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

 


  아이들은 서로 다투면서 클까. 글쎄, 꼭 다투면서 큰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어른들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아이들이 자꾸 다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자라는데, 어른들은 자꾸 ‘애들은 서로 다투면서 크는 법’이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말하고, 그렇게 부추기기까지 한다.


  왜 자꾸 아이들이 다투도록 부추길까. 아이들이 저지레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아이들 저지레에 앞서 어른들 저지레가 훨씬 크고 깊다. 어버이로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아끼고 사랑하며 보살피는데, 아이들이 저지레를 할 까닭이 없다. 어버이로서 이런 일로 골머리 앓고 저런 일로 골치를 썩으니까, 아이들도 이 같은 ‘어른들 골머리와 골치’에 찬찬히 물들거나 젖어든다고 느낀다. 곧, 어버이 스스로 삶을 사랑하며 한껏 누릴 적에는, 아이들 낯에 웃음이 물결친다. 어버이 스스로 삶을 좋아하며 실컷 빛낼 적에는, 아이들 낯에 노래가 번진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 사이에 뭔가 저지레나 다툼이 생길 적에는, 새로운 놀이를 보여주고 서로 즐길 이야기를 찾으라는 뜻 아닌가 싶다. 무언가 혼자 차지하며 ‘가져야’ 하는 놀잇감이라든지 놀이가 된다면, 아이들 사이에 시나브로 다툼이나 저지레가 태어나는구나 싶다. 내 것이나 네 것이 어디 있나. 지구별도 흙도 땅도 물도 바람도 햇살도 구름도 내 것이나 네 것이 아니다. 꽃도 풀도 나무도 모두 네 것 내 것 아니다. 무지개가 내 것인가. 별이 네 것인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해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바다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란 아주 부질없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해와 달과 바람과 흙과 나무와 물과 숲이 있어야, 비로소 내 삶과 네 삶이 있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 사랑이 있을 때에 함께 살아가지, 돈이 넉넉하대서 함께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까,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아저씨와 아이는 오직 하나, 서로를 믿고 아끼는 사랑으로 살아갈 꿈을 키웠구나. 《레미제라블》에서 아저씨를 괴롭히는 또 다른 아저씨한테는 사랑이 한 조각조차 없네.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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