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승배기 책집 할아버지는

오늘도 잘 계실까?

어느새 닫았을까?

시골에서 살다 보니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다음에 서울에 갈 적에

꼭 찾아가자고 생각한다.


+


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푸른책 세 가지 (2021.11.5.)

― 서울 장승배기 〈문화서점〉



  환하게 퍼지는 햇빛을 느끼면서 걷습니다. ‘당곡역’ 둘레 〈책이당〉에서 상도3동을 가로질러서 ‘장승배기역’까지 갑니다. 그리 멀잖으니 걷지만, 이쯤만 해도 다들 버스를 타는 듯싶습니다. 장승배기역 넷째 나들목 옆에는 오랜 헌책집 〈문화서점〉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던 1995∼2003년에는 이곳이며 〈책방 진호〉하고 〈대방 헌책방〉에 〈뿌리서점〉까지 나란히 곧잘 드나들었으나, 시골로 터전을 옮긴 뒤로는 좀처럼 찾아오지 못 했습니다.


  오랜 마을책집 앞에 서서 햇볕을 쬡니다. 어느새 할배가 된 〈문화서점〉 지기님은 드문드문 찾는 책손을 반가이 맞이합니다. 이곳을 처음 찾아온 1994년에도 쪽책집이었고, 오늘도 쪽책집입니다. 요즈음 새로 태어나는 여러 마을책집 가운데 이곳보다 작은 쪽책집은 아직 못 봤습니다.


  쪽책집인 “장승배기 문화서점”이라서, 손님이 책을 보려고 들어오면, 책집지기는 밖으로 나옵니다. 한 사람이 책을 보는데 다른 손님이 찾아오면, 먼저 온 책손은 밖으로 나와서 서성입니다. 먼저 와서 살핀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지요. 이러다가 나중 책손이 안에서 나오면, 먼저 온 책손은 다시 들어가서 둘러보고, 이렇게 서로 갈마들면서 띄엄띄엄 슬렁슬렁 천천히 책빛을 누리는 얼거리입니다.


  요사이는 거의 사라졌으나, 1995년 언저리나 2005년까지도 ‘쪽헌책집’이 나라 곳곳에 꽤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작은책집인데, 책을 더 많이 못 갖다 놓을 뿐 아니라, 이미 있는 책도 몇 겹으로 쌓지만, 쪽책집에는 알게 모르게 곳곳에 숨은 책이 있어요.


  엊그제 누가 “푸름이가 읽을 책을 골라 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셔서 꼭 세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아나스타시아 1∼10》(블라지미르 메그레)하고 《영리한 공주》(다이애나 콜즈)하고 《우리 마을 이야기》(오제 아키라)입니다. 셋은 결과 줄거리가 다르되 바탕은 모두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보금자리와 마을과 이 별을 짓는 길을 저마다 다르게 들려줍니다.


  살림하면서 쓰면 살림돈입니다. 살며 나누면 삶돈입니다. 사랑으로 일하고 펴면 사랑돈입니다. 혼자 쥐면 살림도 삶도 사랑도 아닙니다. 돌고돌아야 돈이라고 하는 뜻을 생각할 일입니다. 살림을 짓고 삶을 나누며 사랑을 심는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면서 두레를 이루기에 ‘돈다운 돈’이에요. 쪽책집에 “돈을 버는 책”은 없되, “삶을 읽는 책”은 있습니다. 작은책집에 “잘팔리는 책”은 없으나, “곁에 놓을 책”은 있습니다. 마을책집으로 걸어가는 마실길을 누립니다.


ㅅㄴㄹ


《將棋妙手풀이》(七段 이정석, 일신서적, 1975.7.15.)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바스콘셀로스/편집부 엮음, 글수레, 1988.4.30.)

《동·서문명과 자연과학》(김필년, 까치,1992.9.1.)

《중국 고적 발굴기》(陳舜臣/이용찬 옮김, 대원사, 1988.12.17.)

《중국 전통문화와 과학》(김영식 엮음, 창작사, 1986.8.25.)

《노동의 의미》(淸水正德/편집부 옮김, 한마당, 1983.10.10.첫/1988.4.1.중판)

《진정한 노동조합운동》(에일러/일꾼 자료실 옮김, 만민사, 1989.6.10.)

《농민층분해와 농민운동》(서울대 사회학과 사회발전연구회, 미래사, 1988.1.15.)

《노동자와 통일》(편집부 엮음, 나라사랑, 1988.9.25.)

《열린 글 15 그람시의 마르크스주의와 헤게모니론》(권유철 엮음, 한울, 1984.10.15.)

《人間理解 第1輯》(김인자 외, 서강대학교생활상담실, 1979.6.8.)

《遺言詩》(비용/송면 옮김, 문학과지성사, 1980.12.25.)

《카뮈를 추억하며》(장 그르니에/이규현 옮김, 민음사, 1997.8.30.첫/2014.6.18.9벌)

《現代韓國新作全集 5 長詩·詩劇·敍事詩》(김종문·홍윤숙·신동엽, 을유문화사, 1967.12.25.첫/1971 .5.25.재판)

- 경성 중·고등학교 도서관

- 신동엽 〈금강〉

《이민별곡》(해동, 한강,2010.11.18.)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최성혁, 이웃, 1991.9.10.)

《구로아리랑》(이문열, 문학과지성사, 1987.12.1.첫/1993.1.25.18벌)

《韓國人의 價値觀 硏究》(김태길, 문음사, 1982.7.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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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당'은 이제 닫았습니다.

새터로 옮겨서 새로 열 수 있으나

아직 새로 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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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노래를 품고서 (2021.11.5.)

― 서울 〈책이당〉



  지난밤에 신림동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서울 어느 곳이 안 시끄럽겠습니까만, ‘별빛거리’란 이름이 붙은 언저리는 술에 전 사람들이 새벽까지 떠드는 소리가 우렁찹니다. 허울은 ‘별빛거리’라지만, 속으로는 ‘술노닥질’입니다. 저야 하룻밤 머물다 떠나지만 이 둘레에서 살아가는 이웃은 괴롭겠어요. 밤새 술을 푸는 사람이 아닌, 늘 이곳에서 지낼 마을사람한테는 밤에 별을 보러 나오기조차 꺼릴 만할 텐데, ‘술집거리’에 뜬금없는 이름을 붙인 마음이 얄궂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을빛을 헤아리면서 새벽에 노래를 한 자락 적습니다. 동틀녘까지 질러대는 소리를 귓가로 흘리면서 〈책이당, 책 이는 당나귀〉라는 마을책집한테 건넬 열여섯 줄을 여밉니다.


책을 이면 안 무겁느냐 / 묻는 그대한테 / 별빛을 이면 무겁느냐 / 넌지시 되묻는다 // 책을 펴며 뭐가 즐겁느냐 / 궁금한 너한테 / 날개를 펴면 안 즐겁느냐 / 가만히 속삭인다 // 책을 써서 돈이 되느냐 / 따지는 분한테 / 사랑을 돈으로 쓸 수 있느냐 / 조용히 대꾸한다 // 나귀 등잔에 나비가 앉아 / 나긋나긋 날갯춤이다 / 나는 나풀나풀 빛살을 / 나즈막이 나누어 누린다 (책 이는 당나귀 : ㅅㄴㄹ 2021.11.5.)


  술을 마시고픈 어른이라면 곁에 아이를 둘 노릇입니다. 아이 곁에서 아이가 지켜볼 만한 몸짓과 말짓을 참답게 하는지 스스로 돌아볼 줄 알아야 비로소 ‘술 한 모금’ 누릴 어른입니다. 아이들이 도무지 못 봐줄 몰골이나 꼬락서니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얼른 술을 떼거나 멀리할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은 별빛을 품고서 태어납니다. 별빛을 잊은 사람은 새카맣게 마음이 타버리지만, 별빛을 늘 그리는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눈부십니다. 모든 책은 나무를 품고서 태어납니다. 나무빛을 헤아리는 줄거리를 담은 책이라면 아름다운데, 나무빛하고 등진 채 돈·힘·이름에 사로잡힌 책이라면 안쓰럽습니다.


  잘 팔리거나 많이 읽혀야 할 책이 아닙니다. 끝없이 되읽으며 사랑을 되새기고 이 삶을 사랑으로 짓는 살림길을 아름다이 생각하는 밑거름이어야 할 책입니다.


  마음으로 오가면, 마음에 닿는 실 한 올로 이야기가 즐거이 흐릅니다. 마음을 잊거나 닫은 채 마주하면, 서로 아무런 실이 닿지 않으니 겉도는 말만 고이다가 어느새 덧없이 스러집니다. 모든 책이 나무노래를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사라진 색깔》(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아킨 두자킨 그림/정철우 옮김, 분홍고래, 2019.7.10.)

《곁책》(숲노래 밑틀·최종규 글, 스토리닷, 2021.7.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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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엄마야 -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7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 오월의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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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6.

인문책시렁 357


《그래, 엄마야》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오월의봄

 2016.4.22.



  《그래, 엄마야》(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오월의봄, 2016)를 읽는 내내 ‘장애·비장애’라는 이름을 곱씹습니다. 아니, 두 이름은 예전부터 늘 곱씹었습니다. 어린이한테 그저 ‘어린이’라 하고, 어른한테 그냥 ‘어른’이라 하듯, 서로 바라보는 이름을 이제는 다시 살펴서 처음부터 새롭게 붙일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쪽을 ‘장애’로 볼 까닭이 없습니다. 저쪽을 ‘비장애’로 볼 까닭이 없습니다. 이쪽이 ‘여성’이라면 저쪽이 ‘비여성’이지 않습니다. 이쪽이 ‘남성’이라면 저쪽이 ‘비남성’이지 않습니다. 한쪽을 ‘장애’라는 이름을 자꾸 붙이면서 가른다면, 또다른 곳에서는 ‘비장애’라는 이름을 자꾸 붙이면서 스스로 가르는 굴레라고 느낍니다.


  ‘발달장애’나 ‘언어장애’나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나 ‘지체장애’ 같은 이름은 오히려 아이도 어른도 굴레에 가둡니다. 수수하게 ‘어리다’고 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더듬는다’고, ‘눈으로 보지 않는다’고, ‘귀로 듣지 않는다’고, ‘몸을 쓰기 힘들다’고 말하는 길부터 다시 살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그래, 엄마야》는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 목소리를 귀담아듣는데, 여러 엄마가 들려준 말처럼 ‘아빠도 아이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런데 엄마아빠 둘이 아이 곁에 있으면 그 집안은 돈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집밖에 나가야 하고, 더구나 ‘집밖에서 더 오래 일하면서 돈도 더 벌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를 돌보는 집은 돈이 더 들 뿐 아니라, 두 엄마아빠가 늙은 다음에도 아이가 스스로 돈을 못 벌리라 여기기 때문에, 그야말로 “있는 힘껏 돈을 벌어서 모아 놓아야 한다는 짐과 굴레”를 뒤집어씁니다.


  책을 엮은 분들은 이런 대목을 알면서도 지나쳤는지 너무 가볍게 스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빠(남성)가 아이한테 너무 등돌린다’고 여기는 쪽으로 자꾸 몰아가려 한다고 느꼈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대목인데, ‘배움(교육)’은 오히려 배움터(학교)가 아닌 집에서 함께 펴고 누리고 나누게 마련입니다. 아이들한테 ‘졸업장’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졸업장은 잔뜩 땄지만,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젊은이가 수두룩하고, 아기를 어떻게 낳아서 돌보아야 어버이다운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들이 나중에 아기를 배면 어떡하나 걱정할 일이 아닌, 이 아이들한테 ‘아기’란 무엇이고 ‘어른·어버이’는 어떤 자리이며, ‘사랑’과 ‘살림’과 ‘삶’이 무엇인지 차분히 짚고 가르치고 새롭게 배우면서, 함께 보금자리를 도란도란 일구는 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이런 눈길과 이야기를 더 넓게 펴면서, 이런 이야기를 엄마아빠 모두 듣고 돌아볼 노릇이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실없지만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동물세계에도 발달장애가 있을까? (14쪽)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가족 간 불화를 겪거나 아예 해체되는 일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장애 아이에게 매달려 있어야 하는데 대개는 엄마가 그 역할을 맡습니다. (23쪽)


아이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어떻게 남겨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25쪽)


내가 오롯이 짊어지는 이 짐을 사회가 나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6쪽)


그이가 자책하며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네 탓’이 아니라고 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 자녀의 장애를 마주한 엄마들이 자책의 늪에서 조금은 헤어날 수 있도록 ‘완벽한 모성’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화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면 어떨까. (52쪽)


장애아를 둔 부부의 이야기는 비장애아를 키우는 부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평등하게 나누기보다 온전히 아내에게 맡긴 탓에 부부는 싸운다. (103쪽)


남편을 배려한다고 그녀 혼자 다했는데, 그게 아빠가 설 자리를 뺏은 거 아닐까 싶었다. 남편도 내가 손 내밀어주기를 기다린 게 아니었을까? (104쪽)


승윤이한테는 일상이 곧 교육이에요. (124쪽)


전화 끊고 우리 남편을 봤지. 이 사람도 많이 상하고 늙었더라. 남편이 올해로 대리운전 딱 10년째야. 낮밤 바꾼 지 10년. 내년부턴 당신도 당신 인생을 살라고 했더니 남편이 자기는 괜찮대. 다만 내가 요즘 너무 내 일에만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뭘 하든 애와 가정이 먼저지 않겠냐고 하는데, 한 방 먹었지. 남편도 너무 지쳤나 봐. (15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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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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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6.

까칠읽기 9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2016.10.14.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을 읽으면서 지나간 1982년을 떠올린다. 나는 이해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갔고, 윗내기인 1974년에 태어난 언니하고 1975년에 태어난 또래가 확 다를 뿐 아니라, 동생인 1976년 아이들도 훅 다른 줄 느꼈다.


  우리나라만큼 나라가 와장창 뒤엎히며 바뀌는 곳이 없다. 나나 언니는 한두 시간뿐 아니라 서너 시간쯤 가볍게 걷던 길이 어느덧 동생들한테는 ‘시내버스’로 차츰 바뀌고, 1982년에 태어난 까마득한 동생이 어린배움터에 들어갈 즈음에는 둘레에 ‘자가용’을 ‘프라이드’부터 장만하는 이웃이 조금씩 늘었다. 동생이 늘어날수록 ‘자가용 + 아파트’가 무섭도록 늘더니, 어느새 작은 골목집에서 사는 동생을 웬만해서는 못 만났다.


  우리 집 곁님은 1980년에 태어났고, 곁님 또래뿐 아니라 내 또래도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듯 ‘시내버스에서 타고내릴 적에 으스스한 사내나 아저씨’가 따라붙는 소름돋는 일을 겪었다. 그런데 이 일은 순이뿐 아니라 돌이도 똑같이 겪었다. 사람잡이(인신매매)와 양아치(깡패)는 순이만 가리지 않았다. 엉큼질(성추행)을 저지르는 놈은 순이돌이 모두한테 저지른다. 엉큼질을 겪은 돌이가 입꾹닫을 해서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다. 싸움터(군대)뿐 아니라 배움터와 마을과 여느 살림집에서도 ‘돌이를 괴롭히는 엉큼짓’이 숱하다.


  《82년생 김지영》은 얼핏 차분하게 잘 쓴 글 같으나, 곰곰이 새길수록 어쩐지 “이 나라에서 사내는 느긋하게 잘 살았잖아?” 하고 비웃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순이한테 아늑한 터전”이 아니기는 한데, “돌이한테도 나란히 아늑하지 않은 터전”이다. 힘꾼과 이름꾼과 돈꾼이 아니면 모든 순이돌이가 고단하고 괴롭고 다치고 아플 뿐 아니라 목숨까지 쉽게 빼앗기는 불수렁이라고 할 만하다.


  아무래도 순이와 돌이 삶길을 나란히 담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 그나마 ‘아픈순이’는 여러모로 멍울을 밝히거나 털어놓는 수다라도 하는데, ‘아픈돌이’는 오히려 웅크리면서 입을 꿰매고 마니까, 글님으로서는 ‘몰랐’을 수 있다. 1982년에 들어간 어린배움터에서 날마다 겪은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선생님, 왜 남자만 더 세게 많이 때려요? 여자도 똑같이 세게 많이 때려 주세요!” 하고 외치는 동무가 꽤 있었다. 철없는 사내는 ‘학교폭력’이라는 대목을 깨닫고서 없애도록 힘쓰기보다는 “너희(순이)도 좀 똑같이 얻어터져 봐!” 하는 부아를 내기 일쑤였다.


  똑같이 숙제를 안 했거나, 지각·결석을 했거나, 돈(육성회비·방위성금·갖가지 회비)을 안 냈거나, 크리스마스실을 안 샀거나, 가을에 국화를 안 샀거나, 폐품을 안 냈거나, ‘학교에 내는 쌀’을 안 가져오면, 사내가 열 대를 맞을 적에 가시내는 한두 대를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뺨을 맞으면 가시내는 손바닥을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엉덩이와 허벅지에 밀대자루로 피멍이 들도록 맞으면 가시내는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운동장 열 바퀴를 돌면 가시내는 운동장 한 바퀴를 돌거나 구경을 했다. 안 맞거나 구경을 하는 적잖은 가시내는 얻어터지거나 운동장을 도는 사내한테 혀를 내밀거나 놀리기 일쑤였다. 이러다 보니, 어린배움터 여섯 해 내내 순이돌이는 날마다 힘겨루기에 쌈박질이었다.


  1994년에 들어간 대학교에서 겪은 여러 일을 돌아본다. 똑같은 술자리를 마칠 즈음, 여학생은 선배들이 택시를 태워서 따로 한 사람씩 집에 보낸다. 남학생은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이루거나, 동아리방이나 과방에서 덜덜 떨면서 서로 부둥켜안으며 새벽이 밝기를 기다렸다. 또는 밤을 새워 집까지 걸어갔다. 나는 처음에는 서울 이문동에서 인천 연수동까지 밤새워서 걷다가, 나중에는 그냥 한뎃잠을 이루면서 덜덜 떨다가 새벽 첫 전철로 집으로 얼른 돌아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학교로 왔다.


  이 나라를 버티는 나라힘(국가권력)을 되새겨 본다. 나라(정부·기득권)는 자꾸 순이돌이가 서로 다투면서 스스로 갈라치기를 하라고 내모는구나 싶다. 왜 순이돌이가 다투거나 싸워야 하는가? 둘은 서로 다르게 짓밟히고 억눌리고 시달리고 들볶이면서, 서로 다르게 피멍이 들 뿐 아니라 목숨을 빼앗긴 동무와 언니와 동생이 있는, 서로 다르지만 나란히 아픈 사이 아닌가?


  누가 더 아프거나 고달팠다고 말할 일이란 없다. 서로 어떻게 달리 아프고 고달팠는지 흉허물없이 털어놓으면서 서로 토닥일 수 있는 길을 바라보고 열고 틔울 노릇이라고 본다.


  이곳뿐 아니라 이 별은, 딸한테도 아들한테도 서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사랑으로 살림을 지을 터전으로 거듭날 노릇이어야지 싶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살림꾼으로서 새롭게 일어설 노릇이어야지 싶다.


  집안일은 누가 해야 할까? 나라일은 누가 맡아야 할까? 마을일은 누가 해야 할까? 이 별을 사랑하는 길은 뭘까? 집안일은 순이도 돌이도 함께 맡을 노릇이요, 둘 모두 “모든 집안일을 살뜰히 건사할 줄 알아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쓴 글님이 ‘새길’을 바라보려는 눈이었다면 줄거리나 글결이 아주 달랐으리라 본다. 1982년에도 2022년에도 ‘지영’이만 태어나지 않았고, ‘지영’은 순이한테뿐 아니라 돌이한테도 흔한 이름이다. “두 지영 씨”가 있는데, “따돌림받은 다른 지영 씨”를 너무 모르려 하거나 아예 등돌려 버린다면, 어깨동무가 없는 길이라면, 그곳에서는 ‘사랑’뿐 아니라 ‘기쁨’도 ‘즐거움’도 ‘살림’도 ‘꿈’도 ‘씨앗’도 없는, 오직 힘(권력)·돈(재산)·이름(명예)만 드날릴 뿐이다.


ㅅㄴㄹ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 김지영 씨가 딸을 도맡는다

→ 김지영 씨가 딸을 혼자 돌본다

9쪽


이건 또 무슨 유체 이탈 화법이야

→ 아니 또 무슨 넋나간 말씨야

→ 또 무슨 얼나간 소리야

12쪽


어떻게 그런 끔찍한 주사가 있을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 어떻게 그리 끔찍히 술지랄일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 어떻게 그리 곤드레할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14쪽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얼음장에 온집안이 앉은 듯했다

→ 얼음판에 온사람이 앉은 듯했다

17쪽


안 그래도 짧은 스커트를 최대한 걷어 올리고

→ 안 그래도 짧은 치마를 더 걷어올리고

35쪽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 그동안 있던 일을 얼른 되짚어 봤지만

→ 그동안을 훅 되짚어 봤지만

→ 여태 겪은 일을 휙 되짚어 봤지만

41쪽


오래된 주택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재래식과 현대식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 오래된 집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옛틀과 새틀이 섞였다

→ 오래된 집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예스러우면서 새로웠다

48쪽


김지영 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 김지영 씨는 낫다

→ 김지영 씨는 좀 낫다

64쪽


행인 한 명 지나가지 않았고

→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고

→ 한 사람도 안 지나갔고

67쪽


두 사람 사이에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남아 있던 어느 날

→ 두 사람 사이가 아직 쌀쌀하던 어느 날

→ 두 사람이 그대로 차갑던 어느 날

→ 둘이 아직 싸늘히 지내던 어느 날 

77쪽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불안감을 단 한 마디로 잠재웠다

→ 어머니는 김지영 씨 걱정을 딱 한 마디로 잠재웠다

→ 어머니는 걱정하는 김지영씨를 한 마디로 잠재웠다

79쪽


고향에 내려가 1년만 돈을 벌겠다고 했다

→ 집에 가서 한 해만 돈을 벌겠다고 했다

85쪽


꽃이니 홍일점이니 하면서

→ 꽃이니 혼꽃이니 하면서

→ 꽃이니 홀꽃이니 하면서

91쪽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 술을 즐기지만

→ 술을 즐겨 마시지만

93쪽


귀를 살짝 덮는 길이의 단발머리를 하고

→ 귀를 살짝 덮는 머리를 하고

→ 귀밑머리를 하고

101쪽


대답 하나가 당락을 좌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 말 하나로 붙거나 떨어지지 않는다고

→ 한마디 때문에 바뀌지는 않는다고

102쪽


정대현 씨의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 정대현 씨 말에 불끈하지 않고

→ 정대현 씨한테 바글대지 않고

137쪽


순진한 소리를 해서 그랬는지

→ 철없는 소리를 해서 그랬는지

→ 몰라서 그랬는지

160쪽


김지영 씨의 인생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정도다

→ 김지영 씨가 살아온 날을 이쯤 추스를 수 있다

→ 김지영 씨가 보낸 나날을 이렇게 적어 본다

→ 김지영 씨 발자국을 얼추 이렇게 적어 본다

169쪽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 김지영 씨도 그러기를 바란다

→ 김지영 씨도 그러기를 빈다

174쪽


딸이 살아갈 세상은 제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딸이 살아갈 나라는 제가 살아온 나라보다 나은 곳이어야 하고, 나으리라 믿고, 낫도록 애씁니다

→ 딸이 살아갈 곳은 제가 살아온 곳보다 나아야 하고, 나으리라 믿고, 낫도록 힘씁니다

1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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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4.23.


《멸종 동물 소원 카드 배달 왔어요》

 윤은미 글·김진혁 그림, 철수와영희, 2024.3.8.



해를 보면서 길을 나선다. 서울에서 버스를 내리니 해가 밝다. 둘레를 보면, 다들 해를 등진다. 해를 꺼리니 몸이 아플밖에 없는 줄 잊는구나 싶다. 땅밑길을 한참 달려 ‘양천향교역’에서 내린다. 밖으로 나오니 제비 두 마리가 하늘을 휙 가르면서 노래한다. 저 새가 제비인 줄 알아볼 서울사람은 몇일까? 〈나무 곁에 서서〉로 찾아간다. 책을 한참 보고서 〈빛나는 친구들〉로 옮긴다. 서울 강서에서 부천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새로 났다. 꽤 붐비는데, 손전화를 시끄럽게 켜서 노는 아재가 있다. 아무도 벙긋조차 않는다. 보다 못해 “소리 좀 끄시지요?” 하고 아재한테 한마디를 한다. 바로 끈다. 창피한 줄 모르니 창피한 짓을 한다. 《멸종 동물 소원 카드 배달 왔어요》를 읽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 손으로 이만 한 그림꽃을 여밀 수 있구나 하고 놀랐다. 마음을 제대로 다스려서 차곡차곡 여미면 ‘삶자리’에서 어린이와 어른이 어깨동무하면서 하나씩 바꾸고 일굴 살림길을 그려낼 수 있다. ‘쟤네’가 사라져야 바뀌지 않는다. ‘쟤네’를 갈아엎어야 고칠 수 있지 않다. ‘우리’가 우리 삶터에서 하나씩 가다듬고 일구어야 천천히 바뀐다. 우리부터 마음을 새로 지을 노릇이고, 푸르게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적에 시나브로 거듭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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