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책꿈 키우기
46.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 (삶책, 집안책, 가문책)
러시아 타이가 깊은 숲에 ‘아나스타시아’라는 사람이 산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블라지미르 메그레’라는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메그레라는 사람은 러시아 도시에서 살고, 아나스타시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긴 뒤 차근차근 갈무리해서 책으로 씁니다. 2014년 5월까지 모두 여덟 권이 한국말로 나왔는데, 여덟 권에 붙은 이름을 살피면 ‘새 문명(8권)’, ‘삶의 에너지(7권)’, ‘가문의 책(6권)’, ‘우리는 누구?(5권)’, ‘함께 짓기(4권)’, ‘사랑의 공간(3권)’ 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8권을 읽어 봅니다. 22쪽에 “재앙은 피할 수 없어요. 그 원인은, 사람들에게 옳지 못한 해결방안을 강요하는 누군가의 고인적인 생각이에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35쪽에 “봄이 되어 먼 나라로부터 새들이 숲, 고향 벌판으로 날아올 때면, 사람들이 새들을 보고 기뻐해요. 그 복된 기쁜 에너지 덕에 여러 가지 질병이 사람들로부터 떠나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오늘날 한국에서 들려주거나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옳지 못한 길을 알려주면 엉망진창인 일이 터지기 마련이에요. 아주 마땅합니다.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는 사람은 참말 아름다운 마음이 돼요.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을 맑게 다스립니다. 아무리 모질거나 못된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멧새가 사랑스레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 그만 부드러우면서 따사로운 마음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새마을운동 때부터 제비집을 함부로 허뭅니다. 옛이야기 흥부전에도 나오듯이, 제비집을 함부로 헐지 말라 했어요. 제비가 집을 지으면 제비를 잘 돌보고 아낄 뿐 아니라, 늘 제비집을 올려다보면서 새끼 제비와 어미 제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라 했어요. 제비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다시 찾아올 때에 물어 나르는 ‘복 씨앗’이란 바로 노래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하늘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날갯짓입니다.
농약을 함부로 써서 멧새를 죽인 일, 농기계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서 논에 살던 뜸부기를 몽땅 죽여 없앤 일, 예부터 한겨레뿐 아니라 이웃 여러 나라에 아름다운 꿈을 불러일으킨 까치가 푸대접받도록 내몬 일은 모두 우리한테 슬픔입니다. 까치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반가운 사람이 온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데, 참말 새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겨레는 먼먼 옛날부터 즐거운 웃음꽃을 피웠는데, 이제는 새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총을 쏘아서 죽이려 합니다. 콩알을 쫀다고, 열매를 파먹는다고, 아주 새를 미워합니다.
새는 왜 콩알을 쪼거나 열매를 파먹을까요? 새가 배를 채울 먹이인 벌레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벌레는 왜 사라졌을까요? 사람들이 농약을 아주 끔찍하도록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새는 예부터 사람들 논밭 둘레에서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사람을 도왔습니다. 한집 이웃인 새였습니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맑고 낭창낭창 아름다운 노래를 베풀었어요.
《새 문명》이라는 책 42쪽에 “철창 속에서 몇 년을 보낸 서커스 짐승들은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다. 그들은 완전히 사람한테 의존한다.”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59쪽에 “다시 환생하는 다른 방법도 있지만, 자신 내부에 정보를 남길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적어요.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지만, 삶을 공부하고 모든 걸 터득해야 해요. 그렇지만 현세를 과거와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 때문에, 사람들 내부에는 삶의 지식이 없고, 하느님을 체감할 수 있는 느낌이 없어 자신의 삶에서 혼돈을 겪는 것이에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철창에 갇힌 서커스 짐승뿐 아니라 동물원에 갇힌 짐승은 스스로 먹이를 찾을 줄 모릅니다. 그러면, 짐승만 이러할까 궁금합니다. 우리들 사람은 어떠한가요?
제비집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보면,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날갯짓을 하도록 돕지 않습니다.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합니다. 날갯짓을 하지 않으면 어미 제비는 한참 기다리다가 떠나요. 새끼 제비가 혼자 둥지에 남아도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서 해마다 이 모습을 봅니다. 올해에는 마지막 어린 새끼가 이틀 동안 아주 외롭게 혼자 있었어요.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되는 날, 드디어 어린 마지막 새끼 제비도 겨우 둥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고는 서툰 날갯짓을 했고, 이때 어디에선가 어미 제비가 빠르게 날아와서 새끼 제비를 데리고 다른 형제 제비가 있는 곳으로 이끌더군요. 그러니까,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스스로 날갯짓을 할 때까지 어디엔가 조용히 숨어서 끝까지 기다렸어요.
사람도 이와 같아요. 어버이는 아이를 언제까지나 싸고 돌 수 없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도록 이끕니다. 이를테면, 열여섯 살쯤 되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을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빨래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하고, 비질이나 걸레질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겠지요. 들에서 나물을 스스로 뜯을 줄 알아야 할 테며, 제법 먼길도 혼자 심부름을 다녀올 줄 알아야 할 테지요.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은 어떻게 읽거나 느껴야 할까요. 우리는 왜 우리 마음속은 안 읽거나 못 읽을까요.
가만히 살피면,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어른이 되기까지 살아오며 그러모은 슬기로운 넋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자가용을 몰아 아이들을 태우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이 땅을 찬찬히 밟으면서 누릴 놀이나 일을 물려주지는 못합니다. 훌륭하다는 책을 많이 사서 아이한테 읽히기는 하지만, 정작 어른 스스로 ‘내 이야기’를 ‘내 삶을 밝히는 모든 지식과 이야기’로 엮어서 아이한테 물려주는 분은 몹시 드뭅니다.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가운데 6권은 책이름이 ‘가문의 책’입니다. 그러니까, 러시아 타이가 깊은 숲에서 사는 사람은 우리한테 “우리 집안 슬기를 밝히는 이야기”를 스스로 써서 스스로 물려주라는 뜻을 밝히는구나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 뿐 아니라 슬기를 물려줄 때에 어버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슬기를 물려받을 때에 아이입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물려주거나 물려받지 않습니다. 사랑을 물려주고 물려받아요. 꿈과 이야기를 물려주고 물려받습니다.
75쪽에 “현대의학은 사람을 치료하기보다는 아주 진부한 비즈니스를 하는 거야. 그리고 사업인 이상, 사람들이 아파야 알약을 생산하는 거대 회사들한테 더 이익이 돼. 환자가 많을수록 소득도 더 커지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하, 그렇지요. 예부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디가 아프면 어떤 풀을 뜯어서 먹거나 바르라’ 하고 알려주었습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옷을 짓는 천으로 엮을 실을 얻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바구니나 멍석을 짜는 풀이라든지 지붕으로 얹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약국에 가고, 가게에 가서 옷을 사며, 돈을 모아서 아파트를 장만할 뿐입니다.
82쪽에 “다양한 사람들의 몸이 요구하는 식품의 종류와 양은 당연히 동일할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 맞는 표준이나 통일된 처방 또는 식단도 있을 수 없다.”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94쪽에 “오늘 돈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오직 돈과 권력만이 사람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 여겨. 그리고 동전을 벌려고 애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믿도록 확신시키지.” 같은 이야기가 흘러요. 이러한 이야기는 무엇을 들려주려고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읽을 때에 내 삶을 살찌울 만한가 헤아려 봅니다.
돈은 많은데 웃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대통령 자리라든지 국회의원 자리에 있으나 노래하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변호사나 판사 같은 자리에 있지만, 즐겁게 글을 쓰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할머니가 고구마를 찌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할아버지가 밭을 갈다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활짝 웃습니다. 돈은 없다 하지만 웃고 노래하는 어른이 제법 있습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며, 그냥 집에서 빙글빙글 뒹군다 하더라도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어린 조카하고 즐겁게 놀 줄 아는 어른이 제법 있습니다.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이란 ‘아이가 홀로서기를 할 적에 즐겁게 꺼내어 읽고 생각하도록 이끄는 슬기꾸러미’라고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책이나 더 두꺼운 책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책이면 됩니다. 즐거운 책이면 되고, 아름다운 책이면 돼요. 따사롭게 어깨동무할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을 이 땅 모든 어버이가 쓰고, 이 땅 모든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