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려고 하면



  하려고 하면 하기 마련이지만, 하려고 안 하면 안 하기 마련입니다. 읽으려고 하면 읽기 마련이지만, 읽으려고 하지 않으면 안 읽기 마련입니다. 배우려고 하면 배우기 마련이지만,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안 배우기 마련입니다. 어떤 일이 왜 누구한테는 일어나고 누구한테는 안 일어나는가를 굳이 생각하지 않고 살았기에 “하려고 하면 한다”는 말을 깊이 안 살폈습니다. 되는 까닭하고 안 되는 까닭은 아주 쉽습니다. 하려고 하기에 어떤 일이든 되고, 하려고 안 하기에 어떤 일이든 안 됩니다. 보려고 하기에 두 눈을 감고도 마음속을 환히 바라볼 수 있고, 보려고 하지 않으니 두 눈을 빤히 뜨더라도 마음속은커녕 겉모습조차 못 알아보기 일쑤입니다. 훌륭하다는 책을 곁에 두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고,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손길로 어루만지면서 짓느냐 같은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밥 한 술로도 배부르고, 바람 한 줄기로도 배부르며, 이슬 한 방울로도 배부릅니다. 2018.7.2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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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하마 책집 앞에서



  일본 오사카시 스미노에구 코하마역에 자그맣게 책집이 있습니다. 이 책집 앞을 지나가면서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3분이나 5분 즈음 틈을 낸다면 책을 여러 권 장만해서 가슴에 품을 테지만, 1분이나마 틈을 낼 수 없기에 책집 둘레를 천천히 거닐다가 사진을 품자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품으면서, 사진에 남은 책등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책이 걸어온 긴긴 나날을 어림하면서, 앞으로 이 책이 새로 만날 책벗 손길을 헤아리면서, 오늘 제가 걸어갈 살림길을 되새깁니다. 우리 집 책꽂이에 두어도 책이요, 눈맛으로 살펴서 담을 적에도 책입니다. 2018.7.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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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든 안 하든



  나한테 손쉬운 일이 그대한테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대한테 수월한 일이 나한테 빠듯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쉽게 읽어내어 헤아리는 책이 그대한테는 골이 아플 수 있습니다. 그대가 재미나게 읽으며 웃거나 우는 책이 나한테 따분하거나 밍밍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잘하다 보니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대가 누구보다 훌륭히 하다 보니 늘 고스란히 이루어내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즐기면서 곁에 잔뜩 쌓아 두는 책이 있습니다. 그대가 더없이 아끼면서 둘레에 한가득 쟁여 두는 책이 있습니다. 한다면 할 뿐이고, 안 하거나 못 한다면 안 하거나 못 할 뿐이겠지요. 하기에 더 뛰어나지 않고, 못 하거나 안 하기에 덜 떨어지지 않아요. 이 책을 읽어내거나 장만했거나 거듭 새긴대서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책을 손에 쥐든, 어떤 살림길을 걷든, 스스로 즐겁게 하면서 이웃 곁에서 너그럽고 푸진 마음이 되도록 하루를 다스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2018.7.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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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르지 않을 책



  언제나 배웁니다. 언제나 거듭납니다. 언제나 하늘을 날고 물살을 밟고서 걷습니다. 언제나 노래합니다. 언제나 춤춥니다. 언제나 웃고 웁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언제나 꿈꾸다가 언제나 잠듭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이든 합니다. 꼭 어느 때가 되어야만 배우거나 사랑하거나 노래할 까닭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기에 여느 자리에서도 할 수 있고, 언제나 하려고 나서기에 즐겁거나 기쁘게 깨어나는 몸짓으로 하루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이어야 하거나 저 책이니 안 될 일은 없어요. 이 책이니까 느리게 배운다거나 저 책이라서 빠르게 배우지 않습니다.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라면 어느 책이든 삶을 읽도록 북돋웁니다. 배우려고 하는 눈빛이라면 책값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배우려고 하기에 모든 책에서 배우며, 배우려고 하기에 책값으로 쓰는 돈하고는 댈 수 없이 어마어마한 살림돈을 새로 얻어요. 거스르기에 못 배우고, 거스르기에 손에 책을 못 쥐며, 거스르기에 책값 한 푼에 벌벌 떨면서 제자리걸음이나 쳇바퀴질입니다. 2018.7.2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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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눈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대량생산·대량소비’에 길들거나 얽매이면서 잠든 눈이 되고 말는지 모릅니다. 한꺼번에 값싸게 많이 찍어내어,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빠르게 써버리는 길을 가느라, 길들고 물들고 젖어들고 말아 눈이 감기거나 닫히지 싶어요. 사람들 마음을 울리거나 움직이는 아름다운 책이 널리 팔리는 길보다, 대량생산·대량소비에 발맞춘 베스트셀러가 책집이나 출판사를 사로잡으면서, 우리 스스로도 이러한 틀에 얽매이지 싶습니다. 이때에는 글이나 책마다 다른 맛을 보는 일하고 동떨어질 테지요. 더 잘 팔리거나 더 많이 팔려서 더 돈을 그러모으는 쪽으로 기울 테고요. 잠든 눈으로는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해요. 감긴 눈으로는 참길을 알아차리지 못해요. 닫힌 눈으로는 참넋을 읽지 못해요. 막힌 눈으로는 참살림을 짓지 못해요. 사로잡힌 눈으로는 참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길들어 묶이고 만 눈으로는 참사람 되는 자리하고 멀어져요. 학교하고 교과서는 우리 눈을 잠들게 하는 구실을 할는지 모릅니다. 일제강점기에 군국주의·제국주의는 식민지 어린이뿐 아니라 일본 어린이까지 머리를 박박 밀고 좁은 교실에 가두어 엉터리 교과서로 ‘우두머리 만세!’를 쑤셔박았습니다. 오늘날 일본은 운동선수라면 머리를 아직 박박 미는데, 한국은 운동선수뿐 아니라 여느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까지 머리를 짧게 치도록 못박습니다. 옷차림도 홀가분하게 건사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한여름에 민소매나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면 ‘버르장머리없다’는 말을 퍼뜨리기까지 합니다. 종살이란 잠든 눈입니다. 참살이란 뜬 눈입니다. 쳇바퀴질이란 갇힌 눈이요 마음입니다. 날갯짓이란 깨어난 눈이요 마음입니다. 2018.7.2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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