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지는 손

 


  아버지랑 어머니가 책을 만진다. 큰아이가 책을 만진다. 이제 작은아이도 책을 만진다. 아버지랑 어머니가 책을 만지는 손길을 큰아이가 이어받고, 작은아이는 어버이랑 누나 손길을 물려받는다. 예쁘게 예쁘게 돌보면서 책을 만지면, 아이들은 예쁘게 예쁘게 쓰다듬는 손길을 물려받는다. 착하게 착하게 보듬으며 책을 만지면, 아이들은 착하게 착하게 보듬는 손길을 이어받는다.


  책을 만지는 손길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한다. 집에서 어버이가 살아가는 매무새를 아이들이 고스란히 배운다. 나중에 아이들이 머리통 굵어지며 스스로 제 책을 더 깊고 넓게 파고들려 할 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책읽기를 익힐 수 있겠지. 그러나, 어릴 적부터 곁에서 지켜보고 바라본 모습이 하나하나 손과 머리와 눈과 마음에 아로새겨지기 마련이다.


  어버이가 흙을 만지던 손길이 아이들이 흙을 만지는 손길로 이어진다. 어버이가 하늘을 껴안고 바람을 마시던 품이 아이들이 하늘과 바람을 품에 안는 매무새로 이어진다. 434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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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노래 즐거운 어린이

 


  춤도 노래도 저절로 샘솟는다. 춤도 노래도 스스로 즐거울 때에 솟구친다. 숲에서든 들에서든 학교에서든 마당에서든 방에서든, 마음속에 예쁜 생각 천천히 자랄 때에 춤과 노래가 흘러나오지 싶다. 큰아이 사름벼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기쁘게 춤노래를 누린다. 434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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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도화헌미술관 마실

 


  네 식구 읍내마실이란 아직 만만하지 않다. 작은아이는 바깥마실을 하다 보면 고단해서 잠들기 마련인데,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아이들이 느긋하게 누워서 잠들거나 쉴 만한 자리는 찾기 어렵다. 아무튼, 시골 작은학교를 고친 도화헌미술관으로 마실을 간다.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운동장과 교실을 넘나들며 논다. 쉬지 않고, 지치지 않고 논다. 기운이 다할 때까지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볼거리 뛸거리 놀거리 즐길거리 가득하다. 434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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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놀이 2

 


  이웃 할머니가 마을회관 살림돈 모은다며 휴지 한 꾸러미를 사라 하시기에 산다. 부엌일 하느라 휴지꾸러미는 나중에 헛간에 두기로 하고 한쪽에 내려놓으니, 큰아이가 인형을 등에 업고 올라타서 논다. 너한테는 휴지꾸러미도 놀잇감이 되는구나. 434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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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10 : 여여부동

 

소리나 빛을 향한 내 성품이 너, 나의 구별이 없는 여여부동한 마음자리였으면
《김수우-百年魚》(심지,2009) 41쪽

 

  “빛을 향(向)한”은 “빛을 마주한”이나 “빛을 바라보는”이나 “빛 앞에 선”으로 다듬고, ‘성품(性品)’은 ‘마음씨’나 ‘마음결’이나 ‘됨됨이’나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아니, 예부터 이처럼 말했습니다. “너, 나의 구별(區別)이 없는”은 “너, 나로 가르지 않는”이나 “너, 나를 나누지 않는”이나 “너, 나 사이에 금을 안 긋는”으로 손볼 만해요. “너와 내가 따로 없는”이나 “너와 내가 하나인”이나 “너와 내가 함께 있는”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여여부동’이라는 낱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낱말은 한국말도 아니지만, 한국사람이 쓸 만한 한자말도 아닙니다. 중국말이거나 다른 바깥말이에요. 불교에서는 ‘여여부동(如如不動)’이라는 사자성어를 “마음이 주변 상황에 자극 받지 않고 항상 늘 원만하고 자유롭게”를 뜻하는 자리에 쓴다고 합니다. 곧, 이 사자성어를 한국말로 옮긴다면 ‘한결같이’나 ‘꾸준하게’쯤 돼요.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한겨레는 예부터 익히 ‘한결같이’라든지 ‘꾸준하게’처럼 말했어요. 한겨레가 ‘여여부동’처럼 말할 일은 없었어요. 불교를 파고드는 이들은 이런 한자말을 썼다지만, 처음 불교를 책에 적바림한 나라에서 한자말을 썼다 하더라도, 이 ‘한자로 지은 책’을 한국으로 받아들여 널리 퍼뜨리려 하던 사람들은 ‘한겨레가 쓰는 여느 말’로 불교 이야기를 옮겨서 나누어야 올발라요.

 

 여여부동한 마음자리였으면
→ 한결같은 마음자리였으면
→ 곧은 마음자리였으면
→ 올곧은 마음자리였으면
→ 곧고 바른 마음자리였으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서로서로 아름답게 쓸 말을 주고받아야지 싶습니다. 학문으로나 역사로나 다 함께 즐거이 나눌 말을 일구어야지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보드라운 마음자리”나 “살가운 마음자리”나 “사랑스러운 마음자리”처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너와 나를 따로 나누지 않는 마음자리라 할 때에는 “따스한 마음자리”나 “어여쁜 마음자리”나 “환한 마음자리”나 “맑은 마음자리”라고 나타낼 수 있어요.


  생각 한 줄기 가다듬으며 말 한 줄기 가다듬습니다. 마음 한 자락 추스르며 말 한 자락 추스릅니다. 4346.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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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나 빛을 바라보는 내 마음결이 너와 내가 따로 없는 한결같은 마음자리였으면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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