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2023.11.12.

수다꽃, 내멋대로 57 사마귀



  여러 해 앞선 어느 날, 발등에 사마귀가 하나 올랐다. 발을 씻을 적에 일부러 사마귀 돋은 쪽을 더 문질렀더니 사마귀는 하나둘 새로 돋으며 퍼졌다. “내가 사마귀한테 잘못했구나. 널 괴롭힐 뜻이 아니었는데!” 하고 뉘우치고서 왼발등에 돋은 사마귀를 그대로 두었다. 처음 돋은 사마귀는 엄지손톱보다 크게 부풀고, 둘레에 작은 사마귀가 꼬물꼬물 돋았다. 오른발등으로도 사마귀가 퍼지고, 왼손가락하고 오른손가락 몇 군데에도 사마귀가 퍼졌다. 목 뒤하고 등하고 무릎하고 옆구리로도 사마귀가 퍼지려 했다. 내 몸에 새로 돋은 사마귀를 본 이웃은 싫어하거나 꺼리거나 멀리하기도 하고, “원, 징그러운 놈 다 있네!” 하는 속마음을 낯빛에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난 이 모든 낯빛하고 몸짓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여러 해 동안 사마귀를 그냥 두었다. 아니, 사마귀를 쳐다볼 겨를이 없지. 날마다 낱말책엮기(사전편찬)를 하는 일로 바쁘고, 집안일을 하느라 바쁘고, 두 아이랑 곁님하고 이야기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살림을 그리는 일로 바쁘며, 온갖 책을 잔뜩 읽어내느라 바쁘고, 바깥일로 살림돈을 버느라 바쁘다. 이러는 사이에 2023년에 열세 살을 누리는 작은아이가 낫질을 익혀서 풀베기를 맡아 준다. 이러는 즈음에 열여섯 살 큰아이가 빨래나 밥짓기를 꽤 거든다. 2023년 10월이 저물려는 어느 날부터 사마귀가 자취를 감춘다. 두 아이가 먼저 알아챘다. “아버지, 아버지 발등 사마귀가 쪼그라들었는데요?” “그래? 어, 그러네.” “다른 사마귀도 사라지는 듯해요.” “그렇구나. 스스로 돋았다가 스스로 사라지네.” 내가 떠올리기로 열한 살 즈음에 처음으로 사마귀가 돋았다. 손가락 등쪽에 뽈록 돋아 눈에 뜨였는데, 사마귀가 난 다른 동무는 “야, 그럴 적에는 풀밭에서 사마귀를 잡아서 뜯어먹으라고 시키면 돼.” 하면서 참말로 사마귀를 잡아서 ‘손가락 등 사마귀’를 뜯어먹으라고 시키더라. “으, 난 못 하겠어. 안 아프니?” “응, 하나도 안 아파. 너도 이렇게 해봐!” “아냐, 난 못 하겠어.” 내 손가락 등에 돋은 사마귀는 석 달 즈음 지나 사라졌다. 2009년 어느 날 오른손등에 사마귀가 하나 돋았다. 씻을 적마다 북북 비볐더니 신나게 번졌다. 오른손등을 몽땅 덮었고, 왼손등으로도 퍼졌다. 가시어머니(장모)가 걱정하면서 “사위, 병원 가야 하지 않아?” 물으셨고, “사마귀는 안 건드리고 안 쳐다봐야 하는데, 제가 사마귀를 미워하면서 긁었더니 퍼졌어요. 이 미움을 씻을 때까지 사마귀가 그대로 있을 듯해요.” 오른손등 사마귀는 인천살림과 충주살림을 깨끗이 치우고서 전남 고흥으로 터전을 옮긴 2011년 가을이 지나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2021년 즈음 문득 돋은 왼발등 사마귀는 내가 미처 느끼거나 살피지 않은, 다스리지 않거나 씻지 않은, 스스로 사랑을 일으키지 않아서 싹튼 어느 미움이라는 씨앗이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이라고 본다. 다만, 어떤 미움씨를 심었는지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스스로 사랑씨를 심는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자고 달래었고, 문득 볼 적에 더 크거나 퍼진 사마귀를 느끼면, “난 아직도 미움씨가 크구나. 잘못했어. 눈물로 뉘우칠게.” 하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어떤 미움씨’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모든 미움씨’를 ‘오로지 사랑씨’로 품고서 풀어내는 길만 생각하기로 했다. 걸어다니면서, 두바퀴를 달리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이웃을 만나 말을 섞으면서, 책을 읽고 쓰면서, 책집에 깃들면서, 글월을 써서 부치면서, 시골집에서 풀꽃나무랑 들숲바다를 두루 안으면서, 마음하고 몸에 언제나 사랑빛이 너울너울 춤추도록 하루를 살아내자고 생각했다. 사마귀가 문득 수그러든 첫 날부터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모든 사마귀가 자취를 감췄다. 손가락 사마귀는 햇볕을 받고서 아예 사라졌고, 발등 사마귀는 햇볕을 더 받으면 ‘언제 사마귀가 돋은 적 있느냐’는 듯 까무잡잡한 살갗으로 바뀌리라 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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