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라디오

 


  충북 청주에서 전남 순천까지 달리는 시외버스가 하루에 두 차례 있다. 아침 아홉 시와 낮 두 시 사십 분. 청주에서 일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려고 인터넷으로 시외버스를 살핀 때는 낮 두 시 사십이 분. 아차, 하루 두 차례 있는 시외버스를 놓치네. 청주부터 순천까지 달리는 시외버스는 세 시간이면 된다는데, 청주에서 전주로 달리고, 전주에서 다시 순천으로 달리니, 자그마치 여섯 시간 반 길이 된다. 세 시간 반 이나 빙 돌아서 순천에 닿는다.


  전주로 달리는 청주 시외버스는 라디오 소리 크게 울린다. 청주 시내를 지나 유성과 대전을 거쳐 전주에 닿는다. 라디오 소리에 귀가 멍할 듯하다. 졸린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린다. 저 소리에 끄달리지 말고, 내가 바라는 생각을 불러들이자. 시골집에서 뛰놀 아이들을 생각한다. 서재도서관을 생각한다. 내 둘레 좋은 이웃들을 생각한다.


  순천으로 달리는 전주 시외버스는 텔레비전 소리 크게 퍼진다. 라디오보다 더 센 텔레비전이로구나. 눈을 뜰 수 없구나. 귀도 닫고 눈도 닫자. 머리도 닫자. 다시 내 마음 추스르자. 밤바람과 밤별과 밤구름을 떠올리자.


  시외버스는 전주를 벗어나 남원을 지나고, 곡성과 구례를 거친다. 이제 숲길을 달린다. 문득, 도시를 다 벗어났다고 깨닫는다. 안경을 끼고 창밖을 바라본다. 어슴푸레하게 멧자락이 보인다. 아직 달은 안 보이지만, 섬진강 모습이 거뭇거뭇 보인다. 지리산 옆을 달릴 적에는 지리산 꼭대기에 켜진 불빛 보인다. 저 불빛은 무얼까. 지리산 산장인가.


  숲길을 달리니, 시외버스 텔레비전 소리가 퍼지건 말건 하나도 안 들린다. 숲이란, 이렇게 상큼하구나. 숲이란, 이처럼 어여쁘구나.


  저녁 아홉 시가 되어 시외버스가 순천에 닿는다. 드디어 고흥 가는 마지막 시외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고흥 들어가는 시외버스에 타는 젊은 사내와 가시내가 스마트폰으로 연속극을 켠다. 너희들, 시외버스에서 연속극 보고프면, 귀에다가 소리통 꽂아야 하지 않겠어? 한숨을 쉬다가, 천천히 숨을 고른다. 바르게 앉아서 눈을 감고, 한 시간 반 뒤 만날 우리 아이들을 생각한다. 이제 잠자리에 들었을까, 아직 안 자며 졸린 눈 비비며 아버지 돌아오기를 기다릴까. 고흥 읍내에 닿으면 무얼 사서 들어갈까. 열 시 넘어 읍내에 닿을 테니 물고기는 못 살 테고, 어떤 과일 장만해서 들어가 볼까.


  고요히 생각에 젖다가 눈을 뜨니 읍내에 거의 다 온다.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여섯 시간 반 동안 시외버스를 탔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코가 막히고 눈이 핑 돈다. 읍내이기는 하더라도, 고흥에 내리면서 천천히 코와 눈과 머리가 풀린다. 우리 집이 시골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살았을까 싶고, 내 갈 곳 시골 아니라면 내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싶다.


  택시를 타고 마을 어귀에 내린다. 별이 쏟아진다. 눈물이 핑 돈다. 좋은 밤이구나. 좋은 하늘이구나. 늦은 저녁 마을에 불 켜진 딱 한 곳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소리 마당에서도 들린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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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벽화 높새바람 3
김해원 지음, 전상용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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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28

 


아이들이 빚은 그림
― 고래 벽화
 김해원 글
 바람의아이들 펴냄,2004.4.14./6800원

 


  아이들은 그림을 그립니다. 따로 그림쟁이라는 이름이 붙거나 예술쟁이라는 이름을 누리려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없으나, 아이들은 즐겁게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종이에도 그림을 그리지만, 손바닥에도 그림을 그리고, 팔뚝이나 볼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벽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세금고지서나 책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방바닥에도 그림을 그리며, 밥상이나 책상에도 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흙바닥이나 모랫바닥에도 그림을 그리지요.


.. 원시 시대 고래 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마을에 짜하게 퍼졌다. 덕수 삼촌마저도 자신이 대단한 일이라도 한 양 떠들며 다녔으니 못 들은 사람이 없었을 거다. 저녁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땅끝교회 뒷산에 올라 우리 비밀 본부를 보고 왔다 ..  (50쪽)


  그리고 싶어 그리는 그림입니다. 곧, 부르고 싶어 부르는 노래입니다. 노래꾼이 되려고 노래를 부른다면 몹시 슬픕니다. 그러니까, 글꾼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면 얼마나 서글플까요. 사진꾼이 되려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정치꾼이 되려고 정치를 하면 얼마나 안쓰러울까요.


  공무원이 되려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시험공부 하는 젊은 넋은 매우 딱합니다. 회사원이 되려고 영어를 죽어라 배우며 학원을 다니는 어른 또한 참말 가엾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누리지 않을 때에는 불쌍합니다. 스스로 사랑할 삶을 찾지 않을 때에는 어두운 빛이 드리웁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사랑스럽게 살아야 사람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꿈을 꾸어야 목숨입니다. 어른이랑 아이는, 따사롭게 눈빛 나누며 이야기를 속삭여야 푸른 숨결 건사합니다.


.. “우, 우리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내,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더 심각해. 어, 어, 어떡하지.” ..  (54쪽)


  2013년을 맞이해 여섯 살이 된 우리 집 큰아이가 글을 씁니다. 재미 삼아서 씁니다. 아이는 제 이름 넉 자 ‘사름벼리’를 예쁘장하게 씁니다. 아버지랑 어머니한테 이런 글 저런 글 써 달라고 종이를 들고 달려옵니다. 아이는 그림책이나 이런저런 종이를 들고는 무슨 글이 적혔는지 묻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먼저 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가 궁금해 할 때에만 알려줍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우리 아이가 즐겁게 뛰놀고픈 이 나이에 즐겁게 뛰놀기를 바랍니다. 한창 개구지게 놀다가 살며시 쉴 적에 그림책도 들추고 글놀이도 하면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릴 적에 딱히 이렇게 그리라 저렇게 그리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그리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한 가득 담습니다. 나는 나대로 아이 곁에서 내고 그리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한 가득 담아요.


  아이 그림이 예술품이 되어야 할 까닭 없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살며시 찍는 사진이 예술품이 되어야 할 일 없습니다. 그림은 즐거운 이야기 담는 그릇입니다. 사진은 재미난 삶 담는 접시입니다.


  그림에 점수를 매길 일 없고, 글씨쓰기에 점수를 붙여야 할 까닭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한테 시험을 치르도록 할 일이 없으며, 아이가 시험에 빠져야 할 까닭이 없어요.


.. 우리 사총사는 가짜 벽화를 진짜 벽화인 줄 알고 좋아하는 어른들이 좀 우스웠다. 애들만 보면 뭐든지 가르치려 드는 잘난 어른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니 솔직하게 말해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고 진실을 묻어 둘 수는 없었다 ..  (59쪽)


  김해원 님이 쓴 창작동화 《고래 벽화》(바람의아이들,2004)를 읽습니다. 어느 시골마을, 아마 ‘땅끝교회’라는 이름이 나오니, 전라남도 해남을 헤아리며 쓴 창작동화로구나 싶은데,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으면서, 이 창작동화를 아이들하고 왜 읽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마을에 뭔가 남다른 일(사건)이 생기고, 시골마을 어른들이 돈에 눈이 먼 일 때문에 다툼(사고)이 벌어지며, 마지막에 아이들이 참을 털어놓으며 어영부영 마무리됩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말썽쟁이 아이들더러 학교 벽그림을 그리라고 이야기한다는데, 한편으로는 있을 법하구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애써 창작해서 동화로 써서 읽히면서 어떤 빛과 꿈을 나눌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거짓말을 하던 아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운 줄 모르면서, 어른들만 거짓스러운 이름값에 얽매인다고 눈을 흘기는 줄거리를 보여주어야 하니까, 이 동화책을 읽혀야 할까요. 시골마을 아이들이 깊은 멧골에 ‘놀이터(아지트)’를 꾸려서 재미나게 노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어, 이 동화책을 읽혀야 할까요.


  글쎄, 우리 식구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데, 이 시골마을 둘레 아이들 가운데 깊은 멧골에 깃들며 노는 아이는 아직 못 봅니다. 시골 아이들도 학원 가랴 바쁘고, 면내나 읍내 쏘다니느라 바쁘며,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보느라 바빠요.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어버이 일 거드느라 바쁘고, 학교 언저리와 집 둘레에서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어쩌면, 시골 아이조차 시골스러운 꿈과 사랑을 빚지 못하는 슬픈 한국 사회에서, 시골 아이들부터 기운을 차려 숲을 누비고 들을 달리기를 비는 마음으로 창작동화 하나 내놓았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고래 벽그림’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아이들은 어떤 그림을 즐겁게 누리면서 아이들 생각과 마음을 살찌우는가요. 어디서 본 대로 따라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아이들 나름대로 아이들 마음자리를 빛내는 그림을 그리는 길을 보여주는 창작동화로 거듭날 수는 없을까요.


.. 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벽화를 그리라는 벌을 주고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 문을 나갔다. 교장 선생님은 가면서 여전히 벽 앞에서 서 있느 우리에게 “어여 가!”라며 손까지 흔들었다 ..  (95쪽)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칩니다.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도시 전문가’가 만들어서 ‘도시 이야기’를 배우도록 이끕니다. 시골 아이가 시골을 사랑하면서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일구도록 돕는 교과서는 아직 없고, 시골학교 교사 또한 시골 아이가 시골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랑을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시골 아이는 어떤 어른을 바라보며 삶을 배울 만할까요. 시골 아이는 ‘시골 사람’으로 자라야 할까요, ‘도시 사람’으로 자라야 할까요. 아니, 시골 아이는 ‘사람다운 삶’과 ‘사람다운 숨결’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듣고 보고 느끼면서 하루를 빛낼 수 있을까요.


  요즈음에도 시골 교사나 교장 가운데 ‘낡은 자전거’를 끄는 분이 있을까 궁금하지만, 아이들더러 학교 벽에 그림을 그리라 할 만한 분이라면 ‘낡은 자전거’를 끌 테지요. 그렇지만, 책을 덮으면서도 한숨은 자꾸 나옵니다. 글쓴이는 충청도에서 태어났고, 동화책 사이사이 ‘충청도 고장말(사투리)’로 보이는 말씨가 더러 나오지만, 주인공 아이들도 웬만한 어른들도 고장말을 안 씁니다. 아무래도 요새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익숙해서 서울말(표준말)을 쓴달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골 아이들은 저희끼리 어울리면, 또 시골 어른들도 이녁끼리 어울리면, 다 고장말을 써요. 여러모로 아쉽고 쓸쓸합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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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책방 아닌 데에서


 

  인터넷책방 아닌 데에서 만화책 몇 가지 사려고 했는데 없다. 《유리가면》 49권과 《피아노의 숲》 22권과 《서점 숲의 아카리》 11권, 적어도 이렇게 세 가지를 사고 싶은데, 인터넷책방 목록에는 뜨지만, 인터넷책방 아닌 매장책방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 모로 보면 어쩔 수 없으리라. ㄱ문고나 ㅇ문고처럼 커다란 매장책방이 아니라 한다면, 또 만화책만 다루는 전문책방이 아니고서야 이런 만화책 저런 만화책을 들여놓기 힘들 수 있으리라.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니까 가까운 책방이 없어 인터넷으로 살밖에 없는데, 모처럼 도시로 마실을 나온 김에 매장책방(새책방)을 죽 둘러보는데 안 보이는 아쉬운 만화책들. 그래도, 매장책방 일꾼들 힘을 내어 예쁘며 아름다운 책들로 고운 책빛 뿌려 주기를 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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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5] 흙순이

 


  공장을 다니는 가시내를 가리켜 ‘공순이’라고들 하고, 공장을 다니는 사내를 일컬어 ‘공돌이’라고들 합니다. 으레 얕잡는 말처럼 다루지만, 말로는 누가 누구를 얕잡는다든지 높이지 못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서로를 얕잡거나 높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퍽 예전부터 가시내한테는 ‘순이’라 했고, 사내한테는 ‘돌이’라 했어요. 빨래순이·빨래돌이요, 집순이·집돌이입니다. 책순이·책돌이요, 만화순이·만화돌이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흙순이랑 흙돌이라 할 만해요. 그러니까, 나는 노동자한테 붙이는 이름 ‘공순이·공돌이’가 하나도 안 나쁘다고 느껴요. 참 수수한 이름이요, 더없이 착한 이름이며, 그야말로 예쁜 이름이로구나 싶어요. 흙내음 흐르는 이름이고, 살내음 따사로운 이름이면서, 사랑내음 촉촉히 젖어드는 이름이라고 느껴요. 하늘을 바라보며 곱다시 껴안는 아이는 하늘순이·하늘돌이입니다. 바다를 마주하며 넉넉히 얼싸안는 아이는 바다순이·바다돌이입니다. 꽃순이와 꽃돌이를 생각합니다. 나무순이와 나무돌이를 생각합니다. 이야기순이와 이야기돌이를 생각합니다. 글순이와 글돌이를, 사진순이와 사진돌이를, 그림순이와 그림돌이를 생각합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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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4] 차상위계층

 

  내 한 달 벌이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들지만, 내 아버지가 ‘공무원 연금생활자’이기 때문에, 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못 됩니다. 다만, ‘차상위계층’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한자로 적으면 ‘次上位階層’이라 하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잠재적 빈곤층’이라 한답니다. 그런데, 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는 이름도, ‘차상위계층’이라는 이름도, 도무지 무엇을 뜻하거나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쉬운 말로 ‘가난뱅이’란 소리일 텐데, 왜 이렇게 어려운 한자말로 껍데기를 잔뜩 뒤집어씌워야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요, 돈이 없대서 못나지 않습니다. 가멸찬 살림이라서 부러울 일 없고, 돈이 있대서 잘나지 않아요. 그예 서로 이웃이요 저마다 동무이며 다 함께 사람입니다. ‘가난뱅이’가 여러모로 낮잡는 낱말이라 느낀다면 ‘가난이’라든지 ‘가난살림’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가만히 따지면, ‘중산층’이라는 이름도 어딘가 어설퍼요. ‘중산’이란 무엇인가요. 또 ‘층’이라는 꼬리말을 붙이며 높낮이를 따져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요. ‘가난살림·넉넉살림’처럼 꾸밈없이 말하면서, ‘적은돈·많은돈’처럼 수수하게 말을 섞으면서, 서로 살가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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