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34] 착하며 곱고 참다운

 


  착한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 참답게 삶을 일굽니다. 참답게 삶을 일구는 사람은 시나브로 착한 길을 걸어요. 착한 마음이 되어 스스로 몸을 곱게 건사합니다. 내 몸 곱게 건사하는 착한 매무새이기에, 이웃과 동무 몸 또한 곱고 튼튼하며 씩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손을 내밀고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서로 곱게 살아갈 보금자리를 돌봅니다. 어깨동무하는 사람들은 슬기롭게 생각을 기울여 삶을 빛내는 참모습을 하나둘 깨닫습니다. 참삶은 참사랑에서 비롯하고, 참사랑은 참마음에서 비롯하며, 참마음은 참꿈에서 비롯합니다. 착한 손길로 풀과 나무와 흙을 쓰다듬습니다. 고운 눈길로 새와 벌레와 짐승을 마주합니다. 참다운 마음길로 살붙이와 이웃을 얼싸안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착한 몸짓 물려줍니다. 아름답게 살림하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아름다운 삶터 이어줍니다. 참답게 이야기하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참다운 넋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받을 세 가지란, 어른 누구나 기쁘게 누리며 가꿀 세 가지입니다. 4346.3.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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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타기 2

 


  이웃마을에 나들이를 갔다가 나무를 본다. 아이들이 타고 오르기에 꼭 알맞춤한 나무로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느새 큰아이가 “나, 나무 타도 돼요?” 하고 묻는다. “나무한테 물어 봐.” “나무야, 나 타고 올라도 돼? 나무가 된대요.” 그래, 즐겁게 올라타며 놀아라. 4346.3.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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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13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22

 


꽃이 참 예쁘구나
― 불새 1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02.7.25./4500원

 


  매화나무에 꽃봉오리 맺힙니다. 꽃봉오리는 하나둘 터집니다. 하얀 빛깔 매화꽃은 여느 하양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하얗구나 하며 바라보는 매화꽃이기는 하지만, 매화꽃 빛깔은 ‘매화꽃빛’이라고 해야만 어울리는 하양입니다.


  매화꽃에 이어 진달래꽃이 필 테고, 앵두꽃이 필 테지요. 딸기꽃이 필 테며, 모과꽃도 필 테지요.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능금꽃 하나하나 피어나며 온 들판과 숲과 마을을 환하게 밝히리라 생각합니다.


  진달래꽃 바라볼 적에는 참 고운 분홍이로구나 하고 느끼다가도, 진달래는 ‘진달래꽃빛’ 아니고는 제대로 나타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앵두꽃은 ‘앵두꽃빛’이요, 딸기꽃은 ‘딸기꽃빛’이며, 모과꽃은 ‘모과꽃빛’이에요.


  흔히 주홍이니 다홍이니 분홍이니 하고들 일컫지만, 우리 둘레에서 피고 지는 꽃빛을 하나하나 헤아리면 어떠한 빛깔이든 알맞고 아름답게 가리킬 만합니다. 곧, 꽃을 늘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꽃빛’으로 빛깔을 나타내요. 아니, 먼먼 옛날부터 흙 일구며 살아가던 흙사람은 꽃빛이 삶빛이 되고, 풀빛이 새로운 삶빛으로 스며들면서, 나무빛과 흙빛과 물빛과 하늘빛이 서로서로 어우러지며 새삼스러운 삶빛으로 거듭났겠지요.


- “왜 인간을 만들어야 하죠? 이 세상에 60억이나 되는 인간을 또 늘리겠다고요?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짓이에요. 아니, 백해무익한 짓이죠!” (23쪽)
- “할머니는 인간이야! 미네랄 수프를 드시면 눈이 반짝반짝 빨갛게 빛나는걸. 맛있다고 그러는 거야! 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죽고 싶지 않다면서, 몇 번이나 수술했다고 엄마가 그랬어.” “그렇게까지 해 가며 목숨만 유지하려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우리처럼 죽임을 당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도 있군.” (75쪽)

 

 


  아이들이 나무를 타고 오릅니다. 오를 만한 나무라면 아이들이 오릅니다. 나도 어릴 적에 나무타기를 좋아했습니다. 단단하고 튼튼하며 우람한 나무에 척척 손과 발을 대고 딛고 걸치고 기대며 오르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나무랑 하나가 됩니다. 나무 숨결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나무 냄새를 온몸으로 맡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나무타기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나무타기 하도록 풀어놓는 어버이를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도 방과후학교뿐 아니라 여러 학원에 보내는 어버이들입니다. 도시에서는 더없이 마땅하게 숱한 학원에 보내는 어버이들입니다. 예전에는 초등학교마다 큰 나무 있어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놀았다면, 요즈음에는 초등학교에 제법 큰 나무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나무타기를 하지 않아요. 교사들이 꾸짖기 앞서 아이들 스스로 나무타기를 생각하지 않아요. 도시에 새로 짓는 학교에는 아이들이 타고 놀 만한 나무가 없기도 해요.


  나뭇가지 하나 있어도 흙을 파고 노는 아이들입니다. 나뭇가지 여럿 있으면 자치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입니다. 나뭇가지 굵직한 것 있으면 칼싸움놀이를 하든 잡아당기기놀이를 하든 꽂기놀이를 하든 하는 아이들입니다.


  어느 아이는 나뭇가지로 새총을 만들겠지요. 어느 아이는 나뭇가지를 물에 잘 헹구어 주머니에 늘 넣고 다닐 테지요. 어느 아이는 알맞춤한 나뭇가지를 고무줄로 묶어 몽당연필 붙일 수 있겠지요.


- “축하합니다. 자, 상금과 세계여행 티켓이에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왠지 살인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영. 2∼3일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요.” “살인이라니요. 이건 진짜 인간이 아닌걸요.” (80쪽)
- ‘클론인간을 만들게 해 주세요. 법률적으로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어요.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이 아니면 되는 겁니다.’ “난 왜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했을까. 매스컴 속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거야. 시청률과 인기의 광기 속에서.” (101쪽)

 

 


  풀을 뜯습니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던 지난날에는 들풀 모두 밥거리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논둑이나 밭둑에 앉아 풀을 뜯습니다. 들에서 풀을 뜯고, 숲에서 풀을 뜯습니다. 이 풀도 저 풀도 밥이 됩니다. 고 풀도 요 풀도 밥으로 삼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뒤집어쓰지 않은 풀이니, 손으로 흙 슥슥 털어 먹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맞지 않은 풀이기에, 풀과 함께 흙을 나란히 먹습니다.


  흙을 일구던 사람들은 밥도 반찬도 국도 스스로 지어서 먹습니다. 바깥 어디로 가서 밥을 사먹는 일이 없습니다. 나그네한테도 길손한테도 밥을 차려 줄 수 있지만, 돈으로 밥을 사먹는 일이 없습니다. 곧, 돈이 없어도 누구나 삶을 일구고 삶을 지으며 삶을 누리던 나날입니다.

  풀맛은 자리에 따라 다릅니다. 볕을 잘 받던 풀이랑 볕을 못 받던 풀은 맛이 다릅니다. 기름지게 일군 들에서 뜯은 풀하고 나무 우거진 숲에서 뜯은 풀은 맛이 다릅니다. 모래밭이나 자갈밭 틈에서 뜯은 풀하고 보송보송 고소한 밭자락에서 뜯은 풀은 맛이 달라요.


  흙이 숨을 쉬는 곳에서는 풀이 숨을 쉬고, 풀이 숨을 쉬기에 이 풀을 뜯어서 먹는 사람은 푸른 숨결입니다. 영양식도 보양식도 없다지만, 풀포기 하나로 몸을 다스려요. 풀이 밥이면서 풀이 약이에요. 풀이 목숨이 되고 풀이 사랑이 돼요.


- “당신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겠어요. 더러운 문명의 지식이 아닌, 생물로서의 순수한 지식을.” (113쪽)
- “아빠, 꽃이 너무 예뻐.” (127쪽)

 


  봄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니, 나비가 겨울잠을 깹니다. 봄햇살 따뜻하게 비추니, 개구리가 봄살이 누리려고 깨어납니다. 봄빛이 온누리를 곱게 밝히니, 멧새는 한결 일찍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나비 날갯짓에 따라 봄날 하루가 새롭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에 따라 봄날 저녁이 포근합니다. 봄빛 머금는 멧새 노랫소리 들으면서,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바지런히 밭을 갈고 뒤엎습니다.


  때때로 바람이 쉬잉 불어도 춥지 않습니다. 아, 시원하구나, 하고 느끼다가는, 아, 어디에선가 피어난 봄꽃 내음이 바람결에 실려 찾아오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닷물은 찰랑찰랑 싱그럽습니다. 풀밭은 푸릇푸릇 산뜻합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마당을 뛰놀며 까르르 떠듭니다.


  삶은 무엇일까요. 삶을 이루는 바탕은 무엇일까요. 삶을 아름답게 빛내는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요. 왜 누구는 웃고, 왜 누구는 울까요.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웃을 수 있는가요. 어떤 삶을 일굴 때에 울고 마는가요. 꿈은 누가 꾸고, 꿈은 어떻게 이루는가요. 이야기는 어디에서 태어나고, 나는 내 이웃과 아이들과 동무한테 어떤 이야기를 물려줄 만한가요.


- ‘나의 단 한 번뿐인 사랑은 채 반 년도 못 되어 허망하게 끝났다. 아버지는 내게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어머니조차 다른 나라에 인질로 보내 죽게 내버려두었을 정도였다. 내게 남은 것은 살벌한 아버지의 성격뿐. 이대로 가다간 결국 난 아버지 같은 괴물이 되고 말 거야.’ (192쪽)
-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난세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벌레처럼 죽이고 짓밟았다. 그 중에는 요괴처럼 얼굴이 일그러지고 악령처럼 불타 녹아내린 사람도 있었다. (216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열셋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부터 열둘째 권까지 읽으면서 다 다른 삶 다 다른 이야기를 느꼈고, 열셋째 권에서도 사뭇 다른 삶과 이야기를 느낍니다. 이번에는 ‘꽃이 참 예쁘구나’ 하는 삶과 이야기를 느낍니다.


  꽃이 참 예쁘다니, 참 아무것 아닌 대수로운 이야기라고 여길 분이 있겠지요. 참, 그래요. 꽃이 참 예쁘지요. 게다가 이 대목은 더없이 수수한 이야기일 테지요. 그런데, 꽃이 참 예쁜 줄 느끼는 하루를 보내는 오늘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꽃송이 한 차례 가만히 바라보며 1분이나마 즐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하루 1분, 또는 1초, 꽃을 그윽히 바라보면서 내 삶 한 토막을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은 얼마쯤 될까요.


- “도깨비인지 인간인지 어떻게 구별하지?” “네? 그야 얼굴.” “카헤이! 고통과 원한이 깊어지면 사람도 도깨비로 보일 수 있는 법이야.” (220쪽)
- “그렇게도 죽는 게 무서운가요? 당신은 살인자인 아버지를 증오했어요. 그러면서 당신 자신도 살인을 하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아버지가 살아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돼요!”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건가요? 어차피 죄는 똑같아요. 그래서 당신은 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 (232∼233쪽)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사람 스스로 예쁜 줄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내 곁 이웃과 동무가 예쁜 줄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사람이 빚은 책 한 권 예쁜 줄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밭자락과 논자락 일구며 쌓은 돌울타리 예쁜 줄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구름 한 송이 예쁜 줄 느끼면서, 햇살 한 자락 예쁜 줄 느껴요.


  꽃이 예쁜 줄 못 느끼는 사람은, 사람 스스로 예쁜 줄 못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못 느끼거나 안 느끼기에, 사람들 스스로 예쁘지 않은 일을 하고, 예쁘지 못한 길로 접어들며, 예쁘지 않은 일에 사로잡혀, 예쁘지 못한 삶으로 흐르고 말아요.


  봄에 봄꽃을 바라보아요. 여름에 여름꽃을 바라보아요. 우리 아이들 어여쁜 웃음꽃을 마주해요. 내 살가운 이웃과 동무들 아리따운 삶꽃을 어깨동무해요. 4346.3.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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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책을 새로 읽기

 


  책은 종이책만 책이 아니기에 언제나 책을 읽습니다. 연필을 쥐어야만 쓰는 글이 아니고, 글로 써야만 남는 이야기가 아니며, 책으로 담아야만 삶이 아닙니다. 삶은 모두 책이고, 이야기는 모두 글이며, 글은 모두 생각입니다. 아이들하고 부대끼는 하루란 육아책 수십 수백 권 읽는 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아이들하고 놀거나 노래부르는 삶이란 교육책 수백 수천 권 읽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어느 분께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말씀했습니다만, 종이책을 하루라도 안 읽으면 가시가 돋치지 않아요. 삶을 슬기롭게 깨닫거나 깨우치면서 사랑을 따사롭게 보듬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삶이 삶이라는 뜻입니다.


  봄에 봄을 느끼지 못하면 ‘봄을 다루는 책’을 수십 권 읽는들 덧없습니다. 겨울에 겨울을 누리지 못하면 ‘겨울을 보여주는 책’을 수백 권 읽는들 부질없습니다.


  내 코앞에 있는 작은 꽃그릇 풀잎을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숲속 나무와 풀밭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늘 마시는 바람을 살갗으로 느끼며 아낄 수 있을 때에, 정갈한 시골숲 들바람을 느끼며 아낄 수 있습니다.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를 좋아하며 보살필 수 있을 때에, 낯선 사람이나 낯모르는 이웃과 멀디먼 나라 누군가를 좋아하며 보살필 수 있어요.


  밥 한 그릇 먹으며 배부르는 기쁨을 알기에, 배고픈 이웃한테 밥 한 그릇 내밀 수 있어요. 아픈 내 몸이 얼마나 아픈가를 알기에, 아픈 이웃한테 맑은 눈빛으로 밝은 이야기 건넬 수 있어요.


  종이로 빚은 책만 읽을 적에는, 국회의사당 테두리에서 안 벗어나는 정치꾼하고 똑같이 됩니다. 종이로 묶은 책에만 빠질 적에는, 서울 테두리에서 안 벗어나는 신문쟁이 잡지쟁이 방송쟁이하고 똑같이 됩니다. 종이로 엮은 책으로만 온누리를 바라볼 적에는, 쇠밥그릇 두들기는 바보와 똑같이 됩니다. 내 삶이 어떤 빛깔이고 무늬이며 결인가를 느낄 때에 책을 읽습니다. 내 삶빛을 나누고 싶기에 책을 읽습니다. 내 삶무늬를 보듬고 싶기에 책을 읽습니다. 내 삶결을 빛내고 싶기에 책을 읽습니다.


  누구나 날마다 책을 새로 읽습니다. 누구나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누구나 날마다 책을 새로 사귑니다. 누구나 날마다 새로운 마음 되어 새로운 이야기 길어올립니다. 4346.3.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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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골

 


  새책방이나 도서관에는 ‘책골’이 생기지 않습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책골을 만들 까닭이 없겠지요. 책꽂이에 꽂을 책이 넘치는 바람에 바닥에 책탑을 쌓는 헌책방에는 으레 책골이 생깁니다. 새책방에서는 책꽂이가 넘치면 반품을 해서 책꽂이를 비웁니다. 도서관에서는 책꽂이가 다 차면 대출실적 적은 책부터 폐기 도장 찍어 버리며 책꽂이를 홀가분하게 합니다. 헌책방에서는 이 책도 저 책도 섣불리 버리거나 치우거나 반품하지 못합니다. 어느 책이건 언젠가 아름다운 책손 하나 찾아와서 아름다운 손길로 거두어 가리라 여겨, 고이 건사합니다.


  책 하나 고이 건사하는 손길이 책탑을 쌓고, 책탑과 책탑은 서로 어깨를 기대어 책골이 생깁니다. 책골은 반듯하기도 하지만 기우뚱하기도 합니다. 어느 책손은 책골이 무너지지 않게끔 다독여 줍니다. 어느 책손은 책골이 무너지거나 말거나 엉덩이로 툭 치든 가방으로 퍽 치든 합니다.


  책골 사이로 책이 보입니다. 책탑이 가린 뒤쪽 책들이 책골 사이로 고개를 내밉니다. 이 책골이 사라지도록 누군가 책꾸러미 잔뜩 사들일까요. 이 책골이 낮아지도록 누군가 책보따리 잔뜩 장만할까요.


  다 다른 책들이 다 다른 모양새로 꽂혀 다 다른 책손을 기다립니다. 4346.3.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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