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56] 노래그림



  어느 모로 보자면 ‘시’라고 할 수 있으나, 나는 시를 쓰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노래를 부릅니다. 가락을 입혀서 불러야 노래라 할 터인데, 처음에는 가락을 헤아리지 않고 그저 ‘글’을 쓰는데, 이 글은 그냥 글이 아닌 노래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쓰는 글은 나 혼자 읽는 글이 아니라 우리 집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노래로 부르는 글이거든요. 어떤 교육이나 훈육이나 훈계나 훈련 같은 뜻으로 쓰는 글도 시도 동시도 아닌 노래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하고 함께 부르면서 즐겁게 읽는 이 노래에 ‘삶노래’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어요. 큰아이가 여덟 살인 요즈음은 둘이서 함께 ‘노래 지어서 그림 그리는 놀이’를 합니다. 8절 그림종이에 내가 삶노래를 한쪽에 먼저 써요. 그러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내 둘레에서 아버지가 글씨를 어떻게 쓰는가 하고 지켜봅니다. 내가 글씨를 다 쓰면, 그러니까 삶노래를 다 쓰면, 이제 큰아이가 그림순이가 되어서 척척 그림을 그립니다. 나는 그림종이에서 ¼쯤 차지하는 삶노래를 빚고, 큰아이는 그림종이에서 ¾ 넓이에 그림을 빚어요. 내 삶노래는 아이 그림이랑 어우러지면서 빛나고, 아이 그림은 내 삶노래와 어울리면서 환합니다. 그래서 우리 둘이 빚는 이 즐거운 놀이에 ‘노래그림’이라는 새 이름을 붙여 봅니다. 다른 어른들은 이 놀이를 ‘시화’라고 하겠지요.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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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55] 볏짚말이



  가을에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걷는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으레 묻습니다. “아버지, 저기 저 똥그랗고 커다란 건 뭐야?” “뭘까? 너는 뭐라고 생각해?” “어! 아, 음, 음. 잘 모르겠어.” “그러면, 이름을 한 번 붙여 봐.” “이름? 글쎄, 음, 그래, 똥그라니까 똥그라미!” 지난해까지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하고 주고받았는데, 큰아이는 만화책에서 저 논바닥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보았고, 제대로 이름을 알려 달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한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기 저 논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는 ‘볏짚말이’라고 해.” “‘볏짚말이?’” “응, 볏짚을 동그랗게 말아서 볏짚말이라고 하지. 달걀말이도 달걀을 동글동글 말지.” “아하, 그렇구나.” 그런데 나는 큰아이한테 다른 이름으로 알려주려 하다가 다른 이름이 미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영어로 무어라 가리키는 이름이 있는데 잘 안 떠올랐고, 저 커다랗게 동글동글 말아 놓은 것은 참말 볏짚을 동그랗게 말았기에 ‘볏짚말이’라는 이름이 퍼뜩 떠올랐어요.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원형(梱包) 곤포(梱包) 사일리지(silage)’라는 이름을 쓴다더군요. 그러니, 동그랗게 말았으면 ‘동글볏짚말이(둥근볏짚말이)’요, 네모낳게 여미었으면 ‘네모볏짚말이’가 될 테지요.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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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그린 푸드 green food



  ‘그린 푸드’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영어입니다. 영어사전에서 ‘green food’를 찾아보면 “채소, 야채”로 풀이합니다. 영어사전 말풀이에는 ‘남새’나 ‘푸성귀’ 같은 한국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어사전이 이 같은 얼거리라면 영어사전을 살펴서 번역을 하거나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한국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겠구나 싶습니다.


 풀밥 . 푸른 밥


  지난날에는 한국말 ‘남새’와 ‘푸성귀’에다가 ‘나물’하고 ‘풀’이라는 네 가지 낱말이면 넉넉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 나타나는 만큼, 여기에 새로운 낱말을 빚어서 함께 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풀밥’이나 ‘푸른 밥(또는 붙여서 푸른밥)’이라는 말마디를 쓸 수 있어요.


  ‘풀밥(푸른 밥)’이라고 하면 풀을 잔뜩 차린 밥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또는 ‘풀(남새나 푸성귀)’을 넉넉히 즐기는 밥을 가리킬 수 있어요. 그리고, ‘풀’이라는 낱말로 “푸르게 먹는 밥”을 가리킬 수 있지요. 새롭게 살려서 쓰려는 마음이 있을 때에 낱말도 말결도 말투도 모두 새롭게 거듭납니다. 4348.10.28.물.ㅅㄴㄹ



할머니, 그린 푸드를 많이 먹어야 건강하고 예뻐진다는데 저는 정말 채소가 먹기 싫어요

→ 할머니, 풀밥을 많이 먹어야 튼튼하고 예뻐진다는데 저는 참말 풀이 먹기 싫어요

《길상효·조은정-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씨드북,2015) 1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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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225 : 자활自活



자활(自活) : 자기 힘으로 살아감


‘자활自活’이라고

→ ‘홀로서기’라고



  요즈음은 ‘자활센터’라는 곳이 있고, ‘자활사업’이나 ‘자활급여’나 ‘자활근로자’나 ‘자활공동체’라는 데까지 ‘자활’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그러면 ‘자활’이란 무엇일까요?


 자활 능력 → 홀로설 힘

 자활의 길을 찾았다 → 홀로설 길을 찾았다


  한국말은 ‘홀로서기’입니다. 혼자서 씩씩하게 선다고 해서 ‘홀로서기’입니다. 한자말 ‘독립(獨立)’도 ‘홀로서기’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홀로서기’도 올림말로 나오고, “다른 것에 매이거나 기대지 않는 일”을 나타낸다고 해요. 그러니까, 내 힘으로 스스로 삶을 짓는 몸짓은 바로 ‘홀로서기’요 ‘홀로섬’입니다. ‘홀로서다’처럼 새롭게 써도 잘 어울립니다. 4348.10.27.불.ㅅㄴㄹ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궈 나가는 것’을 ‘자활自活’이라고 표현합니다

→ ‘내 삶을 스스로 일궈 나가기’를 흔히 ‘홀로서기’라고 합니다

→ ‘나 스스로 삶을 일궈 나가기’를 으레 ‘홀로섬’이라고 말합니다

《박금선-내가 제일 잘한 일》(샨티,2015) 23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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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장(-の 場)



 대화의 장

→ 대화하는 자리

→ 이야기하는 자리

→ 이야기자리

→ 이야기마당

 만남의 장소

→ 만나는 장소

→ 만나는 자리

→ 만남터


  요즘 사회에서 으레 쓰는 말투 가운데 하나로 “만남의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場 + 所’가 되었습니다만, ‘-所’를 덜고 “만남의 장’처럼 쓰는 분도 더러 있어요. 으레 ‘-의 場’이라고 하다 보니 이 말투가 익숙해서 이처럼 쓴다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말투는 방송과 신문을 거쳐 온나라로 구석구석 퍼졌으며, 이러한 말투를 잘못이라거나 얄궂다고 느끼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장(場)’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곳”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곳’이요, ‘자리’나 ‘터’라 할 만하고, 때로는 ‘마당’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하는 자리 . (무엇) + 자리 . (무엇) + 터


  곰곰이 돌아보면, “학문의 장”이든 “대화의 장”이든 일본 말투입니다. 일본에서는 책을 펴내면서 앞에 붙이는 ‘추천글’을 ‘推薦の言’이라 붙이고, 고맙다고 밝히는 글을 ‘感謝の言’이라 붙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對話の場’으로 적으니, 이와 같은 일본 말투를 우리 스스로 제대로 깨달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이런 바깥 말투를 곰곰이 살피는 분이 너무 적다고 해야 할까요. 일본책을 읽으면서도 못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어딘가 얄궂다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나머지 “추천의 글”이나 “추천의 말”이나 “감사의 말”처럼 엉뚱한 일본 말투를 쓰는 분이 참 많습니다.


  한자말을 쓰든 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쓴다면, ‘사업장’이나 ‘회의장’이나 ‘운동장’처럼 씁니다. “사업의 장”이나 “회의의 장”이나 “운동의 장”이 아니지요. 학문이나 대화를 한다고 하면 “학문마당”이나 “대화마당”이라 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업장’은 ‘일터’로 더 손볼 만하고, ‘회의장’은 ‘모임터’로 손볼 만합니다. ‘운동장’은 그냥 쓸 만하지만, ‘놀이터’라고 할 수도 있어요. 운동장이 놀기만 하는 터는 아닙니다만, 마음껏 뛰놀듯이 온갖 운동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놀이터’라 해 볼 수 있어요. ‘운동마당’이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4348.10.27.불.ㅅㄴㄹ



학문의 장이 형성된다

→ 학문하는 자리가 이루어진다

→ 학문마당이 이루어진다

→ 배우는 자리가 마련된다

→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가 된다

《츠지모토 마사시/이기원 옮김-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知와사랑,2009) 65쪽


텃밭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배움의 장이다

→ 텃밭은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중요한 배움터이다

→ 텃밭은 아이들이 같이할 수 있는 멋진 배움마당이다

→ 텃밭은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뜻깊은 배움자리이다

《스콧 새비지 엮음/강경이 옮김-그들이 사는 마을》(느린걸음,2015) 24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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