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수다꽃, 내멋대로 59 그만두다



  쉰 살에 이른 나한테 어느 분이 묻는다. “어릴 적에 어떻게 보내셨어요?” 나는 어린날을 늘 떠올리지만 늘 생각조차 않는다. 앞뒤 어긋난 말 같지만, 늘 두 가지를 나란히 한다. 어제하고 오늘하고 모레는 늘 같기에, 오늘을 바라볼 적에 늘 모레가 나타나면서 어제가 피어난다. 어릴 적에 무엇을 하며 놀거나 일하거나 꿈을 그렸는지 바로 되새기면서, 오늘 무엇을 하며 놀거나 일하거나 꿈을 그리는지 곧장 생각하고, 이동안 모레에 무엇을 하며 놀거나 일하거나 꿈을 그리는지 어느새 눈앞에서 하나둘 본다. “저는 어린날에 늘 얻어맞으면서 살았어요. 막말(욕)도 오지게 들었어요. 어린날에 대여섯 해쯤 몹쓸짓(성폭력)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어린날에는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늘 감돌았어요. 날마다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 하고 울지 않았어요. 모든 때, 그러니까 1분 1초 모든 때에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런 마음일 적마다 둘레에서 ‘그럼 내가 널 죽여 줄까?’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보는 사람도 있고 못 보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둘레에는 온갖 깨비(귀신)가 늘 도사려요. 우리가 스스로 엉큼하거나 어둡게 스스로 죽일 적에는 바로 이 깨비가 속삭이면서 홀리려고 하지요. 깨비가 나를 죽여 주겠다고 할 적마다 ‘아냐! 난 죽을 수 없어! 난 죽지 않겠어!’ 하고 외쳤고, 이때마다 깨비는 빙그레 웃으면서, 또는 차가운 낯빛으로 사라졌어요. 워낙 날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배움터에서도 얻어맞고 막말에 시달리는 나날이었는데, 열다섯 살에 이르러 드디어 이런 굴레를 스스로 떨치는데, 열다섯 살까지 굴레살이를 하면서도 ‘굴레’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집 안팎에서 저를 모질게 괴롭히고 못살게 굴 적마다 ‘내 몸은 내가 아니야. 내 몸은 내가 입은 그릇이야. 그런데 너희가 이 그릇을 아무리 들볶고 괴롭히고 장난을 치더라도 그릇은 다치지 않아. 너희는 껍데기를 만지작거릴 뿐이거든.’ 하고 여기면서 지나갔어요. 견디지 않았습니다. 버티거나 참지 않았어요. 어린날에는 ‘유체이탈’이란 말을 몰랐는데요, 어린날에 시달리고 들볶이는 동안 ‘몸벗기(유체이탈)’를 했어요. 날마다 뻔질나게 했습니다. 얻어맞거나 막말을 듣거나 몹쓸짓에 시달릴 적마다, 제 넋은 몸을 벗어났어요. 저를 괴롭히는 이들 머리 위로 붕 떠올랐어요. 그들은 제 넋이 몸에서 나와 하늘에 붕 뜬 줄 하나도 모르더군요. 저는 하늘에 뜬 채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곰곰이 지켜보았어요. 제가 아무리 맞아도 그닥 대꾸도 없으니, 또 멀쩡하게 웃고 뛰놀면서 사라지니, 이튿날에도 또 괴롭히기 일쑤이지만, 언제나 몸벗기를 하면서 어린날을 보냈어요. 저는 어린날에 책을 조금 읽기는 했지만, 책을 읽을 틈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집안일을 돕고 심부름을 하고, 어린배움터와 푸른배움터에서 쏟아붓는 무시무시한 짐더미(숙제폭탄)를 붙잡고 울었어요. 밤새워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짐더미를 쏟아붓고는, 짐더미를 다 못 했다면서 길잡이(교사)란 놈들이 몽둥이에 따귀에 발길질을 일삼았답니다. 제 어린날은 이렇습니다.” 겉몸을 휘젓거나 괴롭히는 이들은 아마 사랑받은 일이 없다고 여기리라 본다. 그들한테는 떡 하나를 더 주어야 옳다고 느낀다. 예부터 미운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하는 말은, 사랑받지 못 한 이웃과 아이가 “넌 늘 사랑받는 삶이요 숨결이란다” 같은 이야기를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배울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조그마한 손길을 나타낸다고 본다. 미운아이를 손가락질하거나 때리거나 굶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로 싸움(전쟁)이다. 싸움은 나쁘지 않지만, 싸움만 일삼거나 싸움으로만 치닫는다면, 그들뿐 아니라 우리부터 사랑을 잊고 잃는다. 아마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참답게 배우고 슬기롭게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씨앗을 품으려고 ‘어린날’을 보냈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죽고 싶다’는 마음을 그만두자마자 오직 꿈으로 걸어가는 밤길을 보았고, 밤이란 어두운 때가 아닌, 밤이란 별빛으로 밝고 아름다운 사랑길인 줄 알아차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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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14 처마 2024.9.14.



  처마가 없는 집이 부쩍 늘었기에 ‘처마’라는 말소리를 들은 바 없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골목집이나 시골집에서 지낸 적이 없으면 더더구나 ‘처마’를 알 길이 없다. ‘초리’처럼 지붕 끝이 살며시 나온 곳인 처마요, 집을 이루는 곳에서 처음인 길로 여길 처마이다. 처마에 붙여서 ‘처마종’이다. 처마종은 바람이 불면 살살 춤을 추면서 소리를 낸다. 처마에 붙인 작은 쇠라서 ‘처마쇠’이고, 꽃이나 새나 물고기 모습으로 꾸며서 ‘처마꽃·처마새·처마물고기’이다. 처마끝에서 모이며 떨어지는 물이니 ‘처맛물’이다. 처마를 모르는 탓에 ‘낙숫물(落水-)’ 같은 겹말을 잘못 쓰는 분이 제법 있다. 한자말 ‘낙수 = 떨물·떨어지는 물’이기에, ‘낙수 + 물’처럼 쓸 수 없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처마에 부딪히고 모이면서 떨어진다. 처마 밑에 서면 비를 긋는다. 제비는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다. 참새는 아예 처마 둘레에 구멍을 내어 서까래에 둥지를 엮곤 한다. 이제는 굳이 한집(한겨레집)을 지어서 살아야 하지 않으니, 처마가 없는 집에서 살며 처마를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처마를 조금 내기에 집채가 아늑하다. 처마가 빗물을 튕겨 주기에 집채가 고스란하다. 큰고장에 가득한 ‘아파트·빌라’에는 처마가 아예 없다시피 하기에 바깥담은 늘 눈비에 닳고 햇볕에 삭는다. 집에 처마를 놓으면서 오래오래 건사하는 셈이다. 집에 처마가 있기에 누구나 처마 밑에서 비를 긋거나 해바라기를 하면서 가볍게 쉴 만하다. 처마가 있으니 작은새도 깃들어 노래를 베푼다. 살림자리에서 쓰는 이름 하나가 사라질 뿐일까? 살림을 하는 뜻이 나란히 잊히면서 살림 한켠이 사르르 닳거나 삭아서 사라지는 셈이지 않을까? 처마를 낸 오랜 골목집이나 시골집은 두온해(200년)도 닷온해(500년)도 너끈하지만, 다른 집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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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13 이름 2024.9.16.



  우리한테는 ‘이름’이 있지만, 곳곳에서 ‘성명(姓名)’처럼 한자를 쓰라고 밀었다. “여기에 손으로 사인(sign)을 하세요”나 “이곳에 수기(手記)로 서명(署名)하세요” 같은 겹말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인·서명’은 ‘이름’을 가리키면서 ‘손으로·스스로’ 하는 몸짓을 담는다. ‘수기 = 손으로 적다’요, ‘서명 = 이름을 적다’이다. 곰곰이 짚자면 처음부터 ‘이름’이라는 낱말과 ‘손으로·스스로’라는 낱말을 쓰면 된다. 우리말로 쉽게 쓴다면 겹말로 잘못 쓸 일이 없고, 어린이부터 알아들을 만하다. 이름을 ‘이름’이라 하지 않다 보니, ‘딴이름·다른이름’을 한자로 ‘별명(別名)’처럼 엮는다. 글을 쓸 적에 붙이는 이름인 ‘글이름·붓이름’을 굳이 한자로 ‘필명(筆名)’처럼 여민다. 이리하여 오늘날처럼 누리집이 새로 뻗는 곳에서는 영어를 끌어들여 ‘아이디(ID)·닉네임(nickname)’을 쓰거나 다른 한자말 ‘계정(計定)’을 쓰기까지 한다. 옛사람은 ‘덧이름’을 ‘호(號)’처럼 한자로 적어야 멋스럽다고 여겼다. 멋스럽게 부르고 싶다면 ‘멋이름’이라 하면 될 텐데, 그만 ‘예명(藝名)’처럼 한자말로 해야 멋지다고 여기기도 한다. 서로 이르는(이야기하는) 소리이기에 ‘이름’이다. 서로 마음으로 이르려고(다가서려고) 하기에 ‘이름’이다. 이름을 부르면서 새롭게 일어난다. 이름을 들려주고 듣는 사이에 뜻을 잇는다. 이름이란 바로 ‘나’이고 ‘너’이다. 이름을 알아가는 동안 이곳에 있는 너랑 나는 새삼스레 어울리면서 한빛을 이룬다. 우리가 쓰는 이름에는 이제부터 일구려는 길이 깃든다. 지난날 임금은 사람들을 다 다른 이름이 아닌 ‘백성(百姓)’ 같은 한자말로 뭉뚱그렸다. 오늘날은 ‘국민(國民)·민중(民衆)·대중(大衆)’으로 뭉뚱그리는데, 우리 이름을 찾아야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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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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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찰칵이 숨지다 (2023.9.15.)

― 인천 〈모갈1호〉



  찰칵이는 불쑥 숨을 거둡니다. 얼핏설핏 어긋나려나 싶으면 몇날쯤 버티다가 까무룩 잠들어요. 1998년부터 찰칵길을 걸었으니 여태 숱한 찰칵이를 떠나보냈습니다. 누가 훔치기도 했고, 더는 일할 수 없다며 멈추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숨을 거두니 아찔합니다. 책집으로 마실을 왔는데 책집에서 찍지 못 한다면 멀리 길을 나선 보람이 없어요.


  그렇지만 1998년까지는 찰칵 안 찍었다는 뜻입니다. 1998년 무렵까지는 오직 글로만 책집마실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글로 모자라다 싶으면 손으로 길그림을 여미었어요. 찰칵 안 찍어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이 글로 적으면 넉넉하리라 여겼습니다.


  책집을 빛꽃으로 옮기자는 마음은 1998년 가을에 싹틉니다. 찰칵이를 거느린 분치고 책집을 책집답게 옮기거나 담거나 그리는 사람을 못 봤어요. 얼마나 책을 안 읽거나 미워하면 책집을 이처럼 엉터리로 엉성하게 마구 찍나 싶었습니다.


  책집마실을 글로 쓰려는 마음도 매한가지입니다. 숱한 글꾼이 막상 온나라 여러 마을책집에서 고맙게 책을 만나면서도 정작 책집노래라 일컬을 만한 글을 아무도 안 쓴다고 느꼈어요.


  글바치가 책집 이야기를 글로 쓸 일이 없으리라 느껴서 스스로 쓰기로 합니다. 빛꽃바치가 책집 살림결을 찰칵 찍을 일이 없구나 싶어서 스스로 찍기로 합니다. 남이 해주기를 바랄 수 없어요. 바라는 사람이 스스로 할 일입니다.


  남이 해주지 않습니다.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이 나라를 아름답게 돌보지 않습니다. 바로 네가 돌보고 내가 보살펴요. 조촐히 보금자리를 이루는 수수한 사람 스스로 온누리를 사랑하고 푸른별을 살피면서 들숲바다를 토닥입니다.


  주섬주섬 책을 살피다가 기운이 살짝 빠집니다. 눈으로만 담자고 생각하면서도 찰칵찰칵할 수 없다는 마음에 책을 더 들여다보지 못 하고 맙니다.


  이제 이러면 안 되겠다고, 찰칵이를 미리 여럿 장만해 놓고서 그때그때 갈마들면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살림돈이 모자라더라도 미리 장만해 놓을 노릇입니다. 찍어야 할 적에 찍지 못 한다면, 모두 걸리거나 막히니까요.


  인천 배다리 〈모갈1호〉 책시렁에 쪼그려앉아서 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갑작스레 숨이 멎는 찰칵이는 제가 얼른 바로세울 매무새 하나를 따끔하게 가르치는 셈이라고 봅니다. 지난겨울에 셈틀이 멎은 일로도 못 배웠느냐고 나무라는 셈입니다. 기지개를 켜고, 등허리를 폅니다. 다시 일어서서 걷습니다.


ㅅㄴㄹ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오세영, 문학사상사, 1982.12.27.첫/1984.6.30.중판)

《풀빛시선 1 黃土》(김지하, 풀빛, 1970.12.10.첫/1984.7.15.재판)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최승호, 세계사, 1993.3.15.)

《불가사의한 새 펭귄》(존 스파크스·토니 소파/김재후 옮김, 한길사, 199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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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푸름이하고 함께 읽는 잡지

<파란씨앗> 창간준비호에 나란히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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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참으로 쉽다

말꽃삶 37 글 그릇 그루 그림



  우리는 눈으로 글을 읽습니다. ‘글’은 눈으로 보면서 알아보도록 적은 무늬라고 여길 만합니다. 눈으로 읽는 글이라면, 귀로 듣는 말이 있습니다. ‘말’은 눈으로 못 봅니다. 말은 늘 귀로 들어요. 그런데 말은 누가 들려주고 나면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납니다. 누구한테서 들은 말을 나중에도 떠올리려고 종이나 바닥에 새기기에 ‘글’이라고 합니다. ‘글’이란 “그린 말”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말’을 눈으로 읽으면서 뜻을 알려고 그린 무늬가 ‘말’이다”처럼 간추릴 수 있습니다.


  소리로 내어 들려주고 듣는 말인데, 이 말이란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말’이라는 소리로 바꾸어서 들려주기에 알아들어요. 네가 밝히려는 마음은 네가 들려주는 말에 소리로 담깁니다. 내가 알고 싶은 네 마음은 바로 네 말을 듣는 동안 차근차근 알아보거나 떠올릴 만합니다.


 마음 → 말 → 글


  말이 있기에 글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으니 말이 있어요. 우리는 ‘글’이라고 하는 그림을 눈으로 보면서 서로 어떤 마음인지 알려고 합니다. ‘글’은 “그린 말”이면서 “마음을 담은 소리”를 옮긴 얼거리입니다. 그래서 “글 = 그린 말 = 담은 마음”이기에 “글 = 그려서 담은 마음소리”로 여길 만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거나 다룰 적에 ‘그릇’을 씁니다. 밥을 담아 ‘밥그릇’입니다. 국을 담아 ‘국그릇’입니다. 풀꽃을 심어서 돌보려고 ‘꽃그림’입니다. 돈을 차곡차곡 모으려면 ‘돈그릇’을 둘 테지요.


  사람이 푸르게 바람을 누리는 길에는 나무가 이바지합니다. 나무가 서기에 온누리가 푸르게 우거지는 숲입니다. 나무가 든든히 줄기를 올리는 밑동을 ‘그루터기’라고 해요. 그리고 나무를 셀 적에는 “나무 한 그루”나 “나무 두 그루”처럼 셉니다. 어른이 일하는 곳 가운데 ‘주식회사’란 이름이 있어요. ‘주식’이라는 한자말에서 ‘주(株)’는 ‘그루’를 가리킵니다. 나무는 한 그루만 있을 적에는 아직 ‘숲’이 아니에요. 숱한 나무가 어울리기에 숲입니다. 어른이 일하는 ‘주식회사’라는 곳은 여러 사람이 ‘여러 나무’를 돌보듯 뜻과 힘을 모은다는 얼거리입니다.


 글 : 마음을 담은 말을 담는 노릇

 그릇 : 살림을 담는 노릇

 그루 : 숲을 담는 노릇


  글쓰기가 안 쉽다고 여기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는 어릴 적에 오래도록 말더듬이였습니다. 바야흐로 쉰 살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렀는데, 아직 이따금 말을 더듬곤 합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게 마련이라, 어떤 사람은 혀가 길고 말소리를 내기 안 어렵습니다만, 어떤 사람은 혀가 짧고 말소리를 내기 꽤 어렵습니다.


  저는 혀짤배기에 말더듬이라는 몸을 타고났는데, 혀가 짧고 말을 더듬더라도 제가 하고픈 말을 즐겁게 합니다. 겉보기로는 소리가 새거나 말을 더듬되, 제 나름대로 할 말을 하거든요. 그렇다면 글을 쓸 적에는 어떠할까요? 우리가 말소리를 낼 때가 아닌 글로 말을 옮길 적에는 어느 누구도 “이 사람이 말을 더듬는지 소리가 새는지” 하나도 못 느낍니다. 더구나 글쓰기를 할 적에는 스스로 되읽으면서 글손질을 할 수 있어요. 말은 마주보는 사람하고 바로바로 소리를 내야 하지만, 글은 오늘 쓴 글을 몇날에 걸쳐 다듬고 손보고 추슬러서 읽힐 수 있습니다.


  말하기가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소리가 새거나 더듬더라도, 때로는 앞뒤가 안 맞거나 갈팡질팡하더라도, 이대로 말을 하면 됩니다.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습니다. 중얼거리든 속삭이든 시끄럽든 다 다르게 하는 말일 뿐입니다.


  이와 달리, 글쓰기는 우리가 적어 놓은 말과 마음을 얼마든지 가꾸고 다듬고 손볼 수 있어요. 곰곰이 본다면, 글쓰기야말로 쉽습니다. 처음 쓴 글을 그대로 내보인다면 창피할 수 있다고도 할 테지만, 한 벌 고쳐쓰고, 두 벌 손보고, 석 벌 다듬고, 넉 벌 추스르고, 다섯 벌 어루만지고, 여섯 벌 가다듬고, 일곱 벌 되새기고, 여덟 벌 손질하는 사이에, 어느덧 즐겁게 펼 새 이야기 한 자락이 태어나요.


 글쓰기 : 마음을 담은 말을 하나씩 달래면서 옮기는 일


  나중에 보태고 손보면 됩니다. 첫벌부터 훌륭하거나 뛰어나게 쓰려고 여기니 어쩐지 어렵다고 느낄 뿐입니다. 첫벌쓰기를 할 적에는 그저 마음을 슥슥 고스란히 옮길 노릇이에요. 첫벌쓰기는 그냥 가볍게 부는 바람처럼 슬슬 쓸 일입니다. 이렇게 첫벌을 마치고 나서는 집안일도 돕고 여러 살림을 추스르고서, 느긋이 두벌쓰기를 하면 됩니다. 이윽고 다른 일을 더 보고서 석벌쓰기를 할 만합니다.


  아무래도 동무나 이웃이나 어버이하고는 조잘조잘 거리낌없이 말을 할 수 있어도, 우리 마음을 글로 옮겨서 읽히려고 하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부끄러운 마음을 그저 부끄럽다고 받아들이면 되어요. 자랑스러우면 자랑스럽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슬플 적에는 슬프다고 받아들여요. 기쁠 적에는 기쁘다고 받아들여요.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예요. 우리 마음을 고스란히 담기에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들려주고 들은 말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천천히 ‘그리’면 되어요. “이야기한 말을 그려서 담는 글”이에요.


  느낀 바를 그대로 담기에 글 한 줄이 사랑스럽습니다. 아픈 일은 아픈 느낌을 그대로 쓰기에 서로 아픈 멍울과 생채기를 나눠서 풀어요. 반갑고 뿌듯한 일은 반갑고 뿌듯한 느낌을 그대로 쓰기에 서로 활짝 웃으며 북돋아요.


  글은 꾸며서 쓰지 않습니다. 말도 꾸며서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그대로 담기에 말이 말답고, 글이 글다워요.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할 말이 아니요, 남이 잘 읽어 주어야 할 글이 아닙니다.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북돋우고 다독일 뿐 아니라, 생각을 빛낼 씨앗을 살필 글입니다.


  이리하여 ‘마음씨’하고 ‘말씨’하고 ‘글씨’라고도 합니다. ‘씨’는 ‘씨앗’을 줄인 낱말이면서, ‘심(힘)’을 나타내는 낱말이고, ‘심다’로 잇는 얼개입니다. 마음씨란, 마음에 심는 씨앗이란 뜻입니다. 말씨란, 말로 심는 씨앗이란 뜻입니다. 글씨란, 글로 심는 씨앗이란 뜻이고요.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스스로 남기고 일구려는 꿈을 그대로 드러내는 씨앗이라고 할 만합니다. 글을 꾸며서 잘 쓰려고 할 적에는 ‘꿈’하고 멀어요. 꾸민 글이라면 겉치레로 기웁니다. 꾸밈없이 쓰는 글, 이른바 우리 마음을 그대로 담은 글이라면, 속으로 빛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말을 잘 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됩니다. 말더듬이에 혀짤배기인 저처럼, 그저 어떤 마음을 나타내고 싶은지 하나하나 헤아려 봐요. 글을 잘 쓰려고 꾸미지 않으면 됩니다. 두런두런 나눌 마음과 생각을 차분히 짚으면서 담아 봐요.


 글쓰기 = 말을 담기 = 마음쓰기


  ‘글쓰기’란 ‘마음쓰기’하고 맞닿습니다. 마음을 쓰는 하루가 그대로 글을 쓰는 손길입니다. 서로 마음을 쓰면서 이야기가 태어나고 자라요. 함께 마음을 쓰고 글을 같이 써 보면서, 눈을 밝히고 오늘을 사랑하는 동무로 만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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