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집열쇠



사람들은 처음 집을 지으면서 열쇠와 자물쇠를 안 두었어. 그저 집을 드나드는 나날이었어. 누구나 손수 짓고 빚고 가꾸며 누릴 뿐, 남이 짓거나 빚거나 가꾼 살림을 안 쳐다보았단다. 모자라거나 힘든 이웃이 있으면 기꺼이 나누거나 베풀었기에, 어느 집에서도 열쇠·자물쇠가 없었지. 사람이 지은 집에는 크고작은 짐승이 기웃거리며 드나들었어. 개구리와 새와 풀벌레와 구렁이는 늘 함께살았어. 해가 넉넉히 들고 바람이 맑게 흐르고 냇물·샘물·우물을 누리는 자리를 살림터로 삼았어. 이러다가 우두머리가 나타나는데, 우두머리는 나누거나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빼앗아서 모으는 사람이었어. 나눠주는 살림을 받는 길이 아닌, 갑자기 들이닥쳐서 마구 부수고 죽이며 빼앗았단다. 그래도 사람들은 열쇠나 자물쇠를 안 두었어. 그저 스스로 살림을 짓는 하루였어. 오직 우두머리가 열쇠·자물쇠를 채웠어. 우두머리는 누가 저처럼 배앗거나 훔치리라 걱정했지. 이윽고 우두머리 곁에 서는 벼슬아치도 열쇠·자물쇠를 채워. 빼앗고 훔치는 무리는 그들 스스로 한 짓을 틀림없이 누가 똑같이 하리라 여겼단다. 두렵고 무섭고 싫으면서, 나누거나 베풀 마음이 없기에, 채우고 숨기고 혼자 쥐다가 쓸쓸히 죽어갔단다. 오늘날 나라를 보렴. 이제 사람들은 거의 다 열쇠·자물쇠를 채우는구나. 남한테서 빼앗거나 훔쳤기 때문일까? 나누거나 베풀며 스스로 새롭게 지을 마음이 없기 때문일까? 집열쇠를 거느려야 하는 집이 얼마나 아늑할는지 헤아려 봐.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보렴. 2025.4.4.쇠.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사전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내가 사랑한 사진책》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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