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한 살만 더 먹으면”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있는 놀이터에 두 아이를 데리고 가서 함께 노는데, 이곳에 먼저 와서 놀던 여덟 살 어린이가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한테 한 마디 한다. “너도 한 살만 더 먹으면 올라갈 수 있어.” 큰아이가 여덟 살 언니 꽁무니를 따라서 높은 데로 올라갔으나 무서워 한다. 이때에 여덟 살 어린이가 한 마디 한다. “무섭다고 하지 말고, 재미있는 것만 생각해. 하나둘셋 하면서 짠 하고, 아 놀이공원 가서 재미있다, 아 놀러가서 재미있다 …….” 일곱 살 큰아이는 이 말들을 잘 들었을까. 이 말들을 가슴에 담았을까.


  나이에 따라 ‘언니’나 ‘오빠’를 써야 하는 줄 아직 잘 모르는 우리 집 큰아이는 여덟 살 어린이한테 “너도 나처럼 해 봐.” 하고 말한다. 여덟 살 어린이는 “난 여덟 살이거든.” 하고 말하면서 왜 ‘언니’라고 안 하느냐고 입을 비죽 내민다. 그래도 같이 섞여 잘 논다. 그나저나, 여덟 살이 되면 훨씬 잘 놀 수 있다는구나. 그래, 그럴 테지. 4347.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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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0] 초등학교 놀이터 쓰레기

― 어른 몸짓 아이 생각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곧잘 나들이를 갑니다. 그곳에는 놀이터가 조그맣게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둘이 놀기도 하고, 때때로 마을 동무를 만나서 섞이기도 합니다. 퍽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초등학교 놀이터에 와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가 있으며, 아이와 함께 노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놀기도 하고, 살짝 떨어져서 지켜보다가 나무바라기를 하기도 합니다. 어제 면소재지에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가서 놀이터에 들렀습니다. 아이들은 신나서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뛰놉니다. 놀잇감이 몇 가지 없어도 이 몇 가지 놀잇감으로 즐겁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놀던 몇 아이가 이녁 어머니와 함께 놀이터를 떠납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하고 말하니 아이들은 아쉬움 없이 놀이터를 떠납니다. 큰아이가 문득 나를 부릅니다. “아버지, 시소 놀게 이리 좀 와요.” 아직 우리 아이들은 어려 저희끼리 시소를 못 탑니다. 그래, 도와주지.


  시소놀이를 마치고 다른 놀이를 할 즈음, 놀이터를 둘러보다가 모래밭에 온갖 쓰레기가 널린 모습을 알아챕니다. 아, 이 비닐쓰레기를 누가 여기에 버렸을까. 지나칠 수 없어 하나씩 줍습니다. 주운 비닐쓰레기를 작게 접습니다. 모래밭 귀퉁이에 폭죽놀이 빈 껍데기도 있습니다. 밤에 누가 여기까지 와서 폭죽놀이를 하고는, 빈 껍데기는 그대로 두고 갔지 싶습니다. 놀이터 둘레에는 면소재지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를 담은 종이잔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이 쓰레기, 저곳에는 저 쓰레기가 있습니다. 쓰레기를 줍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초등학교 놀이터에 있는 쓰레기는 틀림없이 이곳에 와서 놀던 아이와 어른이 버립니다. 그리고, 이 쓰레기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나 어른이 주워야 합니다. 또는 이곳을 지나가는 누군가 주울 테지요.

  집에서 방바닥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릴까요. 학교에서는 교실바닥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릴까요. 왜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쓰레기를 아무 데에나 쉬 버릴까요.


  아이와 어른 모두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는 곳이라면 쓰레기를 버릴 수 없습니다. 바닷가이든 숲이든 집이든 마을이든 학교이든, 아이와 어른 모두 스스로 좋아하며 삶을 누리는 곳이라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을 뿐더러, 쓰레기가 눈에 뜨이면 스스로 줍거나 치우겠지요. 4347.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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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길들인다



  우리 집 큰아이는 2014년에 일곱 살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나는 아이하고 일곱 해를 오롯이 살았다는 뜻이다. 지난 일곱 해를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큰아이한테도 작은아이한테도 노래를 참 자주 많이 불러 주었다. 처음 큰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던 때에는, 그러니까 예닐곱 해 앞서는 수줍음이 많았다. 누가 옆에 있으면, 이를테면 곁님이 옆에 있을 때조차 노래를 못 불렀다. 이러다가 작은아이가 태어나고 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니면, 전철에서건 버스에서건 길에서건 스스럼없이 노래를 부른다. 참말 서울 지하철이나 부산 지하철에서도 자장노래를 부른다. 한길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식당에서도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이 느긋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잠들 수 있도록 내 온 넋을 기울인다.


  늘 노래와 살아가는 아이들인 터라 아이들은 내가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부른다. 아이들은 스스로 말과 가락을 지어서 부르기도 한다. 내가 몸이 참 많이 고단해서 도무지 자장노래를 못 부르겠구나 싶은 날에는 두 아이가 갈마들면서 저희끼리 자장노래를 부르다가 곯아떨어진다.


  잠든 아이들 이마를 쓰다듬고 이불깃을 여미면서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길들이는가? 어찌 보면 길들인다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아무 마음이 없다.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란, 무엇보다 내가 나한테 불러 주는 노래이다.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란, 무엇보다 내가 나한테 베푸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까닭을 늘 느낀다. 아이들은 안다. 스스로 부르는 노래는 바로 스스로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스스로 읊는 말은 언제나 스스로 스며든다. 어른들이 아이더러 고운 말 쓰라고 가르칠 까닭이 없다. 어른도 아이도 스스로 느끼면 될 뿐이다. 우리가 스스로 쓰는 말은 늘 스스로 젖어든다. 우리가 스스로 가꾸는 삶은 언제나 스스로 이루는 새로운 하루가 된다.


  어느 누구도 아이를 길들일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꿈을 ‘빛’으로 보여줄 뿐이다. 얘들아, 참 고맙구나. 4347.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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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아이 밤에 토닥이기



  작은아이가 밤오줌과 밤똥을 모두 가릴 뿐 아니라 낮오줌과 낮똥도 스스로 가리니, 밤잠이 수월할까 하고 여기던 요즈음, 밤에 잠을 잊어야 할 일이 한 가지 생긴다. 아이들 이를 고치려고 치과에 가서 얘기를 나누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이들이 자면서 이를 갈면 바로바로 토닥여서 이를 더 갈지 않게끔 해 주어야 한단다. 이 말을 듣고 큰아이 이를 새롭게 바라보니, 참말 이를 갈면서 꽤 닳았다.


  큰아이가 몸이 고단하니 이를 갈며 자는구나 하고만 여겼는데, 이 잠버릇을 고쳐야 하는구나. 아직 일곱 살이니 날마다 찬찬히 돌보고 토닥이면 곧 사라지도록 할 만하리라 생각한다.


  밤에 자다가도 큰아이 이 가는 소리를 들으면 번쩍 눈을 뜬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큰아이 볼을 톡톡 두들기고 가슴을 토닥인다. 이래도 이를 자꾸 갈면 손을 입에 넣는다. 이러는 동안 큰아이한테 말을 건다. “예쁜 이는 그대로.” “이 튼튼 몸 튼튼.” “이는 예쁘게 두고 꿈속에서 놀자.”


  나 혼자만 말해서는 안 되리라 느껴, 잠자리에서 잠들기 앞서 꼭 큰아이더러 스스로 말하도록 시킨다. 큰아이가 제 몸에 대로 말하게끔 시킨다. 잠을 자는 동안 이를 예쁘게 둔다고, 잠을 자면서 이는 그대로 둔다고, 이 말을 큰아이가 스스로 입으로 읊어 몸이 알아듣도록 시킨다.


  앞으로 언제쯤 큰아이 이갈기가 끝날까. 앞으로 언제쯤 나는 밤에 느긋하게 잠을 이룰 수 있을까. 4347.6.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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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대 얘기 하기 싫어


  나는 군대 얘기를 하기 싫습니다. 왜 하기 싫을까 하고 돌아보면, 내가 현역병으로‘자대 배치’를 받을 때에, 뜻하지 않게 ‘행정병’으로 불려 갔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나는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을 적에 ‘면제’가 될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눈과 코가 몹시 나빠서, 눈으로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코로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병원 신세를 아주 자주 졌어요. 그런데,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을 적에 ‘군의관’이 나더러 ‘줄을 잘못 섰다’고 하면서, 내 앞뒤에 있는 아이들은 몸에 결격사유가 하나도 없으나 ‘면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돈이나 권력이 있는 집안이라서 면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1995년 봄날, 수원에 있는 병무청에서 군의관뿐 아니라 내 앞뒤에 있던 아이 둘은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군의관과 내 앞뒤에 있던 아이 둘한테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개소리 하지 마. 씨발것들.” (아, 두 마디를 했군요)

  이러구러 군대에 현역병으로 끌려가야 했는데, 내가 받은 군대 주특기는 ‘106(1114) 무반동총’입니다. 나는 내 주특기가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 훈련소에서 16킬로그램짜리 무반동총(바추카포)을 대나무 작대기처럼 가볍게 들고 다녔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 무거운 쇳덩이 때문에 끙끙 앓지만, 나는 그 무거운 쇳덩이가 하나도 안 무겁다고 느꼈으며, 무척 재미있는 놀잇감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쉴 참에도 내 놀잇감인 쇳덩이를 닦고 손질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자대배치를 받고 강원도 양구 동면 원당리 비무장지대 안쪽 깊숙하게 철책 바로 코앞에 있는 부대로 가서 며칠 있은 뒤, 나를 눈여겨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고참’인 사람 때문에 행정병이 되어야 했습니다. 나는 무거운 바추카포를 참말 가볍게 들고 다녔고,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2미터 가까이 쌓인 눈을 싸리비로 쓸어서 치울 적에 누구보다 빠르게 각을 지어서 치웠습니다. 이등병 주제에 말이지요. 군대에 가기 앞서 신문배달을 하던 경험이 있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나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깼어요. 일찌감치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침낭과 모포를 개고 전투화를 닦았습니다. 내 전투화를 닦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고참 전투화도 그냥 닦아 주었습니다. 눈과 코는 엉터리였지만 다른 몸은 튼튼해서 이런 심부름이든 저런 막일이든 모두 즐겁고 가볍게 했습니다.

  내가 들어간 중대에서 최고참이 행정병인 탓에 행정병으로 끌려갔고, 나는 이등병이면서 ‘불침번 근무표’를 짜고 ‘휴가 계획표’를 짜며 ‘중대장과 행정보급관 상신보고서’라든지 ‘훈련계획서’와 ‘중대일지’ 따위를 쓰는 행정병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원이 아닌 0.01원 단위로 끊어지는 ‘사병 월급 회계정리’까지 배워서 해야 했습니다.

  16킬로그램짜리 신나는 쇳덩어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천 미터 넘는 멧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재미를 누리고 싶던 나는, 펜대를 손에 쥐는 행정병이 되어야 했으니 군대에서 보낸 스물여섯 달이 몹시 고단했습니다. 떠올리기 싫은 내 발자국이 되어야 했달까요. 그런데, 이런 행정병이 된 탓에 그동안 하나도 생각해 보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두 눈으로 보고 알았어요. 무엇보다, 군대에서 장교나 하사관이 돈을 얼마나 많이 빼돌리는가를 알았습니다. 중대에 있는 중대장이나 하사관이나 행정보급관은 푼돈(한 해에 천만 원 즈음)을 빼돌린다면, 대대에 있는 간부는 목돈을 빼돌리고, 대대 위에 있는 연대와 사단과 군단 따위에서는 큰돈을 빼돌리는 줄 알았습니다. 군대에서는 회계부정을 서로 알면서 눈감아 주더군요. 그리고, 사단과 연대와 대대에서는 ‘일반 사병한테 오는 소포에 넣은 돈(현금)’을 거의 모두 가로챕니다. 이런 일은 내가 1996∼1997년 사이에 두 눈으로 보고 겪었습니다. 내가 있던 중대에서는, 소포나 편지마다 다 뜯긴 뒤 풀로 붙인 자국을 보아야 했어요.

  행정병이었어도 훈련은 똑같이 뛰지만, 여느 때에는 펜대를 잡아야 하는 일이 참 싫었습니다. 그러나, 여느 때에 늘 펜대를 잡으면서 ‘사병뿐 아니라 간부 성향이 무엇인지 모두 알아야’ 했어요. 내가 있던 중대에서 중대장이나 소대장이 어떤 성향인가 하는 ‘개인 신상관리표’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개인 신상관리표’를 중대장이나 소대장 본인은 열어 볼 수 없지만, 나는 열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있던 중대에서 간부들이 대대나 연대나 사단 따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다 알 수 있었습니다.

  며칠 앞서 강원도 어느 멧골 비무장지대(지오피)에서 ‘전역을 고작 석 달 앞둔 병장이 총을 쏘아 여러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가녀린 아이는 ‘A급 관심사병’이었다고 합니다. ‘관심사병’이라는 이름이 참 웃기지요. 그런데, 군대에서는 이런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써요. 그리고, 서로 다 압니다. 중대장이든 소대장이든 하사관이든, 이런 말을 ‘그 관심사병한테 대놓고 말합’니다. ‘관심사병’이 되는 아이들은 스스로 ‘관심사병’인 줄 알아요. 군대에서 보내는 동안 얼마나 괴롭고 머리가 터지는 줄 스스로 알아요.

  전역이 석 달 남았다고 하지만, 이 아이들한테 석 달은 석 달이 아닌 ‘평생’입니다. 군대에서 석 달이 얼마나 긴지, 그러면서 얼마나 짧은지 알기란 쉬울는지 어려울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군대라는 곳은 늘 실탄과 수류탄 따위를 만지는 곳이기 때문에, 전역을 하루 앞두고도 수류탄이나 총알에 맞아 죽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전역을 보름쯤 앞두고 지뢰를 밟아서 죽었다고 하는 이웃 중대 병장도 있었어요.

  ‘A급 관심사병’이기에 비무장지대에 갑니다. 군대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몰라서 그렇지, 비무장지대라는 곳에 끌려가는 사병이든 간부이든 으레 ‘A급 관심사병’입니다. ‘A급 관심사병’이 아닌 사람 가운데에는 ‘참말 군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말 군대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베트남전쟁에서 소대장 맡은’ 사람입니다. 사회에서 바보로 여기는 사람과 사회에서 바보가 된 사람이 바로 비무장지대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바보로 만들려는 사람이 비무장지대로 끌려가요.

  군대는 아주 엄청난 곳이에요. 어마어마한 세뇌와 강요와 압박으로 ‘나는 스스로 바보이다’ 하고 외치도록 하는 곳입니다. 어떤 이는 이런 세뇌와 강요와 압박을 한귀로 흘리면서 제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세뇌와 강요와 압박으로 보내야 하는 나날을 ‘좋은 경험’으로 삼으면서 씩씩하게 참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런 세뇌와 강요와 압박에서 스스로 터집니다. 죽어요.

  비무장지대에서는 사병 스스로, 또 간부 스스로 ‘내가 왜 여기로 끌려왔는지’ 다 압니다. 그리고 이를 둘레에 밝히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도 행정병으로 있는 사람은 모두 다 꿰뚫지요. 저마다 얼마나 연극을 잘 하는가를 다 볼 수 있습니다.

  나도 비무장지대에서 늘 실탄과 수류탄과 크레모아와 이것저것 따위를 늘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살았고, 박격포탄이라든지 온갖 무기를 늘 손에 쥐고 살았습니다. 스스로 죽으려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었고, 누군가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 군대가 그토록 위계질서를 내세우면서 끔찍하게 폭력을 저지르는 까닭은 딱 하나예요. ‘늘 실탄과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군대이기 때문에, 저쪽에서 ‘내가 쉬거나 잘 때에’ 갑자기 들어닥쳐서 나를 죽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더 무섭고 무시무시하게 휘두르는 폭력과 강압이 되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불침번을 세우는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누군가한테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려고 밤에 몰래 일어나서 일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적을 막으려는 불침번이 아니라, ‘내부에서 내부를 단속하려는 장치’가 불침번입니다. 그만큼 군대 얼거리는 아주 엉성할 뿐 아니라 위험하지요. 군대에서는 ‘스포츠신문’과 ‘조선일보’만 볼 수 있고, 텔레비전은 ‘스포츠’와 ‘영화’와 ‘연속극’만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나는 행정병이 몹시 싫었지만, 행정병으로 현역병 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을 했습니다. 내가 있던 부대에 ‘A급 관심사병’은 몇 사람이나 있었을까요? 거짓말이라고 여길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내가 있던 부대에 있던 모든 사람이 ‘A급 관심사병’입니다. 이것이 ‘참’입니다. 우리 집 곁님은 군대 이야기가 이래저래 떠도, 군대에서 터진 사건이나 사고 이야기가 떠도, 그리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 곁님은 이러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험이 있어도 곁님한테 대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한테 군대 이야기라든지 군대에서 터진 사건이나 사고 이야기가 자꾸 눈에 걸리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무엇인가 밝히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두 눈으로 날마다 보던 ‘참’과 ‘거짓’을 내 이웃들한테 ‘말하라’는 뜻이겠지요. 군대에서 본 ‘병적기록부’는 참 놀라웠습니다. 나 스스로 모르던 내 이야기가 내 병적기록부에 있어요. 나도 모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나를 지켜보면서 내 ‘발자취’를 만들어 놓아요. 남녘이나 북녘이나 똑같지요. 누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시킬까요? 그리고, 누가 서로를 감시하면서 본 것을 ‘기록으로 적어서 기록부’를 만들까요? 그리고, 왜 군대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우리 정부는, 우리 학교는 어떤 구실을 할까요. 우리가 이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사회 통념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되리라 느낍니다. 4347.6.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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