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을 울리는가?



  만화책을 보다가 사랑스러워 울고, 영화를 보다가 아름다워서 울며,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하늘 같아서 우는 살림을 짓는 나날입니다. 그야말로 울보이지요. 지난 2004년에 제 첫 책을 내고서 제가 쓴 책을 놓고서 눈물이 난 적은 아직 없는데, 2016년 11월 11일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 ‘서울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뽑혔어도 눈물이 아닌 웃음이 났는데, 어젯밤에 거금섬에 살짝 마실을 다녀오고서 이제야 집으로 돌아와서, 곁님이랑 아이들이 한 톨 안 남기고 밥을 다 먹어서 꼬르르 굶으면서 누런쌀을 씻어 불리며 언제쯤 밥을 먹을 수 있으려나 생각하다가 라면 한 그릇 끓여서 먹고 고단한 몸을 쉬자고 생각했어요. 이러면서도 지난 하룻밤을 바깥일을 하면서 글을 거의 못 쓴 터라 누리집에 한 꼭지라도 용을 써서 글을 띄우고 눈을 붙이자는 생각이었고요. 앞말이 길었습니다만, 문득 뒤꼭지가 가려워서 ‘알라딘 첫 화면’에 들어갔지요. 버릇처럼 들어가요. 이주에는 어떤 새로운 책이 돋보이는가 하고 살펴볼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알라딘 첫 자리에 어쩐지 낯익으면서 낯선 책이 뜹니다. 문득 울컥해서 철수와영희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어요. 토요일이지만. 사람을 울리니 미우면서 고맙습니다. 2017.10.2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지난 책들을 문득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모두 고마워.

사랑해.

너희가 있었기에

오늘 눈물을 흘릴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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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7-10-29 0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이렇게 써놓고는 음... 이렇게 쓰는 표현이 잘못 된 거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해 봅니다. 멋져요~~~라고 써야 맞는 말인가요? 하도 엉터리글을 많이 써서 댓글 쓰려면 바짝 긴장합니다. ^^ 온 마음을 쏟으시는 일 앞으로도 주욱 잘 되시기를 빕니다.

숲노래 2017-10-29 07:25   좋아요 0 | URL
두 가지 모두 맞아요. 다만 ‘멋져요‘라고 할 적에 한결 낫다고 느껴요.
즐겁게 북돋아 주시는 마음도 함께 멋지다고 생각해요.
가을은 쓸어도 쓸어도 가랑잎이 곧 다시 쌓이지만
가랑잎을 쓸어서 모깃불을 피우는 즐거움이 있는
멋진 철이라고 느껴요.
요 며칠 하늘이며 별이며 바람이며 볕이며 모두 대단합니다.
아름다이 하루 지으셔요. 고맙습니다 ^^
 
반려견 응급처치 매뉴얼 - 반려인 필독서 반려동물 응급처치 매뉴얼
사토 타카노리 지음, 김주영 옮김, 김주영 감수 / 단츄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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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16



사랑하는 ‘길벗개’가 아프지 않도록

― 반려견 응급처치 매뉴얼

 사토 타카노리 글

 김주영 옮김

 단츄별 펴냄, 2017.6.20. 15000원



  지난날에는 집에서 함께 지내는 짐승을 두고 ‘집짐승’이라 했습니다. 예부터 집짐승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고, 집짐승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한테는 손가락질을 했어요. 집짐승도 어엿한 ‘한식구’였어요. 삶터가 시골하고 서울(도시)로 갈리면서 서울이라는 곳에서 짐승을 따로 키울 적에 ‘애완동물’이라는 이름이 태어났습니다.


  ‘애완(愛玩)’은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을 뜻해요. 이른바 ‘귀염둥이(귀염둥이 짐승)’인 애완동물이에요. 이제는 짐승을 귀엽게만 볼 노릇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생겨요. ‘반려(伴侶)’는 “짝이 되는 동무”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일본말은 ‘はんりょどうぶつ(伴侶動物)’요, 영어는 ‘companion animal’입니다.


  영어나 일본말을 옮기며 ‘반려동물’이라고 쓰는구나 싶은데, 말뜻을 가만히 짚으면, 길동무가 되는 짐승입니다. 이른바 ‘길동무짐승·길벗짐승·짝꿍짐승’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는 ‘삶동무짐승·삶벗짐승’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반려견은 코를 풀게 하여 비즙을 배설시키는 것이 블가능하며, 구조상 코를 막고 있는 비즙을 밀어내서 배출시켜 주는 것도 곤란합니다. 비즙이 나와 있는 경우에는 거즈 등으로 부드럽게 닦아 주고 코막힘이 호전되는가를 관찰해야 합니다. (50쪽)



  《반려견 응급처치 매뉴얼》(단츄별, 2017)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 곁에 있는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길벗이 되는 짐승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책은 여러 집짐승이나 귀염짐승이나 길벗짐승이나 삶벗짐승 가운데 개하고 함께 사는 분한테 길잡이가 될 만하다고 느낍니다. 사람하고 개가 서로 마음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말까지 섞지는 못하기 마련이라, 개한테서 느끼거나 살피는 여러 모습으로 개가 아픈지를 헤아리자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우리가 눈치 코치 마음치 모두 살펴야 우리 곁에 있는 고운 벗님을 잘 돌볼 수 있다고 해요.



반려견은 안정시 1분간 평균 18∼25회 정도의 호흡을 합니다. 물론 흥분하거나 운동 후에 호흡수가 증가하는 것은 정상이며, 개체마다 차이는 있으나 보통 때보다 분명히 호흡이 빠르고 횟수가 많을 때는 상처나 질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184쪽)


호흡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상태일 때 반려견의 호흡 상태와 호흡수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186쪽)



  개 한 마리를 집에 두고 함께 살기는 어렵지 않다고 느껴요. 고양이도 그럴 테고요. 우리가 이들 짐승을 곁에 두면서 애써 ‘반려동물(길벗짐승)’ 같은 이름을 쓰는 까닭이라면 마냥 귀엽게만(애완) 보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지 싶어요. 그러면 무턱대고 개부터 집에 들이기 앞서, 개 한 마리는 여느 때에 어떤 몸일 적에 튼튼한가를 알아두어야 할 테고, 밥은 무엇을 얼마나 어느 때에 먹어야 좋은가를 알아두어야 할 테며, 똥오줌을 언제 얼마나 어떻게 누는가도 알아두어야 할 테지요.


  개가 좋아하는 보금자리나 터전을 살펴야 할 테고, 개가 왜 땅을 파기를 좋아하는가도 살펴야 할 테지요. 어미 개가 새끼를 낳도록 하고 싶다면, 어미인 개로서 새끼한테 삶을 어떻게 가르치거나 물려줄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하는가까지 살필 줄 알아야 할 테고요.


  《반려견 응급처치 매뉴얼》은 때와 곳에 맞게 개를 잘 살피자고 알려주면서, 때와 곳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마주해야 하는가를 들려줍니다. 동물병원으로 가기 앞서 할 일, 개가 아플 적에 처음에 어떻게 다스리면 좋은가, 병원에만 맡길 수 없이 집에서 늘 할 일을 차근차근 짚어서 알려줍니다.



정상적인 반려견의 1일 소변량은 대체로 체중 1㎏당 25∼40㎖이므로 그 양과 비교해서 분명히 많은 경우는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264쪽)


반려견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하우스 트레이닝 유무에 따라 진찰의 원활함이 달라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모든 반려인들이 소중한 반려견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하우스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21쪽)



  저는 《반려견 응급처치 매뉴얼》을 읽는 내내 어버이가 아기를 낳아 돌볼 적에 어떤 마음이어야 아기가 반기거나 좋아할 만한가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아기도 아직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아기 티를 벗고 아이가 되어도 아직 제 뜻이나 마음을 제대로 알리기 어렵습니다. 아기랑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라면 더 깊이 아기랑 아이를 살필 줄 알아야 하고 마음으로 알아차려야 해요. 아기나 아이가 보이는 여러 모습을 바탕으로 몸이 어떠한가도 깨달아야 하지요.


  ‘집짐승·애완동물·반려동물’이라는 이름에는 우리 곁에 있는 여러 목숨을 새로우면서 한결 깊거나 넓게 돌아보려는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길벗짐승·삶벗짐승’ 같은 이름을 새롭게 지어 봅니다. 여기에 ‘한집짐승·한식구짐승’ 같은 이름도 지어 볼 만하지 싶어요. 꼭 ‘짐승’이라는 말을 넣지 않아도 될 테니, ‘한집벗’이나 ‘한집님’이나 ‘한집지기’ 같은 이름을 써도 잘 어울리지 싶어요. 새롭게 사랑하고 곱게 아끼며 즐겁게 한집을 이루며 살아가기에 서로 따사롭고 넉넉할 이름을 그리고 싶어요.


  아픈 곳 없이 함께 살면 좋겠어요. ‘길벗개’나 ‘길벗고양이’도, ‘한집개’나 ‘한집고양이’도, 튼튼하고 씩씩하게 뛰놀고 노래하면서 마음껏 삶을 꽃피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10.2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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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0.26.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녁을 차린다. 읍내마실은 가까이 돌아본 길이라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다리랑 몸을 쉬고 싶다. 그러나 아이들 저녁을 차리자는 생각으로 쉬지 않는다. 밥상을 차린 뒤에 씻고서 쉬자는 생각이다. 아침에 먹고 남은 밥을 볶는다. 나는 참말로 볶음밥을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저녁을 짓는다. 큰아이하고 둘이 밥상에 나란히 앉는다. “아버지, 볶음밥 맛있어요.” 하고 말하는 큰아이한테 “너희 아버지는 참말로 오랫동안 볶음밥을 했단다. 온갖 볶음밥을 다 해 보았지.” 하고 말한다. 돌이키니 서른 몇 해 동안 볶음밥을 해 보았네. 나중에 밥상맡에 앉은 곁님하고 작은아이도 볶음밥이 맛있단다. 아무렴. 누가 지었는데! 설거지까지 마치고서 밥상맡에 새로 앉는다. 만화책 《너의 곁에서》를 편다. 마스다 미리 만화책을 두 권째 만난다. 144쪽짜리 만화책이 12000원! 값이 지나치게 세다! 만화책도 얼마든지 비싼값을 치를 수 있다는 뜻을 우리한테 보여주는 셈일까? 이 책값을 덜 비싸게 느끼고파 한 해를 기다려 보았으나, 책이 나온 지 한 해가 되어도 책값은 알맞다고 못 느끼겠다. 그런데 책이름은 왜 “너의 곁에서”일까? 왜 “네 곁에서”라 붙이지 않을까? 이 책을 가만히 읽으니 “네 곁에서”라고 해도 되지만 “너희 곁에서”라 해도 되겠구나 싶다. 이 만화책은 틀림없이 번역이지만 일본 말씨하고 일본 한자말이 지나치게 많기도 하다. 껍데기만 한글인 번역이 아닌, 알맹이가 한국말인 번역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 만화책을 아끼거나 좋아하는 분이 많은 만큼,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출판사에서는 말씨를 찬찬히 손질하고 제대로 가다듬는 데에까지 마음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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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 철수와영희 생명수업 첫걸음 3
김성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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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마당에서 새를 보고, 버스나 자전거를 타도 늘 새를 살피는 시골순이한테 더없이 반가운 책. 어린이 눈높이로 쓴 새 이야기는 매우 드물기에, 이 책이 나오기를 기다려 얼른 장만해서 시골순이 책상에 살며시 놓으니, 풍덩 빠져들어 신나게 읽네. 새처럼 홀가분히 온누리를 날아오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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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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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1


이 가을에 모두 잘 있다는 한 마디
―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글
 문학과지성사, 2017.9.20. 8000원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사람)


  가을이 깊습니다. 저희 집 뒤꼍에서 크는 감나무는 올해에 감을 제법 많이 맺습니다. 큰아이하고 즐겁게 한 소쿠리를 따서 말랑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려 놓습니다. 말랑감은 말랑할 적에 먹어도 맛나고, 꽁꽁 얼려서 숟가락으로 파먹어도 맛있습니다.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서 남은 말랑감을 얼리면서 겨울을 기다립니다. 언말랑감은 다른 철보다 추운 겨울에 제맛이더군요.

  마을에서 집집마다 감을 따느라 부산합니다. 나락을 베고 털고 말린 뒤에는 으레 감을 따요. 그리고 십일월이 깊으면 유자를 땁니다. 제주에서 겨울에 귤이 잔뜩 나오듯, 남녘 바다를 낀 포근한 고장에서는 찬바람이 싱싱 부는 철에 유자알이 샛노랗게 익어요.


그 사람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충분히 기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내 목을 조른 사람이거든요

처음부터 나중까지 오래
올 수 있으며
한참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

지금 여기 없습니다
내게 칼을 들이댄 적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가을에 모두 잘 있습니다. 가랑잎을 떨구는 나무는 곧 앙상한 가지가 되려고 부지런히 잎을 내놓습니다. 겨울에도 잎이 푸른 나무는 새봄에 꽃을 피우려고 곳곳에 꽃망울이며 잎망울을 내놓습니다. 후박나무나 동백나무가 이런 모습이지요.

  들풀도 씨앗을 퍼뜨리려고 바쁘고, 솔(부추)도 새까만 씨앗을 잔뜩 맺으면서 터뜨리려고 합니다. 논둑이나 조용한 멧자락에는 가을 산국이 노랗게 올라오고요. 그리고 사마귀는 알을 낳으려고 마땅한 자리를 찾아나섭니다. 때로는 어느 틈인가 찾아내어 집에까지 들어와서 알을 낳습니다. 마당 한복판에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 알 낳을 곳을 찾기도 합니다.

  따뜻한 나라를 찾는 새는 벌써 이 고장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이 고장에서 겨울을 나는 텃새는 추위를 앞두고 몸을 부풀리려고 나무 열매나 곡식을 찾아 바쁘게 날아다닙니다. 아이들도 이제는 긴소매에 긴바지를 챙겨서 입으며 양말을 꼬박꼬박 신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철을 앞두고 모두 새로운 몸짓입니다.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
몰라도 만나는 사람들

만나더라도 만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이 좁디좁은 우주에서 우리는 그리 되었다 (사람의 재료)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집을 지을 것이다
아프리카 마사이 여부족처럼
결혼해서 살 집을 내 손으로 지을 것이다

꽃을 꺾지 않으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꽃을 꺾는 마음도 마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여자라면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것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신을 매번 염려할 것이다 (정착)


  이병률 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7)를 읽습니다. 시인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기도 하고, 시인 곁에 없는 사람을 그리기도 합니다. 시인 곁에 있는 사람을 마주하면서 서로 얼마나 살갑거나 가까운가를 헤아립니다. 시인 곁에 없는 사람을 문득 맞닥뜨리고는 서로 어쭐 줄 몰라서 허둥지둥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시인은 “내가 여자였다면 집을 지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여자 아닌 남자여도 집을 지으면 되겠지요. 시인은 “내가 여자라면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생각이라고 하는데, 여자 아닌 남자여도 늘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면 될 테지요.

  가만히 보면 한국 사회에서 숱한 사내는 보금자리를 짓고 가꾸는 일보다는, 집 바깥을 떠도는 일로 삶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왜, 그렇잖아요. 아직도 집일은 거의 모두 가시내가 해요. 아직도 아이는 거의 모두 가시내가 돌봐요. 바깥으로 나도는 사내요, 집에서는 도무지 손에 물도 잘 못 묻히고 도마질이 무엇인지조차 잘 몰라요.

  어쩌면 숱한 한국 사내는 보금자리를 짓거나 가꿀 줄 모를 뿐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셈 아닐까 싶어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바깥으로만 맴돌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속에서 우러나오는 따사로운 사랑 한 마디를 노래할 줄 모르지 싶어요.


한 잔만 더 마시면 죽을 수도 있고
그 한 잔으로
어쩌면 잘 살 수도 있겠다 싶어 들어간 어느 포장마차에서
딱 한 잔만 달라고 하였다

한 잔을 비우고 난 뒤 한 병 값을 치르겠다고 하자
주인이 술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당신이 취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한 잔이 아니었냐며
주인은 헐거워진 마개로 술병을 닫았다 (미신)


  모든 사내가 사랑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포장마차에 살짝 들어 소주 한 잔을 거저로 얻어마신 시인인데요, 시인한테 소주 한 잔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내어줄 줄 아는 가게지기는 틀림없이 사랑을 알겠지요. 밤새 포장마차에서 선 채로 도마질을 하고 술손을 맞이하는 가게지기는 참말로 보금자리를 짓거나 가꾸는 살림살이를 알 테지요.


눈을 뜨고 잠을 잘 수는 없어
창문을 얼어 두고 잠을 잤더니
어느새 나무 이파리 한 장이 들어와 내 옆에서 잠을 잔다 (내가 쓴 것)


  이 가을에 모두 잘 있다는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은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이지 싶습니다. 바다도 잘 있을 테고, 들도 멧골도 냇물도 잘 있을 테지요. 아픈 바다가 있고, 아픈 들이며 멧골이며 냇물도 있습니다. 부디 가을이 깊고 겨울이 찾아들면, 아픈 골골샅샅으로 소복소복 포근한 눈이 덮이면서 앙금도 생채기도 시름도 씻어낼 수 있기를 빕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나뭇잎 하나 들어와서 잠들면서 노래를 남긴다고 하듯이, 우리 마음자리에 시 한 줄이 가만히 스며들어서 웃음꽃으로 새롭게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10.2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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