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물 - 2021 경기도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도서 바람그림책 87
오치 노리코 지음, 메구 호소키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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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ちのりこ #メグホソキ

숲노래 푸른그림책

- 물을 마시며 물이 됩니다



《오늘 날씨는 물》

 오치 노리코 글

 메구 호소키 그림

 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2020.1.20.



  사랑스러운 말을 듣는 사람은 사랑이 말에 깃들면 어떠한 숨결이 되는가를 느끼고 맞아들여서 배우고 삶으로 누립니다. 미워하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짓밟거나 억누르는 말을 듣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몸짓에 고스란히 묻어난 말을 들을 적에 어떠한 마음이 되는가를 느끼면서 이러한 삶을 맛봅니다.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는 숨쉬기 어렵습니다. 바람이 맑은 곳에서는 숨쉬기 좋습니다. 바람이 매캐한 서울 한복판이라든지 핵발전소나 제철소 곁에서 숨을 제대로 쉴 만할까요? 숲 한복판이나 바닷가에서는 누구라도 가슴을 펴고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한껏 숨을 마실 만합니다.



찬이는 밖으로 뛰어나가

손바닥에 눈을 받았습니다.

그 손바닥에서

“찬이야, 찬이야.”

하는 목소리가 났어요. (6쪽)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손수 흙에 심고서 가꾸고 거두고 손질한 남새나 열매로 밥을 차려서 함께 누렸습니다. 이때에는 일본 한자말 ‘유기농·자연농·친환경’ 같은 이름이 없었으나 누구나 어디에서나 숲결을 그대로 살린 밥살림이었어요. 이때에는 먹을거리고 배앓이를 할 일이 없고, 먹을거리 탓에 아픈 사람조차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손수 심고서 가꾸고 거두는 길을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더구나 스스로 손질하거나 차려서 밥살림을 누리는 사람마저 확 줄어요. 이제는 ‘유기농·자연농·친환경’을 따지거나 챙기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는데요, 손수 안 짓고 스스로 손질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어떤 밥살림인 셈일까요?



“넌 누구니?”

“나? 나는 물이야.

 방금 전까지는 눈이었고, 그 전에는 구름이었어.

 비나 강이나 바다일 때도 있었지만,

 물은 언제나 물이지.”

“날 어떻게 알아?”

“조금 전에는 너였으니까?” (9쪽)



  그림책 《오늘 날씨는 물》(오치 노리코 글·메구 호소키 그림/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2020)은 누구나 머리로는 안다고 여기지만, 정작 마음이나 몸으로는 도무지 모르는구나 싶은 물 이야기를 다룹니다. 물이란 무엇인가요? 물이 있으니 어떠하고, 물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플라스틱을 줄이거나 안 써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플라스틱에 담은 물이 넘치는 오늘날이에요. 물이 맑게 흐르도록 하면서 냇물이나 우물물이나 샘물을 길어다가 쓴다면 그 엄청난 ‘페트병 쓰레기’로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지 않을까요? 페트병을 만드느라 돈·품·말미를 쓰지 말고, 어디에서나 냇물이며 우물물이며 샘물이 맑게 흐르도록 건사하는 길에 돈·품·말미를 쓸 노릇이 아닐까요?


  우리는 물값을 내야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맑은 냇물이 아니기도 하고, 물은 바람과 똑같이 누구도 값을 치르지 않고서 마음껏 누릴 푸른별 숨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큰고장뿐 아니라 시골조차 수돗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물값을 어마어마하게 치르는데요, 이렇게 물값을 치르면서도 정작 ‘맑은 물’은 아닙니다. 참말로 사람들은 돈을 어디에 쓰는 셈일까요? 나라는 물을 어떻게 건사하는 꼴일까요?



“네가 먹는 밥이나 채소, 과일도 물이 없으면 자라지 않아.

 시든 해바라기에 물 준 적 있지? 그 물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10쪽)



  맑게 흐르는 샘물이나 골짝물을 마시면서 자라는 남새랑, 수돗물을 주어 키운 남새는 맛이 어떻겠습니까? 샘물을 마신 남새한테서는 샘물맛이 납니다. 골짝물을 마신 남새한테서는 골짝물맛이 나요. 그리고 수돗물을 마신 남새한테서는 수돗물맛이 납니다.


  딸기란 열매가 있어요. 겨울이 저물고 봄이 깨어날 즈음 비로소 꽃망울을 맺으면서 한봄에 하얗게 꽃을 피우고, 늦봄에 차츰 익어 빨간알을 매달지요. 딸기란 열매는 늦봄이나 이른여름에 누려야 할 제철열매입니다.


  그러나 보셔요. 오늘날 사람들은 딸기를 언제 먹나요? 어떻게 한겨울에 딸기가 나서 누리나요? 한겨울 딸기란 뭘까요?


  한겨울 딸기는 모두 비닐집에서 키웁니다. 한겨울 ‘비닐집 딸기밭’은 기름(석유)을 땝니다. 수돗물을 듬뿍 먹입니다. 이밖에 다른 무엇을 더 먹이는지는 덧붙이지 않겠습니다만, 겨울 내내 기름하고 수돗물을 머금은 ‘오늘날 밭딸기’한테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물은 여러 가지를 녹여서 옮기는 일도 잘해. 

 생물의 몸속을 계속 흐르면서

 필요한 것을 필요한 곳에 가져다주기도 하고,

 필요 없는 것을 버려 주기도 해.” (13쪽)



  들짐승이나 풀벌레는 따로 물을 챙겨서 마시지 않습니다. 들짐승이나 풀벌레는 새벽나절 풀잎에 맺는 이슬을 살짝 훑으면서 하루치 물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들이나 숲에 사람이 물을 주지 않아도 어떻게 들풀이며 숲나무는 그렇게 푸르도록 우거질까요? 들이며 숲은 해가 진 저녁부터 밤을 지나 새벽에 이르도록 바람결이 바뀌면서 ‘바람이 품은 물’이 찬찬히 방울이 져서 이슬로 바뀌어 풀잎이며 줄기이며 가지에 잔뜩 맺는답니다. 풀이며 꽃이며 나무는 바로 이 ‘바람물’인 ‘이슬’을 머금으면서 하루를 싱그럽고 씩씩하게 납니다.


  이러다가 때때로 비가 내리지요. 비가 내릴 적에는 이 땅에 쌓인 먼지나 부스러기나 쓰레기를 씻어냅니다. 그 어떤 사람도 빗물처럼 말끔하면서 정갈하게 이 땅을 씻어내지 못해요. 비가 훑은 자리는 더없이 깨끗해요. 하늘도 들도 숲도 빗물을 받으면서 몸을 씻고 목을 더욱 든든히 축입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이 모습을 ‘물’이라고 부르는 거야.

 물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고, 스며들기도 해.

 고이고, 뿜어져 나오고, 날아가 흩어지기도 하지.

 하지만 날씨가 아주 추워지면…….” (19쪽)



  그림책 《오늘 날씨는 물》은 이야기를 어렵게 꾸미지 않습니다. 누구나 아는 듯하지만 정작 누구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물 이야기를 부드럽고 상냥하고 즐겁고 살뜰하게 들려줍니다.


  우리는 모두 물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물입니다. 우리는 서로 물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이란, 온누리를 돌고돌면서 우리한테 찾아온 빛살입니다. 우리가 마실 물이란 구름이기도 하고 바다이기도 하며 바람이기도 한 숨빛입니다. 어른으로서 돌볼 물이란 이 푸른별을 참말로 푸르게 적시는 물입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주면서 나누어 줄 물이란, 모든 숨결이 푸르게 빛나도록 북돋우는 물입니다.



“자, 그럼 이제 새를 부르자.”

“새를 부를 수 있어?”

“하늘에서 보면 뭐가 제일 잘 보일 것 같아?

 햇빛을 반사하는 우리들, 바로 물이라고.”

“아, 그래! 물은 반짝반짝 빛나지.” (26쪽)



  숲바람을 마시고, 손수 지은 밥살림을 누리고, 푸르게 반짝이는 맑은 물을 머금는다면, 어느 누구도 아프거나 앓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푸른별에 돌림앓이가 왜 퍼질까요? 맑은 바람도 물도 모두 줄어들거든요. 이 나라도 저 나라도 싸움연모(전쟁무기)를 새로 만들어서 으르렁거리는 길에 돈·품·말미를 끔찍하도록 쓰고요.


  서울사람은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한가람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사람은 풀죽임물(농약)이나 핵발전소나 숱한 지음터(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끔찍한 것들이 더럽히지 않는, 그야말로 숨을 살리는 물로 흙살림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꼭지를 돌려서 마시는 물이 아닌, 냇가나 샘가나 우물가에 가서 길어올릴 물입니다. 돈을 치러서 사다 마실 물이 아닌, 누구나 마음껏 맑고 즐겁게 누릴 물이어야 합니다.



“찬이야,

 나는 이대로 지구를 두세 바퀴 돌고 올게.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33쪽)



  물을 마시며 물이 됩니다. 사랑스러운 말을 나누며 서로 사랑이 됩니다. 바람을 마시며 바람이 됩니다.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아름다운 사이가 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어떤 말을 나눌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을 적에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면서 어깨동무를 할 만한가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삶을 먹고 사랑을 마시고 꿈을 나눌 적에 싱그럽고 푸른 마음으로 손을 맞잡는 사람이 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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