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생각
― 사진 둘 (4346.2.2.흙.ㅎㄲㅅㄱ)

 


비를 맞아 젖은 신
섬돌에 기대면
세 살 작은아이
아버지 손짓 따라
다른 신 얌전히 곱게
섬돌에 기댑니다.

 

여섯 살 큰아이
까르르 웃고 노래하면
세 살 작은아이
누나 따라 웃고 노래하며,
아이들 어머니가
고운 눈빛으로 들길 걸으면
아이들도 어머니 따라
고운 눈빛 되어 들길 걸어요.

 

겨울이기에 겨울바람 불고
봄에는 봄바람 불지요.
여름에는 여름햇살 드리우고
가을에는 가을햇볕 쏟아져요.

 

철을 느끼는 살갗은
사랑을 느끼는 가슴.
날씨를 헤아리는 살결은
꿈을 헤아리는 마음.
사람을 생각하는 넋이
사진을 생각하는 넋이기에,
내가 선 곳
내가 사는 터
내가 숨쉬는 데
내가 사랑하는 자리
어떤 모습인지 바라봅니다.

 

어버이 쓰는 말이
아이들 쓰는 말이듯,
숲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웃을 바라보는 눈빛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몸짓이
사진으로 살아가는 몸짓입니다.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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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바다

 


  하루 내내 비가 내린 겨울이 지나간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지치지 않고 비가 오시는 겨울이 흐른다. 깊은 밤이 되어 비는 멎는다. 비가 멎은 들판을 바라보며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밤마실을 나온다. 겨울비 드리운 밤들판을 바라보렴. 저기 저 까만 하늘도 보렴. 비가 그치고 나니 하늘이 한결 맑게 보이지? 구름이 물결치는 밤바다 같은 밤하늘 사이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어마어마한 별을 함께 보자. 저 별이 무리를 지은 듯하다고 느껴 옛사람은 미리내라는 이름을 붙였어. 미리내는 어떤 냇물일까. 지구를 둘러싼 뭇별이 이루는 환한 냇물일까. 보아도 보아도 눈을 터 주는 별빛은 별꽃일까. 피어도 피어도 지지 않는 별꽃은 별꿈일까. 꾸어도 꾸어도 그치지 않는 별꿈은 별사랑일까. 저 먼 별은 지구한테 어떤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을까. 우리는 서로한테 어떤 사랑을 속삭이면서 지구별을 보살필 수 있을까.


  구름바다가 흐르며 날이 갠다. 구름바다가 지나가며 밤하늘이 훤하다. 구름바다가 우리한테 노래를 들려주면서 새근새근 잠들 때가 다가온다. 434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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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의 길고양이
레이첼 매케나 글.사진, 이선혜 옮김 / 시공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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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27

 


마을이 스스로 빚는 사진
― 프로방스의 길고양이
 레이첼 매케나 사진·글,이선혜 옮김
 시공사 펴냄,2012.7.20./18000원

 


  사진책 《프로방스의 길고양이》(시공사,2012)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을 빚은 레이첼 매케나 님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와 성공을 누리고 있는 사진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이녁 사진책은 “20개 언어로 번역되어 28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찬찬히 살피고 글을 곰곰이 읽습니다. 글쎄, 이만큼 사진이 팔리고 돈을 벌 만하겠구나 싶은 한편, 그 대목이 뭐가 대수로울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책 1만 권 넘게 판 사진작가는 몇 사람쯤 될까요. 한국에서 사진책 10만 권 넘게 판 사진작가는 몇 사람쯤 될까요. 더 많은 사람한테 사진책을 팔 수 있으면, 이녁을 대단한 사진작가로 손꼽을 수 있을까요. 사진책 거의 팔리지 못했으면, 이녁은 하찮은 사진작가로 손꼽아도 될까요.


  《프로방스의 길고양이》 첫머리를 살피면, 레이첼 매케나 님은 “고양이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본능대로 움직인다(7쪽).”고 적습니다. 그래요. 고양이는 스스로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지요. 사진기를 손에 쥐고 저(고양이)를 바라보는 사람이 ‘베스트셀러 작가’이든 ‘마을 할머니’이든 딱히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니, 날마다 마주하는 ‘마을 할머니’라면 오히려 한갓지며 느긋하게 서로 마주할는지 모르나, 어쩌다 한 번 또는 온삶에 걸쳐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한 뜨내기일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무개를 한 번 코앞에서 마주한대서 콧방귀조차 뀔 일이 없습니다.


  연필이나 붓이나 사진기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거짓말은, 연필이나 붓이나 사진기를 쥔 사람이 합니다. 연필이나 붓이나 사진기는 참말을 못 합니다. 참말은, 연필이나 붓이나 사진기를 쥔 사람이 합니다.

 

 


  연필은 늘 그 자리에 얌전히 있습니다. 붓은 언제나 그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사진기는 노상 그 터에 가만히 있어요. 이들 연장은 사람이 손으로 만져야 비로소 제구실을 합니다. 누군가는 ‘사진은 참을 말한다’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사진은 거짓을 말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말하는 쪽은 사람일 뿐입니다. 듣는 쪽도 사람일 뿐입니다. 풀이하는 쪽도 사람이요, 읽는 쪽도 사람입니다.


  사진솜씨가 놀라운 사람이라면, 아름답지 않구나 싶은 모습도 아름답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을는지 모릅니다. 아마 ‘사진으로 바라볼’ 적에만 아름다울는지 모르지요. 사진솜씨가 모자란 사람이라면, 아름답구나 싶은 모습조차 아름답지 못하게 사진을 찍을는지 몰라요. 아마 ‘사진으로 바라볼’ 적에는 안 아름다울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사진솜씨란 무엇일까요.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하게 꾸미는 모습을 사진솜씨라 할 만할까요. 사진에 깃든 이야기를 즐겁게 받아들이며 기쁘게 삭히도록 이끌 때에 사진솜씨라 할 만할까요.


  레이첼 매케나 님은 “프랑스 고양이들이 멋진 또 다른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중 하나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화가들은 고풍스러운 시골 마을과 소박한 매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특유의 빛 때문에 프랑스를 작품 활동의 무대로 삼고 싶어했다(8쪽).”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고양이라 해서 딱히 멋지지 않아요. 영국 고양이라서 덜 멋지거나, 뉴질랜드 고양이라서 안 멋지지 않아요. 레이첼 매케나 님은 뉴질랜드에서 프랑스까지 먼길을 날아가서 고양이 사진을 찍는데, 거꾸로 일본이나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뉴질랜드까지 먼길을 날아가서 고양이 사진을 찍고는 ‘뉴질랜드 고양이들이 멋진 또 다른 까닭은 ……’ 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인고 하면, 고양이는 스스로 멋지지도 않지만, 스스로 멋집니다. 고양이는 스스로 고양이일 뿐입니다. 고양이가 멋지다고 바라보거나 생각하는 쪽은 오직 사람입니다. 사람 눈으로 바라보며 고양이가 멋지다느니, 프랑스 고양이가 멋지다느니 하고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레이첼 매케나 님은 “나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한다(49쪽).” 하고 말하지요. 다시 말하면, 레이첼 매케나 님 스스로 ‘프랑스 고양이는 멋져. 난 프랑스 고양이가 얼마나 멋진가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겠어.’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대로 사진을 찍어 사진책 《프로방스의 길고양이》를 빚습니다.

 

 


  사진책 《프로방스의 길고양이》에서 고양이가 안 나오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프랑스 프로방스 시골 삶자락’이 예쁘장하게 나옵니다. 다만, 예쁘장하게 나오는 모습이란 ‘레이첼 매케나 님 눈으로 보기에 예쁘장한’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예쁘장하다고 느낄 모습은 아닙니다. 레이첼 매케나 님이 끊임없이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보여주니, 이 글을 읽고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예쁘네 예쁘네 예쁘네’ 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리하여, 레이첼 매케나 님은 “프랑스 시골의 찬란한 아름다움 또한 나를 전율케 한다(114쪽).” 하고 외칩니다. 외칠밖에 없지요. 이녁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으면, 뉴질랜드에서 프랑스까지 마실을 갈 턱이 없잖아요. 이녁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에,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마주하는 길고양이 모두 예쁘다고 느낄밖에 없어요.


  길고양이도 예쁘고, 길바닥도 예쁩니다. 창틀도 예쁘고 담쟁이덩굴도 예쁩니다. 사람들도 예쁘고 오래된 집도 예쁩니다.


  자, 생각해 봐요. 건설업자나 개발업자가 프로방스 오래된 시골집을 바라볼 때에는 무엇을 느끼려나요. 40층이나 50층짜리 아파트에서 칵테일잔 부딪히며 삶을 누리는 사람이 프로방스 오래된 시골길을 걸어야 한다면 무엇을 느끼려나요. 달동네 꼭대기 조그마한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프로방스 오래된 시골 골골샅샅 돌아볼 때에는 무엇을 느끼려나요. 바깥에서 찾아온 나그네나 손님이나 구경꾼이 아닌, 프로방스에서 태어나 프로방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눈길로 돌아볼 때에는 무엇을 느끼려나요. 참말, 바깥손님 아닌 프로방스 사람들 스스로 ‘프로방스 길고양이’를 사진으로 담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프랑스 프로방스 시골이 아름답다면, 프랑스 프로방스 시골을 이녁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한테는 인도 뒷골목이 아름답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미국 맨해튼 한복판이 아름답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숲이 아름답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바다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을 말이라면 ‘내가 바라보는 이곳이 참 아름다워요’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내 마음밭이 어떠한 빛이요 무늬이며 결인가’ 하는 대목을 살피며 생각을 주고받아야지 싶어요. 내 마음자리가 느긋할 적에, 비로소 아름다움을 생각합니다. 내 마음자리가 넉넉할 적에, 바야흐로 아름다움을 찾아나섭니다. 내 마음자리가 흐뭇할 적에, 천천히 둘레를 살피며 이웃과 동무하고 어깨를 겯는 삶을 헤아립니다. 내 마음자리가 따사로울 적에, 시나브로 사랑과 꿈을 꽃피울 아름다운 길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살펴봅니다.


  사진은 사진솜씨로 빚지 못합니다. 사진은 내 마음자리에 따라 빚습니다. 사진은 예쁜 마을이 있어 빚지 않습니다. 사진은 마을 스스로 빚습니다. 다만, 마을살이를 마음으로 느껴야 빚겠지요. 마을사람과 마을길과 마을집을 나 스스로 어떤 눈빛과 넋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달리 빚겠지요. 내 마음에 아름다운 사랑이 자라며 아름다운 눈길이 될 때에는, 프로방스 아닌 어느 시골에 가더라도 ‘참 아름답네’ 하면서 사진을 찍어요. 이때에는, 내 사진장비가 무엇이든, 내 사진솜씨가 어떠하든, 다 좋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생각이 샘솟거든요. 나는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아름다운 생각을 붙잡아 사진기 단추를 알맞게 누르면 돼요. 사진이 태어나는 자리는 바로 내 삶자리, 사랑자리, 꿈자리, 생각자리, 그리고 이야기자리입니다. 434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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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발바닥

 


  아직 겨울 한복판이기는 한데,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집에서 맨발로 놀기를 좋아한다. 날이 어느 만큼 풀린 때에는 두 아이가 양말 안 신고 논다고 할 적에 그대로 둔다. 아버지도 늘 맨발로 사니까. 작은아이가 바지에 응가를 누어 밑을 씻기며 발을 함께 씻긴다. 아이들 발을 씻기며 발가락과 발바닥을 만지면, 발이 참 작네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이 작은 발로 얼마나 개구지게 뛰고 달리고 노는데, 참말 이 작은 발로 온 땅을 딛는구나. 발가락만 보고 발바닥만 보아도, 딱 너 산들보라인 줄 알아채겠지. 몸도 마음도 나란히 아끼고 사랑하면서 잘 놀아라. 434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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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땋는 어린이

 


  잠자리에 들 큰아이가 잘 생각을 않고 머리 땋아 달라며 한참 조른다. 옆지기가 큰아이 머리를 땋는다. 큰아이는 얌전히 앉아 머리 예쁘게 되기를 기다린다. 머리땋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곧 머리땋기를 곁에서 배워 큰아이 머리를 땋아야겠다고 생각한다. 434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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