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골동양과자점 1 - 애장판
요시나가 후미 지음, 장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2



‘사랑’은 ‘살섞기’가 아니지요

― 서양골동양과자점 1

 요시나가 후미 글·그림

 장수연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1.12.5.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손맛’이나 ‘할머니 손맛’을 이야기하지만, 손맛은 어머니와 할머니한테만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 손맛’이 있고, ‘할아버지 손맛’이 있습니다.


  왜 손맛인가 하면, 밥은 손으로 짓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흙을 일군 뒤, 흙에 손으로 씨앗을 뿌리고, 흙으로 풀을 뜯어서 먹을 뿐 아니라, 흙으로 열매를 거두어 먹어요. 낟알은 손에 쥔 낫으로 볏포기를 벤 뒤에 훑어서 얻고, 손으로 절구질을 하고 키를 놀립니다. 손으로 솥에 쌀알을 담은 뒤, 손으로 장작을 때서 밥을 지어요. 다 지은 밥은 주걱을 손에 쥐어서 풉니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밥을 입에 넣을 적에도 손으로 수저를 쥐지요.


  손으로 짓는 맛을 손으로 누립니다.



- ‘중학교란 동네는 왜 이렇게 눈치만 보며 살아야 할까.’ (10쪽)

- “선더 그 자식. 케이크가 뭔 소용이 있냐고?” (110쪽)





  요시나가 후미 님이 빚은 만화책 《서양골동양과자점》(서울문화사,2001)은 네 권짜리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일어나는 여러 모습과 삶을 만화로 담아서 들려줍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사내입니다. 그래요. 사내들만 일하지요. 요시나가 후미 님은 몸매가 잘 빠진 사내들이 나오는 만화를 즐겨 그립니다. 나는 이런 만화는 그리 즐기지 않아서, 그렇다고 몸매가 잘 빠진 가시내들이 나오는 만화도 그리 즐기지 않아서, 그동안 이 작품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구태여 그런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 하는지 아리송하고, 왜 그런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 하는지 알쏭달쏭하다고 느껴요. 만화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아끼는 이야기를 담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다고 느껴요.



- “이거 전부 앤티크 식기 아닌가요? 냉수 담은 이 셰리 글라스만 해도 5만 엔은 나가겠는걸. 나 같으면 절대로 손님한테 안 내놔요.” “네. 저희 가게에선 내놓습니다.” (50쪽)

- “당신, 사실은 매일매일 아주 즐거워 못 견디겠죠? 왜 일부러 시시한 척하고 살아요?” “내 인생이, 말인가?” “그러믄요. 22년 동안 한직에서만 돌다가 마지막엔 그보다 더 한가한 사단법인 관리직에 앉았잖아요. 그 대신 당신은 남아도는 시간에 좋아하는 양과자들로 이름높은 제과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가게의 온갖 종료의 케이크를 먹으러 돌아다니셨죠?” “다 알고 있었나?” (86∼87쪽)



  아는 사람은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텐데, ‘사랑’은 ‘사랑’이지, ‘살섞기’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살을 섞는 일은 ‘살섞기’일 뿐입니다. 한국말로는 ‘어우르다’라고도 합니다. 영어로는 ‘sex’라고도 적습니다.


  겉으로 스치듯이 훑자면, 《서양골동양과자점》은 ‘사내들끼리 살을 섞는 줄거리’가 언뜻선뜻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은 스치는 ‘곁 줄거리’입니다. ‘속 줄거리’는 맛있는 밥(케익·양과자)을 즐기는 사람들이 짓는 웃음과 이야기입니다. 맛있는 밥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꿈꾸는 삶과 노래입니다.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웃음과 이야기와 삶과 노래는 바로 ‘사랑’입니다. 살섞기가 아닌 ‘사랑’입니다.





- “복싱도 계속 할 거야! 다니던 체육관엔 더 이상 못 있지만, 그래도 계속 할 거야! 너한테 호스티스도 계속 시키겠지! 나도 아르바이트 더 늘릴게! 네가 없는 동안에 애기는 내가 보고! 그렇게밖에 결론을 못 내렸어.” “날 위해 복싱을 그만두진 않을 거구나?” “미안해, 나미코!” “난 토오루가 그렇게 말하기를 줄곧 기다려 왔어.” (125쪽)

- “아니. 그건 상관없어. 그런 소릴 안 들었으면 지금 이렇게 자유로운 인생을 살진 못했을 테니까. 진짜로 이젠 괜찮아. 그 증거로, 난 널 기억도 못했잖아. 앞으로 잘 부탁해, 타치바나. 함께 좋은 가게를 만들자.” (154∼155쪽)



  사랑을 담아서 지은 밥이기에 맛있습니다. 손꼽히는 요리사가 지은 밥이라서 맛있지 않습니다. 사랑을 실어서 나누는 밥이기에 즐겁습니다. 이름난 요리사가 차린 밥이라서 즐겁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바라보고 마주하는 사람이 밥상에 둘러앉아서 한 끼니를 누리니 아름답지요. 어떤 비싼 밥집으로 찾아가서 비싼값을 치러서 무엇을 먹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은 사랑입니다. 쌀 한 톨은 사랑입니다. 풀 한 포기도, 나물 한 점도 사랑입니다. 두부 한 모도 사랑이요, 콩 한 알도 사랑입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도 사랑이요, 우리가 나누는 말도 사랑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에 사랑스레 웃습니다. 삶을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오늘 하루 서로 웃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속삭입니다.


  판이 끊어져서 아쉽지만, 만화책 《서양골동양과자점》은 머잖아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와서 사랑받을 수 있겠지요. 눈을 감고 속을 들여다본다면, 눈을 감으면서 마음을 읽는다면, 우리 삶에 사랑이 있기에 따사로운 기운이 흐를 수 있는 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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