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논장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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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2



스스로 선물하는 사랑

―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14.6.30.



  아이들은 자전거를 달리고 싶습니다. 폭신한 걸상에 앉아 알맞게 발을 구르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자전거를 달리면서 깔깔 웃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달리면서 자동차 때문에 막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두 다리로 달리고 싶습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두 다리로 씩씩하게 달리면서 하루를 신나게 누리고 싶습니다. 학교에 가야 하거나 학원에 가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언제나 구슬땀 흘리면서 씩씩하게 달리면서 놀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활개를 치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나비가 날듯이, 잠자리가 날듯이, 제비가 날듯이, 크고 작은 수많은 새가 하늘빛을 머금으면서 눈부시게 날듯이, 온몸으로 활개를 치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성적표에 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가진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해를 마주하면서 햇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눈빛을 밝히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 로타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어요. 로타는 아빠 엄마한테 말했어요. “들었죠?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건 자전거가 없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샌드위치를 조금 오물거리고 나서 다시 종알거렸어요. “나 진짜로 자전거 탈 수 있어. 비밀이지만!” ..  (4쪽)




  칠월 여름을 맞이하여 비가 안 오는 날이면 자전거를 몰아 골짜기로 갑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습니다. 나는 두 아이를 앞자전거 발판을 구르면서 힘껏 이끕니다. 골짜기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고 비알이 가파릅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고갯길을 오릅니다. 한참 고갯길을 오르면 물살이 빠르면서 시원한 골짜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마음껏 물장구를 칩니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기쁘게 물놀이를 합니다.


  더위에 흘린 땀을 골짝물로 씻은 뒤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제는 내리막입니다. 오르막에서는 다 함께 땀을 흘리지만, 내리막에서는 다 같이 바람을 가릅니다. 오르막이 고될수록 내리막이 시원합니다. 비탈길이 힘겨울수록 내려올 적에 빠릅니다.


  골짜기로 가는 동안 이웃마을 들길을 지납니다. 아직 농약을 치지 않을 무렵에는 들빛이 짙푸르면서 잠자리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가 가득합니다. 시골에 젊은이가 없대서 헬리콥터를 불러 항공방제를 한 차례 하고 나면, 잠자리가 사라지고 개구리 노랫소리가 죽으며 풀벌레도 멧새도 어느새 자취를 감춥니다.



.. 로타는 새로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때는 자전거 생각을 까맣게 잊었어요. 아침나절에는 장난감 자동차도 갖고 놀고, 그림책도 보고, 줄넘기도 하고, 그네도 타면서 아주아주 즐겁게 놀았죠 ..  (8쪽)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도시에서 자전거를 달리는 아이들은 들길을 누리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달리지만,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바람에 눕는 풀을 못 보는 도시 자전거이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못 보는 도시 자전거입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자동차를 살펴야 해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를 탈 만한 곳이 아주 줄어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뿐 아니라 골목놀이가 사라져요.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은 놀 곳이 없어요.


  축구장이 있어야 공차기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골목에서나 빈터에서나 마음껏 공차기를 하고픈 아이들입니다. 야구장이 있어야 공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나무막대기와 공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공치를 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누릴 곳은 따사로운 보금자리입니다.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줄 선물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나무를 심을 만한 마당과 자전거를 달릴 만한 골목이나 고샅과 동무들과 어울려 뛰놀 빈터와 숲을 어른들 스스로 곱게 가꾸어 아이들한테 이어주어야지 싶습니다.



.. “자, 밤세, 쌩쌩 달리는 거야.” … 요나스와 미아 마리아보다 훨씬 빨리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렸죠. 그래요. 트집쟁이 거리에서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전거는 여태껏 아무도 본 적이 업었어요. 로타가 소리쳤어요. “멈춰! 멈춰!” 하지만 하전거는 멈출 수 없었고 로타도 멈출 수 없었어요 ..  (19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에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담은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2014)를 읽습니다. 멋진 그림책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는 스웨덴에서 1971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1982년과 1984년에 처음 옮겼습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는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가운데 11번으로 나왔고, 이때 붙은 책이름은 《로타와 자전거》(백제/문선사 펴냄)입니다. 1980년대에 처음 나왔다가 어느새 사라진 이 그림책을 아끼는 분이 꽤 많았으나 오래도록 되살아나지 못했는데, 2014년에 드디어 논장 출판사에서 곱다라니 엮어서 선보입니다.


  예전 책과 새로운 책을 함께 놓고 살핍니다. 예전 책에서 살짝 뭉개진 그림이 새로운 판에서는 잘 살아납니다. 얼굴빛도 마을빛도 모두 새로운 판이 한결 곱습니다. 그리고, 예전 책은 그림 가장자리가 잘렸으나, 새로운 판은 그림을 잘 살려 주었습니다.


  책이름처럼 이 그림책은 ‘다섯 살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타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우리 집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몇 해 앞서부터 즐겁게 보면서 ‘자전거 타는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에서 한껏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로타 생일에 온 식구가 기뻐하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다음으로, 로타가 그네 선물을 받아서, 마당에 선 커다란 나무에 그네를 걸고는 하얀 꽃잎이 나부끼는 한복판에서 노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로타가 사는 마을 곳곳에 제비들이 춤추는 모습이 즐겁고, 집집마다 마당이 있으며, 나무가 자라고, 꽃잎이 흩날릴 뿐 아니라, 빨래가 해바라기를 하면서 춤추는 모습이 그야말로 즐겁습니다.



.. 바로 그때 길 저쪽에 아빠가 보였어요. 로타는 기둥 위에서 잽싸게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아빠가 로타한테 딱 맞는 작은 자전거를 끌고 오지 뭐예요! “어, 어떻게 된 거지?” 하고 로타는 혼잣말을 했어요 ..  (27쪽)





  로타한테는 무엇이든 언제나 선물입니다. 아버지가 베푼 자전거만 선물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마을이 선물이요,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선물입니다. 멋진 오빠와 언니가 선물이고, 살가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선물입니다.


  우리한테는 무엇이 선물일까요. 우리는 어떤 선물을 누리면서 살아가나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선물로 삼아서 나누어 주는가요. 우리 어른은 스스로 어떤 빛을 선물로 누리면서, 아이들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요.


  다섯 살 로타는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나 쉰 살인 어머니와 아버지인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꿈을 꿀 수 있습니까?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삶을 지을 수 있습니까?


  요즈막에 시골에서는 농약을 뿌리느라 어디에서나 어수선합니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1970년대부터 불어닥친 농약바람은 2010년대를 지나도록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웬만한 어버이들은 ‘농약 덜 쓴 쌀’이나 ‘농약 안 친 쌀’을 사다 먹으려고 애쓰지만, 막상 시골에서는 농약을 한 차례라도 더 치려고 애씁니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낳은 아이(손자와 손녀)를 먹이겠다면서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 듬뿍 쳐서 키운 쌀’을 가을마다 보내 줍니다. 시골에 늙은 어버이를 두고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시골서 보낸 쌀보다는 생협 매장에서 ‘유기농 쌀’이나 ‘친환경 쌀’을 사다 먹는다지요. 시골에서는 일손이 없다며 농약에만 기대려 하고, 도시에서는 사람이 넘치고 온갖 병치레가 넘실거리면서 농약을 타지 않은 곡식을 바랍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다섯 살 로타라면 이 나라 시골에서 어떻게 흙을 가꿀까 궁금합니다. 다섯 살 로타가 이 나라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루를 누릴까 궁금합니다. 4347.7.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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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오늘 하루 아이들이 옷을 두 차례 갈아입는다. 골짜기에서 물놀이를 하며 한 차례 갈아입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다시 갈아입는다. 무더위에 뛰노는 아이들이 땀을 옴팡 흘리니 더 자주 갈아입혀야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바야흐로 폭폭 찌는 더위인 만큼 하루에도 너덧 차례뿐 아니라 예닐곱 차례이든 열 몇 차례이든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야겠다고 느낀다.


  바람아 불어라. 낮에도 밤에도 바람아 불어라. 내가 아이들이 자는 동안 바지런히 부채질을 할 수 있지만, 바람이 불어 들을 어루만지고 마을을 보듬을 적에 여름빛이 싱그럽게 흐르면서 시원한 기운이 넘실거릴 테니까. 4347.7.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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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7.20.

 : 아이들과 멧자락 넘기



- 천등산 골짜기로 나들이를 온다.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골짝물에 온몸을 담근다. 스무 날 남짓 비가 쏟아부었기에 꿉꿉한 날씨가 이어졌는데,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하늘을 보고 자전거를 달린다. 비가 그친 골짜기는 어떤 모습일까. 오랫동안 비가 쏟아부은 뒤 골짜기에는 물이 얼마나 많을까.


- 물이 깊고 많다. 물소리가 크다. 이 골짜기에 놀러와서 술과 고스톱을 즐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보인다. 어른들은 골짜기에서 무엇을 하며 놀아야 즐거운 줄 모를까. 애써 골짜기까지 와서 하는 놀이란 두 가지뿐일까. 왜 골짜기에서 고기를 구워 술을 마셔야 할까. 왜 골짜기에서 고스톱을 치면서 보내야 할까.


- 한 시간 즈음 놀다가 나온다. 물이 많이 차가우니 오래 놀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멧길을 타고 더 올라 보기로 한다. 위쪽에 다른 골짜기가 있는지 살피기로 한다. 자가용을 끌고 찾아와서 술과 고기와 고스톱으로 시끄러운 관광객이 없는 골짜기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 늘 가던 골짜기에서 삼십 미터쯤 올라가니 아주 호젓한 곳이 하나 있다. 좋아. 다음에는 이곳으로 오자. 더 올라간다. 자전거를 탈 수 없도록 가파르다. 큰아이는 발이 아프단다. 큰아이를 샛자전거에 앉혀 자전거를 끈다. 땀이 뻘뻘 흐르고 팔이 찌릿찌릿 저리다. 한참 올라가니 군청에서 공사를 해 놓은 듯한 물놀이터가 있다. 이곳에도 자가용이 여럿 있고 놀러온 사람들이 많다. 더 올라가자.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


- 비알이 조금 가볍다 싶으면 자전거를 달린다. 그렇지만 1*2단으로 달려도 가파른 길이다. 발판을 더 구르기 어려워 자전거에서 내린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잔다. 큰아이도 졸릴 법한데 씩씩하게 잘 견디어 준다. 도무지 안 되겠구나 싶어 나무그늘 있는 데에서 한 차례 쉰다. 숨을 몰아쉰다. 숨을 고른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는다. 꽤 올라왔는지 사람 소리는 안 들린다. 이 길을 오르내리는 자동차도 없다. 땀을 닦고 다시 걷는다. 자전거를 끄는 팔에 힘이 풀린다. 예까지 올라와서 다시 이 길로 내려가고 싶지는 않다. 건너편 다른 마을로 내려가고 싶다. 구비구비 돌아가는데, 이 구비가 지나면 끝날 듯하던 길이 안 끝난다. 저 구비를 돌아도 길은 안 끝난다. 꽤 높이 올라왔지만 길은 안 끝난다. 언제쯤 끝날까. 다시 한 차례 쉰다. 작은아이는 깊이 잔다. 풀바람과 풀벌레 노랫소리가 가득하니 잠을 자기 좋겠지.


- 한 차례 더 쉴 무렵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다시금 기운을 내어 올라가기로 한다. 꽤 많이 올라왔는데, 자꾸 힘이 빠지니 그만 올라갈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올라온 가파른 길로 도로 내려가자니 아찔하다. 멧꼭대기 건너편은 어떠할까. 그곳도 내려가는 길은 가파를까.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낮에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워 멧자락을 넘는 우악스러운 아버지는 얼마나 있을는지 생각해 본다.


- 길 옆으로 흐르는 도랑을 만난다. 마침 물이 거의 떨어졌는데 반갑다. 자전거를 길바닥에 눕힌다. 낯을 씻고 물을 받는다. 두 아이더러 낯과 손을 씻으라 말한다. 아이들은 낯과 손을 씻은 뒤, 가파른 멧길에서 꽤 재미나게 논다. 도랑에서 사는 참개구리를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는 어느 만큼 올라왔을까.


- 자전거를 달리다가 끌다가 되풀이한다. 이 구비를 지나면 끝일까 하고 또 생각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그래, 아직 멀었구나. 그러나 꼭대기가 멀지 않았다고 느낀다. 먼 마을과 이웃 멧자락이 보인다. 우리가 오르는 천등산 꼭대기도 코앞에 있다. 자전거에 올라 1*2단으로 달린다. 다리에 힘이 풀릴 듯하지만, 끌 때보다는 한결 낫다. 그리고 구비 하나를 돌아서니 드디어 끝이다. 꼭대기 너른 마당이 나온다.


- 꼭대기에서 자동차 한 대 내려가려고 한다. 왼손을 들어 흔든다. 내려오지 말고 멈추어 달라는 뜻이다. 오르막으로 자전거가 먼저 지나간 뒤 좁은 멧길로 내려가기를 바란다. 자동차에는 젊은 부부와 아이 둘이 탔다. 이들은 여름맞이를 하려고 올라왔구나 싶다. 자, 꼭대기에 이른다. 자전거를 바닥에 눕힌다. 아이들은 멧꼭대기 마당에서 콩콩 달리고 뛴다. 나는 긴 걸상에 드러눕는다. 기지개를 켜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린다. 용케 왔네. 시계를 본다.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 더위에 두 아이가 아버지랑 자전거에 타고 멧길을 올랐구나. 고맙고 대견하다. 씩씩한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 삼십 분 남짓 놀면서 여자만을 바라본다. 고흥반도 한복판에 있는 천등산에서 여자만을 볼 수 있고, 여수 서쪽 바다 섬을 볼 수 있다. 재미있다. 기운을 내기로 하고 내리막을 달린다. 차근차근 달린다. 내리막을 달리다가 사슴벌레 한 마리 뒤집힌 모습을 보고는 자전거를 세운다. 사슴벌레를 살며시 잡아 나무로 옮겨 준다. 뒤집힌 사슴벌레 둘레에는 개미가 잔뜩 모여서 사슴벌레가 죽기를 기다리던데, 개미한테는 미안하지만, 사슴벌레가 더 살도록 해 줄 수 있겠지?


- 풍양면 천등마을 쪽으로 내려온다. 이곳 길도 대단히 가파르다. 도무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와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자전거에서 내려 끄는데, 뒤에서 밀리는 힘이 드세다. 저 앞에서 뛰노는 다람쥐를 마주보면서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와 수레를 끈다.


- 풍양면 소재지에 닿아 가게에 들러 얼음과자를 산다. 두 아이한테 하나씩 건넨다. 다리를 쉰 뒤 집으로 달린다. 아이들은 이 더위에도 놀이터에 더 들르자고 한다. 도화면 소재지에 닿은 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놀이터에 간다. 지치지도 않는구나. 두 아이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면서도 놀이를 그치지 않는다. 저녁 여섯 시 반이 된다. 집에 가서 밥을 해서 먹여야지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자 말한다. “한 번 더 놀고요.” 하면서 세 번을 더 논다.


- 집으로 가는 길에 끝까지 힘을 낸다. 먼저 아이들을 씻긴다.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다 된 밥을 차려서 먹인다. 그러고 나서 나도 씻고 빨래를 한다. 길고 긴 하루가 저문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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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55] 한귀로



  바람이 흘러 숲이 살고
  물이 흘러 들이 춤추며
  말이 흘러 삶이 빛난다


  근심은 한귀로 들여보낸 뒤, 다른 한귀로 천천히 내보내셔요. 근심을 보고 겪더라도 즐겁게 내보내면 됩니다. 내 밖으로 근심을 내보내지 않거나 못하니 자꾸 찬기운이 돌지 싶어요. 남이 나한테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스스럼없이 지나가면 됩니다. 남이 고개를 폭 숙이면서 싹싹 빌기를 바라지 말아요. 내가 남한테 잘한 일이 있더라도 수수하게 지나가면 됩니다. 남이 헤헤 웃으면서 나를 우러르기를 바라지 말아요. 흐르는 바람이고 물이며 말입니다. 흐르는 사랑이고 꿈이며 이야기입니다. 4346.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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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51) -의 : 팔순의 노인

자식이 있어도 다들 어렵게 살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팔순의 노인
《강제윤-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호미,2013) 93쪽

 팔순의 노인
→ 팔순 할머니
→ 여든 살 할머니
→ 여든 살 할매
 …


  예부터 한겨레는 나이를 셀 적에 숫자로만 가리켰습니다.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이렇게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리키는 나이를 ‘한자 쓰는 이’들이 자꾸 한자로 바꾸어서 불렀어요.

  한자말로 나이를 가리킨다고 해서 점잖지 않습니다. 한자말로 나이를 말할 적에 어르신을 섬기는 빛이 담기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어른을 섬길 때에 비로소 섬기는빛이 흐릅니다. 낱말은 알맞고 바르며 사랑스레 가다듬고, 말을 하는 마음 또한 알맞고 바르며 사랑스럽게 추스르기를 빕니다. 4347.7.2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딸아들이 있어도 다들 어렵게 살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여든 살 할매

‘자식(子息)’은 그대로 둘 수 있지만 ‘딸아들’이나 ‘아이’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노인(老人)’은 ‘늙은이’나 ‘어르신’으로 손질할 낱말인데, 이 자리에서는 ‘할매’나 ‘할머니’로 손질하면 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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