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출판 - 작은 출판사를 꾸리면서 거지 되지 않는 법 날마다 시리즈
박지혜 지음 / 싱긋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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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24.

인문책시렁 447


《날마다, 출판》

 박지혜

 싱긋

 2021.11.11.



  날마다 책을 여러 자락 읽은 지 한참 됩니다. 언제부터 하루에 여러 자락씩 읽었나 하고 어림하니 1991년입니다. 푸른배움터(고등학교) 첫걸음을 맞이하던 그해에 ‘첫 수능·본고사·면접’을 치르는 또래였고, 배움터에서는 어떻게 불굿(입시지옥)에 맞춰야 하는지 터럭만큼도 못 이끌었는데, 그저 혼자서 낱말책을 날마다 외우듯 읽고, 책도 여러 자락씩 읽으면서 스스로 가다듬었습니다. 1991∼93년에는 하루에 1.5∼2자락을 읽고, 1994∼95년에는 하루에 2.5∼3자락을 읽습니다. 1995년 11월부터 1997년 12월 31일 사이에는 싸움터(군대)에서 보내느라 스물여섯 달 동안 책을 한 자락조차 구경조차 못 하는 나날입니다. 1998년에 삶터로 돌아오고 나서 지난 이태치 책을 게걸스럽게 읽으려고 하루에 4∼5자락을 읽고, 1999년에 책마을 일꾼으로 자리를 옮기고부터 하루에 7∼10자락을 읽습니다. 제가 몸담은 펴냄터뿐 아니라 이웃 펴냄터 책을 헤아리려고 용썼어요. 2002년 무렵에는 하루 10∼15자락으로 껑충 뜁니다. 낱말책(국어사전)을 여미는 일꾼으로 지내느라 하루 15자락을 읽어도 모자랐습니다. 2008년에 큰아이를 낳고부터는 아이를 도맡아 돌보느라 하루 5자락을 가까스로 읽을 동 말 동했는데, 아이가 자라는 동안 그림책과 동화책을 새삼스레 되읽고 챙기면서 다시 하루 10∼15자락을 읽는 삶으로 잇습니다.


  곰곰이 보면 그저 책벌레입니다. 책벌레로만 살려고 하다가 2004년에 처음으로 책을 내놓았고, 이제는 시골살림과 숲살림을 헤아리면서 이러한 살림길을 낱말풀이하고 여미어서 느긋이 노래(시)를 쓰곤 합니다. 요즈막은 ‘날마다 노래 1꼭지 쓰기’를 잇습니다.


  《날마다, 출판》은 “날마다 책을 펴내는 이야기”이지는 않습니다. 날마다 책짓기를 헤아리는 작은펴냄터 작은일꾼으로서 작은수다를 펴는 꾸러미입니다. 한 해 내내 책을 들여다보고 헤아리고 짚고 살피는 삶이란 무엇인지 돌아보는 꾸러미이기도 합니다. 이 책 첫머리에 나오듯, 책은 종이에 담기에 외려 가없이 꿈을 그리는 길을 연다고 할 만합니다. “고작 종이에?”라 여길 수 있지만, “겨우 종이에?”라고 여기기에 오히려 더 새롭고 즐겁게 이야기를 꾸립니다.


  나라에서는 무시무시하구나 싶은 돈을 퍼부으면서 ‘4차산업·메타버스·한류·ai·연구개발’을 일으키겠노라 하고 외칩니다만, 다 부질없다고 느껴요. 어떤 ‘첨단 부가가치 산업’을 꾀하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종이책’부터 찬찬히 여밀 줄 알 노릇이거든요. 아직 한글로 못 나온 아름다운 이웃나라 책이 수두룩합니다. 아직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글인 한글로 제대로 못 그립니다. 온나라가 ‘문해력·리터러시’로 떠들썩하지만, 막상 우리말이 어떤 말결에 말씨에 말빛에 말밑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부터 드뭅니다. 우리말부터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치면서 한자와 영어부터 가르치려 한들, 제대로 가르칠 턱이 없습니다.


  배움터에서는 글판을 쓸 노릇입니다. 가장 투박한 길이 가장 빠르면서 가장 반짝이거든요. 배움터에서는 종이책을 쓸 노릇입니다. ‘웹툰 캐릭터 대잔치 교과서’가 아니라, ‘아주 수수하게 글과 그림만으로 엮은 배움책’을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베풀 노릇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한테 엄마젖부터 물려야 하거든요. 아기는 엄마아빠 곁에서 ‘엄마말’과 ‘아빠말’부터 느긋이 천천히 익힐 노릇이거든요. 우리말과 한글을 뗀 아이는 ‘캐릭터 대단치’가 아닌 ‘말을 말답게 담은 그림책’부터 손에 쥐어야 비로소 글눈과 말눈을 틔워요. 이리하여 숱한 책마을 일꾼은 “날마다 책읽기·책쓰기·책짓기”를 하려고 땀흘립니다. 가장 투박하고 수수한 종이책을 조촐히 북돋우는 길이야말로, 아이어른을 함께 북돋우고 살리는 가장 즐겁고 아름다운 살림길이요 사랑손이요 사람빛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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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라는 한계야말로 책이 지닌 가장 역동적인 가능성이다. (10쪽)


최근까지도 내가 기획과 편집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목 좋은 자리에서 살 사람이 줄 서 있을 때 가게 사장님이 나를 종업원으로 뽑았던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6쪽)


책 한 권에 100원 단위의 배본비가 붙어 있다는 것도 창고를 계약하는 순간에야 알게 된 출판 멍청이인 나에게, (57쪽)


큰 출판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원고를 수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7쪽)


책은 저자가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된다. (90쪽)


동시에 책을 많이 읽자고 권해 본다. 건강한 출판인이 되는 데 책만 한 영양제는 없다. (155쪽)


+


《날마다, 출판》(박지혜, 싱긋, 2021)


출판은 대자유일 수가 없다는 생각에 프롤로그를 모두 지워버렸다

→ 책짓기는 큰날개일 수가 없다 싶어서 머리말을 모두 지워버렸다

6쪽


빠져나갈 수 없는 족쇄를 찼다는 말에 불과하다

→ 빠져나갈 수 없었다는 말일 뿐이다

→ 빠져나갈 수 없이 굴레를 찼다는 말이다

6쪽


이번달에 또 앵꼬 나면

→ 이달에 또 바닥나면

→ 이달에 또 다 쓰면

→ 이달에 또 떨어지면

6쪽


이 풍전등화의 세계에서 단 하나 기댈 수 있는 지표는, 독자는 현명하다는 것이다

→ 이 아슬한 나라에서 딱 하나 기대는 눈금이 있으니, 사람들은 어질다

→ 이 기우뚱한 곳에서 딱 하나 길잡이가 있으니, 사람들은 똑똑하다

12쪽


가게 사장님이 나를 종업원으로 뽑았던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가게지기님이 나를 일꾼으로 뽑았을 뿐이다

→ 가게지기님이 나를 일꾼으로 뽑았으니 마땅하다

→ 가게지기님이 나를 뽑은 셈이고 더도 덜도 아니다

→ 가게지기님이 나를 뽑은 셈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26쪽


남편과 생애 첫 월급 빵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 처음 겪는 달삯 구멍을 곁님과 이야기하며

→ 처음 달삯이 구멍나서 짝꿍과 이야기하며

45쪽


체면 차리느라 사기당하는 줄도 모르는 겉똑속멍 독성에 근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나는 낯값 차리느라 낚이는 줄도 모르는 겉똑속멍에 고약하게 물들었다고 본다

→ 나는 꽃낯 차리느라 덮어쓰는 줄도 모르는 겉똑속명에 얄궂게 찌들었다고 본다

49쪽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 그야말로 어지럽다

→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 그야말로 널브러진다

→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 그야말로 골아프다

→ 그야말로 나뒹군다

102쪽


나도 처음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근거해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 나도 처음에는 큰물결이라 여겨 좀 버겁더라도

→ 나도 처음에는 돌개바람이라 여겨 꽤 힘들더라도

→ 나도 처음에는 몰붓기처럼 적잖이 만만찮더라도

104쪽


밥값 1/N 하는 거야 그냥 현금으로 주고받거나 이체하면 되지

→ 밥값 추렴이야 그냥 돈으로 주고받거나 보내면 되지

→ 밥값이야 그냥 맞돈으로 주고받거나 넘겨서 나누면 되지

135쪽


꾸준히 기업 정체성을 구축한 뒤에라야 충성독자가 양산된다는 점

→ 꾸준히 이곳 밑동을 닦은 뒤에라야 따르는 사람이 나온다는

→ 꾸준히 일터 밑뿌리를 세운 뒤에라야 서로꽃이 태어난다는

14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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