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7.20.

 : 아이들과 멧자락 넘기



- 천등산 골짜기로 나들이를 온다.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골짝물에 온몸을 담근다. 스무 날 남짓 비가 쏟아부었기에 꿉꿉한 날씨가 이어졌는데,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하늘을 보고 자전거를 달린다. 비가 그친 골짜기는 어떤 모습일까. 오랫동안 비가 쏟아부은 뒤 골짜기에는 물이 얼마나 많을까.


- 물이 깊고 많다. 물소리가 크다. 이 골짜기에 놀러와서 술과 고스톱을 즐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보인다. 어른들은 골짜기에서 무엇을 하며 놀아야 즐거운 줄 모를까. 애써 골짜기까지 와서 하는 놀이란 두 가지뿐일까. 왜 골짜기에서 고기를 구워 술을 마셔야 할까. 왜 골짜기에서 고스톱을 치면서 보내야 할까.


- 한 시간 즈음 놀다가 나온다. 물이 많이 차가우니 오래 놀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멧길을 타고 더 올라 보기로 한다. 위쪽에 다른 골짜기가 있는지 살피기로 한다. 자가용을 끌고 찾아와서 술과 고기와 고스톱으로 시끄러운 관광객이 없는 골짜기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 늘 가던 골짜기에서 삼십 미터쯤 올라가니 아주 호젓한 곳이 하나 있다. 좋아. 다음에는 이곳으로 오자. 더 올라간다. 자전거를 탈 수 없도록 가파르다. 큰아이는 발이 아프단다. 큰아이를 샛자전거에 앉혀 자전거를 끈다. 땀이 뻘뻘 흐르고 팔이 찌릿찌릿 저리다. 한참 올라가니 군청에서 공사를 해 놓은 듯한 물놀이터가 있다. 이곳에도 자가용이 여럿 있고 놀러온 사람들이 많다. 더 올라가자.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


- 비알이 조금 가볍다 싶으면 자전거를 달린다. 그렇지만 1*2단으로 달려도 가파른 길이다. 발판을 더 구르기 어려워 자전거에서 내린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잔다. 큰아이도 졸릴 법한데 씩씩하게 잘 견디어 준다. 도무지 안 되겠구나 싶어 나무그늘 있는 데에서 한 차례 쉰다. 숨을 몰아쉰다. 숨을 고른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는다. 꽤 올라왔는지 사람 소리는 안 들린다. 이 길을 오르내리는 자동차도 없다. 땀을 닦고 다시 걷는다. 자전거를 끄는 팔에 힘이 풀린다. 예까지 올라와서 다시 이 길로 내려가고 싶지는 않다. 건너편 다른 마을로 내려가고 싶다. 구비구비 돌아가는데, 이 구비가 지나면 끝날 듯하던 길이 안 끝난다. 저 구비를 돌아도 길은 안 끝난다. 꽤 높이 올라왔지만 길은 안 끝난다. 언제쯤 끝날까. 다시 한 차례 쉰다. 작은아이는 깊이 잔다. 풀바람과 풀벌레 노랫소리가 가득하니 잠을 자기 좋겠지.


- 한 차례 더 쉴 무렵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다시금 기운을 내어 올라가기로 한다. 꽤 많이 올라왔는데, 자꾸 힘이 빠지니 그만 올라갈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올라온 가파른 길로 도로 내려가자니 아찔하다. 멧꼭대기 건너편은 어떠할까. 그곳도 내려가는 길은 가파를까.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낮에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워 멧자락을 넘는 우악스러운 아버지는 얼마나 있을는지 생각해 본다.


- 길 옆으로 흐르는 도랑을 만난다. 마침 물이 거의 떨어졌는데 반갑다. 자전거를 길바닥에 눕힌다. 낯을 씻고 물을 받는다. 두 아이더러 낯과 손을 씻으라 말한다. 아이들은 낯과 손을 씻은 뒤, 가파른 멧길에서 꽤 재미나게 논다. 도랑에서 사는 참개구리를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는 어느 만큼 올라왔을까.


- 자전거를 달리다가 끌다가 되풀이한다. 이 구비를 지나면 끝일까 하고 또 생각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그래, 아직 멀었구나. 그러나 꼭대기가 멀지 않았다고 느낀다. 먼 마을과 이웃 멧자락이 보인다. 우리가 오르는 천등산 꼭대기도 코앞에 있다. 자전거에 올라 1*2단으로 달린다. 다리에 힘이 풀릴 듯하지만, 끌 때보다는 한결 낫다. 그리고 구비 하나를 돌아서니 드디어 끝이다. 꼭대기 너른 마당이 나온다.


- 꼭대기에서 자동차 한 대 내려가려고 한다. 왼손을 들어 흔든다. 내려오지 말고 멈추어 달라는 뜻이다. 오르막으로 자전거가 먼저 지나간 뒤 좁은 멧길로 내려가기를 바란다. 자동차에는 젊은 부부와 아이 둘이 탔다. 이들은 여름맞이를 하려고 올라왔구나 싶다. 자, 꼭대기에 이른다. 자전거를 바닥에 눕힌다. 아이들은 멧꼭대기 마당에서 콩콩 달리고 뛴다. 나는 긴 걸상에 드러눕는다. 기지개를 켜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린다. 용케 왔네. 시계를 본다.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 더위에 두 아이가 아버지랑 자전거에 타고 멧길을 올랐구나. 고맙고 대견하다. 씩씩한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 삼십 분 남짓 놀면서 여자만을 바라본다. 고흥반도 한복판에 있는 천등산에서 여자만을 볼 수 있고, 여수 서쪽 바다 섬을 볼 수 있다. 재미있다. 기운을 내기로 하고 내리막을 달린다. 차근차근 달린다. 내리막을 달리다가 사슴벌레 한 마리 뒤집힌 모습을 보고는 자전거를 세운다. 사슴벌레를 살며시 잡아 나무로 옮겨 준다. 뒤집힌 사슴벌레 둘레에는 개미가 잔뜩 모여서 사슴벌레가 죽기를 기다리던데, 개미한테는 미안하지만, 사슴벌레가 더 살도록 해 줄 수 있겠지?


- 풍양면 천등마을 쪽으로 내려온다. 이곳 길도 대단히 가파르다. 도무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와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자전거에서 내려 끄는데, 뒤에서 밀리는 힘이 드세다. 저 앞에서 뛰노는 다람쥐를 마주보면서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와 수레를 끈다.


- 풍양면 소재지에 닿아 가게에 들러 얼음과자를 산다. 두 아이한테 하나씩 건넨다. 다리를 쉰 뒤 집으로 달린다. 아이들은 이 더위에도 놀이터에 더 들르자고 한다. 도화면 소재지에 닿은 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놀이터에 간다. 지치지도 않는구나. 두 아이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면서도 놀이를 그치지 않는다. 저녁 여섯 시 반이 된다. 집에 가서 밥을 해서 먹여야지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자 말한다. “한 번 더 놀고요.” 하면서 세 번을 더 논다.


- 집으로 가는 길에 끝까지 힘을 낸다. 먼저 아이들을 씻긴다.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다 된 밥을 차려서 먹인다. 그러고 나서 나도 씻고 빨래를 한다. 길고 긴 하루가 저문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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