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밥상 밑 놀이

 


  누나가 밥상 밑으로 들어가며 노니까 산들보라도 누나 따라 밥상 밑으로 들어간다. 네 녀석들. 밥은 다 먹고 이렇게 노니? 밥상 밑에서 놀다가 확 일어나면 밥상 엎어지잖니. 참말, 개똥쟁이 말똥쟁이로구나.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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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1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07

 


엄마 되기
― 동물의 왕국 1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2011.6.25./4200원

 


  예나 이제나 한국 사회는 ‘가부장 사회’라고 느낍니다. 생각있는 길을 걷는다는 집안에서조차 집일은 으레 가시내가 하지, 사내가 하지 않습니다. 사내 스스로 소매를 걷어부치며 집일을 맡으려는 집은 매우 드뭅니다.


  젊은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요. 왜냐하면, 젊은이들이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모습은 ‘어머니가 집일 하는 모습’이지 ‘아버지가 집일 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어머니 손맛’은 떠올려도 ‘아버지 손맛’은 떠올리지 못해요. 게다가, 나날이 ‘집밥맛’보다 ‘바깥밥맛’에 익숙해집니다.


  나이가 젊대서 나이 많은 사람보다 생각이나 마음을 더 열지는 않아요. 나이가 젋다는 오늘날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너무 일찍부터 입시교육 굴레에 사로잡히니까, 마음열기나 생각열기를 좀처럼 못해요. 그나마 예전에는 아이들도 집에서 크고작은 일을 거들거나 심부름을 했지만,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다니느라 바쁘기만 해요. 오늘날 아이들은 집에서 돕는 집일이 드물고, 심부름도 거의 안 하다시피 해요.


  아이들한테 집일과 집살림을 알뜰살뜰 가르치거나 물려줄 만한 슬기로운 어른이 차츰 줄어듭니다. 아이들로서도 집일과 집살림을 알뜰살뜰 배우거나 물려받을 만한 너그러운 겨를이 자꾸 사라집니다. 어른들은 돈을 벌러 집밖을 쏘다니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은 대학입시에 목을 매다느라 집밖에서 떠도느라 고단합니다.


- “이 물고기는 마을에 가서 나눌 거야. 아빠가 좀더 많이 잡아 오라고 했단 말이야. 여기서 먹을 여유 따위 없어!” “마, 마을에 가서 나누면 난 얻지 못할 때가 많은데? 안돼베! 난 여기서 먹을 거야!” “시끄러워! 그랬다간 물고기 하나 제대로 못 잡는다고 아빠,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야!” (13쪽)
- “그렇지 않아도 식량이 부족한 겨울에 우리 너구리 외의 다른 아이는 키울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거라고!” “됐어! 마을에 음식은 기대하지도 않아! 내가 알아서 할 거야!” (28쪽)

 


  내 어머니는 언제나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이원수 님이 쓴 동시 가운데 〈우리 어머니〉가 있고, 이 동시에는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참말 어머니는 언제나 일만 합니다. 아버지도 일하는 아버지라 하지만, 아버지라는 분은 으레 술도 마시고 담배도 태워요. 놀러도 가고 화투도 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술도 담배도 섣불리 못할 뿐 아니라, 놀러도 다니지 못하고 화투나 놀음놀이를 안 합니다. 그야말로 어머니는 “일만 하는 어머니”라고 할까요.


  어릴 적부터 늘 “일만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왜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 내 동무와 이웃 어머님들 모두 “일만 하는 삶”일까, 곁에서 아버지라 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궁금했어요.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어머니’를 찬찬히 아끼고 살뜰히 섬기며 따숩게 보살피려는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 집일을 함께 맡는 분은 참말 없는지 궁금했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차근차근 꿈을 꾸며 어린 나날을 보냅니다. 어머니한테만 일을 시키는 아버지라면, 아버지다움은 하나도 없다고 느끼며 생각하고 꿈을 꿉니다. 내가 앞으로 아버지 자리에 선다면, 나는 참말 아버지다운 아버지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꿈을 꿉니다. 내 힘과 깜냥과 슬기를 모두어 집일과 집살림을 아낄 줄 아는 아버지로 살아가자고 다짐합니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아버지로 살든 어머니로 살든, 또 혼자서 살림 꾸리며 살아가든, 누구나 스스로 밥을 짓고 옷을 기우며 집을 건사할 수 있어야 해요. 사내도 가시내도 밥 잘 짓고 국 잘 끓이며 못질 나무질 잘 할 수 있어야 해요. 사내도 가시내도 아이들을 아끼며 잘 보듬고 함께 놀 줄 알아야 해요. 누구나 슬기롭고 따스한 사랑으로 살아가야 사람이지요. 누구나 올바르며 아름다운 꿈으로 살아가야 사람이에요.


- “누구야? 아기를 강에 떠내려 보내는 지독한 짓을 한 놈이 누구냐고?” (23쪽)
- “넌 대체 어디서 온 거니? 네 엄마는 어디 있어베? 왜, 강에서 떠내려 왔던 거야베? ‘왜 강에서 떠내려 왔는지’ 알기에, 넌 더 이상 살지 않으려는 거니베?“ (44쪽)

 

 


  나이가 많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짝을 지어 아이를 낳는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어른다울 때에 어른입니다.


  겉모습이 사람이라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며 두 다리로 걷는대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생각할 때에 사람이라지만, 시커먼 꿍꿍이를 생각할 적에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웃을 괴롭히거나 등치려는 생각이 있다면, 이때에도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란, 삶을 사랑하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 “그러니 내가 네 엄마가 되어, 네게 그런 행복을 줄 거다베! 내 아이가 되어 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널 떠나 보내지 않을 테니까!” (61쪽)
- “쿠로카기는 강한데, 약한 너구리를 먹지 않아? 지켜 주는 거야? 왜?” “글쎄. 왜일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109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았으나 ‘어머니가 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얼마나 사람다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버려진 아이를 주워서 아낌없는 사랑으로 돌보는’ 들짐승 한 마리는 스스로 얼마나 ‘사람다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곧, 사람다울 때에 어머니답고, 사람다울 때에 아버지답습니다. 사람다우면서 사내라면 아버지답겠지요. 사람다우면서 가시내라면 어머니답겠지요.


  숲은 늘 숲으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바다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은 해와 달과 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요.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살랑이며,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겨울 추위를 맞아들이며 새싹이 돋고, 새잎이 트려고 합니다. 추울수록 더 씩씩하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힘들수록 더 다부지게 기운을 냅니다. 어려울수록 더 똘똘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손을 맞잡습니다.


- “이놈, 살쾡이가 약한 너구리를 싸고도는 멍청한 짓을 하다니. 약한 녀석들을 마음껏 잡아먹는 게 뭐가 나빠?” “글쎄? 네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117쪽)
- “이 세상이 빛나 보인다. 지금까지 내 세상에선 없었던 것이다.” (128∼129쪽)


  내 이웃이나 동무가 나보다 힘이 여리다면, 아무렇게나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깔보아도 되지 않아요. 아하, 여린 이웃이로구나, 그렇지, 여린 동무로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따사로이 손길 내밀어 이 길을 함께 걸어야지요.


  ‘부엌일 하는 사내’를 깔보거나 비웃는 터무니없는 말을 끝없이 퍼뜨리는 흐름은 어떤 이가 어떤 꿍꿍이로 퍼뜨리는지 헤아려 봅니다. 가시내를 얕잡고, 장애인을 깔보며, 힘이 여리거나 시험성적 나쁘거나 돈이 없거나 가방끈 짧은 사람을 놀리는 이 사회와 문화와 정치와 행정과 얼거리는, 참말 어떤 이가 어떤 꿍꿍이로 만드는 쳇바퀴인지 생각해 봅니다.


  내 오늘 삶을 돌아보니,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 되기”를 바랐구나 싶습니다. 나는 사내요 아버지이지만, 아이들 앞에서 엄마처럼 살아가고 싶은 꿈이 있었고, 내 이웃 아이들 곁에서도 엄마처럼 따사로운 품을 건사하려는 꿈이 있었구나 싶어요. 내가 바란 한 가지는 사랑이에요. 내가 꿈꾼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얘기하며, 사랑으로 글을 써요. 우리 아이들은 ‘어머니 사랑’에 ‘아버지 사랑’도 함께 누리면서 물려받아, 앞으로는 살가우며 아리따운 ‘사람 사랑’을 흐드러지게 꽃피울 수 있기를 비손해요.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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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

 


  아이들은 서로 다투면서 클까. 글쎄, 꼭 다투면서 큰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어른들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아이들이 자꾸 다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자라는데, 어른들은 자꾸 ‘애들은 서로 다투면서 크는 법’이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말하고, 그렇게 부추기기까지 한다.


  왜 자꾸 아이들이 다투도록 부추길까. 아이들이 저지레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아이들 저지레에 앞서 어른들 저지레가 훨씬 크고 깊다. 어버이로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아끼고 사랑하며 보살피는데, 아이들이 저지레를 할 까닭이 없다. 어버이로서 이런 일로 골머리 앓고 저런 일로 골치를 썩으니까, 아이들도 이 같은 ‘어른들 골머리와 골치’에 찬찬히 물들거나 젖어든다고 느낀다. 곧, 어버이 스스로 삶을 사랑하며 한껏 누릴 적에는, 아이들 낯에 웃음이 물결친다. 어버이 스스로 삶을 좋아하며 실컷 빛낼 적에는, 아이들 낯에 노래가 번진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 사이에 뭔가 저지레나 다툼이 생길 적에는, 새로운 놀이를 보여주고 서로 즐길 이야기를 찾으라는 뜻 아닌가 싶다. 무언가 혼자 차지하며 ‘가져야’ 하는 놀잇감이라든지 놀이가 된다면, 아이들 사이에 시나브로 다툼이나 저지레가 태어나는구나 싶다. 내 것이나 네 것이 어디 있나. 지구별도 흙도 땅도 물도 바람도 햇살도 구름도 내 것이나 네 것이 아니다. 꽃도 풀도 나무도 모두 네 것 내 것 아니다. 무지개가 내 것인가. 별이 네 것인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해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바다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란 아주 부질없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해와 달과 바람과 흙과 나무와 물과 숲이 있어야, 비로소 내 삶과 네 삶이 있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 사랑이 있을 때에 함께 살아가지, 돈이 넉넉하대서 함께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까,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아저씨와 아이는 오직 하나, 서로를 믿고 아끼는 사랑으로 살아갈 꿈을 키웠구나. 《레미제라블》에서 아저씨를 괴롭히는 또 다른 아저씨한테는 사랑이 한 조각조차 없네.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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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우프 놀이 1

 


  새해 첫날 밝히는 아이들 놀이는 ‘훌라우프 돌리기’. 여섯 살이 된 큰아이는 제법 모양 잡힐 만큼 돌리고, 세 살이 되는 작은아이는 아직 훌라우프 끌고 마당을 걸어다니며 논다. 이름을 붙여 훌라우프이지만, 그냥 큰 동글뱅이라 해도 돼. 허리에 끼고 돌려도 되지만, 끌고 다녀도 되고, 사이사이 지나가도 돼. 나중에 아버지가 동글뱅이넘기를 보여줄게.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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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글쓰기

 


  나는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갓난쟁이였을 적, 어떤 물을 마셨는지 모릅니다. 아니, 모른다기보다 못 떠올립니다. 그러나, 두 아이와 살아가며 어렴풋하게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샘물이든 냇물이든 우물물이든 수도물이든, 그저 물이면 다 마셔요. 이 물은 어떻고 저 물은 어떻고 하면서 가르지 않습니다. 곧, 아이들로서는 어떤 물을 마셔도 몸을 살찌우는 물이 됩니다. 이 물을 바라보는 어른 마음에 안 좋은 생각이 깃들면, 아이들로서는 아무렇지 않을 물이 안 좋은 물이 되고, 어른 마음에 다른 생각 없이 고요한 너그러움 있으면, 이 물 마시는 아이들은 고요한 너그러움을 함께 마셔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운동장 한켠 물꼭지를 틀어 물을 마셨습니다. 수도물이라 안 마시고 샘물이라 더 달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방학을 맞이해 내 어버이 시골집을 찾아가서 우물물을 마실 적에 ‘물맛이 다르네’ 하고 처음으로 느낍니다. 중학생 때였는지, 아직 국민학생 때였는지, 인천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영종섬을 걸어서 한 바퀴 돈 적 있는데, 두 시간 가까이 걷다가 어느 시골집 마당에서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는데, 수도물 아닌 샘물이었을 그 집 물 또한 ‘물맛이 다르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마음이 다르니 물맛이 달라질 수 있어요. 내 마음은 한결같으나 물맛이 다를 수 있겠지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물을 둘러싼 여러 가지를 나란히 헤아립니다. 이 물 한 모금이 내 몸으로 스며들기 앞서, 어떤 하늘을 누리고 어떤 햇볕을 머금으며 어떤 흙을 거쳤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어떤 풀과 나무와 꽃을 살찌우던 물이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어떤 목숨을 북돋우던 물이요, 어떤 숨결로 스며들다가 나한테까지 찾아오는 물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달게 자는 아이들 이마를 어루만지다가, 마당에 내려서서 밤별을 올려다보다가, 식구들 이불깃을 여미다가, 차가운 샘물 길어다 마시다가, 아하 그러네 하고 천천히 깨닫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살이를 글로 쓸 수 있는 오늘 하루를 참 좋아하는구나. 도시에서는 시골을 그리는 글을 쓸밖에 없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시골살이 한껏 누리며 하루하루 실컷 사랑하는 이야기를 글로 마음껏 즐길 수 있구나.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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