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그림

 


골짜기 사이로
무지개 드리웁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빛깔도 무늬도 모양도
아닌
환하게 빛나며
따숩게 감도는
몰랑몰랑 좋은 기운
보드랍게 그립니다.

 


4346.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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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2, 동백에서 버스 타고 죽시

― 2600원으로 군내버스 봄나들이

 


  북녘 어느 곳에는 눈바람 불기도 한다지만, 2월 22일 고흥 동백마을은 고운 봄볕 드리웁니다. 겨우내 싯누렇게 바랜 들판에 차츰 푸릇푸릇한 기운 비칩니다. 봄이지요. 북녘에는 새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면, 남녘 고흥에는 새봄 노래하는 꽃볕입니다.


  주머니에서 1500원을 꺼냅니다. 작은 시골마을에는 버스표 끊는 곳 없습니다. 맞돈으로 1500원을 챙겨 군내버스 삯을 치릅니다. 올해 여섯 살은 큰아이는 앞으로 이태 뒤면 어린이표인 800원을 내야겠지요. 아직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버스삯 없이 즐거이 군내버스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지죽부터 달려 도화면 소재지를 거쳐 신호리 동백마을 지나가는 군내버스에 봄손님 가득합니다. 그래도 빈자리 하나 있어 읍내까지 20분 버스길 앉아서 갑니다. 자가용 없는 우리 집 살림으로는 군내버스가 참 재미나며 신납니다. 적은 돈으로 읍내마실 할 수 있고, 구비구비 이 마을 저 마을 거치면서 다른 마을 봄내음 맡을 수 있어요. 봉서 봉동 고당을 지납니다. 세동 덕촌 봉덕을 지납니다. 안동을 지날 무렵, 안동고분 푯말을 봅니다. 날이 더 따스히 무르익으면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 태우고 안동고분 언저리로 마실을 가 볼까 생각합니다.

 

 

 


  군내버스는 포두를 지나고 널따란 해창만 벌판을 가로지릅니다. 옛 장수마을 커다란 못 곁을 스칩니다. 자전거로 이 멧길 오르자면 한참 헐떡거려야 하는데, 군내버스는 거침없이 붕붕 올라갑니다.


  읍내에 닿습니다. 죽시(풍양) 가는 버스때를 살핍니다. 10시 50분 차를 타자 생각하며 고흥읍 저잣거리로 발걸음 옮깁니다. 읍내에 나온 김에 저잣거리 들러 식구들 먹을거리를 장만하기로 합니다. 자동차 조금 적게 다니는 안골목을 걷습니다. 대문 위쪽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꽃그릇 놓은 조그마한 집을 바라봅니다. 고흥군여성회관 오래된 건물 곁 전봇대에 붙은 ‘빼빼로’ 광고판을 올려다봅니다. 예전에는 저런 광고판 참 많았다고 떠올립니다.


  작은 기와집 한켠에 마련한 빨랫대 바라봅니다. 볕 좋은 오늘 빨래 널면 해바라기 좋겠네요. 간판 글씨 거의 떨어진 에덴완구 옆을 지납니다. 간판 글씨 거의 떨어졌어도, 마을사람은 다 이곳이 에덴완구인 줄 압니다. 간판 글씨 떨어졌으면 떨어진 대로 예쁘장합니다.

 

 

 


  고흥에 있으나 ‘고흥’사진관 아닌 ‘광주’ 사진관인 가게 곁을 스칩니다. 고흥에서 ‘광주’ 이름 간판을 건 사진관이라면, 광주하고 어떤 삶줄 이어졌겠지요. 읍내 저잣거리 한켠 분식집에서 튀김 몇 점 먹습니다. 읍내 냇물 곁에서 우람한 뿌리와 줄기와 가지 뽐내는 느티나무를 봅니다. 팔백예순 살 훨씬 넘은 느티나무 곁에 정자 하나 마련했는데, 정자 마련하며 큰돌은 아직 안 치웠군요. 언제쯤 치우려나. 마을 아이들이 이 느티나무 오르내리며 놀곤 하는데, 저 큰돌 때문에 다치지 않을까 살짝 걱정스럽습니다. 멋스러이 정자 꾸몄으면,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면 참 좋을 텐데요.


  어떤 눈길로 바라보면 허름하다 할 테지만, 마을사람 눈길로 바라보면 그저 그렇게 예부터 살가이 살아온 자취 고스란히 묻어나는 저잣거리 안길을 걷습니다. 감자 한 바구니 장만하고, 느타리버섯 한 꾸러미 장만합니다. 방앗간에 가서 떡볶이떡 있는지 묻습니다. 오늘은 없다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와야지요. 며칠 앞서 매생이와 조갯살 장만했기에 오늘은 슬슬 지나갑니다. 엊그제 사 둔 갈치를 아직 안 구워먹었다는 생각 떠오릅니다. 오늘이나 이듬날에는 갈치구이 해서 아이들과 먹어야지요.


  저잣거리 바깥쪽으로 나옵니다. 냇둑 맞은편에 물고기 말리는 모습 곱습니다. 들고양이 한 마리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냄새만 잔뜩 피울 뿐, 어느 물고기 하나 들고양이가 건드릴 수 없습니다. 입맛 다시는 들고양이는 천천히 천천히, 또 천천히 천천히, 여기저기 맴돌기만 합니다.

 

 

 


  다시 읍내 버스역으로 옵니다. 풍양면 죽시 가는 버스표 1100원짜리 끊습니다. 어느 마을 할머니가 아까 버스표 끊으며 표를 안 받은 듯하다며 실랑이를 벌입니다.


  군내버스에 오릅니다. 동백에서 고흥읍 나올 적에는 자리에 앉았지만, 고흥읍에서 죽시 가는 길에는 빈자리 없습니다. 서서 가지요, 뭐. 10분 길인걸요.


  버스가 풍양면 죽시에 닿자, 할머니 할아버지 거의 모두 내립니다. 모두 풍양면 소재지에 볼일 있으신가 보군요. 예전에 버스표 팔던 가게를 바라봅니다. 지난 2012년 9월부터 교통카드 생기면서, 고흥군에 있던 작은 가게마다 ‘종이버스표’를 더는 안 팝니다. 이제 죽시마을에서 ‘죽시’ 두 글자 새겨진 종이버스표는 더 구경할 수 없습니다. 종이버스표를 더 다루지 않으면, 시골마을 작은가게 찾는 사람들 발길은 더 줄어들지 않으랴 싶습니다. 교통카드를 쓰는 일도 좋다 하지만, 고흥은 고흥 삶결대로 종이버스표를 오래오래 써도 재미날 텐데 싶습니다. 생각을 다르게 하면, 다른 모든 곳은 교통카드라지만, 고흥으로 와서 군내버스를 타면 ‘종이버스표’만 써야 한다고 할 적에, ‘버스 즐김이’들은 고흥으로 버스 타러 오거나 버스표 모으러 올 수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고흥군 ‘종이버스표’를 구경하면서 구성지고 아름다운 시골버스길 즐기러 찾아올 수 있습니다.

 

 

 

 

 


  풍양면 야막에 있다는 느티나무를 찾아 두리번두리번합니다. 면사무소에 가서 여쭐까 하다가, 어, 여기 무척 큰 느티나무 한 그루 있네, 싶어 놀랍니다. 면사무소 건물과 건물 사이에 우람한 느티나무가 찡깁니다. 건물 사이에 찡기느라 굵다란 가지 하나 뭉텅 잘립니다. 저런. 어쩜 이렇게 아프게 이곳에 있니.


  면사무소이든 군청이든, 이런 건물은 100해나 200해를 버티지 못해요. 아마 쉰 해 넘게 잇는 건물도 드물겠지요. 그러나, 이 느티나무는 200해뿐 아니라 500해나 1000해를 삽니다. 2000해나 5000해까지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면, 면사무소 건물과 느티나무 한 그루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떻게 하는 길이 풍양면과 고흥군과 느티나무와 숲과 마을과 사람을 모두 살리는 길이 될까요.

 

 

 

 

 


  풍양면사무소 주민쉼터 한쪽에 ‘친환경화력발전소 유치위원회’라는 데에서 만든 유인물 보입니다. 고흥군에 ‘위해·유해 화력발전소’ 안 들어도록 하기로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 이런 유인물이 이런 곳에 수북하게 쌓인 채 있을까요. 풍양면사무소 일꾼(공무원)은 무슨 일을 하나요.


  면사무소 한켠에 있는 ‘상림리 삼층석탑’을 봅니다. 돌탑은 예쁘게 꾸며 놓습니다. 이와 달리 느티나무는 막대접을 받습니다. 무엇을 아끼고 어떤 삶을 지어야 즐거운가를 이곳 분들은 아직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고흥에 있는 ‘대구’식당 간판을 봅니다. 작고 예쁜 집 벽돌담을 봅니다. 풍양면 조그마한 우체국을 봅니다. 우체국 옆을 자전거로 달리는 마을 할배를 봅니다. 햇살은 따스히 내려쬡니다. 따순 햇살이 자전거 할배 몸으로 살살 스며듭니다. 볕 좋은 고흥에서도 남달리 볕좋은 풍양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풍양초등학교 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습니다. 좋은 볕 누리며 밭을 갈아엎으며 구슬땀 흘릴 수 있고, 밭일은 새벽에 한 다음, 아침 맛나게 지어먹고 2월 한낮에 슬슬 이웃마을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동백에서 1500원, 고흥읍에서 1100원, 고작 2600원이면 동백부터 죽시까지 봄마실 누릴 수 있습니다. 4346.2.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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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꽃

 


저기 민들레꽃 있네.
여기 이 꽃은
무슨 꽃이야?
추운 겨울에도
노랗게 피고 하얗게 피는
이 꽃들은 이름이 뭐야?

 

어떤 이름일까?
어떤 숨결로 찬바람 찬햇살
찬비까지 머금으며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겨울에도 노랗게 꽃송이 밝으니
겨울노랑꽃이라 할까?
겨울이어도 하얀 꽃망울 예뻐
겨울하양꽃이라 할까?

 


4345.12.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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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9] 풀지기

 


  山野草, 野生草, 山草, 野草는 모두 중국말이거나 일본말입니다. 한국말이 아니요, 한국말일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낱말은 몽땅 한말사전에 실려요. 그러면, 한국말은 무엇일까요? , 한국말은 입니다. 이래도 풀이고 저래도 풀입니다. 굳이 가르자면, ‘들풀이고 멧풀입니다. ‘들멧풀이나 메들풀처럼 써도 되겠지요. 그러나, 예부터 한겨레는 그저 이라 했어요. 들에서 나든 멧골에서 나든 풀은 입니다. 풀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자라는데 사람이 먹는 풀은 나물이라고 다른 이름을 붙여요. 풀 가운데 사람이 씨앗을 받아 밭에 따로 심으면 남새라고 새 이름을 붙여요. 나물과 남새를 아울러 푸성귀라고 하지요. 간추리자면, 사람이 심든 들과 멧골에서 얻든, 사람이 먹는 풀은 푸성귀인 셈입니다. 옛날사람은 누구나 시골사람이었고 흙사람이자 들사람이었어요. 옛날 옛적에는 누구나 땅을 손수 일구고 갈아서 먹을거리를 얻었어요. 그러니, 누구나 흙에서 일하기에 흙사람이고, 누구나 들에서 일하기에 들사람입니다. 누구나 흙을 만지는 삶터를 누리니 시골사람이고요. , 풀씨를 받아 풀을 먹던 옛사람입니다. 풀을 즐기고 누리며 먹으니, ‘풀먹기남새먹기라 할 테고, 옛사람은 누구나 풀을 잘 알고 건사하며 지켰기에 풀지기남새지기라 할 만합니다. 요즈음은 야생초 전문가라느니 산야초 전문가라고들 하지만, 옛사람은 풀지기에 남새지기에 흙지기에 시골지기에 삶지기였습니다.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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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무리 예쁜 밤

 


  어젯밤 아이들과 함께 달무리를 바라본다. 아, 예쁘네. 고개 척 꺾어 올려다보는 밤하늘에 크고 둥그런 달무리가 참 예쁘다. 그런데, 옆지기는 달무리가 늘 있었다고 말한다. 쳇, 언제 늘 있었다구, 하고 대꾸하려다가, 내가 눈으로는 못 본 달무리가 늘 있었을는지 모르겠다고 깨닫는다. 왜냐하면,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저 먼 별이 있지만, 내 눈이 느끼지 못하는 아주 먼 별이 있을 테고, 내 코앞에 있는 어떤 정령이나 도깨비를 나로서는 못 느낄 수 있다. 달무리를 놓고도 똑같은 셈이다. 달무리는 날마다 늘 있는데, 여느 사람 또한 느낄 만큼 굵고 짙은 달무리 있을 테고, 여느 사람은 누구도 못 느낄 가늘고 얇은 달무리 있으리라.


  내가 알아보기에 더 예쁜 달무리가 아니다. 내가 못 알아보기에 안 예쁜 달무리가 아니다. 내가 알아보는 달무리는 내가 알아보는 달무리일 뿐이다. 내가 못 알아보는 달무리는 내가 못 알아보는 달무리일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바라보는 달무리가 더할 나위 없이 예뻐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신다고 느끼면 된다. 아이들아, 너희 눈에 달무리 예쁘니? 우리 함께 달무리 실컷 누리자. 4346.2.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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