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흙놀이 누나와 함께

 


  흙놀이를 하는 누나 곁에 붙어서 누나가 무엇을 하는지 들여다보는 산들보라는 아직 누나처럼 흙을 한 곳으로 그러모아서 쌓거나 토닥일 줄 모른다. 그래도 머잖아 누나랑 마당 한켠에 나란히 쪼그려앉아서 저희끼리 흙쌓기를 하며 놀겠지. (4345.10.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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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숨결을 깨우는 소리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6] 오진태, 《바닷소리》(세명출판사,1981)

 


  바닷가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은 늘 바닷소리를 듣습니다. 들판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들소리를 듣습니다. 멧골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은 노상 멧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사람이라면 시골에서 나서 자랐다는 뜻이니, 시골소리를 듣고 자란 셈입니다. 도시사람이라면 도시에서 나서 자랐다는 뜻이라, 도시소리를 듣고 자란 셈일 테지요.


  바다에는 어떤 소리가 흐를까요. 들판에는 어떤 소리가 감돌까요. 멧골에는 어떤 소리가 떠돌까요. 시골에서는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나요. 도시에서는 어떤 소리에 휩싸여 살아가나요.


  소리가 한 사람을 키웁니다. 내음이 한 사람을 돌봅니다. 빛깔이 한 사람을 북돋웁니다. 무늬가 한 사람을 살찌웁니다. 보고 듣고 겪고 마시고 느끼고 마주한 모든 것이 한 사람 숨결로 깃듭니다.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그르거나 맞는 것은 없습니다. 차근차근 흐르고 하나하나 흘러 한 사람 넋으로 이루어집니다.


  1936년에 경상남도 충무에서 태어나 부산 동래구 장전2동에서 살아간다고 하던 오진태 님이 1981년에 내놓은 사진책 《바닷소리》(세명출판사)를 읽습니다. 부산 한켠에서 조용히 내놓은 사진책 《바닷소리》는 그야말로 부산 한자락에서 조용히 읽혔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닷소리를 생각하는 사진을 찍고, 바닷소리를 헤아리는 사진을 읽습니다. “갯가에서 나서 갯가에 살고 있읍니다(맺음말).” 하는 말처럼, 갯가에서 나서 자라며 늘 마주하던 삶을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담습니다.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사진으로 담지 않습니다. 더 구지레하거나 낡게 보이도록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늘 보던 대로 사진으로 담습니다. 늘 느끼던 대로 사진으로 찍습니다. 늘 마주하고 바라보며 겪던 대로 사진으로 옮깁니다.

 

 

 


  글을 쓰는 이들이 이녁 어린 날이나 푸른 삶을 꾸밈없이 적바림하듯, 사진쟁이 오진태 님은 이녁 어린 날이나 푸른 삶 바닷가 바닷소리를 꾸밈없이 사진으로 다시 빚습니다.


  1930년대나 1940년대 바닷가 바닷소리를 1960년대나 1970년대에도 사진기 하나 손에 쥐고서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2000년대나 2010년대로 접어든 오늘날 사진책 《바닷소리》는 오래도록 흐르는 바닷내음이나 바닷빛깔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문득 사진책을 덮습니다. 바닷사람이 바닷소리를 사진책으로 내놓는다면, 들사람은 들소리를 사진책으로 내놓을 만하고, 멧사람이 멧소리를 사진책으로 내놓을 만해요. 그러면, 들사람 이야기를 담은 사진책이나 멧사람 삶자락을 실은 사진책은 우리 둘레에 얼마나 있을까요. 수수하거나 투박하면서 즐겁게 누리는 하루를 고이 담는 사진책은 우리 곁에 얼마나 있는가요.


  오늘날 젊은 사진쟁이는 으레 ‘만듦사진(메이킹포토)’으로 흐릅니다. 사진을 만들지 않고서는 ‘사진찍기’를 할 수 없는 듯 여깁니다. 더없이 마땅한 흐름이라 할 텐데, 오늘날 젊은 사진쟁이는 사진길을 걷기 앞서 어린이집·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만들어진 틀’에서 시험공부만 해야 했어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도록 내몰려요. 어른들은 아이들을 ‘만들어진 틀’에 집어넣고는 다섯 살 어린이나 열 살 어린이일 적에도 서울에 있는 이름난 몇몇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만들어진 틀’ 바깥에서 홀가분하게 뛰놀도록 풀어놓지 않습니다.


  즐겁게 뛰놀지 못한 아이들이 사진기를 손에 쥔다 해서 ‘삶을 사진으로 빚는’ 길을 깨닫지 못해요. 그동안 길들여진 대로 ‘만들어진 틀 틈바구니에서 무언가 다시 만드는 얼거리’를 짤 뿐이에요. 사진을 찍는 삶과 사진을 읽는 삶을 누리지 못해요. 자꾸 새로운 예술을 하거나 놀라운 문화를 해야 하는 듯 생각하고 말아요.

 

 

 


  오진태 님은 “이제 여기 몇 점 바다 내음의 조각들을 모아 보았읍니다(맺음말).” 하는 말을 붙이며 사진쟁이 말을 마감합니다. 책끝에 실은 오진태 님 모습은 최민식 님이 찍어 주었습니다. 같은 부산에서 서로 사진으로 만나고 사귀었겠구나 싶습니다. 최민식 님은 오진태 님을 반가운 동생으로 여기고, 오진태 님은 최민식 님을 고마운 형으로 여겼을까요. 서로 다른 사진을 찍지만, 서로 같은 사진길을 걸으면서 즐거이 어깨동무를 했을까요. 오진태 님은 1969년에 중앙일보 사진콘테스트 금상을 받고, 1975년에 신동아 초대작품 14점 ‘바다의 삶’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1981년에 《바닷소리》를 내놓은 다음 어떤 사진빛을 이루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닷사람이 바닷내음 맡으며 바닷소리를 ‘바다삶’으로 들려주는 사진책 《바닷소리》를 읽으며 바다를 그릴 수 있어 즐겁습니다. 바다를 그리면서 내가 살아가는 터전을 그려 봅니다. 바닷내음을 맡으며 내가 살아가는 시골자락 시골내음은 어떤 기운이나 넋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바닷빛깔을 느끼며 우리 집 두 아이가 누리는 시골빛은 어떤 꿈결이 되어 맛난 밥이 될까 하고 가눕니다.


  숨결을 깨우는 소리입니다. 봄에는 제비가 처마 밑으로 찾아와 봄소리를 들려줍니다. 가을에는 처마 밑 둥지를 떠난 제비에 이어 누런 들판을 누비는 뭇새들 노랫소리가 가을소리 되어 찾아듭니다. 시골자락 바람소리에는 별빛이 묻어나고 햇볕이 스밉니다. 시골마을 들소리에는 풀벌레 노랫소리가 천천히 어립니다. 어린 아이들은 마음껏 마당을 뛰놀고, 집안을 뒹굽니다. 까르르 웃고, 넘어져 울고, 밥먹으며 게걸스럽고, 잠들며 색색 고요합니다. (4345.10.14.해.ㅎㄲㅅㄱ)

 


― 바닷소리 (오진태 사진,세명출판사 펴냄,1981.8.23.)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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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9) 굿바이(good bye)

 

굿바이, 길었던 나의 봄이여
《타니카와 후미코/이지혜 옮김-편지》(대원씨아이,2012) 109쪽

 

  “길었던 나의 봄이여”는 “길었던 내 봄이여”나 “길었던 봄이여”처럼 적어야 알맞습니다. ‘나 + 의’ 꼴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투가 아주 널리 퍼져요. 어른도 어린이도 이와 같이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책에도 영화에도 ‘나의’가 나타납니다. 이제 이러한 말투를 한국 말투로 삼아서 써야 할까요. 이곳저곳에 수두룩하게 쓴다 하더라도 한국 말투가 아닌 만큼 올바로 가다듬어야 할까요.


  한글로 적은 ‘굿바이’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국어사전에서 이 낱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어사전에서 ‘good bye’를 뒤적여야 “안녕히 가세요, 작별 인사.”와 같은 말풀이를 찾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굿바이’라는 영어도 ‘나의’와 똑같이 널리 쓰여요. 사람들은 그냥저냥 한국말처럼 삼습니다.

 

 굿바이
→ 잘 있어
→ 잘 있으렴
→ 잘 지내렴
→ 어서 가렴
 …

 

  ‘굿바이’도 ‘good bye’도 영어입니다. 한국말이 아닙니다. ‘안녕’도 ‘安寧’도 중국말 또는 일본말 또는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잘 가.”나 “잘 있어.”입니다. “잘 가셔요.”나 “잘 계셔요.”입니다. (4345.10.14.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잘 있어라, 길었던 봄이여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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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61) 존재 161 : 분명히 존재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다
《타니카와 후미코/이지혜 옮김-편지》(대원씨아이,2012) 109쪽

 

  ‘그러하지만’을 잘못 간추려 적는 ‘하지만’은 ‘그렇지만’으로 바로잡습니다. “근본적(根本的)인 부분(部分)에서”는 “밑바탕에서”나 “처음부터”나 “깊은 뿌리에서”나 “저 깊은 곳에서”로 손볼 수 있어요. ‘분명(分明)히’는 ‘틀림없이’나 ‘어김없이’로 손봅니다.

 

 분명히 존재했다
→ 틀림없이 있었다
→ 어김없이 도사렸다
→ 꼭 감돌았다
→ 반드시 흘렀다
 …

 

  있기에 ‘있다’고 말하는데, 흐름이나 기운이나 느낌이 있다고 할 때에는 ‘도사리다’나 ‘감돌다’나 ‘흐르다’나 ‘맴돌다’ 같은 낱말을 넣어서 나타낼 수 있어요. ‘쌓이다’나 ‘고이다’나 ‘넘치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어울립니다.


  보기글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보였다”나 “어쩔 수 없는 것이 드러났다”처럼 적어도 돼요. ‘불거지다’나 ‘나타나다’나 ‘튀어나오다’같은 낱말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4345.10.14.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렇지만 저 깊은 곳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꼭 불거졌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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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고립되었다 - 기륭전자비정규직투쟁 1890일 헌정사진집
정택용 사진, 송경동.기륭비정규투쟁승리 공대위 기획 / KCWC(한국비정규노동센터)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뜻밖에도 이 사진책에 붙은 느낌글(서평)이 거의 안 보인다.

사람들이 입으로는 기륭 기륭 비정규직 비정규직... 을 읊지만,

정작 이들 이야기를 담은 책을 사서 읽으며 나누려는 마음은 얕은가.

 

..

 

 

 


 얼굴 찡그리는 싸움은 없다
 [찾아 읽는 사진책 117] 정택용, 《너희는 고립되었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2010)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0일 헌정 사진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 《너희는 고립되었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정택용 님이 여섯 해에 걸쳐 기륭전자 일꾼들을 만나며 담은 사진책이라 하는데, 책 첫머리에 기륭전자비정규 분회 일꾼이 “우리 얼굴에 이런 미소가 있음을 자꾸 확인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지갑 속에 이 사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여는 글).” 하고 적바림합니다. 여섯 해에 걸쳐 비정규직 싸움을 하는 동안 정택용 님은 바지런히 사진을 찍었고, 정택용 님이 찍은 사진 가운데 ‘활짝 웃는 모습’이라든지 여러 모습을 종이에 뽑아 나누어 주었다고 해요. 거의 아줌마로 이루어진 오랜 나날 싸우는 이들은 사진에 담긴 당신들 얼굴을 보며 다시 웃는다고 합니다. 웃는 얼굴 담긴 사진은 웃음을 새삼스레 불러들이고, 웃는 얼굴로 싸운 기나긴 나날은 웃음을 씨앗으로 뿌립니다.


  사진쟁이 정택용 님은 “그깟 사진으로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급박한 싸움 중에서도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돌아가며 연락을 해 준 분들이 기륭분회 조합원들이셨다(작업노트).” 하고 말합니다만, 사진은 ‘그깟 사진’이 될 수 있지만 ‘고마운 사진’이나 ‘반가운 사진’이 될 수 있어요. ‘즐거운 사진’이나 ‘아름다운 사진’이 될 수 있어요. 정택용 님은 사진 하나로 “폭력을 막을 수 없”는 듯 여기지만, 참말 사진 하나 있기에 “폭력을 막”거나 “싸움을 끝내”기도 해요. 요즈음은 전투경찰이나 사복경찰도 사진기를 들고는 마구 사진을 찍는데, 가녀린 이들한테 휘두르는 주먹다짐을 누군가 곁에서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주먹다짐이 곧잘 움추러들곤 해요. 사진기자도 신문기자도 방송기자도, 그야말로 ‘뭣도 아니라’ 할 만한 사람이 고작 사진기 하나 들며 바라볼 뿐이지만, 사진기 앞에서 그야말로 “폭력이 수그러들”기도 해요. 나도 이 같은 일을 숱하게 보고 겪었어요. 중앙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오지 않는 조그마한 집회, 이를테면 재개발과 막개발을 밀어붙이는 골목동네 한켠에서 공무원과 건설업자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밀어붙이는 자리라든지,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회 같은 자리에 사진기 하나만 들고 함께 있을 뿐인데, 사진기 하나가 제법 힘을 써요.


  어떻게 사진기 하나가 힘을 쓸까 아리송하다가도, 몇 시간쯤 조그마한 집회에 함께 있다 보면, 시나브로 가슴속으로 스미는 느낌이 있습니다. 삶에 좋고 나쁨은 없지만, 얄궂은 몸짓으로 슬픈 생채기를 내려는 이들은 ‘누군가 지켜보는 눈길’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작은 사진기 하나를 든 작은 구경꾼 하나조차 두려워합니다. 거꾸로, 중앙언론사 사진기나 촬영기가 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며 주먹다짐을 휘두르는 이들은 두려움이 없어요. 두려움이 없기에 그네들 주먹다짐이 사진이나 방송으로 찍히건 말건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쳐다보지 않아요. 그네들은 두려움이 없으니 사진으로 수두룩하게 찍혀도 외려 고개를 뻣뻣이 듭니다. 두려움 없는 주먹다짐은 작은 사람들을 무시무시하게 짓밟아요. 이를테면, 1980년 광주에서 외신기자가 사진을 찍건 말건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였어요.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 또한 외신이건 내신이건 사진을 찍든 말든 사람들을 끔찍하게 짓밟거나 죽였어요. 이런 일 저런 모습을 살핀다면, 어느 모로 볼 때에 ‘그깟 사진’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깟 사진’이 아닌 ‘반가운 사진’이 되기 일쑤예요. 권력자가 그야말로 초라하거나 자그맣다 여기는 기륭전자 일꾼은 서로 똘똘 뭉쳐 여러 해에 걸쳐 맞서거든요. 참 많은 이들은 ‘싸움이 될 수 없다’고 여기지만, ‘숫자로 얼마 안 되는’ 작은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여러 해에 걸쳐 맞서 싸워요. ‘그깟 비정규직 몇 사람’이 오래도록 힘을 내며 슬기롭게 싸우고, ‘그깟 아줌마 몇 사람’이 여러 해에 걸쳐 활짝 웃으며 즐겁게 싸워요.

 


  정택용 님은 “6년의 기억을 톺아보는 것이 괴로운 일만은 아니었다.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추위와 비바람에 맞서면서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덮쳐도 조합원들한테는 항상 웃음이 있었다. 그 폭력에, 막막함에 먼저 지쳐 떨어져나가는 것은 부끄럽게도 조합원들이 아니라 카메라였다(작업노트).” 하고 밝힙니다. 사진을 찍는 정택용 님이 힘들다 여기고 고되다 여기더라도, ‘그깟 몇 안 되는 조합원’은 힘이 들면 힘이 드는 대로 드러누워 쉬다가도 다시금 벌떡 일어나서 싸움판을 일구어요. 고된 나날 눈물짓거나 한숨지으며 하루하루 보내다가도 새삼스레 떨쳐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쥐어요. 왜냐하면, ‘늘 웃으며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웃음이 있어 삶이 있습니다. 웃음이 있는 싸움판입니다. 아니, 싸움판이라는 낱말은 걸맞지 않습니다. 웃음이 꽃피우는 일판이요 삶판입니다.


  얼굴 찡그리는 싸움은 없습니다. 신문기자나 사진기자가 으레 ‘얼굴 찡그리며 두 주먹 불끈 쥐고 하늘을 찌르는 모습’만 사진으로 찍어서 내보내 버릇하니까, 집회가 언제나 이런 모습인 양 잘못 아는데, 서울시청 앞 너른 터에서 이루어지는 집회이든,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는 조그마한 집회이든, 사람들은 늘 웃습니다. 싸움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크게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집회를 연다는 뜻은 싸움에서 홀가분하다는 소리입니다. 집회를 여는 이들은 이기고 지는 금긋기가 아닌, 스스로 펄떡펄떡 숨쉬고 살아가는 빛나는 목숨이라고 밝히는 꿈꾸기를 생각합니다.

 


  목청을 높여 외치면서 웃습니다. 주먹을 흔들면서 웃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웃습니다. 쉬는 짬에 도시락을 까먹거나 담배 한 개비 물면서 웃습니다. 찻길에 자동차 못 다니게 사람들이 떡 하니 버티면서 웃습니다.


  시위를 찍고 집회를 찍는 일이란 ‘웃음’을 찍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웃고 싶은 삶을 바라는 사람을 찍는 일이요, 참말 집회이든 시위이든 스스로 웃음을 터뜨리며 싸우는 사람을 찍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웃고 싶어서 싸우지, 울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은 없어요. 웃고 싶어서 싸우는 만큼 집회이든 시위이든 언제나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요. 웃는 삶을 꿈꾸며 싸우기에 신나게 춤을 춥니다. 웃는 삶을 이루고 싶기에 집회터나 시위터에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우두머리 이름을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 부를 수 있습니다. 참말 웃고 싶거든요.


  정택용 님은 “2005년 여름 기륭에서 처음 본 것은 철문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조합원들이었다. 한 아이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안에 있는 엄마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1970년대도 아닌 2005년에 보아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이 기록은 시작됐다(작업노트).” 하고 말합니다. 따지고 보면, 2005년에 보아서는 안 되는 모습이란 없습니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이나 2010년대이나, 또 1950년대이나 2000년대이나, 그닥 다르지 않아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발돋움하는 한국 사회가 아니에요. 학력차별 신분차별 외모차별 지역차별이 버젓이 있을 뿐 아니라, 더욱 골이 깊어지는 한국 사회예요. 노동차별과 계급차별 또한 어엿하게 또아리를 트는 한국 사회예요. 말이 안 될 만하다 싶은 일이 ‘말이 되는’ 한국 사회입니다. 뚱딴지 같은 모습이 사진으로 곧잘 찍힐 만해요. 정택용 님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일꾼들한테서 ‘뚱딴지 같은 한국 사회 모습’ 한자락을 느껴 사진을 꾸준히 찍었다고 합니다만, 뚱딴지 같은 모습은 어디에나 있어요. 참말 뚱딴지 같은 한국 사회인데, 이 뚱딴지 같은 한국 사회에서도 더욱 뚱딴지 같은 곳을 보았고, 그런데 우악스럽게 뚱딴지 같은 곳에서 뜻밖이라 할 만한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을 보았겠지요. 뚱딴지와 웃음꽃이 어우러지는 모습에 넋을 잃었겠지요. 삶꽃을 피우려는 사람들한테서 빛을 보았겠지요. 삶꽃으로 사랑꽃을 이루고, 사랑꽃으로 꿈꽃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보았겠지요.


  사진책을 덮습니다. 책이름을 곰곰이 되뇝니다. “너희는 고립되었다”라 읊는 외침말은 바로 ‘웃음꽃 잃은’ 권력자한테 들려주는 말이로구나 싶습니다. 웃음꽃 잃고 사랑꽃 놓은 권력자들한테, 꿈꽃을 버리고 삶꽃은 등돌리는 가녀린 권력자한테 들려주는 말이로구나 싶어요. 꽃피우지 못하는 몸짓이란 얼마나 외롭고 슬프며 힘겨울까요. 권력을 놓고 즐겁게 얼크러지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기쁠 텐데요. 권력을 버리고 어여쁜 보금자리 일구는 두레를 다 같이 하면 즐거울 텐데요. (4345.10.14.해.ㅎㄲㅅㄱ)

 


― 너희는 고립되었다 (정택용 사진,한국비정규노동센터 펴냄,2010.11.7./25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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