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글쓰기

 


  나는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갓난쟁이였을 적, 어떤 물을 마셨는지 모릅니다. 아니, 모른다기보다 못 떠올립니다. 그러나, 두 아이와 살아가며 어렴풋하게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샘물이든 냇물이든 우물물이든 수도물이든, 그저 물이면 다 마셔요. 이 물은 어떻고 저 물은 어떻고 하면서 가르지 않습니다. 곧, 아이들로서는 어떤 물을 마셔도 몸을 살찌우는 물이 됩니다. 이 물을 바라보는 어른 마음에 안 좋은 생각이 깃들면, 아이들로서는 아무렇지 않을 물이 안 좋은 물이 되고, 어른 마음에 다른 생각 없이 고요한 너그러움 있으면, 이 물 마시는 아이들은 고요한 너그러움을 함께 마셔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운동장 한켠 물꼭지를 틀어 물을 마셨습니다. 수도물이라 안 마시고 샘물이라 더 달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방학을 맞이해 내 어버이 시골집을 찾아가서 우물물을 마실 적에 ‘물맛이 다르네’ 하고 처음으로 느낍니다. 중학생 때였는지, 아직 국민학생 때였는지, 인천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영종섬을 걸어서 한 바퀴 돈 적 있는데, 두 시간 가까이 걷다가 어느 시골집 마당에서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는데, 수도물 아닌 샘물이었을 그 집 물 또한 ‘물맛이 다르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마음이 다르니 물맛이 달라질 수 있어요. 내 마음은 한결같으나 물맛이 다를 수 있겠지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물을 둘러싼 여러 가지를 나란히 헤아립니다. 이 물 한 모금이 내 몸으로 스며들기 앞서, 어떤 하늘을 누리고 어떤 햇볕을 머금으며 어떤 흙을 거쳤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어떤 풀과 나무와 꽃을 살찌우던 물이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어떤 목숨을 북돋우던 물이요, 어떤 숨결로 스며들다가 나한테까지 찾아오는 물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달게 자는 아이들 이마를 어루만지다가, 마당에 내려서서 밤별을 올려다보다가, 식구들 이불깃을 여미다가, 차가운 샘물 길어다 마시다가, 아하 그러네 하고 천천히 깨닫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살이를 글로 쓸 수 있는 오늘 하루를 참 좋아하는구나. 도시에서는 시골을 그리는 글을 쓸밖에 없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시골살이 한껏 누리며 하루하루 실컷 사랑하는 이야기를 글로 마음껏 즐길 수 있구나.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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