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책이 되는 사람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책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 책이고, 내 옆지기와 아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책입니다. 책이란 삶이고 슬기이며 꿈이요 사랑입니다. 곧, 책읽기라 할 때에는 삶읽기이고 슬기읽기이며 꿈읽기요 사랑읽기입니다. 책 한 권에서 앎조각이나 정보조각을 읽지는 않습니다. 앎조각이나 정보조각은 그때그때 스쳐 지나가듯 훑는 부스러기입니다. 이를테면 정치꾼 아무개 지지율이라든지, 경제성장율이라든지, 주식시세표라든지, 방송편성표라든지, 사람살이에 어떠한 이바지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앎조각 저런 정보조각이란 삶도 슬기도 꿈도 사랑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으로 깃들며 오래도록 아로새길 만한 대목이란 오직 삶과 슬기와 꿈과 사랑입니다.


  글을 쓰는 까닭은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삶이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반갑거나 기쁘거나 좋거나 흐뭇하기 때문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까닭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 스스로 삶을 곱게 누리거나 꿈을 아리답게 펼치거나 사랑을 따스히 나누거나 슬기를 멋스러이 북돋우기 때문이에요.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면서 서로를 아낍니다. 서로를 아끼는 두 사람은 삶을 알뜰살뜰 여미면서 하루하루 빛냅니다. 하루하루 빛내는 동안 슬기가 자라고, 슬기가 자라면서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밭에 씨앗을 심으면서, 밭에서 푸성귀를 거두면서, 밥상을 차리면서, 밥을 나누면서, 밥을 먹고 나서 하늘바라기를 하는 동안,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면서, 사람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빚습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내 마음이 예쁜 삶이 되도록 가꾸고, 내 마음에 꿈이 자라도록 이끌며, 내 마음이 온통 사랑으로 가득하도록 살찌우다가는, 내 마음이 슬기롭게 환하도록 웃음꽃을 터뜨릴 적에, 바야흐로 책읽기입니다. 나는 스스로 책이고, 당신 또한 스스로 책입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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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오리떼

 


  일산집에서 나흘째 묵는다. 어제와 오늘 아침나절에 오리떼 소리를 듣는다. 웬 오리떼 소리가 나는가 하고 궁금해 바깥으로 나오면, 어디에선가 스물∼서른 마리쯤 되는 오리떼가 하늘을 훨훨 날며 논다.


  옆지기 어버이가 살아가는 일산집은 아파트숲하고 멀찍이 떨어진다. 변두리에서도 변두리라 할 일산 언저리인데, 이 둘레는 거의 논밭이다. 아마 논밭 사이를 흐르는 냇물에서 먹이를 찾는지 모르고, 조그마한 못물이 있어 그곳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으리라. 오리한테는 먹이 있고 물이 있으면 쉴 자리가 될 테니, 이러저러한 데에서 날갯짓을 쉬면서 배를 채우겠지.


  큰아이한테 살그머니 묻는다. “벼리야,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니?” “음, 새소리요.” “오리야. 새는 새인데 오리야.” “오리요?”


  시골집을 떠나 도시로 마실을 나왔는데, 이렇게 아침나절에 오리떼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반갑다. 도시가 커지도 또 커진다 하더라도 도시 한복판에 논밭이 있고 냇물이 있으며 숲이 있으면 얼마나 어여쁠까. 사람만 돈을 버는 터전인 도시가 아니라, 사람도 푸르게 숨을 쉬고 들짐승과 날짐승도 곱게 깃을 들일 만한 예쁜 보금자리가 도시 한복판에도 넉넉히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4345.1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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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숲에서
신 벗고
해바라기 하는데

 

작은아이
새끼손톱보다
작은
풀거미

 

내 고무신에
살짝 들어와
논다.

 

아서라,
예서
집 짓지는 말그라.

 


4345.10.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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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5] 나이읽기
― 사람을 보는 눈길, 허울을 보는 눈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를 다니면 둘레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귀엽다고 말하다가도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너 몇 살이니?” 아이 앞에서 적어도 ‘-요’나마 붙여 “몇 살이에요?” 하고 묻는 어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당신이 아이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처음부터 말을 놓고 들어옵니다.


  아이와 함께 다니는 다른 어른도, 아이 없이 혼자 다니는 다른 어른도, 으레 우리 아이더러 “몇 살”인가를 물을 뿐, 정작 이름을 묻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어느 모임자리에서 조금 오래 얼굴을 마주할 때에는 이름을 묻기는 하되, 나이부터 먼저 묻고 나서 이름을 묻습니다.


  아이들 나이 알아맞히는 놀이를 하는 어른일까요. 나이를 알아서 무엇을 할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이들 나이 하나만 궁금하게 여깁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나이를 묻고 나서 잘 되새기지 않아요. 쉽게 묻고 쉽게 잊어요. 다시 쉽게 묻고 또 쉽게 잊어요.

  알고 싶어서 묻지는 않겠지요. 잘 되새기려고 묻지는 않겠지요. 버릇처럼 묻습니다. 서로 ‘높고 낮음(위계)’을 나누려고 묻습니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 다니는 어른들은 나이를 묻고 나서 저희 아이랑 ‘숫자 대기’를 합니다. 한쪽이 나이가 더 많으면 누나이니 오빠이니 형이니 동생이니 언니이니 하고 부름말을 틀짓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나 회사나 공공기관을 들여다보면, 이들 조직은 밥그릇이라 하는 나이를 따집니다. 이른바 ‘호봉’이라고 해서, 얼마나 오래 조직에 몸을 담갔느냐를 놓고 ‘나이 매기기’를 합니다. 먼저 들어와서 조금 더 조직살이를 했으면 ‘어른(또는 선배) 노릇’을 하려고 듭니다.


  학교에서는 ‘학년’이라 하는 나이를 따집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중학교 몇 학년, 고등학교 몇 학년, 이렇게 학년 나이에 따라 줄을 세웁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지만 다 같은 나이에 맞추어 똑같은 틀에 가두고는 줄을 세웁니다. 예전에는 일고여덟 살쯤 될 무렵에야 비로소 ‘같은 나이 줄세우기’를 했으나, 요즈음에는 갓난쟁이마저 보육원에 집어넣는 흐름이기에, 이 나라 아이들은 한두 살일 적부터 ‘같은 나이 줄세우기’에 들볶입니다. 키도 마음도 생각도 앎도 다른 아이들이요, 몸도 팔다리도 눈썰미도 다 다른 아이들이지만, 같은 나이에 맞추어 똑같이 생긴 교실에 들어가서 줄을 맞추어 앉아야 할 적에는 ‘번호로 부르는 숫자’를 받고는 똑같은 틀로 다스려집니다. 아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관리 대상’이 돼요.


  아이들은 키가 자랍니다. 아이들은 몸집이 커집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 키와 몸무게와 가슴둘레와 이것저것 숫자로 꼬치꼬치 따지고 잽니다. 체력을 재고 시험을 치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무섭게 저희 이름을 잊고, ‘아이한테 주어진 번호에 따라 끝없이 따지고 재고 매기고 붙이는 숫자’에 따라 다스려집니다. 이를테면 몇 살에 몇 센티미터 몇 킬로그램, 몇 살에 달리기 몇 초 팔굽혀펴기 몇 차례, 몇 살에 산수 몇 점 국어 몇 점, 몇 살에 던지기 몇 미터 행동발달사항 몇 점, 몇 살에 봉사활동 몇 점 영어능력이나 한자능력 몇 급 …….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저희 이름을 잊고 숫자를 외웁니다. 저 먼 데 있는 푸른숲 잣나무에 앉은 꾀꼬리를 알아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고 시력점수 2.0이라느니 1.0이라느니 0.1이라느니 또 얼마라느니 하는 숫자를 외웁니다. 책을 읽었으면 어떠한 책을 읽으며 가슴속에 어떤 꿈과 사랑이 샘솟는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할 때에 아름답겠지만, 몇 권을 읽었는지를 따지고 주인공과 줄거리 외우기에만 휩쓸립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푸름이한테 “너 몇 학년이니?” 하고 묻기보다는 “너 몇 살이니?” 하고 물을 때에 한결 사람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푸름이는 ‘중3’이나 ‘고2’가 아니라 ‘열여섯 살 푸름이’나 ‘열여덟 살 푸름이’라 할 때에 걸맞을 테니까요. 버스를 타거나 어느 시설을 쓸 적에 ‘학생 삯’ 아닌 ‘청소년 삯’을 따져야 알맞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대목도 차근차근 더 헤아린다면, ‘어린이 삯’과 ‘푸름이 삯’과 ‘어른 삯’과 ‘어르신 삯’ 이렇게 나눌 수 있겠지요. 다시금 더 헤아리면, 이런저런 나이나 모습으로 가르지 말고 누구나 똑같은 삯으로 나눈다든지 아예 삯을 없애면 훨씬 나아요.


  이제 대학생이 퍽 많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어른들 사이에서는 “몇 학번이셔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어 보려면 차라리 ‘나이’를 물을 노릇이건만, 나이 아닌 ‘학력 신분’을 물어요. 스스로 학력 신분을 누리는 계급이기에 이처럼 물을 텐데, 삶을 즐거이 누리지 못하는 모습은 더없이 슬프구나 싶어요.


  한겨레 옛말에 ‘개밥에 도토리’가 있고, ‘따돌리다’나 ‘돌림뱅이’가 있습니다. 우리 겨레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들볶던 발자국이 있구나 싶은데, 양반과 양반 아닌 사람, 임금과 임금 아닌 사람, 권력자와 권력자 아닌 사람, 땅임자와 땅임자 아닌 사람, 이렇게 틀이 갈린 나머지 ‘개밥에 도토리’ 같은 말마디가 생겼구나 싶어요. 임금과 임금 아닌 사람이 갈리지 않고 서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아끼거나 사랑했다면 ‘따돌리다’나 ‘괴롭히다’라는 낱말조차 안 태어났겠지요. 그러니까, 한겨레가 서로를 믿고 아끼는 삶을 누렸으면 ‘싸움’이나 ‘미움’ 같은 낱말은 안 태어나요. 자꾸자꾸 슬픈 수렁으로 빠지니까 ‘전쟁’이나 ‘(전쟁)무기’ 같은 한자말을 끌어들입니다.


  해마다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철이 드는 일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저마다 한 살 나이가 들며 생각을 깊이 다스리고 꿈을 넓게 펼치는 일은 아리땁다고 느낍니다. 나이란, 밥그릇 숫자에 따라 금을 죽 긋고는 높고낮은 지위나 신분이나 계급을 나누라는 데에 쓰라고 생기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삶을 누리면서 사랑을 빛내는 한 살 두 살이 모여 ‘철’이 되고 ‘슬기’가 되기에, 먼먼 옛날부터 나이값을 말하면서 나잇살을 헤아렸으리라 느낍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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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야
김홍모 지음 / 북스(VOOXS)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7

 


내가 좋아하는 12월 맞는 첫날
― 누나야
 김홍모 글·그림
 북스 펴냄,2009.3.18./9000원

 


  전남 고흥 시골집에서는 12월이 되어도 김이 나오지 않습니다. 깊은 밤이나 때이른 어둑어둑 새벽에는 김이 살짝 나오는구나 싶지만, 햇살이 드리우는 아침부터 별이 반짝이는 저녁까지 입김을 보지 못해요. 옆지기 동생이 시집을 가기에 모처럼 경기 일산으로 마실을 나오고 보니, 순천역에서 떠난 기차가 용산역에 닿아 내려 택시를 불러 타기까지, 또 일산집에 내려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입에서 나오는 숨결이 하얀 김이 되어 파르르 흩어집니다. 오, 겨울이로구나. 찬바람이로구나. 비로소 겨울 느낌을 누립니다.


  나는 12월이 다가오면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12월이라고들 일컫지만, 나로서는 12월이 한 해를 처음 여는 달이라고 느낍니다. 왜 그런고 하니, 내가 내 어버이한테서 고운 사랑을 받아 태어난 달이 12월이거든요. 게다가 12월 가운데에서도 ‘큰눈 절기’에 태어났어요. 겨울에 태어났고, 12월에 태어났으며, 큰눈 절기에 태어난 내 목숨이 얼마나 예쁘며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나를 이렇게 뜻깊은 날에 맞추어 이 땅으로 맞아들인 어버이가 얼마나 고마우며 어여쁜지 모릅니다.


  막상 12월에 큰눈을 구경한 일은 드물지만, 인천이라는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느라 어쩔 수 없기도 했다고 느껴요. 인천은 서울 곁에서 ‘공산품 만들어 올려보내는 공장도시’ 구실을 맡거든요. 동네마다 크고작은 공장이 수두룩하게 있어 바람이 매캐해요. 서울사람 쓰고 버린 쓰레기를 인천에 파묻어요. 서울 꽃섬도 쓰레기섬이지만, 인천 변두리도 서울사람 쓰레기 묻는 터예요. 게다가 서울사람 쓰는 전기를 인천에서 만들고, 서울사람이 쓰고 버린 물을 인천에서 받아들여 인천 앞바다로 풀어놓잖아요. 이렇게 쓰레기와 매연이 가득한데다가, 온갖 수출입 짐꾸러미를 인천항에서 보내고 받고 부리고 나르고 하니까, 자동차 배기가스마저 끔찍해요. 이런 도시에는 눈이 내려도 뿌옇기 일쑤이고, 눈이 잘 안 내려요.


.. “누나야, 배고프다.” “빨래하고 와서 먹자. 호미하고 바가지 챙겨.” ..  (3∼4쪽)


  일산집에서 언손을 호호 녹이며 입김을 만듭니다. 두 아이는 일산집 개들이랑 놀면서 입김이 자그맣게 호호 나옵니다. 나는 애 입김을 바라보며 놀고, 아이들은 저희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 줄 모르면서 까르르 웃고 떠듭니다.


  부산스레 놉니다. 낄낄 깔깔 놉니다. 엎어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놉니다. 몸이 너무 차가우면 방으로 들어가서 이부자리에서 뒹굴며 놉니다. 일산 이웃집에서 우리 아이들한테 선물로 준 자그마한 놀잇감 자동차를 갖고 놉니다. 연필과 공책으로 놀고, 넓은 종이를 깔아 그림을 그리며 놉니다.


  깊은 밤 바깥으로 나오면, 일산 변두리에 있는 이곳에서 별을 조금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코앞에 우람한 송전탑이 있어 안타깝지만, 까만 밤하늘에 자그마한 별빛이 반짝반짝 예뻐요. 그런데 이 조그마한 몇몇 별조차 일산 시내로 간다든지, 서울 언저리로 들어간다든지 하면 하나도 안 보입니다. 보름달이 뜨든 초승달이 뜨든 도시 밤하늘에서는 달빛조차 어림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도시에서는 눈을 느긋하게 구경하지 못합니다. 도시사람은 눈이 오기 무섭게 염화칼슘을 뿌리고 모래를 뿌려요. 길에 눈이 안 쌓이게 한다며 부산합니다. 왜냐하면, 자동차가 다녀야 하니까 길바닥에 눈이 있으면 안 된다고 여겨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눈송이를 뭉쳐 눈놀이를 하거나 눈사람을 굴리도록 눈을 두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눈을 밟으며 발자국 내는 기쁨을 누리게 하지 않아요. 언제나 자동차를 먼저 생각합니다. 늘 자동차가 맨 먼저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 있는 길은 모두 자동차를 생각해서 놓은 길이지, 사람을 생각해서 놓은 길이 아니에요. 사람이 즐거이 오가도록 꾀하며 놓은 길이란 없어요.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길그림을 좍 펼쳐서 골목집을 쭉 밀고는 길을 반듯하게(?) 편다고 해요.


.. 누나는 빨래를 하고, 꼭지는 다슬기를 잡아요 ..  (10∼11쪽)


  해가 날 적에는 해가 나기에 즐겁습니다. 비가 올 적에는 비가 오기에 즐겁습니다. 바람이 불 적에는 바람이 불기에 즐겁습니다. 눈이 올 적에는 눈이 오기에 즐겁습니다. 시골마을에서는 해와 비와 바람과 눈을 그때그때 다 다르게 누립니다. 구름이 끼면 구름마다 모양이 다른 모습을 느낍니다. 바람이 부는 때에도 바람결이 늘 달라요. 고요히 잠든 바람이 있고 휭휭 몰아치는 바람이 있어요. 바람에 나뭇잎 날아다니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나뭇잎이 반짝반짝 눈부시기도 해요.


  봄에는 봄바람을 쐬는 빨래에 봄기운이 스며듭니다. 여름에는 여름햇살을 받는 빨래에 여름기운이 젖어듭니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받아들이는 빨래에 가을기운이 감돕니다. 겨울에는? 겨울에는 겨울눈 소복소복 내리기도 하는 차가운 기운이 가만히 물들어요.


  겨울 문턱에 들어서는 12월은 차고 따가운 바람이 몸속 구석구석 들어옵니다. 오들오들 떨다가도 ‘아, 춥네.’ 하고 웃습니다. 참말 12월에는 첫 찬바람이 새록새록 즐겁게 차가든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습니다. 어기적어기적 걷습니다. 무릎이 시리면 콩콩 뜁니다. 달음박질을 칩니다. 껑충껑충 뛰면서 폴짝폴짝 납니다. 손을 비비면서 추위를 녹이고, 아이들 볼에 내 볼을 대면서 서로서로 따순 기운을 나눕니다. 여름에는 아이들 안고 다닐 적에 땀이 후끈후끈 솟지만, 겨울에는 아이들 안고 다니며 서로 따뜻합니다.


.. 집에 갈 때는 누나 손을 꼭 잡고 가지요 ..  (19쪽)


  김홍모 님이 당신 이럴 적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는 그림책 《누나야》(북스,2009)를 읽습니다. 애틋하게 그리는 누나와 얽힌 고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말, 형제 자매 여럿 있는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서로서로 돕고 아끼면서 자라요. 형아가, 오빠야가, 누나야가, 언니야가, 저마다 살가우며 사랑스럽습니다. 살몃살몃 짓는 웃음이 곱습니다. 와하하 터뜨리는 웃음이 시원스럽습니다. 빙그레 짓는 웃음이 상냥합니다. 까르르 터뜨리는 웃음이 푸릅니다.


  삶이란 웃음입니다. 사랑이란 웃음입니다. 어버이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은 저마다 아끼고 보듬으며 돌보는 사랑으로 무럭무럭 큽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 새롭게 어버이가 되어 이녁 어버이가 물려준 사랑을 저희들이 새로 낳는 아이들한테 이어줍니다.


  사랑이 씨앗 되어 밭에 드리웁니다. 사랑이 밭에서 튼튼히 자랍니다. 사랑이 흐드러지고 사랑이 꽃으로 피어나며 사랑이 소담스러운 열매로 나타납니다. 사랑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누립니다. 사랑이 있어 그림쟁이가 되거나 글쟁이가 되거나 사진쟁이가 되어 이녁 어릴 적 함빡 누린 사랑을 책 하나에 알뜰히 담습니다. 김홍모 님이 앞으로도 당신 어릴 적 고운 사랑이야기와 꿈이야기를 새록새록 빚어서 즐거이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그림을 읽는 사람도, 바로 스스로 누린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장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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