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인가 글쓰기인가



  신춘문예에 소설을 내고 싶다는 젊은 분을 만났어요. 이분이 걱정하는 대목을 듣고서 생각해 보았어요. 이분에 앞서 나라면 어떠한가 하고 말이지요. 우리는 신춘문예나 등단이라고 하는 길을 거쳐야 소설가나 시인이 될 만할까요? 우리는 스스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소설이나 시라는 틀에 맞추어 글을 쓸까요? 신춘문예라는 이름을 얻고 싶다면 신춘문예에 뽑히도록 글을 쓰면 되어요. 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굳이 신춘문예라는 이름이 없어도 된다고 여기면 스스로 쓰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 되어요. 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이 알아준다거나 상금을 받아야 좋은 글이 되지 않아요. 내 글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많아야 글을 쓰는 보람이 생기지 않아요. 스스로 짓는 삶을 스스로 글로 옮기면서 마음에 기쁨이 넘실거리기에 글쓰기(글짓기)라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요. 삶을 쓰듯이 글을 써요. 삶을 짓듯이 글을 지어요. 밥을 지어서 먹듯이 글을 지어서 나누고, 옷이랑 집을 짓듯이 글을 지어서 펼칩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이 좋아할 만한 글을 써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이웃이 사랑할 만한 글을 써도 재미있고요. 우리는 스스로 어느 길이 우리한테 기쁘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찬찬히 생각해서 슬기롭게 나아가면 됩니다. 2017.4.3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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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점’하고 ‘책방’은 다르다



  대여점하고 책방은 다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대여점은 책을 빌리는 곳이고, 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지요. 이 대목에서 다를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더 벌어지는 자리가 있어요. 책방이 책방 아닌 대여점 구실을 한다면 이곳에서는 이야기가 흐르지 못합니다. 똑같거나 엇비슷한 책이 그저 돌고 돌 뿐입니다. 이와 달리 책방에서는 아주 흔한 책이든 아주 드문 책이든, 책 한 권을 사이에 놓고서 책방지기하고 책손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갑니다. 책방은 이야기가 흐르기에 비로소 책방입니다. 책방은 다시 마을책방하고 큰책방을 가를 수 있어요. 마을책방은 책방지기 한두 사람 힘으로 꾸립니다. 큰책방은 책방살림을 다스리는 우두머리 몇 사람에 ‘직원’이나 ‘알바생’이 있지요. 마을책방을 찾아가는 책손은 언제나 책방지기하고 얼굴을 마주하면서 책을 만집니다. 큰책방을 찾아가는 책손은 누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는 직원이나 알바생하고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이 책을 만집니다. 마을책방에는 오래된 단골이 책방지기하고 이야기를 쌓고 삶을 쌓으며 사랑을 쌓습니다. 큰책방을 다니는 오래된 단골은 이 큰책방 직원이나 알바생이 누가 누구인지 알 턱도 없을 뿐 아니라, 서로 아무런 이야기도 삶도 사랑도 쌓지 않습니다. 마을책방 손님은 책방지기하고 ‘책으로 나누는 마음’을 잔잔하게 피우지만, 큰책방 손님은 큰책방에 그저 ‘실적’을 쌓아 줄 뿐입니다. 대여점이 나쁘다거나 큰책방이 아쉽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여점과 큰책방은 저마다 알뜰히 맡은 몫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대여점하고 큰책방에 없으나 마을책방에 오롯이 있는 이야기하고 삶하고 사랑을 밝히려 할 뿐입니다. 2017.4.1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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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뜻



  삼례에 있는 ‘동상연구소’에서 《인문예술》이라는 ‘연간 무크지’를 냈습니다. 아직 글삯은 못 받았지만 책은 이쁘게 잘 나왔습니다. 이렇게 이쁘게 잘 나온 책이니 굳이 글삯은 안 받고 자원봉사를 했다고 기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이쁜 책에 글을 하나 실었습니다. 저는 《영리한 공주》라고 하는 아주 멋진 어린이문학을 바탕으로 ‘낮에 호미 쥐고 밤에 책을 드는 살림’ 이야기를 써 보았어요. 원고지로 100장에 이르는 긴 글인데, 글을 다음처럼 마무리지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뜻이란 바로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2017.3.11.흙.ㅅㄴㄹ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언제 어디에서나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활짝 웃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숨결이 흐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놀고 얼마나 춤을 잘 추며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고 얼마나 웃음을 잘 지으면서 동무하고 손을 맞잡는가를 새삼스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 어른들도 ‘노래방이 아니어’도 멍석만 있으면, 또 멍석 없이 마당만 있으면, 또 멍석도 마당도 아니어도 논두렁이나 오솔길에 서기만 해도 춤사위가 흐드러지고 노랫결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영리한 공주》라는 조그마한 어린이책에 나오는 ‘똑똑한 가시내’는 스스로 모든 삶을 배웠고, 모든 살림을 지으며, 모든 사랑을 나누어요. 이 똑똑한 가시내는 세 가지 꿈을 들어 준다는 말에 ‘물감’하고 ‘바늘’하고 ‘종이’를 바랐어요. 그림을 그리고 옷을 지으며 이야기를 써요.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귀농자금이 더 많이 있어야’ 할까요? ‘자가용이나 농기계를 더 많이 갖추어야’ 할까요? ‘인문 지식이나 철학 지식을 더 많이 머릿속에 담아야’ 할까요?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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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고 영화로



  ‘하이디’는 만화영화로 처음 만났습니다. 오래도록 만화영화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1970∼80년대에는 ‘일본 중역 간추린’ 하이디가 자그마한 학급문고 한켠에 있었지 싶고, 그무렵 이 일본 중역 간추린 ‘하이디’를 읽었는지 가물거립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로 살며 만화영화 하이디를 새삼스레 보며 놀랐고, 이 훌륭하며 아름다운 작품에 깃든 숨결을 새롭게 만나려고 ‘안 간추리고 모두 실은’ 두툼한 《하이디》를 장만해서 찬찬히 읽어 봅니다. 하루에 몇 쪽씩 때로는 스무 쪽씩 읽다가 우리 도서관학교에 영어책이 하나 있을까 싶어서 살피니 마침 하나 나옵니다. 언제 장만해 놓았는지 아련하지만 미리 장만해 놓기를 잘했구나 싶고, 나중에 손에 쥐어 읽을 날을 헤아리며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책은 그때그때 갖출 만하구나 싶어요. 2017.2.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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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는 책이 아니지만



  아이들이 학습지를 풀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책이 아닌 학습지만 손에 쥔다 한들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한테 학습지만 떠맡긴 채 어버이나 어른은 배움을 게을리 한다면? 아이들만 배우라 하고 어버이나 어른은 배울 생각이 없다면?


  학습지는 책이 아닙니다. 교재나 교과서도 책이 아닙니다. 꼴은 책일는지 몰라도 알맹이는 책이 아닙니다. 학습지·교재·교과서는 배움으로 나아가는 길에 곁에 두는 작은 동무와 같습니다. 학습지를 아이한테 맡길 적에는 이 대목을 잘 헤아리면서 어버이랑 어른도 저마다 새롭게 배움길에 나서는 몸짓을 보여야지 싶어요. 이러면서 아이가 ‘학습지 아닌 책’도 만날 수 있도록 북돋아야겠지요.


  아이한테 책만 떠맡긴다고 해서 아이가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가위만 쥐어 준다고 해서 아이가 뭔가를 오리지 못해요. 호미만 쥐어 준대서, 돈만 쥐어 준대서, 자동차 열쇠만 쥐어 준대서, 통장만 쥐어 준대서, 참말 아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쥐어 주든 이 ‘무엇하고 얽힌 이야기’를 ‘늘 사랑스러운 손길’로 ‘따스하게 함께하는 숨결’이 될 수 있어야지 싶어요. 2017.2.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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