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초에 닿아 처음 산 책



  2018년 3월 29일 저녁 늦게 도쿄 진보초에 닿았습니다. 이튿날 이른아침에 하치오지에 가서 이날 저녁에 느즈막히 진보초로 돌아왔어요. 저녁 일곱 시를 넘은 터라 문을 닫은 책집이 많은데, 곧 닫으려고 길거리 책꽂이를 들이는 곳에서 부랴부랴 사진책 한 권을 장만했습니다. 냇가를 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찬찬히 이웃으로서 담아낸 사진책이에요. 문득 돌아보면 한국에서는 아직 ‘냇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살뜰히 담아낸 일을 찾아보기 어렵지 싶습니다. 누구인가 이러한 사진을 찍은 적 있을까요? 사진이 아니어도 글을 쓴 적이 있을까요? 장관이기 앞서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도종환 님이 1980년대에 《강마을 아이들》이란 ‘푸름이 글모음’을 엮은 적은 있습니다만. 아, 김용택 님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동안 섬진강 이야기를 글로 쓰고 엮었네요. 2018.3.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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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그대가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그 책이 아름다운 줄 느끼겠다면 아름다운 책인 줄 알면 됩니다. 그대가 알든 모르든, 그 책이 훌륭한 줄 느끼겠다면 훌륭한 책으로 바라보면 됩니다. 그러나 도무지 그 책을 모르겠다면, 좋아할 만하지 않다면, 이리하여 무엇이 왜 어떻게 훌륭한지 알 길이 없다면, 그저 모르는 채 있으면 됩니다. 다만, 그대가 좋아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더라도, 온누리에는 더없이 아름다우며 훌륭하고 뜻있는 책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책을 어떻게 마주할 적에 삶이 즐거울까요? 내가 어느 책에 깃든 알찬 줄거리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헤아리지 못할 적에는, 이 책을 이웃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 대목을 놓고는 언제나 ‘헌책집 일꾼’을 떠올립니다. 갖은 갈래 갖은 전문가한테 갖은 숨은 책을 캐내어 사고파는 헌책집 일꾼은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책을 알지도 않고, 책을 읽지도 않은 깜냥’이지만, ‘헌책집 일꾼이 좋아하지 않아도, 이 책이 누구한테 뜻있고 값있게 쓰일 만한가’를 가슴으로 알아채거나 느낀다고 해요. 비록 ‘책장사로 바쁘고 고되어 책 한 줄 읽을 틈’이 없지만, 헌책집 일꾼은 ‘책을 읽을 틈이 없어도, 책 하나하나를 마음으로 바라보고 온몸으로 갈무리하고 건사하기 때문에, 읽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책이 어떻게 누구한테 얼마나 쓰이려는가를 짚을 수 있다’고 합니다. 책을 놓고서 글을 쓰는 분이라면, 이른바 비평이나 평론을 한다든지, 서평을 쓰거나 다루는 일을 하는 분이라면, ‘헌책집 일꾼’ 같은 매무새하고 마음결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가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또 알든 모르든, 느끼든 못 느끼든, 온누리 모든 책을 다 사거나 읽거나 훑을 수 없더라도, 책마다 달리 흐르는 숨결을 밝히는 사람이나 글이 있을 적에, 이를 어떤 가슴으로 어떻게 어느 만큼 살펴서 받아들일 적에, 우리 삶이 즐겁고 이 나라가 아름답게 거듭날 만한가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3.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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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늘



  책이 훌륭하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이 훌륭하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책이 눈꼽만큼도 안 훌륭하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에 맞추어 훌륭해지기도 하고 놀라워지기도 하며 새로워집니다. ‘어떤 책’을 읽느냐보다는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눈’으로 읽고 ‘어떤 손’으로 살림을 짓느냐로 갈립니다. 어떤 책에서든 아름다운 숨결을 읽어내어 어떤 자리에서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지피고, 어떤 하루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즐거움으로 꽃피울 줄 안다면, 우리로서는 종이책 읽기나 사람책 읽기나 숲책 읽기도 모두 값집니다. 2018.3.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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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좋은 일인가



  새벽에 고흥집을 나섭니다. 고흥읍에서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타니 텔레비전이 있고, 이 텔레비전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54조 원에 이르는 무역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히며, 해마다 중국이 미국 지적재산권을 수천억 달러에 이를 만큼 훔쳤다고 덧붙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에요. 아니, 맞는 말입니다. 중국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지적재산권도 어마어마하게 훔칩니다. 그러나 이를 놓고 한국이나 일본은 중국에 거의 못 따집니다. 더 파고들면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에 짓눌린 채 온갖 살림이며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만, 해방 뒤에는 일본 지적재산권을 어마어마하게 훔쳤습니다. 게다가 일본 지적재산권뿐인가요. 온누리 여러 나라 지적재산권을 ‘한국은 가난한 나라’라는 토를 붙이면서 훔쳐서 썼어요. 이런 일을 일삼아서 떼돈을 거머쥔 출판사가 제법 있습니다. 이제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어쨌든 좋은 일인가요?” 이웃나라 지적재산권을 훔쳐서라도 우리가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 참말 어쨌든 좋은 일인가요? 아이들이 달리며 놀다가 넘어집니다. 무릎이나 팔꿈치가 까집니다. 피가 철철 흐를 적도 있습니다. 이때에 아이들을 바라보며 맨 먼저 “너희 몸은 늘 튼튼하다는 마음으로 파랗게 거미줄을 그리렴” 하고 이르고서 꼬옥 안습니다. 살살 달래고서 핏물을 닦고 구멍난 옷을 기웁니다. 밤에 하루를 돌아보며 아이들하고 말을 섞어요. “낮에 놀다가 넘어졌잖니. 많이 아팠을 텐데, 이렇게 아프면서 배울 수도 있어. 너무 서두르지 않았나 하고. 그리고 다쳤을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그리고 다쳐서 아플 적에 몸이 어떠한가를 느끼면서 우리 이웃을 더 깊이 살필 수 있단다.” 어쨌든 좋은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배울 수 있다”고 여겨요. 지적재산권 훔침질이란 무엇인가를 배우고, 오늘 우리가 새롭게 지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울 수 있어요. 2018.3.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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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다



  새벽바람으로 구미 삼일문고에 이야기꽃을 펴려고 가는 길에 돌아봅니다. 시골에서 산 지 여덟 해를 되짚으니, 시골살림이 늘수록 시골이웃이 나란히 늡니다. 인천이나 서울이라는 고장에서 살 적에는 인천이웃하고 서울이웃이 곁에 많았다면, 시골에서 살 적에는 우리 시골마을뿐 아니라 둘레 작은 도시나 시골에 깃든 이웃이 부쩍 늘어납니다.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도 먼 터라 외려 서울길이 가장 빠르다 할 만한데,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서도 으레 여덟아홉 시간쯤 걸리는 고장에 사는 이웃을 만나요. 더 헤아리면 나 스스로 배움길을 걷는 만큼 이웃을 달리 사귑니다. 책만 짓는 살림이 아닌, 숲그림을 품는 살림으로 나아가는 동안, 누구보다 나 스스로 새로 배우고, 이 배움길에 나란히 나선 숱한 이웃을 알아봅니다. 2018.3.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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