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꽃 책읽기

 


  사람들이 꽃 이야기를 더는 하지 않는 이른가을, 들깨는 조용히 꽃망울을 터뜨린다. 줄줄이 작은 꽃송이를 맺는다. 들깨는 꽃이 지고 자그마한 열매가 맺었을 적에 꽃송이를 통째로 꺾어서 튀겨 먹어도 맛나지. 잎사귀를 먹어도 즐겁고, 가만히 냄새를 맡아도 좋다. 참깨꽃처럼 꽃송이가 커다랗지 않아 눈에 잘 안 뜨일 만한 들깨꽃이지만, 한여름부터 이른가을까지 붉은 꽃망울 곱게 드리우는 봉숭아하고 나란히 밭두둑을 빛낸다. (4345.9.7.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과 도시와

 


  기차는 서울을 천천히 벗어난다.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플라스틱과 쇠붙이로 가득한 서울을 천천히 벗어난다. 곰곰이 따지면 시멘트도 플라스틱도 자연에서 나왔다. 자연에 있던 것들을 여러모로 섞고 엮어 시멘트이니 플라스틱이니 만들었다. 그런데 이 도시도 자연이랄 수 있을까?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지었으니 자연일까? 아무렴, 자연일 테지. 자연이면서 스스로 자연인 줄 잊고, 자연이되 이웃 자연과 동무 자연을 죽이거나 짓밟거나 괴롭히며 떵떵거리는 자연일 테지. 서울에서는 나무마다 줄기가 새까맣고 가지마저 새까맣다. 잎사귀만 겨우 풀빛인데, 줄기도 가지도 잎사귀도 빗물에 씻기고 햇볕을 머금어도 제 결과 무늬가 살아나지 않는다. 도시사람은, 서울사람은, 숲에 발을 들인 적 있을까. 도시 어른은 도시 아이들한테 풀포기 하나 나무 한 그루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나하나 돌이키면, 도시 어른은 스스로 자연인 줄 헤아리지 않는다. 스스로 어떤 자연인 줄 살피지 않으면서 아이들 또한 굴레에 갇히도록 내몰고 만다.


  기차는 큰도시 작은도시 거치며 시골로 접어든다. 이제 시골에도 읍내에 아파트가 올라서지만, 시골은 논밭으로 이루어진다. 시골은 도시보다 훨씬 넓다. 시골이 있어 도시가 살아간다. 시골이 있기에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살아낼 수 있다. (4345.9.4.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풀개구리 살아가는 마음

 


  풀개구리는 풀숲에서도 살고, 논에서도 살며, 샘가에서도 삽니다. 그리고 사람들 살림집 한켠 물꼭지 둘레에서도 삽니다. 집 바깥에 있는 물꼭지 둘레는 촉촉하면서 풀숲을 작게 이룹니다. 조그마한 풀개구리는 고무통에 들어가 물놀이도 하고, 길다란 물호스에 앉거나 물꼭지에 올라앉아 쉬기도 합니다. 내가 물꼭지를 틀러 다가가면 가만히 있다가 시멘트벽으로 폴짝 뛰어 꼼짝을 않기도 하고, 때로는 안쪽으로 깊이 내빼기도 합니다. 물이 있고 풀이 있으며 집이 있으니, 풀개구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보금자리가 됩니다. (4345.9.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경주남산 (컬러판)
강우방 외 지음, 강운구 사진 / 열화당 / 199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에 담긴 사람들 말
 [찾아 읽는 사진책 110] 강운구, 《경주 남산》(열화당,1987)

 


  사람들이 사진을 찍은 지 백 해 남짓 흐릅니다. 이동안 사진은 사람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립니다. 이제 서로서로 얼굴이나 몸을 살필 때에 사진은 아주 알뜰히 쓰입니다.


  사진이 없던 지난날에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던 지난날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그림을 그리거나 건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붓과 종이는 아무나 손에 쥘 수 없었거든요. 사람 삶터를 계급과 신분과 돈으로 나누던 슬픈 지난날에는 계급과 신분과 돈을 손에 쥔 사람만 붓과 종이를 놀려 그림을 누릴 수 있었어요.


  오늘날은 종이가 넘칩니다. 붓도 연필도 볼펜도 넘칩니다. 게다가, 사진도 넘칩니다. 너무 가난한 나머지 손전화 기계조차 없다면 사진을 누리지 못할 테지만, 손전화 기계 하나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손전화 기계로 사진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계급과 신분과 돈이 얼마 없거나 아예 없다 하더라도 사진이든 그림이든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사진이 넘치는 오늘날, 이 땅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얼마나 어떻게 누릴까 궁금합니다. 사진도 그림도 가까이할 수 없던 지난날 여느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바라보고 마음으로 아로새겼을까 궁금합니다.


  아주 마땅하지만, 붓과 종이를 마음껏 누리던 이들은 ‘얼굴그림’쯤이야 쉽게 그리고 쉽게 건사했겠지요. 집식구도 그리고 살림집 모습도 그리며 아름답다 하는 멧자락이나 냇물이나 바다를 그림으로 담았겠지요.


  지난날 여느 사람들은 붓과 종이를 손에 쥐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흙을 일구고 물을 만지던 여느 사람들은 이녁 삶을 붓과 종이로 담지 못했어요. 이른바, 씨앗이라든지 물고기라든지 고기잡이배라든지 길쌈이라든지 부엌이라든지 솥이라든지 나물캐기라든지 밥그릇이랑 수저라든지, 기저귀 빨래라든지 팥·수수·콩·서숙 같은 곡식이 그림으로 담기는 일이란 없어요. 어쩌다 한두 차례 이런저런 모습이 그림으로 곁들여지기는 하더라도 옳고 바르며 알맞게 그림으로 담기지는 않아요. 그저 먼발치 구경거리로만 담을 뿐이에요. 삶으로, 눈물로, 웃음으로, 기쁨으로, 이야기로 담는 ‘지난날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 그림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여기지만, 콩꽃이나 팥꽃이나 수수꽃이나 장다리꽃이나 부추꽃을 그림으로 그리던 ‘옛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니, 오늘날에도 오이꽃이나 박꽃이나 찔레꽃이나 감꽃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눈부시거나 아름답다 하는 꽃을 사진으로 찍는 오늘날 사람이에요. 멋들어지거나 훌륭하다는 멧자락이나 냇물이나 들판이나 바다를 사진으로 찍는 오늘날 사람이에요. 그런데, 콩꽃이나 마삭줄꽃이나 마늘꽃이나 호두꽃을 사진으로 찍는 오늘날 사람은 어디에 얼마쯤 있을까 궁금해요. 사진을 찍는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사진으로 아로새기고 싶을까요.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어떤 삶을 그림으로 옮기고 싶을까요. 글을 쓰는 이들은 어떤 사랑을 글에 나타내고 싶을까요.

 


  ‘신라정토의 불상’을 보여준다는 사진책 《경주 남산》(열화당,1987)을 읽습니다. 강운구 님이 사진을 찍고, 김원룡·강우방 두 분이 글을 붙입니다. 신라 불교, 신라 불상, 신라 문화를 보여준다고 하는 “경주 남산”이라고 해요. 강운구 님은 해가 뜨고 지는 흐름을 잘 살피고 맞추며 어여쁜 빛깔로 “경주 남산”과 “불교 문화재”를 잘 보여줍니다. 아마 한국에서 “경주 남산”을 《경주 남산》처럼 잘 보여주고 아름답게 갈무리한 사진책은 더 없지 싶어요. 차근차근 바라보고 햇살 흐름에 따라 결과 무늬를 돌아봅니다. 가까이에서 지긋이 바라보고, 멀리서 가만히 바라봅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고운 비바람이 오래도록 스치며 천천히 닳은 보드라운 돌무늬와 돌결을 사진 하나로 예쁘게 살립니다. 사진책 《경주 남산》은 나라밖으로 얼마든지 뽐낼 만한 훌륭한 ‘한국 문화’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한 가지 궁금합니다. 천 년이 지난 오늘날이 아닌, 오늘날부터 다시 천 년이 지난 3000년대쯤 되면 이 돌무늬와 돌결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앞으로 천 년이 더 지나면 이 사진 몇 장으로만 돌무늬와 돌결이 남을까요. 천 년이 더 지나 4000년대쯤 되면 이 돌결과 돌무늬를 건사하려고 “경주 남산” 곳곳에 기와집을 지어 지붕을 덮어야 할까요. 아니면, 돌에 새긴 빛인 만큼 돌이 천 년 만 년 흐름에 따라 닳고 낡고 쪼개지고 바스라지듯, 이 돌결과 돌무늬도 천천히 스러지도록 살포시 놓아 두려나요.


  그나저나, 천 년 앞서 신라 적에도 ‘돌에 불상을 새기’는 일은 했으나, ‘여느 사람들 삶을 아로새기거나 갈무리하’는 일은 안 했습니다. 신라가 사라진 천 년 뒤 오늘날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삶을 아로새기거나 갈무리하’는 일은 좀처럼 안 보입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까요. 문화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삶이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까요. 역사로 남길 만한 삶과 문화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까요. 사진은 어디에서 어떤 삶을 바라볼까요. 사진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을 마주할까요. 2000년대 오늘날에는 ‘개신교 문화’나 ‘천주교 문화’를 사진으로 아로새기거나 갈무리해서 앞으로 천 년 뒤가 될 3000년대 뒷사람한테 사진책 하나 남겨야 옳을 노릇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2000년대 오늘날부터 천 년을 버텨 3000년대까지 이어지는 ‘개신교 문화’나 ‘천주교 문화’가 된다면, 천 년 뒤 사진쟁이들도 비로소 사진으로 찍겠지요. 오늘 이곳에서 사진기 손에 쥐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나눌 이야기, 남길 이야기, 즐길 이야기, 누릴 이야기는 어디에서 어떻게 빚고 빛낼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 말을 읽습니다. 문화재 한 점이든 열 점이든, 이 문화재를 정과 망치로 깎고 새긴 사람들 말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이 문화재를 만들라고 위에서 시키고, 누군가는 이 문화재를 만들려고 아래에서 땀흘립니다. 누군가는 이 문화재를 만들도록 시키며 손에 붓과 종이를 쥐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문화재가 만들어지도록 들판과 바다에서 땀흘리며 곡식을 거두거나 고기를 낚았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 삶에 얽힌 말이 고즈넉하게 깃드는 사진을 읽습니다. (4345.9.6.나무.ㅎㄲㅅㄱ)

 


― 경주 남산 (강운구 사진,김원룡·강우방 글,열화당 펴냄,1987.7.20./12만 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 살아가는 말 107] 창문바람

 

  네 식구 함께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 가까이 달리면서 옛날 일을 떠올립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기차에도 ‘열고 닫는 창문’이 있었어요. 따로 에어컨이 없었고, 누구나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며 여름날 더위를 식혔어요. 인천에서 떠나 서울로 가는 전철도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도록 했습니다. 시내버스는 아주 마땅히 창문을 열어 여름날 더위를 식히도록 했어요. 시외버스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도록 했습니다. 어느 버스이든 찬바람이 휭휭 나오지 않았어요. 이때에는 택시나 자가용에서 나오는 에어컨 찬바람이 퍽 놀랍다 싶기도 하면서, 창문바람 아닌 기계바람이라 그리 내키지 않았어요. 차를 타면 기차이든 버스이든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시원하구나 하고 느꼈어요. 도시에서는 창문바람이 시원하기는 하더라도 상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시원스러운 바람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버스나 기차에 바람이 고이지 않도록 합니다. 봄에는 봄 기운을 느끼고 가을에는 가을 기운을 느껴요. 시외버스가 도시 바깥을 달릴라치면 ‘아, 바람맛이 달라졌네?’ 하고 느낍니다. 기차가 시골 논밭 사이를 달릴라치면 ‘이야, 바람맛이 푸르구나!’ 하고 느껴요. 꽁꽁 닫혀 열 수 없는 기찻간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창문바람을 쐬지 못한다면, 곡성을 달리건 구례를 달리건 임실을 달리건, 아이들은 시골마을 푸른 숲을 느낄 수 없습니다. 눈으로는 바라볼는지 모르나, 바람을 쐬지 못하니 이내 고개를 돌려 손전화나 다른 것에 눈길마저 휩쓸립니다. (4345.9.5.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