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골동양과자점 1 - 애장판
요시나가 후미 지음, 장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2



‘사랑’은 ‘살섞기’가 아니지요

― 서양골동양과자점 1

 요시나가 후미 글·그림

 장수연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1.12.5.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손맛’이나 ‘할머니 손맛’을 이야기하지만, 손맛은 어머니와 할머니한테만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 손맛’이 있고, ‘할아버지 손맛’이 있습니다.


  왜 손맛인가 하면, 밥은 손으로 짓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흙을 일군 뒤, 흙에 손으로 씨앗을 뿌리고, 흙으로 풀을 뜯어서 먹을 뿐 아니라, 흙으로 열매를 거두어 먹어요. 낟알은 손에 쥔 낫으로 볏포기를 벤 뒤에 훑어서 얻고, 손으로 절구질을 하고 키를 놀립니다. 손으로 솥에 쌀알을 담은 뒤, 손으로 장작을 때서 밥을 지어요. 다 지은 밥은 주걱을 손에 쥐어서 풉니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밥을 입에 넣을 적에도 손으로 수저를 쥐지요.


  손으로 짓는 맛을 손으로 누립니다.



- ‘중학교란 동네는 왜 이렇게 눈치만 보며 살아야 할까.’ (10쪽)

- “선더 그 자식. 케이크가 뭔 소용이 있냐고?” (110쪽)





  요시나가 후미 님이 빚은 만화책 《서양골동양과자점》(서울문화사,2001)은 네 권짜리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일어나는 여러 모습과 삶을 만화로 담아서 들려줍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사내입니다. 그래요. 사내들만 일하지요. 요시나가 후미 님은 몸매가 잘 빠진 사내들이 나오는 만화를 즐겨 그립니다. 나는 이런 만화는 그리 즐기지 않아서, 그렇다고 몸매가 잘 빠진 가시내들이 나오는 만화도 그리 즐기지 않아서, 그동안 이 작품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구태여 그런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 하는지 아리송하고, 왜 그런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 하는지 알쏭달쏭하다고 느껴요. 만화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아끼는 이야기를 담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다고 느껴요.



- “이거 전부 앤티크 식기 아닌가요? 냉수 담은 이 셰리 글라스만 해도 5만 엔은 나가겠는걸. 나 같으면 절대로 손님한테 안 내놔요.” “네. 저희 가게에선 내놓습니다.” (50쪽)

- “당신, 사실은 매일매일 아주 즐거워 못 견디겠죠? 왜 일부러 시시한 척하고 살아요?” “내 인생이, 말인가?” “그러믄요. 22년 동안 한직에서만 돌다가 마지막엔 그보다 더 한가한 사단법인 관리직에 앉았잖아요. 그 대신 당신은 남아도는 시간에 좋아하는 양과자들로 이름높은 제과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가게의 온갖 종료의 케이크를 먹으러 돌아다니셨죠?” “다 알고 있었나?” (86∼87쪽)



  아는 사람은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텐데, ‘사랑’은 ‘사랑’이지, ‘살섞기’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살을 섞는 일은 ‘살섞기’일 뿐입니다. 한국말로는 ‘어우르다’라고도 합니다. 영어로는 ‘sex’라고도 적습니다.


  겉으로 스치듯이 훑자면, 《서양골동양과자점》은 ‘사내들끼리 살을 섞는 줄거리’가 언뜻선뜻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은 스치는 ‘곁 줄거리’입니다. ‘속 줄거리’는 맛있는 밥(케익·양과자)을 즐기는 사람들이 짓는 웃음과 이야기입니다. 맛있는 밥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꿈꾸는 삶과 노래입니다.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웃음과 이야기와 삶과 노래는 바로 ‘사랑’입니다. 살섞기가 아닌 ‘사랑’입니다.





- “복싱도 계속 할 거야! 다니던 체육관엔 더 이상 못 있지만, 그래도 계속 할 거야! 너한테 호스티스도 계속 시키겠지! 나도 아르바이트 더 늘릴게! 네가 없는 동안에 애기는 내가 보고! 그렇게밖에 결론을 못 내렸어.” “날 위해 복싱을 그만두진 않을 거구나?” “미안해, 나미코!” “난 토오루가 그렇게 말하기를 줄곧 기다려 왔어.” (125쪽)

- “아니. 그건 상관없어. 그런 소릴 안 들었으면 지금 이렇게 자유로운 인생을 살진 못했을 테니까. 진짜로 이젠 괜찮아. 그 증거로, 난 널 기억도 못했잖아. 앞으로 잘 부탁해, 타치바나. 함께 좋은 가게를 만들자.” (154∼155쪽)



  사랑을 담아서 지은 밥이기에 맛있습니다. 손꼽히는 요리사가 지은 밥이라서 맛있지 않습니다. 사랑을 실어서 나누는 밥이기에 즐겁습니다. 이름난 요리사가 차린 밥이라서 즐겁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바라보고 마주하는 사람이 밥상에 둘러앉아서 한 끼니를 누리니 아름답지요. 어떤 비싼 밥집으로 찾아가서 비싼값을 치러서 무엇을 먹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은 사랑입니다. 쌀 한 톨은 사랑입니다. 풀 한 포기도, 나물 한 점도 사랑입니다. 두부 한 모도 사랑이요, 콩 한 알도 사랑입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도 사랑이요, 우리가 나누는 말도 사랑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에 사랑스레 웃습니다. 삶을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오늘 하루 서로 웃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속삭입니다.


  판이 끊어져서 아쉽지만, 만화책 《서양골동양과자점》은 머잖아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와서 사랑받을 수 있겠지요. 눈을 감고 속을 들여다본다면, 눈을 감으면서 마음을 읽는다면, 우리 삶에 사랑이 있기에 따사로운 기운이 흐를 수 있는 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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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책꿈 키우기
46.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 (삶책, 집안책, 가문책)


  러시아 타이가 깊은 숲에 ‘아나스타시아’라는 사람이 산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블라지미르 메그레’라는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메그레라는 사람은 러시아 도시에서 살고, 아나스타시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긴 뒤 차근차근 갈무리해서 책으로 씁니다. 2014년 5월까지 모두 여덟 권이 한국말로 나왔는데, 여덟 권에 붙은 이름을 살피면 ‘새 문명(8권)’, ‘삶의 에너지(7권)’, ‘가문의 책(6권)’, ‘우리는 누구?(5권)’, ‘함께 짓기(4권)’, ‘사랑의 공간(3권)’ 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8권을 읽어 봅니다. 22쪽에 “재앙은 피할 수 없어요. 그 원인은, 사람들에게 옳지 못한 해결방안을 강요하는 누군가의 고인적인 생각이에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35쪽에 “봄이 되어 먼 나라로부터 새들이 숲, 고향 벌판으로 날아올 때면, 사람들이 새들을 보고 기뻐해요. 그 복된 기쁜 에너지 덕에 여러 가지 질병이 사람들로부터 떠나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오늘날 한국에서 들려주거나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옳지 못한 길을 알려주면 엉망진창인 일이 터지기 마련이에요. 아주 마땅합니다.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는 사람은 참말 아름다운 마음이 돼요.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을 맑게 다스립니다. 아무리 모질거나 못된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멧새가 사랑스레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 그만 부드러우면서 따사로운 마음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새마을운동 때부터 제비집을 함부로 허뭅니다. 옛이야기 흥부전에도 나오듯이, 제비집을 함부로 헐지 말라 했어요. 제비가 집을 지으면 제비를 잘 돌보고 아낄 뿐 아니라, 늘 제비집을 올려다보면서 새끼 제비와 어미 제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라 했어요. 제비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다시 찾아올 때에 물어 나르는 ‘복 씨앗’이란 바로 노래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하늘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날갯짓입니다.

  농약을 함부로 써서 멧새를 죽인 일, 농기계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서 논에 살던 뜸부기를 몽땅 죽여 없앤 일, 예부터 한겨레뿐 아니라 이웃 여러 나라에 아름다운 꿈을 불러일으킨 까치가 푸대접받도록 내몬 일은 모두 우리한테 슬픔입니다. 까치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반가운 사람이 온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데, 참말 새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겨레는 먼먼 옛날부터 즐거운 웃음꽃을 피웠는데, 이제는 새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총을 쏘아서 죽이려 합니다. 콩알을 쫀다고, 열매를 파먹는다고, 아주 새를 미워합니다.

  새는 왜 콩알을 쪼거나 열매를 파먹을까요? 새가 배를 채울 먹이인 벌레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벌레는 왜 사라졌을까요? 사람들이 농약을 아주 끔찍하도록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새는 예부터 사람들 논밭 둘레에서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사람을 도왔습니다. 한집 이웃인 새였습니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맑고 낭창낭창 아름다운 노래를 베풀었어요.

  《새 문명》이라는 책 42쪽에 “철창 속에서 몇 년을 보낸 서커스 짐승들은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다. 그들은 완전히 사람한테 의존한다.”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59쪽에 “다시 환생하는 다른 방법도 있지만, 자신 내부에 정보를 남길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적어요.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지만, 삶을 공부하고 모든 걸 터득해야 해요. 그렇지만 현세를 과거와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 때문에, 사람들 내부에는 삶의 지식이 없고, 하느님을 체감할 수 있는 느낌이 없어 자신의 삶에서 혼돈을 겪는 것이에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철창에 갇힌 서커스 짐승뿐 아니라 동물원에 갇힌 짐승은 스스로 먹이를 찾을 줄 모릅니다. 그러면, 짐승만 이러할까 궁금합니다. 우리들 사람은 어떠한가요?

  제비집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보면,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날갯짓을 하도록 돕지 않습니다.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합니다. 날갯짓을 하지 않으면 어미 제비는 한참 기다리다가 떠나요. 새끼 제비가 혼자 둥지에 남아도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서 해마다 이 모습을 봅니다. 올해에는 마지막 어린 새끼가 이틀 동안 아주 외롭게 혼자 있었어요.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되는 날, 드디어 어린 마지막 새끼 제비도 겨우 둥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고는 서툰 날갯짓을 했고, 이때 어디에선가 어미 제비가 빠르게 날아와서 새끼 제비를 데리고 다른 형제 제비가 있는 곳으로 이끌더군요. 그러니까,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스스로 날갯짓을 할 때까지 어디엔가 조용히 숨어서 끝까지 기다렸어요.

  사람도 이와 같아요. 어버이는 아이를 언제까지나 싸고 돌 수 없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도록 이끕니다. 이를테면, 열여섯 살쯤 되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을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빨래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하고, 비질이나 걸레질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겠지요. 들에서 나물을 스스로 뜯을 줄 알아야 할 테며, 제법 먼길도 혼자 심부름을 다녀올 줄 알아야 할 테지요.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은 어떻게 읽거나 느껴야 할까요. 우리는 왜 우리 마음속은 안 읽거나 못 읽을까요.

  가만히 살피면,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어른이 되기까지 살아오며 그러모은 슬기로운 넋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자가용을 몰아 아이들을 태우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이 땅을 찬찬히 밟으면서 누릴 놀이나 일을 물려주지는 못합니다. 훌륭하다는 책을 많이 사서 아이한테 읽히기는 하지만, 정작 어른 스스로 ‘내 이야기’를 ‘내 삶을 밝히는 모든 지식과 이야기’로 엮어서 아이한테 물려주는 분은 몹시 드뭅니다.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가운데 6권은 책이름이 ‘가문의 책’입니다. 그러니까, 러시아 타이가 깊은 숲에서 사는 사람은 우리한테 “우리 집안 슬기를 밝히는 이야기”를 스스로 써서 스스로 물려주라는 뜻을 밝히는구나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 뿐 아니라 슬기를 물려줄 때에 어버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슬기를 물려받을 때에 아이입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물려주거나 물려받지 않습니다. 사랑을 물려주고 물려받아요. 꿈과 이야기를 물려주고 물려받습니다.

  75쪽에 “현대의학은 사람을 치료하기보다는 아주 진부한 비즈니스를 하는 거야. 그리고 사업인 이상, 사람들이 아파야 알약을 생산하는 거대 회사들한테 더 이익이 돼. 환자가 많을수록 소득도 더 커지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하, 그렇지요. 예부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디가 아프면 어떤 풀을 뜯어서 먹거나 바르라’ 하고 알려주었습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옷을 짓는 천으로 엮을 실을 얻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바구니나 멍석을 짜는 풀이라든지 지붕으로 얹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약국에 가고, 가게에 가서 옷을 사며, 돈을 모아서 아파트를 장만할 뿐입니다.

  82쪽에 “다양한 사람들의 몸이 요구하는 식품의 종류와 양은 당연히 동일할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 맞는 표준이나 통일된 처방 또는 식단도 있을 수 없다.”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94쪽에 “오늘 돈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오직 돈과 권력만이 사람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 여겨. 그리고 동전을 벌려고 애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믿도록 확신시키지.” 같은 이야기가 흘러요. 이러한 이야기는 무엇을 들려주려고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읽을 때에 내 삶을 살찌울 만한가 헤아려 봅니다.

  돈은 많은데 웃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대통령 자리라든지 국회의원 자리에 있으나 노래하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변호사나 판사 같은 자리에 있지만, 즐겁게 글을 쓰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할머니가 고구마를 찌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할아버지가 밭을 갈다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활짝 웃습니다. 돈은 없다 하지만 웃고 노래하는 어른이 제법 있습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며, 그냥 집에서 빙글빙글 뒹군다 하더라도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어린 조카하고 즐겁게 놀 줄 아는 어른이 제법 있습니다.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이란 ‘아이가 홀로서기를 할 적에 즐겁게 꺼내어 읽고 생각하도록 이끄는 슬기꾸러미’라고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책이나 더 두꺼운 책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책이면 됩니다. 즐거운 책이면 되고, 아름다운 책이면 돼요. 따사롭게 어깨동무할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을 이 땅 모든 어버이가 쓰고, 이 땅 모든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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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책꿈 키우기
45. 나도 책을 쓸 수 있을까


  책은 누구나 씁니다. 참말 책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쓰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누구나 책을 씁니다. 다시 말하자면, 책을 쓰려는 마음을 품고 날마다 내 이야기를 스스로 짓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씁니다. 참으로 어떤 책이든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책이든 쓰려고 생각을 기울이면 누구나 어떤 책이든 씁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책이든 꼭 쓰겠다는 생각을 품고 날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어떤 이야기이든 차근차근 살을 붙이고 북을 돋우면서 가꿀 수 있으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이든 실컷 써서 책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시집을 쓸 수 있고 소설책을 쓸 수 있으며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쓸 수 있는 한편, 자기계발책이나 역사책이나 과학책 모두 쓸 수 있습니다. 교육책이나 사진책도 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쓸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삶에 맞추어 보기를 들어 볼게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삶이니 ‘시골살이’로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시골살이가 어떠한가를 시로 씁니다. 시를 하루아침에 백 꼭지를 쓸 수 있을 테고, 하루에 한 꼭지씩 써서 백 날에 걸쳐 쓸 수 있습니다. 이틀에 한 꼭지를 쓰거나 한 주에 한 꼭지를 쓸 수 있어요. 달과 철을 살펴 달마다 한 꼭지를 쓰거나, 철이 바뀔 무렵 한 꼭지를 쓸 수 있어요. 시집 한 권이 될 만큼 꾸준히 시를 씁니다. 자, 그러면 ‘시골살이’ 시집이 태어납니다. 소설책 쓰기도 시집 쓰기와 같습니다. 동화책이나 그림책은 어떠할까요? 동화책이라는 틀과 그림책이라는 틀에 맞추어서 쓰면 돼요. 동화책을 쓸 적에는 어린이가 함께 읽을 만하도록 써야 합니다. 소설책은 어른만 읽는 책이니, 어른 눈높이를 살리면 될 텐데, 동화책은 나이 어린 아이가 읽을 수 있게끔 낱말 하나도 더 살펴서 쉽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그렇다고 소설책은 아무렇게나 써도 되지 않아요. 소설책을 쓸 적에도 되도록 쉬우면서 바르게 글을 여미어야 합니다.

  그림책은 좀 다를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림책에는 그림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면, 그림을 함께 그리면 됩니다. 그림은 화가만 그리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리는 그림입니다.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열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그리고 사랑스레 나누면 되는 그림입니다. ‘시골살이’란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차근차근 그림을 그립니다. ‘시골살이’이니까, 아무래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 내음을 담뿍 담아야겠지요? 도시에서는 철마다 다른 빛이나 숨결이 없어요. 그러나 시골에서는 철마다 다른 빛이랑 숨결이 있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적에는 ‘시골살이’ 흐름을 잘 살피고 짚어서 담아야 합니다.

  자기계발책은 어떻게 쓸까요? 시골에서 살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애쓴 모습을 이야기로 엮어서 담으면 됩니다. 시골에서 날마다 어버이를 도와 낫으로 풀을 베다 보니 팔뚝과 등허리에 힘이 붙어, 어떤 일이든 거뜬히 할 수 있더라, 이런 이야기도 자기계발입니다. 시골에서 어버이 일을 거들며 새벽 일찍 일어나 버릇하니, 언제나 새벽 네 시이면 눈을 떠서, 겨울에는 새벽부터 아침까지 맑은 넋으로 서너 시간쯤 아름다운 책을 읽었고, 이동안 아름다운 책을 읽으니 어느새 내 마음이 사랑스럽게 거듭나더라, 이런 이야기도 자기계발입니다.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어버이 일을 거들다 보니, 일이란 무엇이고 농사란 무엇이며 밥 한 그릇과 흙 한 줌이 무엇인가를 깊고 넓게 살필 수 있더라, 온누리와 지구별과 사회를 아주 깊고 넓게 읽을 수 있더라, 하는 이야기도 자기계발입니다.

  역사책은 어떻게 쓸까요? 내 어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고, 내 이웃 아재와 아지매가 지내는 모습을 살핍니다. 내 할매와 할배가 살아온 이야기를 귀여겨듣습니다. 이웃 할매와 할배를 찾아가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이야기를 여쭙습니다. 이런 모든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으고 갈무리하면, 어느새 ‘시골살이’ 역사를 담는 책이 됩니다.

  과학책은 어떻게 쓸까요? 논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있는지 찾아보셔요. 밭에 얼마나 많은 풀이 자라고 벌레가 있는지 살펴보셔요. 논생물도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논과 이웃 논은 논생물이 얼마나 다른가를 견줄 수 있습니다. 밭에서는 풀벌레와 들풀을 꼼꼼히 살펴서 가짓수와 갈래를 모두 살필 수 있고, 밭마다 얼마나 다른지, 또 빈터가 된 여느 풀밭이랑 숲속에서 자라는 풀을 꼼꼼히 견줍니다. 이러면서 ‘시골살이’에서 엿보는 과학책이 태어납니다. 한편, 논밭과 들과 숲에서 만나는 풀을 모두 그러모아서, 이 풀마다 예부터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썼는지를 살펴보셔요. 약풀로 안 쓰는 들풀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모든 풀은 저마다 약풀로 씁니다. 이러한 대목을 인터넷으로든 식물도감에서든 모두 뒤져 보셔요. 그리고, 풀을 스스로 그림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붙이면, 아주 멋진 ‘들풀 과학 이야기책’이 태어납니다.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를 살펴보아도 과학책이 됩니다. 콩이 자라는 한살이를 낱낱이 살펴도 과학책이 됩니다. 우리 집에서 거둔 콩으로 몇 가지 요리를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온갖 요리를 해 보면 요리책도 나옵니다.

  교육책은 어떻게 쓸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옛날 사람들은 학교도 없이, 또 글도 없이, 또 책도 없이, 어떻게 농사짓기를 가르쳤을까 하고 헤아려 보셔요. 마음속으로 옛날 모습을 그려 보셔요. 옛날 옛적에는 시골사람 모두 언제나 노래를 불렀으니, 베틀을 밟거나 절구질을 하거나 모내기를 하거나 풀베기를 하거나 아기를 어르거나, 그러니까 우리 삶에서 늘 부르던 노래를 곰곰이 알아보셔요. 이러한 ‘시골살이’가 바로 학교요 배움이자 가르침인 줄 깨닫는다면, 먼먼 옛날부터 시골사람이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일구며 살아온 나날이 교육이자 학교이니, 이러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교육책이 태어납니다.

  사진책은 어떻게 쓸까요? 사진 작가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시골에서 지내는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으로 찍어요. 놀거나 일하는 모습을 모두 찍어요. 쉬거나 어울리는 모습을 모두 담아요. 바다에서도 찍고 들에서도 찍습니다. 집에서도 찍고 마을에서도 찍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어떤 사진 작가보다 깊고 넓게 ‘시골살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속속들이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값비싼 장비가 없어도 됩니다. 내 손전화로 사진을 찍어도 됩니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베틀북 펴냄,2002)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어엿하게 자라서 어버이 품에서 벗어나 혼자 새롭게 살겠노라 꿈을 꾸는 ‘늑대 루카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늑대 루카스가 제금을 나겠다고 하니, 루카스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녁 아이가 홀로서기 하려는 뜻을 높이 섬깁니다. 루카스네 아버지는 루카스한테 ‘늑대로서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을 종이에 적어서 건넵니다. 그런데, 늑대 루카스는 아버지가 종이에 적어 준 ‘먹을 수 있는 것’을 하나도 못 먹습니다.

  늑대 아버지는 늑대 아들한테 무엇을 먹으라고 했을까요? 늑대 아버지는 ‘엄마 염소와 아기 염소’, ‘빨간 모자’, ‘아기 돼지 세 형제’, ‘피터’, ‘엄지동자와 형제들’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곧 알아챌 텐데, 프랑스 작가가 빚은 그림책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에 나오는, ‘늑대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프랑스 옛이야기에 나오는 귀여운 동무들입니다.

  늑대 아들은 어떻게 할까요? 배가 고파서 잡아먹으려고 할 때마다 묻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늑대한테 ‘불쌍히 여겨 잡아먹지 말아 달라’고 말합니다. 늑대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무도 못 잡아먹습니다.

  어떡할까요? 아버지가 물려준 지식으로는 그저 배를 쫄쫄 굶습니다. 이대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굶어죽어야 할까요? 불쌍하고 귀여운 동무나 이웃을 모른 척하면서 잡아먹어야 할까요?

  실마리는 우리가 스스로 풀어야 합니다. 이 실마리를 푸는 길이 바로 ‘글쓰기’요 ‘책쓰기’입니다. 무엇을 글감으로 삼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글감이 됩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스스로 즐거운 글감으로 여겨, 가만히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생각하셔요. 그러면, 글은 저절로 샘솟습니다. 내가 하루하루 즐겁게 가꾸는 삶에서 글이 태어납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과 함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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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간직하고 돌보며 어루만지는 사람은 사랑을 심는다. 사랑을 노래하고 즐기면서 웃음꽃으로 터뜨리는 사람은 사랑을 가꾼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 여섯째 권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사랑을 듬뿍 누리면서, 아니 듬뿍도 적게도 아닌, 그저 사랑 그대로 받으며 자란 아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사랑스러운 눈길이다. 그러면, 사랑을 적게 받으면서, 아니 적게도 많게도 아닌, 사랑다운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아이는 어떤 눈길일까? 사랑은 언제부터 받을 수 있을까? 사랑은 언제 받아야 즐거울까? 어제는 사랑을 못 받아서 슬프고, 오늘은 사랑을 받아서 기쁜가? 어제는 사랑을 받아서 기쁘고, 오늘은 사랑을 못 받아서 슬픈가? 따사로운 손길이 되고, 따사로운 눈길이 되며, 따사로운 삶길이 된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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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6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8월
5,000원 → 4,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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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1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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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87) 엔딩(ending)


너는 네가 만든 영화들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불가능한 해피엔딩을 말하고 있어. 나는 인생의 사실적인 결말 쪽을 보겠어. 진짜 인생의 엔딩은 행복하지 않아 … 그런 것들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야

《톰 새디악/추미란 옮김-두려움과의 대화》(샨티,2014) 43쪽


 해피엔딩을 말하고 있어

→ 즐거운 끝을 말하네

→ 아름다운 끝을 말하는군

 인생의 엔딩은 행복하지 않아

→ 삶은 마무리가 즐겁지 않아

→ 마지막 삶은 아름답지 않아



  보기글을 잘 살피면, 영어로 ‘엔딩·해피엔딩’을 쓰다가, 한자말로 ‘결말’을 쓰다가, 한국말로 ‘끝’을 씁니다. 세 나라 말을 씁니다. 똑같은 것을 다 다른 낱말로 가리키는 글쓰기가 아닙니다. 세 나라 말을 어지러이 섞은 글쓰기입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영어를 쓰면 되고,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한자말을 쓰면 됩니다. 한국말을 쓰는 우리들은 한국말을 쓰면 돼요. 흐름에 따라 ‘끝·마지막·마무리’를 알맞게 넣습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너는 네가 만든 영화들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터무니없는 즐거운 끝을 말하는군. 나는 삶에서 참말 이루어지는 끝을 보겠어. 참말 삶에서 끝은 즐겁지 않아 … 그 모두가 이야기에서 끝은 아니야


‘불가능(不可能)한’은 ‘이룰 수 없는’이나 ‘말이 안 되는’이나 ‘터무니없는’으로 다듬고, “말하고 있어”는 “말하네”나 “말하는군”으로 다듬습니다. “인생(人生)의 사실적(寫實的)인 결말(結末)”은 “삶에서 참말 이뤄지는 끝”이나 “삶에서 참말 나타나는 마무리”로 손보고, “진(眞)짜 인생(人生)은”은 “참말 삶에서”로 손봅니다. ‘행복(幸福)하지’는 ‘즐겁지’나 ‘아름답지’로 손질하고, “이야기의 끝은”은 “이야기에서 끝은”으로 손질합니다.



ending

1. 결말

2. 종료, 끝

3. 어미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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