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2023.11.8.

수다꽃, 내멋대로 56 좋아하지 않는



  어릴 적부터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언니도 안 좋아했다. 동무도 안 좋아했다. 누가 “좋아하는 사람 없어?” 하고 물으면,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사랑스러운 빛이 있기에, 한 사람만 골라서 좋아할 수 없더라. “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요.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없네요.” 하고 대꾸했다. 이런 이야기는 잇고 이어 1975년부터 2023년까지 고스란하다. 질리지도 물리지도 않는지, 둘레 이웃이나 동무는 자꾸 ‘좋다·싫다’로 사로잡힌다. 나는 제발 ‘좋아하지 말자’고, 오직 ‘사랑하자’고 말을 섞는다. “짝꿍도 아이도 안 좋아하나요?” “저는 어느 누구도 안 좋아합니다. 저는 누구라도 사랑하려는 마음입니다.” “‘좋아하다’가 ‘사랑’ 아닌가요?” “‘좋다’란, ‘좁히는 마음’이에요. ‘마음에 드는 쪽’을 ‘좁히’기에 ‘좋아하다’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좁혀서 마음에 들기에, 마음에 드는 쪽이 아니면 다 ‘안 좋아하다’이고, ‘싫어하다’로 흘러요. ‘싫다’는 마음은 어느새 ‘밀어내기’로 잇고, 마음에서 밀어내다 보면 ‘미움·미워하다’로 나아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도 삶도 ‘좋아할’ 일이 아닌, ‘사랑할’ 일입니다. ‘사랑’이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이에요. 사람이 사람다울 적에 사랑이거든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면서 살림을 짓고 숲을 품기에 비로소 사랑이에요. 사랑이라면 아무런 울타리도 담벼락도 없어요. 사랑이라면 거짓을 벗기고, 참을 빛살로 바라봐요.” “에,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힘들지 않아요? 아무리 말뜻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새 누가 ‘좋다·사랑’을 갈라서 써요?“ “옳은 말씀이에요. 요새는 ‘좋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속살을 헤아리는 사람이 확 사라졌어요. 그래서 다들 ‘좋은밥·좋은옷·좋은차·좋은집·좋은일자리’에 매달리지요. ‘좋은것’에 매달리니까, 사람들 스스로 좋다고 여겨서 품은 것이 아니라면 다 싫거나 미워하지요. 어느 쪽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쪽에서 안 좋아하면 바로 싸움이 붙고 서로 밀쳐내면서 미워합니다. 학교에서 반장선거조차도, 또 나라에서 모든 선거마저도, 어느 쪽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안 뽑히면 내내 싫어하고 미워하고 삿대질로 치달아요. 어느 쪽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뽑히면 그이가 무슨 말썽이나 잘못이나 저지레를 일으키는 각다귀라 하더라도 그냥 믿습니다. 아시겠어요? ‘좋은밥’을 먹어서는 몸이 오히려 죽어요. ‘좋은밥 = 좁은밥’이잖아요? 좁혀버린 밥을 먹는데 어떻게 몸이 살겠어요?” “네? 좋은밥을 먹으면 오히려 몸이 망가진다고요?” “그럼요. 좋은밥뿐 아니라 좋은책을 읽으면 마음이 망가집니다. 좋은말을 하면 마음이 지저분해요.” “아니, 뭔 소리예요? 좋은책이 오히려 나쁘고 좋은말이 되레 나쁘다고요?” “네, 그래요. ‘좋은책·좋은밥·좋은말’은 반드시 저쪽을 ‘나쁜책·나쁜밥·나쁜말’이라고 여기는 미움을 바탕으로 깔아요. ‘좋은책·좋은밥·좋은말 = 좁은책·좁은밥·좁은말’입니다. 스스로 살리는 기운이 아닌, 내가 아닌 남을 모조리 미워하고 싫어하며 불타오르는 잿더미를 얹고서 책을 읽거나 밥을 먹거나 말을 하니, 겉으로는 이쁘장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썩거나 죽어갑니다.” “…….” “잘 모르시겠지요? 몰라도 됩니다. 다만, 어느 것도 ‘좋아하’려 하지 말고, 그저 ‘사랑’하시기를 바라요. 숲처럼 사랑하고, 바다처럼 사랑하고, 바람처럼 사랑하면 됩니다.” “…….” “아기랑 아이를 봐요. 어떤 아기랑 아이도 엄마아빠가 ‘못생겼다·잘생겼다’로 안 가릅니다. 맞나요?” “네, 그렇긴 하죠.” “‘그렇긴 하죠’가 아닌 ‘그렇습’니다. 참모습을 보시기를 바라요. 좋은책 아닌 책을 읽고, 좋은밥 아닌 밥을 먹고, 좋은말 아닌 말을 하면 돼요. 그리고 어떤 책과 밥과 말을 품더라도 ‘늘사랑’이란 마음일 노릇이에요. 우리는 사람이에요. 사람이니 사랑을 하면 누구나 다 깨닫고 품고 풀어서 빛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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