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태워라 - 성난 여성들, 분노를 쓰다
릴리 댄시거 지음, 송섬별 옮김 / 돌베개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1.20.

인문책시렁 426


《불태워라》

 릴리 댄시거 엮음

 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0.10.19.



  외롭다고 여기는 마음은 안 나쁩니다. 외곬이 나쁘지 않습니다. ‘외롭다·외곬·외눈’은 모두 ‘왼’을 나타내는 여러 낱말입니다. 오른쪽이라서 좋지 않으며, 왼쪽이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외·왼’으로 나아가기에 ‘오롯’이 설 수 있고, 배운 바를 ‘욀(외울)’ 수 있고, 이렇게 ‘외’라는 ‘하나’로 설 때에, 외하고 마주하는 오른을 느끼고 알아보면서 ‘왼오른’을 하나로 모으는 ‘온’으로 닿습니다.


  저는 하루를 으레 01∼02시 사이에 엽니다. 시골에서 살기 앞서 몸에 익힌 살림길입니다. 이미 서른 해 남짓 이러한 살림길이고, 열네 살 무렵에는 04시에, 여덟 살 무렵에는 05시에 하루를 열었습니다. 마흔 해 남짓 한결같이 ‘새벽사람’으로 살며 돌아보노라면, 새벽이슬을 훑고 새벽바람을 쐬고 새벽별을 보는 무렵에 머리와 마음이 가장 맑더군요. 그래서 아직 서울에서 살던 스물다섯 살 무렵까지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지냈습니다.


  오늘도 한밤이라 여길 깊새벽에 일어나서 새벽별과 새벽바람을 쐬며 날씨가 어떻게 흐를는지 읽습니다. 이윽고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합니다. 어제는 온몸이 찌뿌둥해서 집일을 놓았습니다. 어제는 모처럼 곁님이 국을 맡고 작은아이가 국수를 삶더군요. 마을 할매 한 분이 돌아가서셔 주검길(장례)을 마을에서 치렀는데, 이 주검길에 함께하노라니 집에서는 힘이 다해서 곁님과 작은아이가 부엌일을 도왔습니다. 다만, 두 분이 설거지는 안 하셨어요. 그러려니 지나간 뒤, 오늘 새벽에 기운을 차려서 즐겁게 마칩니다.


  왼이 나쁘지 않고 오른이 좋지 않습니다. 왼은 왼이요 오른은 오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두 손을 모아서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아기는 두 손을 모아서 엄마를 안고 아빠한테 기댑니다. 아이는 두 손을 모아서 모래놀이를 하고 나무를 탑니다. 어른은 두 손을 모아서 ‘빚고 짓고 일구고 가꾸고 돌보고 보듬고 열고 틔우고 나누고 펴고 날갯짓을 하는’ 길입니다. ‘왼 + 오른’이란 ‘암 + 수’하고 같습니다. 왼오른을 하나로 모으는 몸짓이란, 암수가 한빛으로 깨어나서 눈뜨는 마음길입니다. 왼오른과 암수·순이돌이·엄마아빠가 맡는 사랑이란, 언제나 서로 다른 줄 알아보면서 함께 나란한 줄 깨닫는 보금자리에서 싹트고 일굽니다.


  《불태워라》는 여러모로 뜻있는 글을 잔뜩 모았습니다. 다만, 길을 잘못 틀었어요. 이 별은 ‘돌이나라(남성가부장)’여도 나쁘지만, ‘순이나라(여성가녀장)’여도 나쁩니다. 외로 기울면 그저 나쁠 뿐입니다. 이 별은 어떤 나라로도 갈 까닭이 없습니다. 푸른별은 푸르게 빛나는 별일 뿐입니다. ‘푸르다’에는 암빛도 수빛도 어울리면서 흐를 뿐, 암빛만이어야 하거나 수빛만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멍청한 돌이나라(남성가부장)가 제법 길었지만, ‘나라없이’ 어울리던 ‘슬기사람’이던 나날은 엄청나게 까마득하도록 길고 오랩니다. 푸른별에서 사람은 아름답게 어울리는 사랑으로 아주아주 오래오래 잘살았어요. 이러다가 다른 별사람(우주인)한테서 잘못 배우기라도 했는지, 뜬금없이 멍청돌이가 나타나서 ‘나라(국가·정부)’를 세우기로 했고, 나라를 세우려니 칼을 들어서 이웃을 마구 잡아죽이며 땅뺏기·집뺏기·돈뺏기·추레질(성폭력)을 일삼더군요. 이윽고 칼부름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총을 만들어내어 더 쉽게 이웃을 마구 잡아죽이는 뺏음질을 키웠고, ‘세계사’라고 하는 멍청길(역사·history)을 잔뜩 벌입니다. 모든 쌈박질은 멍청한 길입니다.


  요사이는 거의 사라졌습니다만, “고추 좀 보자!”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추레질(아동성폭력)이 버젓하던 이 나라입니다. 어린순이도 추레질에 시달리던 나라요, 어린돌이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모든 ‘어른’이라 일컫는 할매할배에 아지매아재가 나란히 추레질(아동성폭력)을 끝없이 해댔습니다. 순이도 밤길이 무섭던 나라이지만, 돌이는 밤길뿐 아니라 낮길조차 무섭던 나라입니다. 낯선 어른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고추 좀 보자!”라고 하면서 벌건 대낮에조차 어디에서나 추레질을 해댔거든요.


  ‘나라’가 서면서 힘(돈힘·이름힘·글힘)으로 찍어누르기에 순이돌이가 함께 억눌리면서 고달프게 마련입니다. 순이는 순이대로 돌이는 돌이대로 다르면서 나란히 어릴적부터 온갖 추레질로 시달립니다. 모든 부스러기(사회폭력·차별·유리천장)는 ‘나라(국가폭력)’가 찍어누르는 굴레질과 차꼬질에서 비롯합니다. 이런 굴레나라와 차꼬나라에서는 “불태워라!” 하고 외칠수록 오히려 굴레질과 차꼬질이 춤춥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태움’이 아닌 ‘살림’입니다.


  뜻을 알아가려면, 품이 들더라도 차분히 들여다보고, 다시 살피고, 또 헤아리면, 어느새 길을 열 수 있습니다. 불태우거나 태워서는 겉훑기조차 못 하고서 헤맵니다. 돌봄터(병원)에서만 ‘태움’이 버젓하지 않습니다. ‘페미니즘’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만, ‘-이즘(-주의)’으로 기울 적에는 왼켠에 설 수는 있되 외곬로 기울다가 쓰러집니다. 외곬로 기울다가 쓰러지면 함께 죽는 ‘태움·불태움’입니다. ‘태움’은 ‘불태움’을 줄인 낱말입니다. 불(분노)은 ‘얼뜬짓(비이성적 행동)’입니다. 다 불지르고 불사르면서 ‘나(우리)’부터 죽이거든요.


  잘잘못을 짚고 따질 노릇이되, 잘잘못에 얽매이지 않을 노릇입니다. 잘잘못을 짚고 따지는 뜻이란, 잘잘못을 ‘아름답게 사랑으로 일구고 일으켜’서 온누리를 ‘푸른별’로 돌려놓으려는 몸짓과 마음일 노릇이지 않을까요?


  페미니즘이어야 옳지 않습니다. ‘-이즘(-주의)’이 아닌 ‘함께’ 살림하는 길을 찾을 노릇입니다. ‘옳다 = 오른쪽’이라는 밑뜻입니다. 우리말뿐 아니라 영어도 똑같습니다. 오른쪽(옳다)이어야 맞거나 좋을 수 없습니다. 왼쪽만 있어도 못 걷고 못 날고 못 짓는데, 오른쪽만 있어도 못 걷고 못 날고 못 짓습니다. 우리는 ‘손’을 쓸 노릇이고, ‘다리’로 설 노릇이고, ‘눈’으로 볼 노릇이고 ‘골(뇌)’로 생각을 일으킬 노릇입니다. 한쪽으로 기우느라 쓰러지거나 싸우지 말고, ‘함께 하늘빛으로 하나인 나와 너를 아우르는 숨결’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부디 태움질(불태움질)을 멈춰야지요. 지음빛으로 가야지요. “짓고서 지내는 곳”이라서 ‘집’입니다. 우리말에서 순이를 가리키는 어마어마한 이름 가운데 하나가 ‘계집’입니다. ‘계집 = 계시다(존재) + 짓다(창조)’로 엮은 이름인데, 이 놀라운 이름인데, 놀랍게 지은 아름사랑인 이름인 ‘계집’을 시샘하고 부러워하는 멍청한 꼰대들이 마치 ‘계집’이 낮춤말이나 놀림말이나 나쁜말인 듯 잘못 길들입니다. 이처럼 잘못 길들이는 멍청한 짓도 잘잘못으로 짚어야 하지 않을까요?


  계집(계시며 짓는 님)이기에 낳습니다. ‘낳다’는 “아기를 내놓다”만 뜻하지 않습니다. ‘낳다’는 “몸소 새롭게 지어서 내놓다”를 뜻합니다. 이 푸른별에는 계집이 계시면서 지어왔기에 여태까지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계시면서 짓는 계집 곁에서 집안일과 밭일을 도맡아서 살림길을 일구는 사내가 나란하기에, 둘은 한결같이 사랑을 한빛으로 모아서 씨앗(아기)을 낳고 열매를 함께 누렸습니다. ‘국사·세계사’라는 허울에는 멍청길(쌈박질뿐인 역사·history)만 그득하지만, 글로 안 남은 ‘계집·사내 살림자취’에는 언제나 아름답게 사랑만 흘러온 나날입니다.


ㅍㄹㄴ


세리나 윌리엄스는 뚱뚱하지 않은 근육질 신체를 지녔음에도 선수 생활 내내 정당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표출했다는 이유로 처벌과 비난을 받았다. 오사카 나오미와 맞붙은 2018년 US오픈 테니스대회 결승전에서 주심 카를로스 라모스는 계속해서 윌리엄스를 표적으로 삼았다. (107쪽)


내가 아들을 분노로부터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어린 시절의 내가 분노 없이 지낸 날이 단 하루도 없었기 때문이다. (176쪽)


나는 태평양 북서부를, 다시 보스턴을, 또 뉴욕을 향했고, 자유사상을 꽃피운 곳으로 이름 높은 근사한 대도시들을 거치며 또 다른 형태의 편협함을 경험했다.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았다. (226쪽)


그 간호사는 미스젠더링을 통해 내 여성성을 빼앗음으로써 나를 성추행할 권한을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237쪽)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던 아침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뒤로 나는 매일 나한테서 마음에 드는 점 네 가지를 큰 소리로 말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 1년째 매일 이렇게 했더니 상상 이상으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278쪽)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느꼈다.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말재주를 부리는 것 같았다. (290쪽)


나는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라 할지라도, 변하고 성장하고 나아질 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세계를 보는 시선은 전적으로 그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나를 해친 그 사람 개인을 갱생시키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295쪽)


#BurnItDown #WomenWritingaboutAnger #LillyDancyger


+


《불태워라》(릴리 댄시거 엮음/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0)


헝그리hungry와 앵그리angry의 합성어인 행그리hangry라는 단어는

→ 고프다와 타다를 더한 타프다라는 낱말은

→ 배고프다와 불타다를 더한 배타다라는 말은

128쪽


누군가가 자꾸만 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고

→ 누가 자꾸 나한테서 빼앗아 가고

→ 저들이 자꾸 나한테서 빼앗아 가고

→ 저들은 자꾸 나한테서 빼앗고

144쪽


분노의 가마로부터

→ 불가마에서

221쪽


나 자신과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연결되지 않는, 일종의 해리를 겪었던 것이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나 같지 않아서 어긋났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내가 아닌 듯해서 비틀댔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을 나로 못 느껴 기우뚱했다

235쪽


몇 달이나 데드네임을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 몇 달이나 옛이름을 쓰라고 몰아세웠다

→ 몇 달이나 죽은이름을 쓰라고 시켰다

239쪽


어떤 사람은 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난다

→ 어떤 사람은 입하늘갈림으로 태어난다

244쪽


누군가가 나한테 이런 질문을 보냈다

→ 누가 나한테 이렇게 묻는다

→ 나한테 이렇게 묻는 분이 있다

274쪽


진짜 원했던 건, 세상으로부터 모자란 존재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고통과 상처에서 놓여나는 것이었다

→ 모자라다는 말을 들을 때 더는 앓거나 괴롭지 않기를 몹시 바랐다

→ 모자라다는 말을 들을 때 아프거나 다치지 않기를 애타게 바랐다

276쪽


마치 누군가를 교정 시설로 보내는 것이 정의 구현이라도 되는 양 응당 그 사람도

→ 마치 누구를 가두어야 올바르기도 한 듯 마땅히 그 사람도

→ 마치 누구를 차꼬로 보내야 마땅하다는 듯 다들 그 사람도

29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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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카시 장의사 3
Yukiko AOTA 지음, 박소현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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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1.20.

책으로 삶읽기 1088


《아야카시 장의사 3》

 아오타 유키코

 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7.30.



《아야카시 장의사 3》(아오타 유키코/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을 읽었다. 우리 몸은 이 삶을 겪으면서 배운 바를 담는 그릇이요, 우리 마음은 몸으로 겪어서 배운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몸만 본다면 마음을 못 읽을 텐데, 마음을 보려고 하면 몸에 깃든 숱한 자취와 빛과 숨결부터 헤아릴 노릇이다. 미처 말로 옮기지 못 한 온갖 이야기가 마음에 그득하게 마련이다. 언제나 말로 옮긴 갖은 이야기도 마음에 가득가득 도사린다. 몸을 내려놓기에 죽음이면서 저승으로 가는 길인데, 마음도 나란히 내려놓아야 이리저리 떠들지 않으면서 곱게 새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보려고 하기에 문득 본다. 보려고 안 하기에 눈앞에서 펼치더라도 못 받아들인다. 속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걷는다. 이제 손을 잡으면서 이 삶을 나란히 빚는다.


ㅍㄹㄴ


“살아 있는 자가 모든 걸 결정한다. 이 세상에는 살아 있는 자밖에 없으니까.” (12쪽)


“인간은 약하구나. 이런 경고에 당하다니 …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흐트러진 감정이야말로 놈들이 노리는 거야.” (38쪽)


“하지만 새겨져 있어. 만약 잊어버린다 해도.” (132쪽)


#あやかしの葬儀屋 #あおたゆきこ


+


후회하는 게 더 바보 같아

→ 동동거리면 더 바보 같아

→ 아쉬워하면 더 바보 같아

11쪽


같은 종족이라서 역성을 들어주시는 건가요

→ 같은 겨레라서 역성을 들어주시나요

→ 같은 피라서 역성을 들어주시나요

19쪽


자기 일은 스스로 완수해

→ 네 일은 스스로 마무리해

→ 네 일은 스스로 끝내

20쪽


꽃의 비 같아

→ 꽃비 같아

23쪽


화우(花雨)라고 이름 붙이자

→ 꽃비라고 이름 붙이자

26쪽


우리는 사체의 보존에 온힘을 쏟아왔어요

→ 우리는 송장을 지키려 온힘을 쏟았어요

→ 우리는 주검을 돌보려 온힘을 쏟았어요

6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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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화우 花雨


 화우(花雨)가 내린다 → 꽃비가 내린다

 봄을 알리는 화우(花雨) → 봄을 알리는 봄꽃비


  ‘화우(花雨)’는 “비가 오듯이 흩어져 날리는 꽃잎”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꽃비’로 고쳐씁니다. ‘봄꽃비·여름꽃비·가을꽃비·겨울꽃비’처럼 철에 따라서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화우(化雨)’를 “교화(敎化)가 사람에게 미치는 것을 철에 맞추어 오는 비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풀이하면서 싣지만 털어냅니다. ㅍㄹㄴ



화우(花雨)라고 이름 붙이자

→ 꽃비라고 이름 붙이자

《아야카시 장의사 3》(아오타 유키코/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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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교도소 矯導所


 교도소에 수감하다 → 사슬터에 갇히다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 쇠고랑에서 나오다


  ‘교도소(矯導所)’는 “[행정] 행형(行刑)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 징역형이나 금고형, 노역장 유치나 구류 처분을 받은 사람, 재판 중에 있는 사람 등을 수용하는 시설이다”처럼 풀이합니다. ‘가두다·가두리·가둠터·가둠굿·가둠칸’이나 ‘고랑·고삐·굴레·굴레살이·멍에’로 손봅니다. ‘사슬·사슬살이·사슬터·사슬나라’나 ‘쇠사슬·쇠고랑·수렁·차꼬·코뚜레’로 손보고요. ‘틀어막다·입틀막·입을 틀어막다’나 ‘재갈·재갈질·재갈 물리기·재갈나라·재갈판’로 손볼 만합니다. ‘총칼나라·총칼누리·총칼틀·총칼길·총칼질·총칼수렁·총칼굴레’나 ‘칼나라·칼누리·칼굴레·칼수렁’으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한번 가면 다시 못 볼 교도소라

→ 이제 가면 다시 못 볼 수렁이라

→ 곧 가면 다시 못 볼 쇠고랑이라

《철조망 조국》(이동순, 창작과비평사, 1991) 75쪽


소년 교도소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용 인원이었다

→ 어린 사슬터로는 가장 크다

→ 어린 가둠터로는 온누리에서 가장 크다

→ 어린 굴레로는 온누리에서 이보다 큰 곳이 없다

→ 어린 멍에로는 온누리에서 이보다 넓은 곳이 없다

《법정의 아이들》(윌리엄 에이어스/양희승 옮김, 미세기, 2004) 66쪽


그들의 눈에 나는 교도소의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다

→ 그들 눈에 나는 재갈판을 모르는 꿈쟁이일 뿐이다

→ 그들은 나를 코뚜레 삶을 모르는 꿈잡이로 여겼다

《사서가 말하는 사서》(이용훈과 스무 사람, 부키, 2012) 56쪽


이 교도소에서 탈옥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 이 재갈판에서 나갈 마음조차 없다면

→ 이 쇠사슬에서 달아나려고도 안 한다면

《아나스타시아 7 삶의 에너지》(블라지미르 메그레/한병석 옮김, 한글샘, 2012) 289쪽


교도소도 더 지어야 하고

→ 차꼬도 더 지어야 하고

→ 가두리도 더 지어야 하고

→ 수렁도 더 지어야 하고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하승수, 한티재, 2015) 79쪽


심지어 교도소 수감자들도 볼 수 있다

→ 게다가 갇힌 이도 볼 수 있다

→ 더구나 사슬사람도 볼 수 있다

《그들이 사는 마을》(스콧 새비지/강경이 옮김, 느린걸음, 2015) 168쪽


부인들은 지금 교도소에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약간의 조사만 받는 겁니다

→ 아주머님들은 오늘 사슬터에 있지 않고, 그냥 조금 살피기만 합니다

→ 여러분이 계신 자리는 가두리가 아니라, 그냥 살짝 알아보기만 합니다

《카이투스》(야누쉬 코르착/송순재·손성현 옮김, 북극곰, 2017) 99쪽


대전교도소가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후 가장 기뻤던 일은 산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 대전가두리가 새집을 지어 옮기면서 메가 보이니 가장 기뻤다

→ 대전쇠고랑이 새집으로 옮기며 멧자락이 보이니 가장 기뻤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 돌베개, 2017) 299쪽


뭐, 청송이라구? 교도소?

→ 뭐, 청송이라구? 사슬터?

→ 뭐, 청송이라구? 가둠터?

《푸른 돌밭》(최정, 한티재, 201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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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교정시설



 교정시설 내에서는 촬영이 불가하다 → 가둠칸에서는 찍을 수 없다

 교정시설 내에서 발생한 사건은 → 쇠고랑에서 터진 일은

 얼마 전에 교정시설에 수용되었다 → 얼마 앞서 사슬터에 갇혔다


교정시설 : x

교정(矯正) : 1.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 교구·교직 2. [법률] 교도소나 소년원 따위에서 재소자의 잘못된 품성이나 행동을 바로잡음 3. [의학] 골절이나 탈구로 어긋난 뼈를 본디로 돌리는 일 ≒ 정복

시설(施設) : 도구, 기계, 장치 따위를 베풀어 설비함. 또는 그런 설비 ≒ 설시



  가두어서 다스리는 곳이 있습니다. 일본말씨로는 ‘교정시설’이나 ‘교화소’라고도 할 텐데, 우리는 ‘가두다·가두리·가둠터·가둠굿·가둠칸’이나 ‘고랑·고삐·굴레·굴레살이·멍에’로 손보면 됩다. ‘사슬·사슬살이·사슬터·사슬나라’나 ‘쇠사슬·쇠고랑·수렁·차꼬·코뚜레’로 손보고요. ‘틀어막다·입틀막·입을 틀어막다’나 ‘재갈·재갈질·재갈 물리기·재갈나라·재갈판’로 손볼 만합니다. ‘총칼나라·총칼누리·총칼틀·총칼길·총칼질·총칼수렁·총칼굴레’나 ‘칼나라·칼누리·칼굴레·칼수렁’으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마치 누군가를 교정 시설로 보내는 것이 정의 구현이라도 되는 양 응당 그 사람도

→ 마치 누구를 가두어야 올바르기도 한 듯 마땅히 그 사람도

→ 마치 누구를 차꼬로 보내야 마땅하다는 듯 다들 그 사람도

《불태워라》(릴리 댄시거 엮음/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0)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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