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돌리는 때



  국민학교를 다니며 방학을 맞이하면 집에서 하루 내내 보내기도 한다. 동네 동무들과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뛰놀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함께 놀 동무가 아무도 없어서 그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조차 안 나가기도 한다. 이런 날은 어머니 심부름조차 없기 일쑤이다. 이런 날에는 으레 어머니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본다. 조그마한 집이었으니 어머니가 무엇을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볼 수 있었고, 여느 날에도 어머니는 이렇게 하루를 보내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쯤 허리를 펴면서 비로소 숨을 돌리는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낮 두어 시쯤 되면 비로소 숨을 돌리면서 “아이고, 이제 나도 커피 한 잔 마셔야지!” 하신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주 짧아, 이내 다시 일손을 잡으니,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어머니가 숨을 돌리는 겨를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하다. 베틀을 밟고 다듬잇돌을 두들기며 길쌈을 하고 절구를 빻던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더욱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소한테 죽을 쑤어 주던 지난날을 헤아린다면, 이 땅에서 어머니라는 사람이 등허리를 펴거나 숨을 돌리는 겨를은 없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숨을 돌릴 겨를이 없이 지내도 어머니는 늘 노래를 부른다. 대중노래이건 유행노래이건 노래를 부른다. 이웃 아주머니도 그렇다. 하루 내내 숨을 돌릴 겨를이 없이 지내도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일손을 잡는다. 옛사람은 스스로 노래를 지어서 불렀고, 오늘 이곳에서 사는 사람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아무튼, 노래를 부르기에 일을 할 수 있고, 노래를 부르면서 웃을 수 있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ㅎㄲㅅㄱ, ㅅㅈ, ㅅㄹ (2014.12.31.)



  한 해가 저물던 날, 새해에 기쁘게 이루자는 뜻으로 몇 가지를 적어 보았다. ‘ㅎㄲㅅㄱ’는 “함께살기”를 뜻하고, 우리 도서관 이름이면서 큰아이와 새해에 새롭게 가꿀 학교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함께살기 도서관+학교”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ㅅㅈ’은 우리 집과 도서관이 “숲집”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ㅅㄹ’은 언제 어디에서나 늘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200’은 “도서관 평생지킴이”가 앞으로 200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고, ‘2억’은 우리 도서관으로 쓰는 폐교(흥양초등학교)를 우리 땅으로 장만할 밑돈을 벌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나는 글을 써서 책을 내어 살림과 도서관을 꾸리니, 내가 쓴 책이 널리 사랑받고 읽히면서 팔려서 이 모두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징글씨를 책겉에 적어 넣는 그림을 그린다. 한편, 내가 쓴 책이 이웃과 동무한테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두루 퍼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린다. 새로운 한 해에 모두 다 된다. 즐겁게 꿈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글노래’ 쓰기



  바깥마실을 나와서 한글노래를 쓴다. 시골집에서 동생과 즐겁게 놀면서 아버지를 기다릴 큰아이를 그리면서 한글노래를 쓴다. 조그마한 종이에 찬찬히 한글노래를 쓴다. 우리 집 시골순이한테 들려줄 한글노래이지만, 이 한글노래를 마실길에서 만나는 이웃한테도 선물로 주려고 한다. 우리 집 큰아이한테는 그림엽서 뒤쪽에 더 큰 글씨로 옮겨적어서 줄 생각이고, 이웃한테는 조그마한 종이에 적은 대로 줄 생각이다.


  한글노래는 아이한테 들려주는 ‘어버이 이야기’요 ‘어버이 삶’이다. 아이가 한글만 익히거나 알도록 하려는 글이 아니라, 아이가 어버이와 함께 살면서 바라보고 지켜보는 이야기이면서, 한글과 함께 삶노래를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랑이다. 사랑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서 들려주는 한글노래이다. 그러니까, 한글을 노래처럼 부르면서, 아니 한글을 노래로 부르면서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하겠다. 4348.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장소] 2015-01-09 04:29   좋아요 0 | URL
너무 기쁠 거예요.손으로 만든무엇은
그 마음이 잘 전달된다고 믿어요.

숲노래 2015-01-09 08:34   좋아요 0 | URL
손으로 쓰고 짓고 나누는 모든 것은
언제나 아름답게 퍼지는구나 하고 느껴요 ^^

[그장소] 2015-01-09 08:51   좋아요 0 | URL
아.네~그럼요..물론이죠.
기라노 나쓰오의 메타볼라 에서 그런 부분이
나와요. 얼굴은 못나고 밖에서 딱히 해먹고 살게 없는 청년이 공동숙소 같은데서 생활하며 엽서같은데 손으로 시같은걸 직접 적어 낮에 좌판에 파는거예요.
거의 구걸과도 같은 행위지만 지나 던 한
아가씨(술집에 나감)이거 당신이 직접 손 으로 쓴 거냐고..대단하다고. ..곧 그 청년은
그 말에 으쓱해지죠.베껴쓰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쓰느것을 칭찬받는 일은 아무래도 기분 좋고..싼 값에 팔일 뿐이어도 자부심이 생기는 거죠.내 가 뭔가 해 벌었다..하는. 정성과 인정..그걸 서로
소통하게 하는게 글의 일 이라면 전하는 건 글씨의 일. 아닐까ㅡ생각했었어요.
아..메타볼라 가 맞는지 아~ 확인하고 픈데..도저히 못 일어나겠어요.
누군가 틀리면 정정 해 주겠죠..?
오늘 하루도 화창한 날..보내세요.
함께 살기님.!!^^

숲노래 2015-01-09 09:48   좋아요 0 | URL
시를 써서 좌판에 놓고 파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에서도
서울 광화문 언저리에서 시를 쓰는 아저씨가 떠오르네요.
알라딘서재에도 그분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하며 찾아보는데
안 나오는군요.

네이버에서 `광화문시인 정재완`으로 찾아보시면
그분 이야기를 보실 수 있고 동영상도 있습니다.
이분 시집이 두 권 나온 적 있는데
모두 절판이로군요 ㅠ.ㅜ

저는 광화문시인 정재완 아저씨를
예전에 서울서 살 적에 으레 길에서 만나
(2003~4년) 음반도 사고 부채도 사고 사진틀도 사고 했습니다 ^^

[그장소] 2015-01-09 09:55   좋아요 0 | URL
추억이네요..그 시절! 예전에는 관광지나..유적지 에서 가능한 일.왜..사람이 입간판처럼 앞뒤로 판자를 덮어쓰고..거기에 엉성한 싯귀를 나뭇잎위에..화선지랑 ..나름 꾸며서..
8~90년대 초반 이웃엘 가면 어느 방 이든
시 적힌 세필로 쓴....그런게 있었는데..
그걸 서울 한 복 판에서 무려 2000년대에 보셨다는 거죠?..
생각만 해도 정겹네요.

숲노래 2015-01-09 10:24   좋아요 0 | URL
이분은 요즈음도 광화문에서 그대로 노점을 하면서 시쓰기를 꾸준히 하시는 듯해요. 저는 너무 멀어서 가 볼 수 없지만, 그장소 님이 서울 둘레에 계신다면,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시간에 광화문 네거리 둘레를 어슬렁거려 보시면, 광화문시인 아저씨를 만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장소] 2015-01-09 10:55   좋아요 0 | URL
아..지금의 광화문은넓게 개방된 곳.노점을 하시려면 아무래도 골목..암튼 언젠간 그 한복판을 걷게되면 둘러 찾아 볼 요량..
제겐 남는게 시간이므로..

숲노래 2015-01-10 02:57   좋아요 0 | URL
사람들 북적이는 데에는 안 계실 듯하고, 호젓한 곳에 조용히 앉아서 햇볕을 쬐면서 노점을 하고, 그동안 그곳에서 시를 쓰실 테지요
 

아이가 푸는 밥



  큰아이가 여덟 살로 접어든다. 이야, 여덟 살이로구나. 새해란 참 멋있구나. 한 해가 지나면 누구한테나 ‘한 살’이라는 나이를 새롭게 주니 참으로 멋지구나. 일곱 살에서 여덟 살로 거듭난 큰아이가 앞으로 살림순이로 씩씩하게 뛰놀기를 바라면서 밥주걱을 맡긴다. 자, 아이야, 네가 밥을 퍼 주렴. 동생 밥도 어머니 밥도 아버지 밥도 퍼 주렴. 네 밥도 네가 푸렴. 솔솔 김이 나는 따끈따끈한 밥을 함께 먹자. 네 아버지도 어릴 적에 너처럼 밥주걱을 손에 쥐어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한테 밥을 퍼 주면서 설레었지. 나도 한몫 할 수 있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꼈고, 나도 이제 아귀힘이 제법 붙어서 살림 한 자락을 살며시 잡을 수 있구나 하면서 기뻤단다. 밥주걱부터 단단히 쥐고 여덟 살을 아름답게 누리면, 곧 네 부엌칼을 얻을 수 있고, 머잖아 네 손으로 불을 일으켜 밥을 짓고 국을 끓일 수 있어. 4348.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다려’ 한 마디



  큰아이를 데리고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가서 ‘이 아이는 제도권학교에 안 보내고 집에서 배웁니다’ 하고 알리면서 서류를 쓰는데, 교무실에 앉아서 서류를 쓰는 동안 이 학교 교사들이 이 학교 아이들한테 “기다려.”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집에서 곧잘 아이들한테 “기다려.” 하고 말했는데, 새삼스레 이 말이 가슴을 쿡 찌른다. 털어놓고 말하자면, 집에서 아이들한테 “기다려.” 하고 말할 적마다 스스로 못마땅했다. 왜 이 말밖에 안 떠오를까, 이 말 아니고는 할 말이 없을까, 어릴 적부터 이 말을 어른들이 하면 참 못마땅했으면서 왜 나는 어른 자리에 서서 우리 아이한테까지 이 말을 할까, 온갖 생각이 가로지른다.


  서류를 다 쓰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여덟 살이 된 큰아이는 “아, 심심해. 뛰놀고 싶다.” 하고 혼잣말을 한다. 미안하구나. 학교라는 데에서는 교무실이나 교실이나 골마루에서나 뛸 수 없단다. 여기는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인데, 놀이터가 아닐 뿐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뛰놀지 못하는 데란다.


  아이들한테 읊는 “기다려.”는 지켜보라는 뜻도 된다. 때와 곳에 따라서는 이러한 뜻이 된다. 그런데, 지켜보라는 뜻이 아니라, ‘너는 아이요 나는 어른이니 너는 어른이 하는 내 말을 들어’와 같은 낌새나 마음으로 이 말을 한다면,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못마땅하다고 느끼리라 본다. 기다려야 하기에 기다리라고 말하는 일은 나쁘지 않다. 나쁘거나 좋거나 가를 까닭이 없이, 기다려야 할 때에는 즐겁게 “자, 기다리자.” 하고 말하면 된다.


  곰곰이 생각하니, 아이들한테 “그래? 그럼 지켜보렴.”이라든지 “그렇구나? 아버지가 다른 일을 하느라 손이 없으니 조금 기다리거나 다른 일을 하겠니?” 같은 말을 들려줄 수 있다. “음, 알았어. 아버지가 하던 일을 사이에 끊을 수 없으니, 얼른 마치고 네 말대로 하자.”처럼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여태 이런 말을 아이들한테 제대로 들려주지 않으면서 지낸 셈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나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말해야겠다고 깨닫는다. 무엇이든 교사(어른)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거북한 학교에 가서 교무실 한쪽에 앉아 서류를 쓰면서 새삼스레 나를 돌아본다. 4348.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장소] 2015-01-07 07:47   좋아요 0 | URL
윽...!어릴적엔 까부는 아이를 보는 것도 즐거웠는데..지금은 별수없는 나.구나..
할때..그러네요..싫은느낌.

숲노래 2015-01-07 07:55   좋아요 0 | URL
어쩔 수 없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면서 배우니,
아하 이랬구나 하고 느끼면
이제부터 새롭게 달라지려고 하면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