 살림을 하는 부엌은 늘 음식 냄새가 난다. 겨울에는 장작 스토브와 벽난로 열기가 온 집안을 데운다. 빵과 과자를 굽느라 설탕과 버터 냄새가 도파민[3]을 상승시켰다. 성에 낀 창문 밖은 찬바람이 불지만 털실 자수 융단이 깔린 부엌에는 제라늄 화분에서 별처럼 꽃이 핀다. 어린 고아였던 ‘나’는 부엌에서 숙제를 하고 직소 퍼즐을 풀었다. 돌리와 캐서린과 수다도 떨었다. 맛있고 넉넉한 음식, 추위를 달래 줄 불, 다정한 웃음소리. 심허증을 치유하기에 완벽한 장소다. 작가가 회고하는 부엌 풍경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세련된 문명을 흠뻑 수혈 받고도 우리가 왜 이렇게 외로운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옮긴이는 작가가 경험한 이 부엌을 가리켜 “인간의 온기를 배우고 문학적 유산”이 되었다고 평한다.


■ 풀잎 하프

이 책에 따르면, 풀잎 하프는 “들판이 석양처럼 붉게 물들고, 불빛 같은 진홍색 그림자가 그 위로 산들거리며 가을바람이 마른 잎사귀를 튕겨 내는 하프 같은 소리”로 묘사한다. 초록이 야윈 자리에 갈색이 늦가을 색깔로 등장할 때 마른 잎이 서로 부비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본 게 언제였을까. 이 작품에서 작가는 우리가 잊은 세피아 풍경, 이를테면 개발에 사라진 싱그럽던 자연풍경과 그 풍경에 섞였던 사람을 소환해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그 회상은 쓸쓸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나무 오두막의 소멸과 함께 서서히 사라진다. 돈으로 해결 될 수 없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돈의 힘이 지우지 못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늦가을 어느 풍경에 깃들었음을 작가는 영원히 잊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다.





-주 석-

[1] 트루먼 커포티(Truman Capote 1924년~1984년) : 미국 소설가. 기교적이고 감성적인 문체로 미국 현대문학에서 독특한 입지를 차지. “고독한 소년의 눈을 가진 작가”로 불리며 예민한 정서를 작품에 섬세하게 묘사했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Harper Lee)’와 소꿉친구이며 『앵무새 죽이기』에서 옆집 친구 ‘딜’의 실제 인물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인 콜드 블러드』,『차가운 벽』등을 썼다.

[2] 『풀잎 하프』(The Grass Harp) : 커포티가 26세인 1951년에 발표. 1930년대가 배경이다. 부모 이혼으로 나이 많은 사촌 누나와 잠시 살게 된 작가의 소년 시절 경험을 반영했다. “쓸쓸한 이들을 위로하는 소설”로 평가받는다.

[3] 도파민(dopamine) : 동·식물에 존재하는 뇌신경전달물체로 세포가 흥분하거나 억제되는 정도를 조절하면서 행복한 감정을 형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 광천공공도서관에 기고한 ‘11월의 책’ 소개이다.

2. 늦가을 분위기에 맞춰 오래전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정리했다.

3. 트루먼 커포티 작품 가운데『인 콜드 블러드』는 수작으로 꼽는데

작고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주연을 맡은 영화「커포티」

(한국에서는 제목을 「카포티」로 옮겼다)도 상당한 수작이다.

4. 『풀잎 하프』는 노먼 매클린 원작 『흐르는 강물처럼』과 같은 분위기를 품었다.

5. 커포티 작품은 초록이 사위어가는 11월을 관조하는 아련함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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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놀이공원이다 - 두근두근, 다시 인터뷰를 위하여
지승호 지음 / 싱긋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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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자유·평등·치유” 인터뷰 저널리스트 지승호가 펴낸 『타인은 놀이공원이다』를 물들인 말이다. 2018년 2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월간지 「인물과 사상」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골라 묶은 이 책은 다양한 프리즘으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본다.

 

교수, 작가, 의사, 배우, 변호사, 검사 등 인터뷰이 여덟 명 포지션만큼이나 다루는 주제도 다르다. 노동, 인권, 북한, 글쓰기, 성범죄까지 저마다 다른 경험과 시선으로 말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은 지옥이다”와 대칭되는 “놀이공원”이라는 제목을 단 밑그림이 보일 듯하다. 타인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세상으로 염원하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들의 바람이 겹친다.

 

이 책에서 포문을 연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답변은 명쾌하다. 소득불평등·양극화·차별, 천안함·세월호와 같은 굵직한 국가 참사를 개인의 문제로 가두는 바람에 아픈 사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김교수가 말하는 사회역학관계로 해석하면 개인의 아픔은 사회의 아픔이다. 개인과 사회는 상호 유기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파건 우파건 사람이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서 존엄성이 떠오른다.

 

이념을 떠나 아픈 사람을 살피거나 아프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은 인권이다. 인권은 공존의 의미를 톺고 합리적으로 실현하는 사회개념이다. 용기와 저항, 이해와 관용이 요구된다. 5.18 항쟁부터 군사정권에 저항해 온 강용주 의사는 “나의 존엄을 지키고자” 국가폭력의 야만에 저항했다고 한다. 피해자 구제 방안이 미비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어떨까. 성범죄에 대항한 이은의 변호사와 서지현 검사는 미비한 법적 장치와 사회 담론 부족을 지적한다. “입법 주체들 대부분이 이런 문제를 겪을 일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큰 고통임에도 왜곡과 은폐로 조작이 진행되면서 피해자가 설 자리를 잃을 때 존엄이 부재하므로 평등한 사회는 기대할 수 없다. 어떤 장애에도 방해 받지 않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사회에서 자기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미투에서 왜 진보, 보수를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 서지현 검사의 말은 진영논리에 빠진 한국 사회의 병폐를 폭로한 셈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 여덟 명은 평등과 자유의 보장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회라는 데에 입을 모은다. 김정은 국방위원장 행보에 영향을 끼치는 북한 전문기자 조성하가 가리킨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말처럼 불평등과 차별은 편향성에 기인한다. 뜨거운 주제를 차분하게 전개한 이 책에서 저자가 추리고 싶었던 것도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의 주체에 대한 고민으로 추정된다.




1. 농민신문사 발행 월간잡지 《전원생활》 11월호에 기고한 신간안내이다.

2.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은 대개 진보성향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서지현 검사나 김승섭 교수, 조성하 기자처럼 정치적 편향성 없는 인물들 인터뷰가 마음에 든다.

3. 이 책을 읽다 보면 인터뷰어는 공이 많이 드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저자의 수고가 느껴진다.

4. 3)과 관련해 서문을 읽으면 전업글쟁이의 소감이 찡하다.

5. 인터뷰 저널리스트가 많이 없다는 건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버릴려고 내놓은 오리아나 팔라치 책을 다시 들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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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목요일

맑음

 

공개 일기를 쓰면서 ‘관음증’을 생각하곤 한다. 자기검열이 없지 않다.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쓰는 게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쓰는 게 원칙이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의 기록’으로 가끔 들춰본다. 섣부르고, 자아과잉이고, 스스로 불만인 모습이 적나라하다. “그 외의 아무 것도 아닌” 이런 기록들은 언젠가는 소멸된다. 그 전까지는 불완전한 인간이 책에 기대 살았다는 기록으로 진행될 것이다.


“타인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 나의 자아를 엿듣는 자의 존재로 고정시켜 버린다. 나는 그렇게 들켜 버린 것을 부끄러워하며, 타인 앞에서 나 자신을 부끄러워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이 그에 의해 고정되고 있음을 체험하며 알아챈다. 들켜버린 상황 속에서 나는 타인이 바라보는 객체일 뿐, 그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앞에서 나는 마치 나무가 바람에 의해 휘어지고 있듯이 그렇게 나의 몸을 열쇠 구멍 위로 구부리고 있다.”

-프란츠 짐머만 《실존철학》

(이 책은 번역을 다시 하든가 교정을 다시 하든가해서 개정판으로 나왔으면 한다. 키에르케고르부터 야스퍼스, 사르트르, 카뮈, 헤겔, 하이데거까지 읽을 만한 분석이건만 문장이 엉망이다. 읽으면서 내가 싫어하는 과잉교정증후군에 걸릴 지경이다)

 

새벽에 많은 비가 내렸다. 마당이 깨지도록 들이붓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어제 까다 만 밤을 마저 까서 냉동실에 넣고 저녁에는 강의 원고를 손질했다. 일기를 쓰기 전에 뜨끈한 물을 받아 족욕을 했더니 통증이 가신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다. 늙은 몸아, 너도 참 고생 많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잠자리에 누울 때면 《어느 「고쿠라 일기」전 》에서 읽은 〈국화 베개〉가 생각났다. 하이쿠 시인 스기타 히사(杉田久) 모델인 누이(ぬい)가 57세에 병원에서 죽은 장면 말이다. “간호 일지에는 날마다 “혼잣말을 하다가 혼자 웃곤 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를 기쁘게 한 것은 무슨 환청이었을까”

 

복순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 강의를 진행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 내 놓았던 책꾸러미를 뒤적이다가 그 자리에서 몇 페이지를 읽게 되는 뜻밖의 글, 서늘한 밤공기에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맑은 밤이면 마당에 쏟아질 것 같은 별들, 화인이와 은숙이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

 

부조리가 없는 자유로운 이런 현상, 단순한 일상, 경멸하지만 단절시킬 수 없어 섞여야 하는 세계, 나는 어느새 결정적 관계보다 소멸될 가능성을 아는 관계에 길들여졌고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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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수요일

흐리고 비바람

 

“현대의 정치사상은 모럴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적인 모럴인 한 그것은 절대 순수한 모럴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럴 속에 들어갈 다른 성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진정으로 그것을 찾으려고 애쓰면 우리는 〈공동체가 사라지지 않고 이 사람 혹은 저 사람들이 죽는 것이 더 낫다〉라는 가야파식의 논리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르네 지라르 《희생양》에서 〈단 한사람만 죽으면〉

 

예수 수난은 빌라도·유다·베드로·가야파(Caiphas), 그리고 군중이 개입됐다. 대사제 가야파가 예수 한 명을 죽이는 일만이 이스라엘 전체의 안녕을 위한다고 했듯이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희생물은 ‘무엇무엇을 위해’라는 구호 속에 제단에 올려졌다. 르네 지라르는 “희생물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유혹”이 희생양을 만든다고 한다. 군중이 외치는 ‘무엇무엇을 위해’라는 고함이 매번 옳거나 바르거나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와 + 만 생각하지 말고 ×와 ÷ 가 섞일 수는 없(었)을까. 


비가 종일 내렸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주름진 얼굴로 창문을 때리고 지나가는 비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군중에서 멀어진 지 오래됐다. 뽀얀 생 밤 한 알을 또각또각 칼로 저며 와인 한 잔 마시고 잘 생각이다. 젊었을 때 기억 몇 뭉치가 잠시 뿌옇게 떠오르다가 고자누룩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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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화요일

흐리고 미세먼지 나쁨

 

태풍이 올라온다고 해서 큰오빠와 밤을 땄다. 지난해에는 20킬로그램이나 되서 밤 묵을 만들어 먹어 봤는데(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두 번은 못 한다), 올해는 8킬로그램 나왔다. 내일은 종일 집안에 들어 앉아 밤 깔 일만 남았다. 저녁 뉴스에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14건 범행 자백”이 뜬다. 화성 살인 사건은 내 기억에 처음으로 ‘연쇄살인’을 각인시킨 사건이다. 돌이켜보니 승합차 납치 사건도 많았던 시기였다.

 

지난달 도서관 독서모임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을 다루면서 로쟈보다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더 조명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열네 살 소녀를 유린해 자살에 이르게 하고, 하인을 학대해 죽게 했다. 아내 죽음도 석연치 않다. 살해 의혹이 짙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사기도박으로 수감되었다가 3만 루블을 갚기 위해 돈 많은 과부를 농락한 장본인이다. 


로쟈 본명인 라스꼴리니꼬프 이름에서 ‘Raskol’은 러시아어로 ‘분열’, ‘단절’, ‘구교도’를 일컫는다. 그래서 로쟈는 초인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반면 내면에서는 갈등과 고뇌로 몸부림친다. 대립된 두 개의 성향을 가진 로쟈가 ‘흔들리는 이상주의자’인 반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속악(俗惡) 그 자체다.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도덕과 이상을 설명하는 로쟈에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들판에 열린 딸기라고 했던 겁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사람을 죽인 로쟈의 어두운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같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선과 악의 차이가 없고 선과 악, 도덕과 양심을 따지는 일이 무의미하다. 자기가 악행을 저지르면서 자기의 자유를 시험하고 심지어 그 일이 악행인지 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이렇게 악에 무개념인 사람은 양심이 평온하다.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혈색마저 좋은” 이런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외려 환경을 이용해 자기의 삶을 진행시키는데 능숙하다. 그렇다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누구인가. 나는 로쟈의 악몽에서 떨어져 나온 분신이라고 말했다. 로쟈가 인류애적인 가치와 사회 공공의 선, 즉 도덕과 정의와 자유를 고뇌한다면(물론 로쟈는 현실적으로 무능한 도스토예프스키와 닮았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철저히 자기욕망에 충실한다. 추악하고 더럽고 음탕한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온전한 세계일뿐이다. 그 세계가 자기를 위해 지탱해주지 못할 때 사라지는 것은 필연이므로 자살로 존재를 상실하는 설정은 당연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성폭행치사 사건이 아니라 여성혐오범죄 사건이다. 프로파일러 추정에 따르면 용의자는 피해자의 신체를 잔혹하게 훼손하면서 피해자가 극도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봤을 것으로 여긴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갈등하지 않는 사람, 자기 신념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무섭다. 소설 속 스비드리가일로프야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였지만 현실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어떻게 해야 하나. “혈색마저 좋은” 그 악에 희생되고, 희생됨을 지켜보고, 지켜보면서 “같은 들판에 열린 딸기”로 인류가 여기까지 왔다. 악을 악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새하얀 사고, 나의 악몽을 지배하는 무엇, 무의식의 얼음장 밑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큰 빙산....뉴스 한 토막에 여러 생각이 넘나든다. 


피해자들의 원혼이 지금이나마 해원되기를 합장하며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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