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2804 : 끈질기고 집요



끈질기고 집요한 인간들을

→ 끈질긴 사람들을

→ 검질긴 사람을

→ 물고늘어지는 사람을


끈질기다 : 끈기 있게 검질기다

집요(執拗) :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기다



  한자말 ‘집요’를 우리말 ‘끈질기다’로 풀이합니다. ‘집요 → 끈질기다’로 고쳐쓰면 된다는 뜻입니다. 말뜻을 헤아린다면 “끈질기고 집요한” 같은 겹말을 안 쓸 테지요. 단출히 ‘끈질긴’만 쓸 테고, 비슷하면서 다른 ‘검질긴’을 쓸 수 있고, ‘물고늘어지는’을 써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나는 끈질기고 집요한 인간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가 쳐졌다

→ 나는 끈질긴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 나는 물고늘어지는 사람을 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루이스 세풀베다/엄지영 옮김, 열린책들, 2025)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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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2805 : 봉홧불



봉홧불일

→ 불빛일

→ 알림불일


봉화(烽火) : [역사]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신호로 올리던 불. 전국의 주요 산정(山頂)에 봉화대를 설치하여 낮에는 토끼 똥을 태운 연기로, 밤에는 불로 신호를 하였는데, 상황에 따라 올리는 횟수가 달랐다 ≒ 관화·낭화·봉수

봉홧불(烽火-) : 봉화로 드는 횃불



  알리려고 올리는 불을 한자말로 ‘봉화’라 하니, ‘봉홧불’이라 하면 겹말입니다. 지난날에는 한문을 쓴다면서 ‘烽火’라 했을 텐데, 이제는 ‘알림불’이나 ‘올림불’로 옮길 노릇이고, 수수하게 ‘불’이나 ‘불빛’이라 하면 됩니다. ㅍㄹㄴ



자신의 바람을 주위에 알리기 위한 봉홧불일 수도 있다

→ 바라는 바를 둘레에 알리려는 불빛일 수도 있다

→ 바라는 뜻을 둘레에 펴는 알림불일 수도 있다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이시바시 다케후미/정영희 옮김, 남해의봄날, 2016)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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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2806 : -네 집



유하네 집은

→ 유하네는

→ 유하집은


-네 : 1. ‘같은 처지의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2. ‘그 사람이 속한 무리’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집 :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누구네 집”이라 하면 겹말입니다. 미처 못 느끼는 분이 많습니다만, ‘누구네’라고 하면 “누구 집안”이나 “누구가 있는 집”을 가리켜요. ‘누구네 = 누구집’입니다. “유하네 집은”은 “유하네는”이나 “유하집은”으로 고쳐씁니다. 이때에는 ‘-집’을 앞말하고 붙이는 쪽이 어울립니다. ㅍㄹㄴ



유하네 집은 별천지 신나는 놀이터

→ 유하네는 새롭고 신나는 놀이터

→ 유하집은 꽃누리 신나는 놀이터

《우리나라 시골에는 누가 살까》(이꽃맘, 삶창, 202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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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 이호철의 교실 혁명 살아있는 교육 47
이호철 지음 / 보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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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5.10.

푸른책시렁 182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이호철

 보리

 1994.6.15.



  모든 하루가 살림거리이고, 집살림이건 바깥살림이건 책살림이건 글살림이건, 또는 돈살림이나 밥살림이나 옷살림이건, 모두 우리가 손수 돌아보면서 보듬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누구는 누구보다 잘 한다고 여길 수 있고, 나는 누구보다 못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르게 태어나서 다르게 살아갈 뿐이라, 서로 다른 결로 모든 살림을 맞아들이지 싶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면 이 일도 제법 하고 저 일도 꽤 해낸다고 느낍니다. 마음을 덜 기울이거나 못 기울인 탓에 이 일도 엉성하고 저 일도 어줍짢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잣대도 남이 재는 틀일 뿐, 우리 스스로 엉성하거나 어수룩하거나 어지럽더라도 웃고 노래하면서 누리면 모두 빛나는 살림이라고 느껴요.


  즐겁게 짓기에 즐겁게 나누고, 즐겁게 읽기에 즐겁게 쓴다고도 봅니다. 차근차근 읽는 손길은 언제나 찬찬히 돌아보는 손빛과 눈빛으로 이어갈 테고요.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은 1994년에 처음 나옵니다. 아직 배움터마다 ‘짐(숙제)’을 매우 무겁게 씌우는 나라이던 무렵에, ‘짐’이 아니라 ‘배움놀이’로 바꾸어 보자는 뜻을 편 길잡이 한 사람 이야기가 흐릅니다. 날마다 아이들한테 뭘 맡기거나 시켜야 한다면, 억지스런 짐이 아닌 재미난 놀이를 알려줄 노릇이라고 여기는 마음입니다.


  저는 이 책을 1998년에 처음 만났고, 이 작은 꾸러미는 틀림없이 이 나라를 바꾸는 밑거름이 되겠거니 여겼습니다. 책이 처음 나오고서 서른 해가 지나는 동안 ‘매질(체벌)’은 사라지고, 어린빛(아동인권)을 헤아리는 목소리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아동학대’라는 이름으로 ‘교사학대’가 불거질 뿐 아니라, 짐(숙제)도 ‘배움놀이’도 사라진 자리에 모둠밥(급식)과 ‘캐릭터 교과서’가 판치면서 막상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에서는 배움놀이뿐 아니라 배움길마저 사라지는 듯합니다.


  배움터란, 아이들을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아이 누구나 스스로 살림길을 열도록 싹을 틔우는 터전이어야 맞습니다. 배움터는 모둠밥터(급식실)가 아닌 부엌을 두고서 아이 누구나 스스로 제 몸과 마음을 살피는 밥을 지어서 먹도록 이끌어야 맞습니다. 그러니까 11시부터 12시 사이에는 아이들이 ‘밥짓는 배움길’을 누려야지요. 모든 아이가 왁자지껄 밥을 지으면 힘들 수 있으니, 달날부터 쇠날까지 갈라서 다섯 모둠이 갈마들면서 ‘밥짓는 배움길’을 누리면 되고, 이동안 다른 네 모둠 아이들은 배움터 곳곳을 손수 쓸고 치우고 닦으면서 돌보는 살림길을 익힐 수 있습니다. 또는 서로 책을 소리내어 읽어 주는 배움짬을 누릴 만합니다.


  2025년에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을 되읽자니, 이제 이 책은 쓰임새를 다한 듯싶습니다. 또는 이 책을 새롭게 되살려서 ‘어린이와 푸름이가 손수 살림배움길을 걷는 하루’로 나아가도록 얼거리를 다시 짜서 엮을 수 있을 테지요. ‘재미있는 숙제’가 아닌 ‘즐거운 살림배움’을 겪고 배울 노릇인 아이어른입니다. 길잡이도 아이곁에서 함께 낮밥을 지으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를 누릴 때라야 배움터가 배움터답게 일어서리라 봅니다. 순이돌이 누구나 집살림을 맡을 줄 알 때에 이 나라가 거듭납니다. 둘 다 어릴 적부터 집일과 집살림을 익히면서 ‘왜 배우는가?’를 스스로 묻고 찾아나설 노릇입니다. 나라지기도 새로 뽑을 일이되, 나라지기에 앞서 우리 아이들부터 제대로 바라보는 어른과 길잡이로 설 수 있기를 빕니다. 


ㅍㄹㄴ


그 본래의 귀함을 잊고 사는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때 부모님의 팔다리 30분쯤 주물러 드리기를 숙제로 내어 보자. (34쪽)


한 주 전에 숙제로 내어 주워 온 돌을 제자리에 갖다 놓도록 하는 것이다. 까닭을 모르는 아이들은 투덜대기도 할 것이다. (61쪽)


노는 습관이 붙은 아이들에게 집 둘레 청소를 시킨다면 그렇게 반가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하기 싫어하는 습관이 하루이틀에 형성된 것이 아니므로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다. (80쪽)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버릴까? 함부로 버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다지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108쪽)


우리의 옷에 우리의 말이 얼마만큼 씌어 있나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그림이 얼마나 그려져 있는지도 찾아보도록 하면 좋겠다. (152쪽)


그러나 작은 도시 가까이에 있는 논밭이기 때문에 그곳에 버린 휴지나 깡통 같은 쓰레기가 논밭을 뒤덮고 있음을 아이들이 눈으로 보고 남다른 느낌을 가졌을 수도 있다. (226쪽)


+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이호철, 보리, 1994)


사람이 살아가는 가운데서 삶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 한다고 본다

→ 사람으로 살며 배워야 한다고 본다

22


재미있는 숙제거리는 아이들의 생활에서 찾는 것이 좋다

→ 재미있는 배움거리는 아이들 삶에서 찾으면 된다

→ 재미있는 익힘거리는 아이들 삶자리에서 찾는다

26


하기 싫어하는 습관이 하루이틀에 형성된 것이 아니므로

→ 하기 싫어하는 버릇이 하루이틀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 하기 싫어하는 매무새가 하루이틀에 나오지 않으므로

80


함부로 버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 함부로 버리는 일을 돌아볼 틈을 두며

→ 함부로 버리는 삶을 곰곰이 짚으며

→ 함부로 버리는 모습을 가만히 살피며

108


우리의 옷에 우리의 말이 얼마만큼 씌어 있나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 우리 옷에 우리말이 얼마만큼 있나 찾아본다

→ 우리 옷에 적힌 우리말을 찾아본다

152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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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뇌과학 - 당신의 뇌를 재설계하는 책 읽기의 힘 쓸모 많은 뇌과학 5
가와시마 류타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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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10.

까칠읽기 71


《독서의 뇌과학》

 가와시마 류타

 황미숙 옮김

 현대지성

 2024.11.6.



  오늘 우리는 ‘책’을 아무렇지 않게 쉽고 넉넉히 누릴 수 있다만, 온나라 숱한 책숲(도서관)이 이렇게 퍼진 지 기껏 열 해 남짓이다. 열 해 앞서만 해도 책숲이 제대로 없거나 빠듯하기 일쑤였고, 이 대목을 느낀 온나라 작은사람은 ‘작은책숲’을 마을 한켠에 열어서 온힘을 기울여 가꾸고 돌보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책’도 ‘책숲’도 제대로 누린 지 얼마 안 될 뿐 아니라, ‘책집’마저 제대로 누린 지 오래지 않다. 전두환은 1987년에 드디어 끌려내려오고, 박정희는 1979년에 드디어 숨지고, 이승만은 1960년에 드디어 떨쳐내고, 1953년에 한겨레싸움이 드디어 끝나고, 1945년에 드디어 일본이 물러가고, 1900년 언저리에 드디어 위아래틀(신분위계질서봉건국가)이 사라졌더라도, “누구나 누리는 책”이 된 지는 얼마 안 된다.


  “일하는 누구나” 책을 누린 지 얼마 안 되지만, “붓을 쥔 지식권력자”는 예부터 책을 누렸고 글을 거머쥐었다. 훈민정음은 1400년대에 태어났되 1900년에 이르기까지 아무나 배워서 쓸 수는 없었다. ‘한글’이란 이름은 1913년 무렵에야 주시경 님이 붙였고, 흙지기(농사꾼)로 살던 사람들(백성)은 글은커녕 붓이나 종이조차 만질 수 없던 나날이 길다. 이 얼거리를 읽지 않는다면, 오늘날 숱한 책이 왜 “어렵고 까다롭게 일본말씨와 중국말씨와 옮김말씨 범벅에서 안 벗어나는지” 몰라보게 마련이다. 우리는 아직 “일하는 누구나 즐기고 누릴 책”이라는 터전을 가꾼 적이 없다. “붓을 쥔 지식권력자”끼리 쏟아내던 책과 글이라는 틀부터 걷어내지 못 한 판이거든.


  《독서의 뇌과학》을 읽었다. 읽었으나 책집 책시렁에 얌전히 놓았다. 여러모로 애쓴 책인 줄 알겠지만, “일하는 누구나 책읽기”라는 길하고는 너무 멀다고 느꼈고, 한글로 옮긴 분은 ‘우리말씨’가 아닌 ‘일본말씨 + 옮김말씨’에 갇혔다. 새글을 쓰든, 이웃글을 옮기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서 읽어 줄 만한 글인지 살펴야 한다. 아이가 귀로 들으면서 바로바로 알아차릴 만하도록 글결을 안 가다듬는다면, 글쓰기도 옮기기도 아닌, “또다른 글담(문자권력)”일 뿐이다.


  왜 읽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무엇을 읽고 어떻게 나누면서 이 삶을 스스로 지으면서 노래할까?


  책이 왜 책이며, 우리가 곁에 책을 두면서 스스로 어떻게 눈을 틔우고 마음을 열고 생각을 가꾸고 삶을 짓고 살림을 북돋우고 사랑을 나누는 하루를 누릴 만한가 하는 대목을 되새겨야지 싶다. 이제부터 책과 글을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헤아려야지 싶다.


  ‘사회평론’과 ‘노원문고’와 ‘윤철호’가 책담을 쌓고서 ‘대한출판문화협회’라는 이름을 내걸며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를 꾀하는 2025년이다. 내가 쓴 책을 펴낸 곳을 비롯해서 적잖은 펴냄터는 이미 ‘서울국제도서전 불참’을 오래도록 해왔다. ‘그들끼리 쌓은 책담’으로 여태 어떻게 길미를 챙겼는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국제도서전’을 해야 할까? 왜 굳이 나라밖에 우리 책을 팔거나 알려야 할까? 먼저 온나라 사람이 함께 나누고 사랑할 책부터 제대로 일구고 고루 알리면서 두루 읽는 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나라밖잔치’라는 허울을 걷어내고서 ‘누구나잔치’라는 길을 짜야 하지 않을까? 돈을 조금만 더 내도 자리(부스)를 열이건 스물이건 마구 내주는 돛떼기판이라면 책잔치일 수 없다. 모든 펴냄터와 글지기가 ‘한 칸이나 두 칸’만 자리를 얻어서 고루두루 어울리는 자리여야 비로소 책잔치이다. ‘문학동네’처럼 새끼를 잔뜩 친 펴냄터는 ‘문학동네 임프린트’만으로도 “서울국제도서전을 뒤덮을” 수 있다.


  잔치란 뭔가?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나날을 기리는 돌잔치이든, 순이돌이가 새롭게 짝을 맺는 자리를 기리는 꽃잔치이든, 예순이나 일흔 나이를 기리는 예순잔치나 일흔잔치이든, 해마다 돌아오는 첫날을 기리는 첫날잔치이든, 잔치판에 ‘비싼 참가비’를 받는다고 한다면, 미친짓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여태 서울국제도서전을 ‘작은펴냄터는 얼씬조차 하기 어렵도록 비싼 자리값’을 챙겨 왔다.


  책잔치다운 책잔치라면, 이곳에 ‘온나라 골골샅샅 펴냄터와 글지기’를 ‘몸만 와주셔도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모셔야 맞다. 작고 알차게 책을 펴내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한테 비싼 자리값을 받으려 하지 말고, 이들한테 오히려 ‘모심삯’을 드리면서 ‘도움일꾼’을 붙여 주는 틀을 짜야 ‘출협답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윤철호 씨는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를 노리면서 그냥그냥 돈벌기와 이름벌기와 힘벌기에 마음을 기울인다. 우리나라 책잔치라면, “큰펴냄터는 이바지삯(기부금)을 통크게 내도록 하면서 두 칸씩 주”고, “작은펴냄터는 모심삯을 출협에서 내놓아서 자리를 한 칸씩 내주”는 얼거리를 짜야 맞지 않을까? “큰펴냄터는 3억씩 이바지삯을 내고서 두 칸만 나오는 틀”로 이바지(재능기부)를 하고, “작은펴냄터는 모심삯을 받고서 조촐히 한 칸을 채우는 틀”로 어울려야, 비로소 우리 스스로 빛나는 즐겁고 아름다운 책잔치를 이룬다고 본다.


  또한 서울국제도서전 ‘자리’는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 돈과 뒷심에 따라서 좋거나 나쁜 자리를 아무렇게나 내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작가강연’은 이름난 이들은 그만 부르고, 갈래마다 알뜰살뜰 한길을 고이 걸어가는 사람들로만 가려서 수수하고 조촐하게 꾸려야 맞다. ‘인기작가’이든 ‘무명작가’이든 딱 스무 사람만 받아서 조용하고 조촐하게 이야기밭을 펴는 작가강연을 곳곳에 마련해 놓아야, 사람들이 고루두루 책과 사람을 만나면서 제대로 배우고 익히는 길을 누릴 만하다. 이러한 대목은 터럭만큼도 안 살피는 이 나라 책마을이기에, 그들은 글담을 나날이 더 높이 쌓으려 한다. ‘뇌과학’이 나쁠 일은 없되, 누구한테 어떻게 이바지하려는 ‘골길’인지 생각해야지 싶다. ‘골’을 왜 어떻게 쓰는 길이 스스로 눈과 마음과 몸과 손발을 틔우는 슬기롭고 어진 빛인지 헤아릴 때라야 비로소 책 한 자락이 어떤 숨결인지 누구나 스스로 알아보겠지. 우리말 ‘골’은 한자로 ‘뇌’도 가리키되, ‘고을’을 줄인 낱말이기도 하고, ‘골짜기’를 줄인 낱말이기도 하고, ‘고요·곱다’와 ‘굴’을 이루는 밑동이기도 하다.


  ‘서울국제도서전 주식회사’라는 핑계를 대면서 ‘사유화’를 하지 말고, ‘재능기부’를 하기를 빈다. 돈이 있는 그대들은 돈으로 재능기부를 하되, 자리(부스)는 둘만 받기를 빈다. 굳이 6월에 판을 벌려야 하는가? 깨끗하게 치우시라(취소하시라). 2025년은 건너뛰고서 2026년부터 제대로 잔치판을 벌이시라. 온나라 펴냄터 3000곳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그리고 온나라 글지기(작가) 1000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제대로 책잔치를 꾸릴 만한 밑틀을 아예 새롭게 처음부터 짜고서, 그대들부터 재능기부를 하고서, 작은펴냄터와 작은글지기를 모시는 신나는 어울림마당을 새해 2026년부터 여는 ‘서울국제도서전 협동조합’을 꾸릴 수 있기를 빈다. 그대들이 가야 할 길은 주식회사가 아닌,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두레(협동조합)여야 맞다.


ㅍㄹㄴ


《독서의 뇌과학》(가와시마 류타/황미숙 옮김, 현대지성, 2024)


이런 기기가 중독을 가져온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부작용에 대해선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 이런 살림거리에 길들기 쉬운데 다른 말썽거리는 알려지지 않았다

→ 이런 세간에 목매달기 쉬운데 여러 골칫거리는 알려지지 않았다

16


독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세대에 유익한 활동이다

→ 책은 누구한테나 이바지한다

→ 책을 읽으면 누구나 빛난다

→ 책은 너나없이 북돋운다

→ 우리는 책을 읽으며 배운다

19


묵독은 눈으로 문자를 보고 그 내용을 뇌의 기억을 저장고에 일시적으로 담으면서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 눈읽기로 줄거리를 머리에 가볍게 담으면서 뜻을 헤아려 간다

→ 속읽기로 줄거리를 머리에 넌지시 담으면서 속내를 알아간다

87


필요할 때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교육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를 총체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한다

→ 그때그때 새길을 들여서 가르치되, 새길이 어떻게 퍼질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 그때마다 새롭게 다루고 가르치되, 새길이 어떻게 스밀지도 헤아려야 한다

227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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