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나서 눈이 내렸습니다. 방에 있느라 눈이 내린 줄 몰랐습니다. 잠깐 바람을 쐬려고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려다가 흠칫 놀랐어요. 하얗게 쌓인 눈,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았거든요. 아, 눈이구나. 이야, 눈이네. 낮에 쌀 사러 읍내에 마실을 갈 때 조금씩 흩날리더니, 그예 펄펄 내리는 눈으로 바뀌었군요.

 뽀독뽀독 눈을 밟아 볼까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합니다. 가만히 저 눈을 바라보기만 하렵니다. 그래 보았자 다가오는 새날 아침, 해가 반짝 비치면 슬금슬금 녹을 테지만.

 이렇게 눈이 오면 부랴부랴 눈을 쓰는 분이 있고, 눈이 와도 멀거니 구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한때 부랴부랴 눈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요사이는 눈을 쓸지 않습니다. 그냥 두어도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녹던걸요. 겨울이라 해도 한 주면 다 녹고요. 길에 쌓인 눈을 쓴다면, 자동차가 덜 미끄러지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자동차도 천천히 달리면 그다지 미끄러지지 않아요. 아니, 차가 미끄러질 만큼 눈이 많이 오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도 눈이 수북히 오는 일이란 없을 테며, 그저 몇 센티미터 오면 많이 왔다고 할 테지요. 이런 눈이라면 가만히 두고 눈을 즐기면 어떨까 싶어요. 눈싸움 할 만큼 많이 쌓이지 못했으니 눈싸움은 못하고, 눈사람도 못 굴리겠지만, 가만가만 눈길을 걸으며 눈을 느껴 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바라기를 하며 얼어붙은 하늘도 보고, 눈 덮인 산기슭에 짐승들 발자국이 있나 두리번두리번 살피기도 하고. (4340.3.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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