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47] 아이한테 주는 이름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름벼리’와 ‘산들보라’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두 이름은 아이 어머니가 지었다 할 만하고, 어버이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밝히려고 생각한 끝에 나온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이름을 씁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스스로 제 이름을 찾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한테서 받은 이름을 오래오래 써도 즐겁고, 아이가 스스로 삶을 찾으면서 빚은 이름을 새롭게 써도 기쁩니다. 이름은 스스로 어떤 삶으로 나아가려 하는가를 들려주는 노래이거든요. 큰아이 ‘사름벼리’는 ‘사름 + 벼리’라는 얼거리입니다. ‘사름’은 시골 들에서 볍씨를 키워 싹을 틔운 뒤 논에 심고 나서 이레쯤 지나 뿌리를 튼튼히 내리면서 잎사귀에서 맑고 밝게 흐르는 빛을 가리킵니다. ‘벼리’는 시골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면서 살림을 가꾸려 할 적에 쓰는 그물을 이루는 코 가운데 하나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사름벼리’는 들살림과 바다살림이 어우러진 이름이요, 아름답게 살아갈 시골빛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어요. ‘산들보라’는 ‘산들 + 보라’예요. ‘산들’은 산들바람을 가리키지만, ‘메(산)’와 ‘들’을 가리킨다고도 할 만해요. 산들바람이란 지구별에서 모든 목숨한테 가장 싱그러우면서 시원하고 포근한 바람입니다. ‘보라’는 마음속을 보라는 뜻, 곧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보라’는 눈보라나 꽃보라 같은 데에서 쓰는 ‘보라’를 가리킨다고도 할 만해요. 다시 말하자면 ‘산들보라’는 사람이 오롯이 서는 길을 밝히는 삶빛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가 아이한테 선물한 두 가지 이름은 참말 우리들 삶노래입니다.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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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6] 달걀꽃



  학자들은 ‘망초’나 ‘개망초’라는 풀한테 한자를 덧씌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망초는 망초일 뿐이고 개망초는 개망초일 뿐입니다. 망초나 개망초는 꽃이 비슷하게 생깁니다. 둘은 줄기와 잎사귀에서 다르고, 꽃이 피는 철이 다릅니다. 알아보는 사람은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을 적에 알아보지만, 못 알아보는 사람은 꽃이 피어도 못 알아봐요. 그러나, 이 들풀을 가리켜 ‘달걀꽃’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웃들이 있어요. 흰자와 노른자가 있는 달걀처럼 생겼구나 싶어서 달걀꽃이라 합니다. 더 헤아린다면 ‘새알꽃’이라고도 할 만해요. 웬만한 새가 낳는 알은 흰자와 노른자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분은 ‘달걀’이나 ‘닭알’이라는 한국말을 안 쓰고, 구태여 ‘계란(鷄卵) 후라이(fry) 꽃’이라든지 ‘계란꽃’ 같은 이름을 붙이곤 해요.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인데, 둘레에서 이렇게 엉뚱하구나 싶은 이름으로 잘못 붙이는 사람이 있다면, 똑똑하게 알려주고 바르게 이끌 수 있으면 얼마나 예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망초와 개망초를 두고 ‘달걀꽃’이라는 이름뿐 아니라 고장마다 새로우면서 남다르게 이름을 붙일 수 있어도 즐거우리라 느껴요. 망초나 개망초는 나물로 먹어도 맛있고, 짜서 물로 마시거나 기름에 튀겨서 먹어도 맛있습니다. 4347.7.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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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5] 골짝마실



  아이들과 책방에 갈 적에는 책방마실입니다. 아이들과 읍내에 갈 적에는 읍내마실입니다. 아이들과 바다로 갈 적에는 바다마실이고, 아이들과 일산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뵈러 갈 적에는 일산마실이에요. 음성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갈 적에는 음성마실입니다. 아이들하고 골짝마실을 합니다. 골짜기에 가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골짝마실을 합니다. 이웃집에 찾아간다면 이웃마실이 되고, 우체국까지 소포를 부치러 가면 우체국마실입니다. 우리 식구는 늘 마실을 하면서 지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꿈나라로 갈 적에는, 꿈마실이 됩니다. 4347.6.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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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4] 풀



  이웃한테서 ‘산야초 발효원액’을 선물로 받습니다. 고운 상자에 담은 고운 병을 만지면서 즐겁습니다. 이 고운 병에는 얼마나 고운 풀물이 깃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병에 붙은 종이딱지를 읽습니다. ‘○○○ 산야초 발효원액’이라는 이름을 읽습니다. ‘산야초(山野草)’라 하는군요. 그러고 보면, 마을 할매와 할배는 늘 ‘잡초(雜草)’를 뜯거나 농약을 뿌려 죽입니다. 도시에서 지내는 이웃들은 ‘채식(菜食)’이나 ‘생채식(生菜食)’을 합니다. ‘유기농 채소(菜蔬)’를 찾아서 먹는다든지 아이들한테 ‘야채(野菜)’를 먹이려고 애쓰기도 해요. 아이들과 아침을 먹으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중학교 적에 배운 김수영 님 시 〈풀〉을 떠올립니다. 오늘날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은 〈풀〉이라는 시를 배우리라 느껴요. 그러나, ‘풀’을 풀로 배우거나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늘 풀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풀을 풀로 느끼지 못하기 일쑤이고, 언제나 풀을 먹으면서 풀을 풀이라 여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숲에도 들에도 밭에도 멧골에도 바닷가에도 길에도 빈터에도 꽃그릇에도 푸르게 빛나는 싱그러운 풀이 돋습니다. 4347.6.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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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3] 하얀눈이



  곁님이 아이들한테 만화영화를 보여줍니다. 무슨 만화영화인가 하고 기웃거리니 ‘백설공주’입니다. 그런데 곁님은 아이들한테 ‘백설공주’라는 이름을 안 쓰고 ‘하얀눈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하얀눈이’가 뭔가 하고 생각하다가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요, 만화영화에 나오는 아이는 ‘하얀눈이’로군요. 아무래도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을 작품인 ‘백설공주’일 텐데, 이 작품을 지난날 한국 작가와 번역가와 어른은 그저 한자로 ‘白雪公主’라 썼을 뿐입니다. 아이들 어느 누구도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백설’이라 말하지 않지만, 어른들은 구태여, 어른들 가운데에서도 학교를 다니거나 책 좀 읽었거나 지식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굳이, ‘백설’이라 읊습니다. ‘흰눈’도 ‘하얀눈’도 말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국말사전을 들추면 ‘白雪’이라는 한자말만 덩그러니 실리고, 한국말은 안 실려요. 하얗게 내리는 눈이기에 ‘하얀눈·흰눈’이요, 하얗게 내리는 눈처럼 고우면서 환한 빛을 가슴에 품은 아이인 터라 ‘하얀눈이’입니다. 4347.6.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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