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68
비네테 슈뢰더 지음, 엄혜숙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24

 


시골에서 함께 살고픈 벗님
―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
 비네테 슈뢰더 글·그림,엄혜숙 옮김
 시공사 펴냄,1996.12.23./7000원

 


  한겨울로 접어드는 시골마을 깊은 밤은 무척 조용합니다. 저녁 늦게까지 잠들지 않는 두 아이를 데리고 마을 한 바퀴를 빙 도는 동안 바람소리 말고는 다른 소리를 못 듣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나서도 밤을 울리는 소리로는 바람소리 빼고는 더 듣기 어렵습니다. 문득 두 가지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다니던 때 내 동무 하나는 ‘햇살에 지지 말고’ 살자 말했습니다. 뭔 소리인가 했는데, 햇살이 아무리 눈부셔도 이맛살이나 눈살을 찡그리지 말자고, 아무렇지 않게 빙긋 웃으며 살자 말했어요. 햇살은 저렇게 좋은데 왜 이맛살을 찡그리느냐고, 더 맑게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일본 하이쿠 시인은 빗물에 지지 말자고 했던가요. 그래, 이 겨울에는 바람에 지지 말고 따순 이웃으로 삼아 곱게 맞이할 수 있어야겠지요.


  바람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맡으며 바람빛을 헤아립니다. 쏟아지는 별을 누리는 이 시골마을 살포시 감도는 시골바람을 즐거이 맞이하면서, 밤도 낮도 아침도 저녁도 새벽도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자고 생각합니다.


  봄바람과 여름바람은 다릅니다. 여름바람과 가을바람은 다릅니다. 가을바람과 겨울바람은 또 달라요. 나는 십이월에 태어났기에 언제나 십이월을 ‘한 해 첫머리’로 여깁니다. 십이월이 되어야 비로소 한 해를 여는구나 싶어요. 다른 사람들은 으레 십이월 닥치면 한 해가 저무는구나 여기지만, 나는 십이월이 다가올수록 ‘새 한 해 여는 첫걸음’이 찾아온다고 느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두근거리는 십이월이요 설레는 십이월이며 기쁜 십이월입니다.


  십이월보다는 일월이 한결 춥다 할 만합니다. 십이월보다는 일월이 겨울 한복판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나는 십이월 보름쯤 지나면 ‘이제 이 겨울 추위도 견딜 만하겠는걸’ 하고 생각합니다. ‘한 해 마지막 날’까지 하루하루 산뜻하게 지내자고 생각합니다. 귀와 코와 손과 발을 꽁꽁 얼어붙게 하는 칼바람 불어대더라도, 이 칼바람 맞으며 자전거를 탑니다. 아버지도 아이들도 자전거를 탑니다. 드세거나 거센 바람이 불더라도 아이들이랑 마실을 다닙니다. 추우면 춥고, 더우면 더운걸요. 어떠한 날씨이든 나한테 어떤 이야기 한 자락 베풀려고 찾아와요. 고된 일도 가뿐한 일도 저마다 나한테 어떤 이야기 느끼도록 하려고 가만히 찾아들어요.

 

 

 

 

 

 

 


.. 플로리안은 히힝거리며 마치 젊은 말이라도 된 듯 우리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잠이 들었을 때에, 플로리안은 빨간 트랙터가 나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트랙터는 이름이 막스였는데, 덩치 크고 마음씨 좋은 친구 같았어요 ..  (3쪽)


  도시에서 살아가며 무언가 힘들다고 느끼는 벗님을 보면, ‘그래 그래 잘된 일이야요. 이참에 도시 좀 떠나요. 시골로 오셔요. 우리 시골 참 좋아요. 도시랑 아주아주 멀리 떨어진 두멧자락이라, 이곳에 한 번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 싫을 만큼 좋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도시에서는 옆사람과 살가운 이웃으로 못 지내고 자꾸 힘겨운 맞수처럼 지내야 하니, 도시사람 얼굴에서 환한 웃음을 찾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참말 말이 ‘이웃’이지, 서로 이웃이라고 여기는 도시사람이 매우 드물어요. 학교에서는 나이가 같은 또래를 한 자리에 잔뜩 몰아넣고 ‘동무’처럼 사귀라 하지만, 막상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을 놓고 다투는 맞수일 뿐, 서로가 서로한테 동무 되지 못해요.


  그러니까,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에서 도시 학교는 어린이집이나 보육원부터 ‘점수따기 맞수’하고 만나는 나날입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동무 아닌 맞수’하고만 더 만나는 셈이요, 맞수끼리만 만나니 따돌림이든 괴롭힘이든 자꾸 불거집니다. 동무 아닌 맞수끼리만 마주하다 보니, 학교를 다 마치고 회사원이 되건 공장 일꾼이 되건 공무원이 되건 ‘이웃’을 사귀지 못해요. ‘민원인·접대인·판촉 대상’만 만나요. 그나마 ‘손님’조차 아닌 ‘고객’만 만납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한테 동무가 없어요. 도시에서는 어른들한테 이웃이 없어요. 너무도 그악스럽지만, 도시에서는 아이들한테 동무를 보여주지 않는걸요. 더없이 쓸쓸하지만, 도시에서는 어른들한테 이웃을 가르치지 않는걸요.


  왜 이웃집 우체통에 광고종이를 잔뜩 쑤셔넣어야 할까요. 왜 내 동무 살림살이를 하나도 헤아리지 못할까요. 왜 내 이웃이랑 사이좋게 어깨동무하지 못할까요. 왜 내 동무랑 즐거이 놀이하며 얼크러지는 길을 못 걸을까요.


  대학입시가 얼마나 잘났습니까. 회사원 연봉이 얼마나 대수롭습니까.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안 되겠습니까. 내가 안 죽고 동무들이 죽으면 괜찮습니까. 더 높은 회사원 연봉을 붙잡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싫습니까. 내가 안 죽고 이웃들이 죽으면 기쁩니까.


.. 진흙덩이가 날리고, 모터가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막스는 여전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막스는 후진 기어로 바꾸었어요. 막스는 슬프게 울면서 덜커덩 덜커덩 이리저리 몸을 뒤흔들었지만, 바퀴도 더 이상 돌지 않았어요 ..  (15쪽)

 

 

 

 

 

 

 


  비네테 슈뢰더 님이 빚은 그림책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시공사,1996)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늙은 말 ‘플로리안’은 시골로 찾아온 트랙터 ‘막스’를 반가우며 살가운 벗님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트랙터 막스는 늙은 말 플로리안이 성가십니다. ‘늙어서 밭일 하나 못하는 주제’에 괜히 엉겨붙으려 한다며 싫어합니다. 트랙터 막스는 까만 연기 붕붕 뿜으면서 밭일 척척 해냅니다. 늙은 말 옆에서 잘난 척하면서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슬프며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는지 모릅니다. 트랙터 막스를 만든 공장사람은 트랙터가 ‘일만 더 잘 해내도록 만들’ 뿐, ‘동무와 이웃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사랑스러운 마을살이를 누리도록 빚’지는 않거든요.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분이나, 게다가 시장이나 군수가 되겠다는 분을 보셔요. 하나부터 열까지 ‘경제성장율’을 들먹여요. 사람들한테 일자리를 더 늘려 주겠다고 외쳐요. 그저 돈, 돈, 돈, 또 돈입니다. 서로 따사로운 이웃이 되도록 힘쓰려 하지 않아요. 당신들부터 반가운 동무 되어 어깨동무할 마음이 안 보여요.


  대학등록금을 반토막으로 자른대서 무엇이 달라질까 궁금해요. 대학졸업장 때문에 대학입시지옥이 터무니없이 또아리를 틀었는데, 대학등록금 ‘반토막 내기’ 아닌 대학졸업장 ‘없애기’를 해야지요. 대학졸업장 따지는 회사나 관공서는 모두 문을 닫게 해야지요. 회사원과 공무원 달삯을 줄여야지요. 회사원과 공무원 숫자를 줄여야지요. 장관 숫자도 줄이고, 청와대 크기도 줄여야지요. 외교관 숫자를 줄이고 군인 숫자와 경찰 숫자를 줄여야지요. 법관 숫자와 검사와 판사 숫자를 줄여야지요.


  그러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구요? 저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아요. 다 줄이고 줄여 ‘시골로 보내’면 돼요.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살도록 하면 돼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스스로 가장 맛나며 좋은 밥을 먹는 한편, 가장 맑은 바람을 들이켜고 가장 시원한 물을 마시도록 하면 돼요.


  왜 유기농 곡식을 비싼값에 사다 먹나요. 손수 지어서 먹으면 가장 싼걸요. 아니, 손수 지어서 먹으면 돈이 안 드는걸요. 게다가, 손수 지어 먹고 남는 곡식을 알맞춤한 값으로 팔면 돼요. 공무원과 회사원과 군인과 외교관과 경찰과 판·검사와 이런저런 사람들 300만쯤 도시에서 내보내 시골로 옮겨 살도록 하고, 오직 흙을 일구며 살도록 하면, 이들 300만은 이녁과 이녁 식구를 따사로이 돌볼 수 있는 한편, 300만 흙일꾼이 기른 유기농 곡식은 그야말로 ‘그리 안 비싸고 퍽 눅다 싶은 값’으로 남녘땅 골골샅샅 어디에서든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 여름은 더웠습니다. 곡식이 쑥쑥 잘 자랐어요. 이웃 사람들이 와서 추수를 도와주었습니다. 곡식을 베면, 타작하기 좋게 트랙터 막스가 곡식을 창고로 실어 왔습니다. 플로리안은 가끔 막스를 타고 같이 와서 구경하기도 했어요 ..  (27쪽)


  남들더러 시골에서 살라고만 말할 수 없기에, 나부터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살아가니 더없이 조용하며 한갓집니다.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햇살내음을 먹습니다.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멧새랑 노닐며, 들풀·들꽃하고 벗삼습니다. 내 마음은 나무 한 그루가 읽어 줍니다. 내 이야기는 구름 한 자락이 들어 줍니다. 내 사랑은 반짝이는 뭇별이 받아 줍니다.


  내 고운 벗님들한테 마음으로 글월 한 줄 띄웁니다. ‘이제 돈은 그만 벌어도 되지 않니? 이제부터 사랑을 심고 사랑을 거두며 사랑을 나누는 삶을 누릴 만하지 않니? 우리 다 함께 시골서 살자.’ 4345.1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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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4

 


살아가는 사랑으로 빚는 사진
―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글·사진
 平凡社 펴냄,1974.11.5.

 


  들짐승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이 가운데 누군가는 들짐승처럼 ‘들사람’이 되어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들짐승을 멀거니 바라보는 ‘구경꾼’이 되어 사진을 찍습니다. 생각해 보면, 들짐승을 찍는 사람만 ‘들사람·구경꾼’ 사이를 오가지 않습니다. 크고작은 도시에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는 이들도 ‘골목사람’이 되거나 ‘구경꾼’이 돼요. 골목동네에서는 ‘골목사람·구경꾼’ 사이에서 오간다 하겠어요. 숲으로 들어서며 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라면 ‘꽃사람·구경꾼’으로 나눌 만하겠지요. 멧골에서는 ‘멧사람·구경꾼’으로 갈릴 테고, 시골에서는 ‘시골사람·구경꾼’으로 벌어지겠지요.


  여느 살림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어버이일 때에도 이처럼 살필 수 있어요. 아이들과 살가이 부대끼며 사랑을 담아 사진을 찍는 어버이라면 ‘살림꾼’이거나 ‘사랑이’로서 사진을 찍는 셈입니다. 이와 달리, 남들한테 예쁘장하게 보여주려는 사진으로 찍으려 한다면, 아이와 어버이 사이라 하더라도 ‘사진찍기에서만큼은 구경꾼’인 셈이에요.


  바닷사람일 때에 바다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서울사람일 때에 서울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렇겠지요? 서울사람 아닌 구경꾼으로서도 서울을 사진으로 ‘찍을’ 수는 있어요. 적잖은 이들은 ‘찍힌 서울 모습’을 즐겁게 구경할 수 있어요. 구경하는 사진도 여러모로 재미날 수 있습니다. 재미나게 구경하는 사진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깃들 수 있어요.

 


  누군가는 일본으로 구경하러 가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티벳이나 잠비아나 마다가스카르로 구경하러 가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사진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이라서 나쁜 사람이지 않습니다. 구경하는 사람이기에 속살을 못 보거나 못 느끼는 않아요. 다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나는 내 삶을 구경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삶을 구경하듯 하루를 누릴 수 있을까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저 구경하기만 할 수 있을까요?


  일본 훗카이도에서 아픈 들짐승을 고치거나 보살피는 일을 하는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아픈 들짐승을 고치거나 보살피기 때문에 ‘고쳐 주는 삯’을 한푼도 못 받습니다. 들짐승한테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돈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씩씩하게 ‘들짐승 병원’을 호젓한 숲 한켠에 열어 예쁘게 꾸립니다. 어떻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거든요. 들짐승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고, 들짐승 한삶을 들짐승이랑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글을 써요.


  한국에는 2005년 8월에 《동물 재판》(웅진주니어)이라는 그림책이 처음 나왔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글을 썼어요. 사진책으로는 2007년 2월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청어람미디어)이 비로소 나왔고, 뒤이어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진선북스,2008.1.)와 《아기 여우 헬렌》(청어람미디어,2008.7.)과 《시끌벅적 동물병원의 하루》(청어람미디어,2010.6.)가 나왔어요.

 


  한국에서 나온 ‘일본 훗카이도 들짐승 병원 아저씨’ 책들을 살피면, 모두 어린이책입니다. 일본에서는 어른들 읽는 글책과 사진책이 무척 많이 나왔으나, 아직 이 책들은 한국말로 나오지 않아요. 어쩌면, 어른책은 한국말로 못 나올는지 모르고,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平凡社,1974) 같은 사진책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라 하는 사진책을 2000년 6월 서울 홍대 앞 헌책방에서 장만했습니다. 이 사진책은 책이름처럼 훗카이도 들판에서 뛰노는 여우를 ‘들여우와 이웃이 되어’ 찬찬히 찍은 사진으로 엮습니다. 2000년 6월에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나 돌아보니, 그무렵 나는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며 ‘세밀화 그림책 자료로 쓸 외국 자연사진책’을 바지런히 모았어요. 출판사 자료실에 없는 책은 영수증을 붙여 책꽂이에 두고, 출판사 자료실에 있는 책은 ‘나 스스로 숲과 들짐승과 들꽃을 배우자’고 생각하며 푼푼이 갈무리했습니다. 그때 출판사에서 일삯으로 다달이 62만 원을 받았기에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 같은 사진책 장만하며 들인 3만 원으로 살림이 후들거렸지만, 한국에서는 사라진 여우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때에는 아직 이름조차 모른 竹田津 實’이라는 분 사진이 참 아름답다고 여겼어요. 출판사 선배한테서 여러 날 밥 얻어먹자고 생각하며 이 사진책을 장만하고는 선배들한테 빌려주어 읽히곤 했어요.


  2000년 여름날, 헌책방에서 다카타쓰 미노루 님 사진책 하나를 찾아서 건사했지만, 그 뒤로 한국 헌책방에서 이분 사진책을 더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다 문득 ‘헌책방에 없으면 새책방에 얘기해서 외국도서 주문으로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이것저것 살핀 끝에 수수료를 붙여 다른 들짐승 사진책 세 권을 더 장만합니다. 이분이 처음부터 ‘사진과 글로 돈을 번’ 다음 ‘들짐승 병원은 자원봉사로 꾸리자’고 생각했는지 궁금한데, 아무튼 이분은 사진과 글을 바지런히 쓰고, 또 들짐승을 바지런히 보살피면서 아이들 낳아 키웠고, 들짐승 병원도 알뜰히 지킵니다.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여느 병원을 차렸겠지요. 여느 병원을 차렸어도 ‘집짐승 사진’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스스로 어떤 꿈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았구나 싶어요. 구경하는 사진쟁이 아닌, 들짐승과 이웃하는 사진쟁이로 살고, 이러면서 ‘들짐승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모델값으로 들짐승이 다쳤을 때에 즐겁게 돌봐 주기’를 하자고 다짐했구나 싶어요.


  살아가는 사랑으로 빚는 사진입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랑으로 아이들 사진을 빚습니다. 골목동네 이웃들과 살아가는 사랑으로 골목동네 사진을 빚습니다. 패션사진을 하는 분들은 패션모델이랑 살아가는 사랑으로 사진을 빚겠지요.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은 저마다 찾아다니는 골골샅샅 이웃들하고 살아가는 사랑으로 사진을 빚을 테고요.


  살아가는 사랑으로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저마다 스스로 꿈꾸는 삶과 사랑이 밑바탕 되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춤과 노래와 영화도 오직 사랑이 밑거름 되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여우를 사진으로 찍은 사람이 제법 있고, 일본에서는 여우 사진책이 곧잘 나왔는데, 나는 여태껏 다케타쓰 미노루 님만 한 사진책은 없다고 느낍니다. 이 마음을, 사진하는 내 이웃님들이, 곱게 껴안고 맑게 바라보며 따사로이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윗 사진에 나오는 두 아이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네 아이들입니다. 다친 여우를 보살핀 다음 들에 놓아 준 뒤에, 서로 동무가 되어,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지켜보며 논다고 합니다. 이제 두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되었습니다.)

 

..

 

작은아이 사진책 읽기

 

큰아이 달라붙어 같이 넘기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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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

 


옆에 자전거 세우고
다리를 쉰다.

바람이 흔들며 빚는
보드라운 잎사귀 노래
듣는다.

 

조그마한 흙땅에
조그마한 씨가 내려
나무로 자라고
그늘을 드리운다.

 


4345.10.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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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타기 1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튼튼한 후박나무를 보고는 ‘우리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 이 나무를 타고 놀겠네.’ 하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언제쯤 이 나무를 탈 만할까. 다섯 살을 꽉 채우고 여섯 살로 달려가는 큰아이가 11월 21일 아침나절, 문득 이 나무를 붙잡고 낑낑거린다. 오른쪽 돌울타리에 한발을 걸쳐 용을 쓴다. 어라, 어라, 돌울에 발을 디디니 혼자 올라갈 수 있네. 대견하네. 참 씩씩하네. 날마다 네 손과 다리와 몸에 힘이 부쩍부쩍 붙을 테니, 이 겨울에 잘 먹고 잘 뛰면서 새로 맞이할 봄에는 돌울에 기대지 않고도 혼자 나무타기를 해 보렴. 4345.1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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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새롭게 읽는 책

 


  예전에 읽은 책을 부러 다시 장만하기도 합니다. 책방마실을 하다가 문득 내 눈에 들어온 책 하나 가슴 두근두근 마음 콩닥콩닥 북돋우면, 살며시 집어들어 살살 쓰다듬어 봅니다. 그러고는 새로 장만합니다.


  지난날 읽은 책인 줄 알고, 내 서재도서관에 두 권 꽂힌 줄 알지만 굳이 새롭게 장만합니다. 서재도서관에 둔 책으로 다시 읽을 수 있지만, 이렇게 책방마실을 하는 길에 새삼스레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외버스에 앉아 느긋하게 읽고 싶습니다. 1989년에 새 옷을 입은 신동엽 님 서사시 《금강》(창작과비평사)을 읽습니다. 첫머리에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7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귀로 듣거나 눈으로 지켜본 이야기 아닌 몸으로 겪은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남들이 들려준 이야기나 책에서 읽는 이야기 아닌 몸소 겪은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내 몸에는 어떤 이야기가 아로새겨졌을까요. 나는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아로새기며 살아갈까요. 우리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저마다 아로새기며 하루를 누릴까요. 서사시는 흘러 “3천의 / 농민들이 대창 들고 관청에 몰려와 / 병사 내쫓고 아전 죽이고 / 노비문서 불살라버렸다(12쪽).” 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동학농민혁명 이야기입니다. 아니, 이에 앞서 이른바 ‘민란’이라 이름 붙은 지난 역사 이야기입니다. 흙을 일구던 이들은 대나무 깎아 창을 만들어 관청으로 몰려갑니다. 흙을 일구던 이들은 무기 하나 이름 하나 권력 하나 돈 하나 없이 두레와 품앗이로 살아갔습니다만, 이들 흙일꾼을 억누르거나 들볶거나 죽이기까지 하던 관청사람과 궁궐사람 때문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요. 이러면서 농사꾼들이 한 일은 ‘노비문서’ 불사르기예요.


  읽던 시집을 가만히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궁궐사람과 관청사람은 노비문서를 만들고 족보를 만들어요. 사람은 다 아름다운 사람인데, 저마다 계급을 짓고 울타리를 세우며 신분을 갈라요. 손에 흙 한 줌 물 한 방울 대지 않고도 기름진 밥을 누릴 뿐 아니라, 나랏일을 돌본다느니 민생을 걱정한다느니 읊어요. 참말, 나랏일을 돌보려 한다면 흙일꾼과 나란히 흙을 일구면 되는데요. 참으로, 민생을 걱정한다면 세금 거둘 생각 말고 공무원 권력과 양반 신분을 불사르면 되는데요.

 


  겨울날에도 눈부시게 파랗디파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시를 다시 읽습니다.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 노비도 농사꾼도 천민도 /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 우리는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사니라 / 우리의 내부에 한울님이 살아 계시니라 / 우리의 밖에 있을 때 한울님은 바람, / 우리는 각자 스스로 한울님을 깨달을 뿐, / 아무에게도 옮기지 못하니라(21∼22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러고 보니,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동학’이 무엇인지 배운 적 없습니다. 고등학교 철학 수업 때에도, 중학교 도덕 수업 때에도, 대학교 교양강좌 때에도, 어느 누구도 동학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철학자나 지식인 가운데 동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어요. 기독교 학교나 천주교 학교는 있지만 ‘동학 학교’는 없어요.


  동학은 종교일까요. 동학은 지식일까요. 동학은 학문일까요. 아니, 동학은 ‘흙 만지고 물 만지는 사람들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어린이도 늙은이도 모두 한울님이라 말하고, 풀도 나무도 모두 한울님이라 밝히는 동학 이야기를 왜 오늘날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에서는 들을 수 없는지 고개를 갸웃갸웃해 봅니다.

 


  “봄이면 꽃 / 여름이면 하늘 / 가을이면 귀뚜라미 / 겨울이면 추위 // 전봉준은 자주 / 아들의 손을 이끌고 / 아내의 무덤 앞 찾아와 / 말없이 / 몇 시간씩 / 서 있다 가곤 했다. // 그림이었으리라(75쪽).” 하고 흐르는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집 아이들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그래, 밥할 무렵이로구나. 집에서 살림하는 아버지가 얼른 밥을 차려야지. 너희 배고프겠네. 조금 더 놀면서 노래하렴. 아버지가 맛난 밥 예쁘게 차릴 테니까, 그동안 신나게 뛰놀렴. 마당에서도 뛰놀고, 마루에서도 뛰놀렴. 마당에서는 하늘바라기를 하고, 집에서는 누나와 동생 서로 사이좋게 아끼면서 놀렴.


  밥이 보글보글 끓습니다. 국이 자글자글 끓습니다. 밥상에 수저를 놓습니다. 나물을 버무리고, 무를 썹니다. 밥과 국이 다 되면 작은아이 것을 맨 먼저 뜹니다. 작은아이는 뜨거운 것을 못 먹으니, 맨 먼저 작은아이 것을 떠서 식힙니다. 이 다음으로는 큰아이 것을 뜨고, 어머니와 아버지 몫은 나중에 뜹니다. 이제, 날마다 새로운 밥을 즐겁게 먹을 때입니다. 4345.1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아이야, 너는 마음껏 놀며 생각날개를 펼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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